사진 출처 -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71386
한국에서 가르치지 않는 부분인데요, 이 요하문명을 알아두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증산도나 환단고기의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믿지 않으므로 이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구요.
요하문명권은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그 시대의 중국민족의 권역이 아닙니다.
중국의 본류라고 주장하는 주나라 입장에서 동이라고 불리우는 오랑캐의 땅이었죠.
이쪽의 문명이 중요한 이유가 세가지가 있는데요.
1. 청동기가 없는데 국가 규모의 단체가 만들어졌다
- 홍륭와문화가 기원전 6천년 전인데, 이때는 신석기입니다. 아예 청동기가 없죠... 그런데 사람 키 서너배에 달하는 신상들과 제사를 지내는 제사터, 그리고 조각된 옥들이 다량 출토되었습니다 (황하문명보다 빠릅니다)
- 이게 무슨 말이냐면, 국가급의 규모의 단체가 존재하고 거기에 제사를 지낼 수 있을 정도의 신분계급이 존재하는 사회가 있었다는 거죠
- 그래서 이걸 따로 옥기시대라고 따로 부르고 옥기시대 문명으로 보는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2. 요하문명은 중국의 황하문명과 유연관계가 적고 한국고대사와 밀접하다
- 물론 여기서 나온 출토물에는 곡옥이나 옥으로 만든 용이 나와서 중국과 한국에 모두 영향을 준것 같기도 합니다만...
- 이 문명의 후예인 홍산문명에서 고조선의 지표유물인 '비파형동검' 이랑 '빗살무늬토기'가 나옵니다. 그것도 떼거지로...
링크(조선일보니까 클릭주의)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5/18/2016051800190.html
3. 중국은 그래서 고조선도 중국문화라고 주장하는 문화 다기원론으로 전환했습니다
- 이 부분이 문제인데요... 한국에서는 고조선의 위치나 뭐 그런걸 제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 하지만 이미 중국은 요하문명을 중국 문명으로 가르칩니다
- 그런데 이거 파고 들면 고구려도 중국것이야 합니다. (비파형 동검, 빗살무늬 토기 등이 고조선->고구려로 이어지거든요)
- 그래서 동북공정이라고 불리고 있고, 한국은 손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 뭐...만주가 이제 중국 땅인 걸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역사까지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 고구려가 원래 이름이 구려인데, 한자로 고려로 썼고, 후대의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고구려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이 영문명이 Korea인 것도 그래서죠. 이걸 빼앗기지 않으려면 우리도 알아야 합니다.
- 상고시대로 갈 수록 지금의 국가 개념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모르고 안가르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PS1. 쓰고 다시 읽어보니 마치 홍산문명이 고조선인 것처럼 쓴 거 같아서 부연합니다. 홍산후기로 갈수록 고조선과의 유연관계가 늘어나지만, 중국과의 유연관계인 유물들도 많습니다. 그 시절의 문화권역이 생각보다 넓게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PS2. 글의 논지는 한국에서도 요하문명을 가르치고 연구해야 한다입니다
[KCTV 인문강좌] 요하문명의 발견과 동북아 상고사의 재편 1부_우실하 교수
[KCTV 인문강좌] 요하문명의 발견과 동북아 상고사의 재편 2부_우실하 교수
이 연구와 겹쳐보면 뭐가 있긴 있나봅니다.
나라이름으로 쓸 때는 "리"로 발음한다고 옥편이나 중국25사에 나옵니다.
용비어천가 제6장에도 "리"로 발음하라는 내용이 있고요.
https://weekly.donga.com/List/3/all/11/1942579/1
고릿적이라는 표현이나 고리타분하다는 표현에 아직 남아있죠.
[KCTV 인문강좌] 요하문명의 발견과 동북아 상고사의 재편 1부_우실하 교수
[KCTV 인문강좌] 요하문명의 발견과 동북아 상고사의 재편 2부_우실하 교수
유투브에서 처음 접했던 우실하 교수님 영상인데 @데이스타777님 말씀과 일통하는 부분이 있어 링크 남겨봅니다.
만리장성 생각하면 지들도 할말 없을테데 말이쥬ㅋㅋ
그 DNA가 21세기에 한류로 다시 세계를 덮치고 있습니다
요하문명에 소하연문화에는 도기에 갑골문자 이전의 도해와 같은 문자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도시의 출현은 옥기문명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인력을 많이 필요로하는 거석과 그 시절 직인없이 만들 수 없는 옥으로 만든 장식물로 계급과 계층, 규모를 추정해서 문명급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청동기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전의 '문명'의 개념에는 맞지 않으나, '옥기문명'이라는 형태로 초기 형태의 문명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빠 ==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라는 건 너무 지나친 비약이라고 봅니다. 역사연구 그 자체를 폄훼하는 발언이라서 댓구해드리기 어렵네요.
제 글의 취지는 과거를 제대로 알자는 것이고, 요하문명은 고조선 등의 한국의 선조 문명과 큰 유연관계에 있으니 연구해야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요하문명은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조상이기도 한 것이죠.
그러나, 위의 댓글들을 읽어보니 매우 우려스러운 지점이 있습니다.
중국이 쓸데없이 고대문명사를 '중국의 것'으로 만든다고, 한국도 굳이 '한국의 것'으로 만들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만약 요하문명이 있었더라도, 요하문명의 주민들의 후손은 수천 년 후에 한국인이 되었을 수도, 중국인이 되었을 수도, 시베리아인이 되었을 수도, 바다 건너 일본인이 되었을 수도 있죠.
수천 년 동안 매우 많은 인구이동이 있었고, 전쟁이 있었으니까요.
현대 국가와 고대 국가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것이 없습니다.
고대문명사는 그냥 "이런 게 있었구나" 정도로 짚고 넘어가면 되는 것이지,
"이건 우리 것이다!!"라고 주장하는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고대문명사는 굳이 따지자면,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고대문명사에 소유(?)나 강한 인과관계를 주장하는건, 마치 일베가 싫어서 미러링하여 워마드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굳이 한국 소유를 주장할 필요는 없고, 중국이 정신나간 짓을 하고 있다고만 얘기하면 되는 겁니다. 어찌 "중국 소유 또는 한국 소유"라는 이분법적인 생각만 하십니까?
어차피 고대사와 현대국가 간의 관계가 강하지도 않은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국제사회에 들고갔다가는 씨알도 안 먹힙니대. 국제사회에 들고가려면 말이 되는 얘기를 들고 가야죠.
한국: "요하문명은 한국 역사래"
국제사회: "음.. 근데 저 위치에 지금은 베이징이 있잖아? 오히려 중국에 가깝지 않니?"
이런 반응이 나올거 뻔합니다.
차라리 아래와 같이 대응하자는거죠.
한국: "요하문명은 한국, 중국 사이의 지역에서 발생한 문명이고, 두 나라 역사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몰라. 근데 중국이 지들꺼라고만 우기고 있대"
국제사회: "중국ㅋㅋㅋㅋㅋㅋ 저 ㅅㄲ들 또 개뻘짓한다 개웃기넼ㅋㅋㅋ"
아직도 이병도의 후예들은 자신이 뭘 하는지도 모른체 동북공정에 찬성하고 임나일본부설을 긍정하는 일본의 사학자들과 놀아나고 있습니다.
돈들여서 정부에서 '동북아역사재단'을 만들어 동북공정에 대항하라고 했더니만 고조선을 부정하고 심지어 신라와 백제도 뺀...독도도 당연히 지우고...가야만 존재하는-임나일본부설에 의하면 가야를 일본인이 지배함- 기이한 고지도를 내놓았다가 재야 역사학자한테 국회에서 깨지고나서 고지도 출판을 포기한 적도 있습니다.
한국 강단사학자들은...정신차려야만 합니다.
글 후반부에 언급하신 임나일본부설은 말이 안되는거 맞고요.
문제는 한사군 한반도설과 다르게 해석되는 사료나 근거도 꽤 있는데, 애초부터 그런건 무시되거나 표기 오류라는 식으로 치부되니까요.
재판으로 따지면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1심 판결과 다른 반증과 해석이 가능한데,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거죠. 심지어 우리측 변호사(주류사학계)도 제대로 다퉈 볼 생각도 없이 심드렁한게 문제입니다.
사마천 사기에도 낙랑군에는 갈석산이 있고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에 지금도 갈석산이 있고 산해관에서 만리장성 시작하는거 모르는 사람 없죠. 식민사학자들만 모른다는 사실;
그리고 이 한사군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서 예전에 동북아역사재단이 만리장성을 북한 평양에서 시작하는 걸로 그려놓은 중국지도 배꼈다가 욕 디지게 먹고 47억원 들여 만든 지도 폐기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병도는 해방되고나서 친일을 했기에 나 죽었다...하고 찌그러져 살다가 갑자기 이승만이 불러서 등용된 사람입니다.
당연하다구요?
이런사람이 문교부장관, 서울대학장이 되어서 역사왜곡을 주도하였고 제자들이 전국에 퍼진겁니다.
하계는 논문통과로 학위장사를 하기 때문에 이병도의 위세와 맞지 않으면 학위를 주지 않았지요.
이젠 바뀌어야 합니다.
일단 유명한 것으로는 세종실록지리지, 삼국사기, 아방강역고가 있고요.
반면 한사군 요동요서설을 주장하는 것으로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있네요.
그 박지원의 주장에 대해서는 안정복의 동사강목에서 반박되었고요.
반증과 해석이 가능하다고 하기에는.. 이미 너무 오래전에 결론이 난 것 같은데요?
조선시대 학자들이 미래의 중국과 동북공정을 함께 하고, 미래의 일제와 함께 역사왜곡을 했다는겁니까?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역사학자들도 기자조선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죠. 그래서 역사교과서에도 안나오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실학자들의 주장은 말그대로 주장일 뿐이고 사기나 수경주 같은 1차사료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아아! 후세 선비들이 이러한 경계를 밝히지 않고 함부로 한사군을 죄다 압록강 안쪽으로 몰아넣어억지로 역사적 사실로 만들다보니, 패수를 그 속에서 찾되 혹은 압록강을 패수라 하고 혹은 청천강을 패수라 하며 혹은 대동강을 패수라 한다. 이리하여 조선의 강토는 싸우지도 않고 저절로 줄어들었다. - 박지원, <열하일기> 1권 도강록
그것만 보더라도 한반도를 포함한 요하문명이 황하문명보다 앞서 존재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먼저 생기긴 했지만 문자와 기록체제가 없어 묻혀버린 것이겠지요. 기록에 춘추전국시대 어느 누군가 중원(중화) 바깥은 자기들과 달리 문자와 기록이 없다고 언급한게 기억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건, 중국 대륙과 한반도, 만주 중 누가 더 문명이 앞섰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산동 화북 요서 요동 만주 한반도에 걸쳐 고인돌과 고조선 동검 동경 등 유물들이 나오는데도
요하문명이 고조선 또는 그 이전 국가라고 확실하게 안하는 이유가
우리는 중국의 영향하에 있었다는 선입관이 있기때문에 인정을 못하는 거죠.
역사가 300년도 안 되는 미국은 고대사에 집착하지 않고도 잘 살고 있고요.
고대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소유나 강한 계승의식까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억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공감 드립니다.
조선 뿐 아니라 그 이전의 한국 고대사까지 남루해졌습니다.
식민과 분단의 역사를 회복하고 잃어버린 한국 고대사를 찾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