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제대로 보도를 안해 주니 잘 모르고들 지나가는 상황이지만, 코스타리카의 알바라도 대통령이 현재 국빈 방한 중입니다.
뭔가 신뢰가 가는 인상의 알바라도 대통령이군요.
외국 정상 중에서도 노골적으로 친한 기믹을 뿌리는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마침 말이 나와서 이야기인데, 개발독재와 민주주의 관련 논의에서는 반드시 호출해야 할 국가가 코스타리카입니다.
먼저 파이를 키워야(경제가 발전해야)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
수준 높은 민주주의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서방 선진국들의 전유물이다?
그건 코스타리카를 보고나서 생각해볼 문젭니다.
중남미 어딘가에 콕 박혀있는 작은 나라지만, 2020년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교의 민주주의 지수 랭킹을 보면 ...
3세계 국가치고는 민주주의가 잘 정착했다 수준이 아니라, 민주주의 종주국(?)들도 가볍게 제쳐놓는 수준입니다.
최근에 와서 급상승했다 이런 것도 아닙니다. (그건 대한민국이고)
이미 1950년대부터 미국보다 더 민주주의 수준이 높았다고 평가되고, 1980년대 후반부터는 꾸준히 영국, 프랑스, 미국보다 앞섭니다.
1980년대 후반, 코스타리카라고 하면 ...
1987년 노벨상 수상자 오스카 아리아스 대통령의 시기입니다.
한국에 김대중이 있다면, 코스타리카에는 이 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코스타리카의 마지막 쿠데타는 1918년에 일어났고, 1948년 내전이 종식된 후에는, 군대를 없앴습니다.
그 후로는 꾸준히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연임은 금지되어 있고, 4년 혹은 8년마다 꼬박꼬박 정권교체가 발생합니다. 1948년 이후 한 정당이 8년 이상 집권한 적이 없고, 1987년 이후 다섯 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있었습니다(한국은 세 번). 현 카를로스 알바라도 대통령은 중도노선입니다.
각설하고 이 순위가 놀라운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류의 민주주의 지수는(더 자주 인용되는 이코노미스트 지의 민주주의 지수도 마찬가지지만) 기본적으로 의원내각제가 높게 나오고, 대통령 중심제가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위의 랭킹 10위 안에서 대통령 중심제는 코스타리카 하나 뿐입니다. 20위까지 봐도 우루과이, 대한민국 정도.
전세계 국가의 절반은 대통령 중심제를 표방하지만, 그 중 90% 이상은 독재, 혼합형, 불완전한 민주주의에 머뭅니다. 대통령 중심제로 완전한 민주주의에 도달한 국가가 거의 없는데, 부동의 1위는 코스타리카입니다. 클량의 정서는 의원내각제는 망할 제도이고 대통령제가 더 낫다는 쪽입니다만, 국제적으로는 대통령제가 민주주의 하기 더 어려운 제도라고 인식됩니다. 일단 한 사람에게 커다란 권한이 집중된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저해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역시 클량에선 그다지 동의하지 않으시겠지만) 한국의 대통령은 세계 각국의 대통령 중에서도 대통령 권한이 가장 강한 편에 속합니다. 선진국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강하고, 웬만한 후진국들과 비교해서도 뭐 ...
아무튼 이 정도로 정치가 잘 돌아가는 편인데, 역시 중남미 국가라서 그런지 경제 발전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중남미 치고는 치안이 좋고, 중남미 치고는 사회적 분란이 적으니까 그 자체로 상당한 이득을 보고 있는 셈입니다. 간혹 소득이 적어도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의 예로 부탄과 함께 자주 인용되는 나라입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진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경제가 발전해야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는 식의 개발독재 후 민주주의 논리에 대한 가장 커다란 반례가 되는 나라가 코스타리카입니다.
경제 발전이 이뤄지지 않아도 먼저 민주주의부터 실현할 수 있다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니까요.
위도도 대통령 이후의 인도네시아도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부유한 민주주의 선진국들은 이런 나라들을 의도적으로 더 지원하고, 경제적 과실을 나눠주면서 먼저 민주주의 부터 하면 경제발전도 따라온다는 점을 주변 국가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미군이 문을 박차고 들어가면서 강제로 떠먹여 주는 민주주의는 미군이 철수하면 다시 토해낼테니까요.
덕분에 좋은 생각할 거리를 배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