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버지께서는 21년 3월 말 다른 이유로 병원에 방문 하셨다가 간에 암이 생겼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부모님께서는 꽤 먼 지방에 살고 계시다가 19년에 자식들이 모두 수도권에서 생활하게 되어 지방 생활을 정리하시고 수도권 도시로 올라오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누릴꺼 누리며 행복하게 살려는 찰나에 들은 소식이라 모두 충격에 휩싸이고 슬퍼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C형 간염 보균자 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몸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것을 이유로 병원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지 않으셨습니다.
특히 인명은 재천이라는 생각을 항상 담고 계셨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해서든 병원을 모시고 가야 했었는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체중이 줄으신 것도 얼굴색이 어두워지신것도 모두 간암의 증상이었지만 가족들 모두가 눈치채지 못하고 요즘 운동을 많이 하셔서 그리고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돌아다니셨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제쳐놓고 어떻게든 치료를 받으실 수 있게 아산, 서울대, 국립암센터 등을 전전긍긍하며 예약하였으나 집에서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국립암센터에서 5월 중순에 색전술을 진행하셨습니다.
사실 이부분에서 지금도 크게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C형 간염으로 인해 간경화가 상당히 많이 진행되어 있었는데 병원에서는 1차적으로 7cm에 달하는 암의 크기만을 줄이는데 집중하여 색전술로 인해 남아있는 간기능이 많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없었던 복수가 차기 시작했으며 자식들에게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상당히 고통스러워 하셨던 것 같습니다.
식사량도 줄으시고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7월달에 다시한번 색전술을 받으셨지만 오히려 간만 더 상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간의 종양사이즈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며 오히려 간경화만 더 심해졌다고 생각이 듭니다.
자식된 도리로서 어떻게든 아버지를 살리고 싶어서 이식을 아버지께 제안하고 운동을 시작하여 10키로 정도 감량하였지만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생채기를 내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다고 하셔서 설득에 설득을 하여 서울대 이식팀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서울대에서도 우선 초강도 색전술로 우선 종양수치를 내리고 이식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그 말을 전해 들으신 아버지는 결국 병원에서의 치료를 거부하시고 자연치유로 여정을 옮기셨습니다.
8월에는 속초에 있는 이상구 박사가 운영하는 뉴 스타트 라는 자연치유 프로그램에도 참석하시고 마약성 진통제와 이뇨제를 드시며 통증과 복수를 조절하셨습니다.
하지만 복수는 계속 차올랐으며 결국 복수천자도 한달, 2주 간격으로 점점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추석이 다가오자 아버지께서는 복수로 너무 힘드셔서 복수배액관을 하시고 추석을 맞이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또 한번의 불행한 일로 집에서는 복수 배액관 관리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복수가 새고 추석 연휴기간에는 병원이 쉬는 관계로 배액관 제거를 하지 못했습니다.
복수가 관리가 되지 않자 아버지는 점점 거동이 힘들어 지시며 결국 추석 이후에는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계시는 동안 호전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잘못된 복수 관리 때문인지 아버지는 급격하게 기력이 쇠하셨으며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거동이 매우 불편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1주 2주 병원에 계시니 결국 간성혼수가 오고 관장까지 하게 되어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가망성이 없다고 생각하시고 유언을 작성하시면서 거의 모든것을 내려 놓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10월 부터는 걷지 못하시며 하루 대부분을 주무시는 상태로 계시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를 거의 하지 못하여 온전한 정신이 있을때 저희를 본 순간이 거의 없으셨습니다.
자식들에게 전화를 하여 찾으셨지만 어머니가 간병중이셨기 때문에 눈물만 흘리며 방문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흐르게 되어 10월 마지막 주에는 거의 간성혼수 3단계로 지내셨습니다.
결국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시던 호스피스를 어머니와 상의하여 인천 국제성모병원으로 모시게 되었으며 호스피스에 계시는 동안에는 간호사들과 의사들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며 시간을 보내시게 되었지만 결국 11월 7일에 어머니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게되어 임종실로 모시게 되었고 자식들이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간성혼수4단계로 완전한 혼수상태에 접어드셔서 얼굴한번 보지 못하고 영면에 드시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킬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었고 아버지의 투병생활이 너무 길지 않았던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항암이나 수술로 인해 추가적인 고통을 안겨드리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이 드는 한편. 치료를 받으셨다면 또 어떻게든 호전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괴롭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본격적으로 병원생활을 시작한지 두 달정도 되는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기간이 아버지에게는 정말 고통스러우셨을 것 같습니다.
오늘 마지막 발인 까지 마치고 납골당에 모신 후 지금 아버지가 계셨던 침대위에서 글을 쓰고 있지만 벌써부터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요즘 치고는 너무나 젋으신 만 66세에 소천하셨지만 아버지와 함께한 삶은 영원히 마음속에 간직하며 이제부터는 어머니 건강에 더욱 힘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환우분들께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시고 싸워서 이겨 나가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부모님께서는 꽤 먼 지방에 살고 계시다가 19년에 자식들이 모두 수도권에서 생활하게 되어 지방 생활을 정리하시고 수도권 도시로 올라오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누릴꺼 누리며 행복하게 살려는 찰나에 들은 소식이라 모두 충격에 휩싸이고 슬퍼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C형 간염 보균자 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몸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것을 이유로 병원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지 않으셨습니다.
특히 인명은 재천이라는 생각을 항상 담고 계셨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해서든 병원을 모시고 가야 했었는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체중이 줄으신 것도 얼굴색이 어두워지신것도 모두 간암의 증상이었지만 가족들 모두가 눈치채지 못하고 요즘 운동을 많이 하셔서 그리고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돌아다니셨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제쳐놓고 어떻게든 치료를 받으실 수 있게 아산, 서울대, 국립암센터 등을 전전긍긍하며 예약하였으나 집에서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국립암센터에서 5월 중순에 색전술을 진행하셨습니다.
사실 이부분에서 지금도 크게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C형 간염으로 인해 간경화가 상당히 많이 진행되어 있었는데 병원에서는 1차적으로 7cm에 달하는 암의 크기만을 줄이는데 집중하여 색전술로 인해 남아있는 간기능이 많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없었던 복수가 차기 시작했으며 자식들에게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상당히 고통스러워 하셨던 것 같습니다.
식사량도 줄으시고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7월달에 다시한번 색전술을 받으셨지만 오히려 간만 더 상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간의 종양사이즈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며 오히려 간경화만 더 심해졌다고 생각이 듭니다.
자식된 도리로서 어떻게든 아버지를 살리고 싶어서 이식을 아버지께 제안하고 운동을 시작하여 10키로 정도 감량하였지만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생채기를 내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다고 하셔서 설득에 설득을 하여 서울대 이식팀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서울대에서도 우선 초강도 색전술로 우선 종양수치를 내리고 이식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그 말을 전해 들으신 아버지는 결국 병원에서의 치료를 거부하시고 자연치유로 여정을 옮기셨습니다.
8월에는 속초에 있는 이상구 박사가 운영하는 뉴 스타트 라는 자연치유 프로그램에도 참석하시고 마약성 진통제와 이뇨제를 드시며 통증과 복수를 조절하셨습니다.
하지만 복수는 계속 차올랐으며 결국 복수천자도 한달, 2주 간격으로 점점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추석이 다가오자 아버지께서는 복수로 너무 힘드셔서 복수배액관을 하시고 추석을 맞이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또 한번의 불행한 일로 집에서는 복수 배액관 관리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복수가 새고 추석 연휴기간에는 병원이 쉬는 관계로 배액관 제거를 하지 못했습니다.
복수가 관리가 되지 않자 아버지는 점점 거동이 힘들어 지시며 결국 추석 이후에는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계시는 동안 호전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잘못된 복수 관리 때문인지 아버지는 급격하게 기력이 쇠하셨으며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거동이 매우 불편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1주 2주 병원에 계시니 결국 간성혼수가 오고 관장까지 하게 되어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가망성이 없다고 생각하시고 유언을 작성하시면서 거의 모든것을 내려 놓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10월 부터는 걷지 못하시며 하루 대부분을 주무시는 상태로 계시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를 거의 하지 못하여 온전한 정신이 있을때 저희를 본 순간이 거의 없으셨습니다.
자식들에게 전화를 하여 찾으셨지만 어머니가 간병중이셨기 때문에 눈물만 흘리며 방문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흐르게 되어 10월 마지막 주에는 거의 간성혼수 3단계로 지내셨습니다.
결국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시던 호스피스를 어머니와 상의하여 인천 국제성모병원으로 모시게 되었으며 호스피스에 계시는 동안에는 간호사들과 의사들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며 시간을 보내시게 되었지만 결국 11월 7일에 어머니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게되어 임종실로 모시게 되었고 자식들이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간성혼수4단계로 완전한 혼수상태에 접어드셔서 얼굴한번 보지 못하고 영면에 드시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킬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었고 아버지의 투병생활이 너무 길지 않았던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항암이나 수술로 인해 추가적인 고통을 안겨드리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이 드는 한편. 치료를 받으셨다면 또 어떻게든 호전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괴롭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본격적으로 병원생활을 시작한지 두 달정도 되는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기간이 아버지에게는 정말 고통스러우셨을 것 같습니다.
오늘 마지막 발인 까지 마치고 납골당에 모신 후 지금 아버지가 계셨던 침대위에서 글을 쓰고 있지만 벌써부터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요즘 치고는 너무나 젋으신 만 66세에 소천하셨지만 아버지와 함께한 삶은 영원히 마음속에 간직하며 이제부터는 어머니 건강에 더욱 힘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환우분들께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시고 싸워서 이겨 나가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모쪼록 아버님께서 편히 쉬시고, 작성자께서도 마음 잘 추스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평안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Genuine
이런 시국과 함께 너무 이른 이별에 가족분들 마음도 더 무거우시겠지만...
힘내시길 바랍니다...
님과 어머니, 그리고 가족의 평안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Vollago
삼가 고인의 명복과 남은 가족분 들의 마음의 평안을 빕니다..
저희 아버지는 직장암으로 소천하셨습니다.
고인처럼 저희 아버지도 몸무게가 줄었습니다.
아버지가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하셔서 그런가 했죠...
글을 읽으면서 또 느꼈지만 절대 자연치유에 기대면 안된다는 점 입니다.
저희 아버지도 자연치유 하신다고 문경에 가셔서 이것저것 하셨죠.
결국 이게 몸을 더 망치게 한거같더라고요....
암은 감기가 아닙니다.
자연치유 이딴거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용도 엄청 비싸고 객관적으로 증명이 된거는 없고요.
제발 병원하고 가까워 지세요!
아버님의 명복을 빕니다.
/Vollago
힘내시구요..
저희 아버지도 같은 나이시고 얼마 전 위암판정 받아서 전체절제 수술 받으셔야해서 ㅠ 힘드네요 정말
/Vollago
저희 아버지도 비슷한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너무나 고통스러운 병이죠..
편히 쉬시길..
/Vollago
언제 떠나시더라도 슬픈 일이지만 너무 젊을때 돌아가셨네요.
저희 어머니는
일반-표적-면역항암까지
여러번 바꿔가며 했는데
상황은 글 쓴님과 비슷했습니다.
저희는
항암 안하는 선택지도 생각했어야 했나
후회하기도 합니다.
돌이켜 보면 모든 게 아쉽습니다.
저의 경우 시아버님이 간암으로 64세에 돌아가셨습니다. 20년전입니다.
수술을 위해 개복을 하다 너무 진행된 상태라 수술도 못하고 덥었습니다.
그 뒤 의식을 찾지 못하시고 중환자실에 계시다 한 달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저희는 수술을 왜 했을까
후회를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