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분 서태지 글보니 생각나네요
서태지 등장의 충격(?)을 마땅히 비유할게 생각나지 않는게....
아직까지 서태지를 능가하는 (?) 한국 대중가요에서 문화체인저(?) 가 아직 나오지 않았기에 비유하기가 참 어렵네요..
그냥 흐름 자체를 바꿔버린거라서... ;;
한국가수 중 글로벌 히트친 비, 동방신기, 싸이, 최근의 BTS도 결국 서태지 이후 댄스뮤직의 연장선에 포함되다보니;;
아무튼 제가 개인적으로 서태지 이후의 충격을 받은 가수/그룹이라면
버스커버스커 (장범준)
악동뮤지션
최근의 이무진 정도가 있겠네요 ㄷㄷㄷㄷ
전 오히려 가수 보다는 이들 프로듀서가 이후 가요계에 엄청난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거든요.
+ 그런데 태지옹 10집은 언제??? ㅠ.ㅠ
어떻게 싱글 하나를 안내주시나요....;;;
과거에 장기하가 드럼치기도 했던 밴드이기도 하구요.
서태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거였죠
그 다음에 엇비슷한 것들이 많이 나왔고 주류가 됐고요
소위 기획사 사장들이 죄다 어깨 출신들이던 연예계에서 그나마 현대적인 시스템을 제대로 정착 시킨것 같아요.
뭔가 올라가기 위한거라면 자기곡을 내야..
"신호등"이 자기 곡이쟈나요 ㅎㅎ
"과제곡"도 그렇구요.
전 그냥 이무진은 제2의 카더가든이란 생각 정도네요.
딱히 두드러지는 음악성을 보여준 적은 아직 없고
현재 내놓은 곡들의 멜로디나 코드가 대중에 먹힐 만큼은 좋지만
사실 경연이라는 계기로 자신의 드라마를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면
아마 그 곡들은 묻혔을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장범준도 그렇긴 한데...그럼에도 버스커 버스커의 곡들은
장르나 음악적으로 너무 훌륭해서요.
이무진에 비하기엔 많이 미안하죠. ㅎㅎ
장범준은 슈스케 아니었더라도 떴을 거라 믿습니다.
20여년 가까이 우리나라 가요계에 영향을 많이 줬다고 봐요.
가수때부터 팬이어서 계속 지켜보고 응원했기에 더 그런지 모르겠네요.
가수로서 인기가 사그라들던 지누션이나, 엄정화에게 준 곡을 보면 대단하다고 봐요.
반작용으로 소몰이시대
다시 2세대 아이돌시대가 잇엇고
그걸 깬 게 아이유였죠
아이유가 고음의 가창력 / 어쿠스틱 포크 / 뮤지션 중심
삼색 매력으로 가요계를 통일햇고
아이유가 뿌린 씨앗에서
나가수 / 버스커버스커 / 악동뮤지션 등이 꽃필수잇엇다 봅니다
그래서 전 서태지 이후 아이유를 꼽고 싶네요
팬심 100 첨가입니다 :)
미시멜로우 시절부터 팬했던 제 후배녀석의 안목은 도대체 몇수앞을 내다본건지 ㄷㄷㄷ
그 전까진 한국가요는 물론 대중문화산업 자체가 경색되어 있었어요. 저도 뭐 그 당시 성인이었던 건 아닌데, 지나간 기사들이나 알려진 서적을 보면 그 전까지는 소위 말하는 딴따라 취급이었어요. 아무리 히트를 치고 차트에 오래 남아있어도 그냥 노래부르는 놈들 정도의 취급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가 데뷔한 92년은 노태우 정권 말기였고, 비록 3당 합당이었고는 분위기도 대단하게 달라진 건 아니었어도 김영삼 후보가 내세웠던 문민정권, 즉 군부의 탄압이 없는 정부를 표방했고, 올림픽도 치뤄낸 이후의 몇 년 간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사회분위기가 활발해졌던 때였어요. 그때쯤부터 댄스음악도 외국의 음악스타일도 그리고 젊은 층이 산업의 소비자로서 대두되던 시절이기 때문이에요. 영화에서도 고등학생들이 사고나 치던 '얄개시대'같은 하이틴 영화에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같은 하이틴 영화로 저항의 에너지가 넘치던 시절이기 때문이에요. 전반적으로 70년대 한국이 경제적 성장을 이뤄내고 올림픽을 치뤄내면서 한국 전후로는 모든 청년세대는 완전한 고생만 했지만, 처음으로 그 고생을 좀 벗어난 상태에서 세상을 만난 세대들이 20살이 되던 시기가 90년대였던 거에요.
감이 좋았던지 혹은 운이 좋았던지, 그래서 서태지는 본인 특유의 성격이나 음악적 방식이 표현하고자했던 음악이 '아이콘'이 되기 적절한 시기였어요. 그런 어떤 '전복'이나 '일탈', '개인주의' '차별화'등을 꿈꾸면서 이제서야 먹고사니즘에서 어릴때부터 강박받지 않던 세대들 모두에게 어려서 잘 몰랐어도 미지의 공포 마치 '소격동'같던 시대가 지나고 나서 숨통이 트인 상태가 되었떤 거죠.
그렇게 마치 폭죽처럼 도화선에 불만 붙이면 될 정도의 사회분위기와 1-20대들에게 서태지라는 청년이 불을 붙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시기도 적절했네요. 소위 서태지 등장이후 ~ IMF전까지를 한국 대중가요의 르네상스 시기라고들 하더군요.. 실제로 지금들어보면 한곡한곡이 어우야 입니다.ㄷㄷㄷㄷ
맞는 말씀인데도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좀 슬프네요.
최고의 창의성 가진 인간은 그 분야에서는 다시 나올 수 없다는 얘기 아닙니까.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대부분을 다해놓은 것 같이요.
아 적다보니 "자이언티"도 상당히 파격적인 스타일이었네요 ㄷㄷㄷ
당연히 좋은 노래긴 하지만 이런 노래가 티비 방송 인기 순위에 탑을 찍다니 하고 뭔가 사람들이
더 많이 받아들이고 성숙한(?!) 시대가 열렸구나 하고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인기 순위가 탑 노래들은 다 아이돌 그룹이라던지 댄스 였던 기억이 있네요..)
/Vollago
강별철과 삼태기
아. 서태지와 아이들 전인가요…
산울림
벗님들(초기 또만났네~ 시절)
Yngwie Malmstein(라이징포스) 이네요.
아침에 가족들과 식사하는데 라디오에서 잉베이맘스틴의 이카로스 드림이 나오는데 전율이~
어설픈 개똥철학에 먹힐정도로 한국이 당시 문화시장이 만만하기도 했구요.
제일 어설픈게 교실 이데아 인데,
그나마 집이 부자인 애는 공부 안하고 노래를 불러도 그정도 벌지만,
보통사람은 정신차리고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 자기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힘을 얻는 건데,
무슨 개똥철학을 설파하듯 그 에너지들을 폄하한 것인지 기도 안 찼어요.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꼰대인게 아니라 어릴 때의 제가 들어도 웃기더군요.
집에 뭐라도 있는 자제들이야 그렇게 해도 되지만,
그게 몇명이나 된다고
교육의 힘을 무시하는 걸로 인기를 얻고 돈을 버는걸까 라는 실소가 나더군요.
그걸 열광하는 사람들은 알까요?
그런 사람을 땔깜으로 그 사람만 부유해지는 것을.
천재로만 알고 있었는데 밀리 바닐리(얘네 자체도 립싱크하는 조작러들이긴 했습니다만)랑 난 알아요
비교해놓은 거 처음 들었을 때의 그 배신감을 잊을 수가 없네요.
심지어 서태지 이전에도 알던 노래인데도 그 두노래가 유사할거라고 애초에 생각자체를 못했어요.
아이유 콜라보의 소격동도 Mother we share를 듣고 나면 으음?..하게 됩니다.
이외에도 과연 저 곡이 없이 이 곡이 나올 수 있었을까? 싶은..너무너무 많은 유사한 곡들이 있습니다.
댄스음악 중심으로 대중음악 시장을 바꿔버린 게임 체인저였던건 맞지만 그 크리에이티브는 좀 문제가 많았던거 같아요.
약간의 싸이월드 갬성같이 당시 젊은이들에게도 호불호없이 다 먹혔던것 같고
예전 래퍼들 퇴물소리듣는게 허다한것 같던데 아직까지도 인정받는 현역인것 같더라구요
다듀 쓰고보니 링마벨.출첵에 피처링했던 나얼도 생각나네요 ㅋㅋ
클리앙이 아직은 젊은분들이 많다는 뜻이겠죠.
60년대 70초 가요하면 일본가요의 영향을 받은 곡들도 있었구요,그외 트로트나 뽕짝이 많았던 시절레서
신중현 사단의 노래들은 그당시 새로운 리듬을 찾던 젊은이들에게 많이 어필했었죠.
제가 음악알못이어서 이론적인 뒷받침은 없지만 그저 좋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김추자가 부른 봄비,김정미가부른 바람,그외 여러명이부른 아름다운강산과 미인등 들어보시면 꽤 좋은 노래 많습니다.
그래도 시대의 변화는 못 따라가겠지만 대한민국 가요사에 큰 변화를 준것만은 틀림이 없을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