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간간이 변호사 일을 하며 느낀 소회나 사건에 대한 글을 올리는 코지 변호사입니다.
오늘은 지난주 목요일에 결론이 난 클리앙 회원님의 민사 손해배상 사건에 대한 얘기를 풀어내봅니다(회원님께는 이미 사전에 글 올리는 것을 허락받았어요).
올해 4월 중순경에 클리앙에서 제 글을 봤다고 하시면서, 본인에게 제기된 민사 손해배상 사건에 대해 상담을 오신 회원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헤어진 여자친구로부터 모욕죄로 형사 고소도 당하시고 이에 부대하여 민사 손해배상 청구도 당하신 상태였습니다. 형사 사건은 제게 상담을 오시기 전에 즉결심판으로 벌금 10만 원을 내고 끝냈는데, 이후인 올 2월 경에 민사 소송도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모욕죄란 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하여 성립하는 범죄를 말하는데, 명예훼손죄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 공연성을 요건으로 한다는 점과 상대로 하여금 듣기 거북한 말을 한다는 점 등이 그렇습니다. 다만 차이점으로는 명예훼손의 경우 사실 또는 허위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하는데 반해, 모욕죄는 사실의 적시와 상관없이 경멸적인 표현만으로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상담을 진행해 보니, 고소와 소송의 문제가 된 부분은 회원님이 온라인 단톡방에 헤어진 여자친구에 대하여 "나쁜 년"이라고 한 것이었는데, 유리한 정황으로는 헤어진 여자친구를 특정했는지가 불분명하여 다퉈봄직하다는 점이었고, 불리한 정황으로는 회원님이 형사 고소 사건에서 무죄를 다투지 않고 즉결심판에 따라 벌금을 납부해버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에 사건을 수임하고 답변서를 작성하면서 해당 온라인 채팅방에서 원고가 특정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피고의 발언은 원고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 형사 즉결심판 벌금을 납부한 이유는 모욕행위를 인정해서가 아니라 법정 다툼까지 갈 경우 조사나 공판 단계에서 원고와 얽히게 되는데 이를 피하고, 전과 기록이 남지 않으며, 회사 생활을 하면서 재판에 출석하기가 부담스럽기에 벌금을 내고 만 것이라는 점, 원고가 주장하는 정신적, 육체적 피해와 피고의 귀책 간에 인과관계가 인정되기 어렵다는 점 등을 소상히 주장하였습니다.
사건의 첫 변론 기일에서, 원고는 우리 측이 하나하나 주장하는 내용들을 다 듣고는, 당일에 청구취지를 변경하였는데 처음 청구한 500만 원의 손해배상액을 10만 원으로 1/50으로 축소하였습니다. 이는 피고가 즉결심판 벌금으로 낸 10만 원과 동일한 액수입니다. 우리로서는 원고의 이유를 세세히 알 수는 없으나, 아마도 변론 기일에서 하나씩 조목조목 반박하며 주장하는 내용을 듣고는 자신의 청구가 쉽게 인정받기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유추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건 같은 민사 소액 사건의 경우, 비록 상대가 백기를 든 것과 다름없이 청구취지를 대폭 축소하였지만, 소액 사건 재판부는 원고 패소의 판결보다는 대폭 축소한 비용 정도는 인용해 줄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습니다. 왜 소액 재판부가 그러하냐고 묻는다면 논리적인 답변은 할 수 없으나,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경우 소액 재판부의 판결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를 제 사건이나 주변 변호사들의 사건을 통해 꽤 많이 목도한 바가 있습니다.
원고가 손해배상으로 구하는 10만 원은 원고에게 있어서 돈을 얻고자 함이 아니라, 옛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모욕을 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기에 청구취지를 10만 원으로 줄이더라도 승소를 하겠다는 일념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돈이 문제가 아닌,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렇기에 마지막 변론 일로 예상되던 지난 21일에 재판에 앞서서 회원님께 이러한 상황을 말씀드리고, 혹시라도 조정의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만약 원고가 패소한다면 원고는 항소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기 때문이고, 소액재판부의 특성상 우리 사건과 같이 청구취지를 대폭 감소한 경우 원고가 구하는 10만 원에 대하여 인정해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손해와 배상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에 빈약하다면 끝까지 싸워서 제 주장을 관철시키고 싶은 게 사실이지만, 항소심을 넘어 대법원까지 올라간다면 의뢰인의 시간과 비용은 너무 커질 수 있기에 의뢰인의 의사를 묻는 것이 먼저입니다. 제 얘기를 다 들으신 회원님은 항소로 가고 싶지 않다며 조정이 가능하면 조정으로 해달라는 의사를 주셨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재판부는 조정 의사가 있는지를 타진해왔는데, 저는 10만 원에 조정 의사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재판부는 그 금액은 원고가 변경한 청구취지와 동일한데, 그냥 원고의 청구를 인용해도 되냐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러나 원고의 청구액이 얼마든 간에, 이에 대한 인용은 곧 피고의 패소를 의미하므로 절대 따라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10만 원을 주는 것으로 조정해달라. 다만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이며, 이자를 청구한 부분은 인정해선 안된다. 그리고 10만 원 받고 나서 당사자 간에 어떠한 채무도 없는 것으로 해준다면, 조정에 응하겠다"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원고는 소송비용과 이자 부분을 받아야겠다고 하였으나, 그렇다면 피고는 조정하지 않고 2,3심까지 싸우겠다고 하자 결국 우리의 요구대로 조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일 조정을 마치고 원고에게 그 자리에서 계좌번호를 알아낸 후에, 회원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참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10만 원을 송금해버렸고요. 특히나 승소도, 패소도 없이 원하던 내용으로 조정되어 끝이 난 것에 만족해하셨습니다.
기분 좋게 사무실로 복귀하는 길에,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맛있는 치킨 쿠폰을 보내주셔서 저녁에 잘 먹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클리앙을 통해 의뢰인과 변호사로 만나서 함께 고민하며 사건을 진행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되어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클리앙의 다른 회원분이 당사자 소송으로 진행하고 계시는 행정사건에도 조언을 드리고 있는 중인데, 그 사건 역시도 좋은 결과를 얻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고생하셨네유~~~
좋은 일 하셨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