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여행갔을때 직접 보고 얘기나눴던 인도사람들은 우수하신분들 많이봤었는데요...
여러의미에서 신비한 나라입니다..
외교적으로도 인도는 묘하게 재밌는 나라이기도합니다. 미국과 친하면서도 러시아하고도 상당히 친하고.. 중국하고는 티베트 망명정부,히말라야 산맥 국경지대 무력충돌 분쟁 등 군사적으로는 충돌,대립갈등이라해도 경제적으로는 또 중국하고도 가까운편..(중국 주도의 AIIB 가입국인 인도는 그 지분도 꽤 높은편입니다. 여기에 상하이조약 협력기구 가입국 중 하나가 인도이기도..)
1톤트럭 생각나는군요...
정말 머리 하나는 비상한듯
물론, 우리는 소달구지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에어컨이 달린 트럭에 패딩을 입혔지만 금속이 위성 안테나에 영향을 주는 반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나무로 만든 소달구지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것은 완벽하게 작동했습니다.'
'We didn't realise what a fuss that photo would make,' said S Krishnamurthi, the press spokesman at the Indian Space Research Organisation (Isro), at their futuristic, moon-grey headquarters in Bangalore, south India. 'Of course, we didn't need to use a bullock cart. We have padded, air-conditioned transport lorries, but the metal was throwing off reflections which were affecting the satellite's antenna. Then somebody hit on the idea of a bullock cart, which is made of wood. It worked perfectly.'
https://www.independent.co.uk/news/world/bullock-cart-obscures-indian-quest-for-space-a-sophisticated-programme-is-under-threat-from-the-us-tim-mcgirk-reports-from-bangalore-1539449.html
카스트제도는 인도의 타고난 천형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과거 카스트는 확립된 사회제도가 아니었다. 경계는 느슨하고 유동적이었다. 카스트가 절대적인 신분제도로 굳어진 건 영국이 식민통치의 주요 수단으로 삼으면서다.
과거 수드라(노예)는 마을을 떠나면 본인의 카스트가 따라오지 않았지만, 식민지배 이후로는 어디를 가든 평생 수드라로 살 수밖에 없게 됐다. 군대도 철저하게 카스트를 기초로 편성됐다.
전에는 없던 카스트 간 경쟁이 생겨나고 격화됐다. 저자는 "인도 사람들이 19세기 후반보다 더 노골적으로 카스트를 의식했던 적은 없었다"고 지적한다.
카스트는 200년의 식민지배를 거치는 동안 지울 수 없는 낙인으로 변했고 사회 전반에 깊은 분열의 골을 남겼다.
계급뿐 아니라 힌두교, 이슬람교, 시크교 등 종교 간, 지역 간의 차이도 강조되고 분열이 조장됐다. 과거 인도는 서로 다른 종교 집단 간 배타적이지 않았고 결혼, 축제, 음식, 심지어 신앙에서도 비슷한 사회적, 문화적 풍습을 공유했다.
하지만 영국의 집요한 분열 정책으로 인한 힌두와 무슬림의 갈등은 독립 후 인도를 3개국(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으로 나뉘게 했으며, 이후 네 번의 전쟁과 핵 무장, 테러를 낳았다.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7/08/546062/
마-쁘렌
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