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entertain.v.daum.net/v/20211014110138658
'당혹사2' 여운형 암살사건, 열아홉 암살범 배후엔 누가 있었나
어제 공부하다가 밤 10시 40분즈음에 저거 주제로하기에 본방사수하고 봤었는데. 거의 다 알만한 내용이었으나..
여운형 선생 암살배후 밝히는부분이 사실 굉장히 민감하고 복잡한 주제입니다.
암살단은 테러단체 백의사였고, 이 백의사가 김구,이승만,미군정 경찰과 왔다갔다하면서 밀접하게 움직였다는것.. 김구라고 단정짓기에는 애매한게 김구는 일관되게 미군정과 사이가 매우 안좋았습니다.(김구가 주도해서 미군정 상대로 쿠테타 시도도 했을정도였으니까요)
암살시점이던 1947년 7월즈음 당시 미군정에 협조했던 여운형이었는데(1947년 7월 19일 당일 미군정은 여운형에게 민정장관직을 제안할려했고 여운형은 그 제안을 받아들일려했던 시점이었습니다), 암살에 김구가 관여했을시 미군정이 이걸 가만히 있었을리가 없죠. 더구나 김구는 국립경찰과의 관계도 그렇게 가깝지도않았던것도 사실이고요.. 이승만 경우는 당시 제2차 미소공위 한창일때 미군정에서 헌병대를 동원해 이승만이 거처하던 돈암장에 가택연금 조치했던 시기였죠.(이승만의 최측근 외교고문 올리버의 증언.) 이승만 입장에서는 제2차 미소공위 시기 가택연금조치 당하던때라 몹시 불쾌했던 시기였죠.
그리고, 암살사건에서 당시 수도경찰청 수사국장(당시 경찰청에선 no.3 지위 위치)이자 수사지휘자였던 노덕술이 상당히 깊이 관여하고 암살범과 적당히 '타협'을했다는 사실.
뒷날 1994년 빌 클린턴 정부 시기 주한미국대사로 근무했던 제임스 레이니 대사가 1947년 한국 미군정 장교신분으로 첫 발령났을때, 이 여운형 암살사건 배후 조사를 맡았는데. 배후의 윤곽이 잡혀갈즈음에 돌연 미군정 상부에서 수사지시를 받았다고 레이니 대사가 증언한 사실이 있습니다.(관련도서 참조 - http://www.yes24.com/Product/Goods/30391806?OzSrank=2YES24 )
좌익쪽(특히 박헌영계에서 암살사주했다고 주장)에도 여운형 암살 배후가있다 얘기(대표적으로 고 이정식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교수의 주장)도 있으나, 당시 정황상 봤을때 극우세력이 벌인일이 매우 농후하다는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암살범들이 경찰과 매우 유착했었다는점. 그것도 파출소 바로 코앞에서 대놓고 암살을 벌였다는점과 이 사건에서 은폐,축소한것에 당시 친일경찰들이 다수였던 국립경찰이 굉장히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말이죠.. 즉, 이 사건은 당시 국립경찰이 핵심이죠. 예전에 몽양 여운형 선생 밑에서 수행비서로 일했던 어르신한분(1926년생. 경산 출신이라고 소개하셨어요. 2013년에 작고했습니다.)을 2010년에 만난적있었는데, 그분은 수도경찰청 장택상이를 반드시 따져야한다고 얘기하더군요. 그 사람이 '나는 몰랐다'라고 잡아뗄 수 없는 자리라고 얘기했었습니다.
여튼, SBS에서 이걸 다뤘다는것에 내심 반가웠습니다. 사실 해방정국 시기 역사가 극우파,서북청년단 가치관 따르는 세력들에의해 심하게 왜곡되거나 공작으로 얼룩진 부분들이 워낙많다보니.. 서북청년단 가치관 따르는 세력들 기준에선 이승만과 김성수(한민당)빼고는 죄다 빨갱이,좌파라고 몰아붙히는데. 실제 해방정국 시기 정치 스펙트럼은 그보다 훨씬 폭넓고 복잡하다는거..
아무래도 독립운동의 아버지다보니 그러겠죠.
뭐 그래도 음모론은 음모론이니깐 괜찮다고 봅니다.
백의사와 관련되어있던 것은 맞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님께서 말씀하신 것 처럼, 친일경찰이나 미군정과는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미군정에서도 김구선생에게 악의적이었죠. 본인들 맘대로 컨트롤 안될거라고 말이죠.
본인들 맘대로 컨트롤 하기 좋게 이승만을 선택했다고 그 당시 문서가 있습니다..
여운형 선생도 암살로 고인이 되셨지만은 김구선생도 결국 암살로 고인이 되셨죠.
저의 합리적인 의심은 아시다시피 그분입니다.
이 백의사가 단순 김구 밑에서만 기웃거린게 아니라는것이 생각보다 좀 복잡한 부분입니다. 그 김구도 결국은 백의사 단원이자 CIC특무대와 밀접한 안두희에게 암살당했으니..
뉴스랑 교양이랑 너무 다른데 나만 그리 느끼는건지 ㅎㅎ
씨 ㅂ ㅅ 욕하고 다른데 돌렸습니다. 그러니 니들이...이러면서. 선입견이 무섭긴 하네요
이런 경우는 주로 민족진영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례 같더군요.
외세와 타협하려는 세력을 견제하는 식이더군요.
문제는 민족진영의 폭이 너무 넓다는 겁니다. 이승만부터 김구를 지나 좌익까지 다 민족진영이긴 했죠.
그러니까 고만고만한 세력 견제 속에서 탁 튀는 사람을 "암살"하는 사건은
2차세계대전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너무도 흔한 사건이었고
한국에서는 1947~1949까지 끊임없이 지속되죠.
보수적 민주당 계보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송진우 장덕수가 대표적이고
반제국주의자 김구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중도통합주의자 여운형 선생이 가장 극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여운형 선생의 암살 배후는 누구일까요?
아마도 "공공의 적"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너무도 많은 세력이 여운형을 죽이고 싶었기 때문에...이 모든 곳과 끈이 있는 백의사가 나선게 아닐까 하는게, 제 생각이긴 합니다.
정말 어려운 사건이고
민족적으로 아쉬운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미군정과 사이가 안좋은 쪽은 백범 김구 선생 쪽이 가장 안좋았고 완전하게 적을 두었고, 건드릴 수 없는 위치라 못 건드렸을 뿐이다라고 봐도 될 정도의 사이라고 이야기하죠.
미군정은 이승만과 몽양 여운형 선생 사이에서 저울질 했다는 정황들이 계속 나오고 있죠.
이 조건들을 두고 봤을때, 몽양 여운형 선생의 죽음이 누구에게 가장 이익 되었는가?...라고 생각을 해보면.....
물론, 여운형 선생과 김규식 선생은 그런 미군정의 구상안 노림수를 잘알고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