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때려쳐님// 속상하게도 거짓은 아닌 것 같아요; 폐암이라 서울삼성병원 가셨다는 것도 그렇고, 암환자분들이 진단금 나온 걸로 자식들 집해주고 자신은 치료도 제대로 못받는 것도 종종 봐서 그런지, 거짓이면 좋겠는데 디테일들이 지어낸 얘기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ㅠㅠ 휴, 대체 자식이 뭔지...
똑똑-
IP 121.♡.130.229
09-11
2021-09-11 19: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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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때려쳐님 무슨 근거로요?
Ellie380
IP 106.♡.116.76
09-11
2021-09-11 19: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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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때려쳐님 74면 중학교 돈냈습니다
IP 223.♡.141.165
09-11
2021-09-11 19: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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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때려쳐님 //85인데 중고등학교 돈 냈는데요? 아버지 회사에서 복지로 나오는거때문에 분기마다 행정실가서 영수증 끊어서 냈는데...
고철1
IP 121.♡.182.125
09-11
2021-09-11 1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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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때려쳐님 85년생인 저도 중학교 학비 냈는데요??
배산임수
IP 110.♡.2.11
09-11
2021-09-11 20:3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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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때려쳐님 중학교 못 간 친구 있었습니다.
찌옹이
IP 182.♡.99.236
09-11
2021-09-11 20: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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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때려쳐님 님보다 한참 어린데 돈 냈습니다.
블루아이스
IP 124.♡.235.251
09-11
2021-09-11 21: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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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때려쳐님 저도 74호랑이입니다. 소설 아니에요 저희때 학교에 기성회비 및 기타 비용 내는거 만만치 않았습니다. 저거 내는게 부담스러워서 안 보내는 사람들 있었습니다.
JohnHong
IP 221.♡.68.218
09-11
2021-09-11 21: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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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때려쳐님 저도 88인데 냈어요.
오라질
IP 211.♡.68.123
09-11
2021-09-11 21: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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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때려쳐님 그때 중학교 돈안내면 뺨맞고 피멍들때까지 맞았는데 어디 다니셨길래 ㄷㄷ
소잡는칼팡션
IP 118.♡.135.158
09-11
2021-09-11 21:5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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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때려쳐님 당시에는 학교 서무과에 가서 돈 내면 A4 횡으로 3단 인쇄된 고지서에 날짜도장 쾅 쾅 쾅 찍어서 맨 오른쪽에 붙어있던 영수증을 쇠자 대고 부욱~ 찢어서 학생들에게 줬다...고 합니다.
저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저랑 나이가 비슷하신 분인데 제가 고등학교갈때 같은반 여학생들 인문계 고등학교가는 비율이 반에서 절반도 안 됐습니다. 나름 서울이었는데도요. 상고가는 비율 엄청 높았고 같은 나이대의 여성의 대학진학비율 20프로도 안 됐을 거에요. 제가 대학 들어갈때 반에서 전문대까지 탈탈 털어서 반정도 대학 갔던 거 같아요. 고등학교 갈때 절반만 인문계가고 대학교갈때 또 절반만 대학가고. 지금처럼 대부분이 대학 가던 시절 아니었죠. 특히 여자는 집안이 가난하면 오빠나 남동생 때문에 저렇게 돈벌라고 했을 가능성 높습니다.
80년대생 여동생이 있는데 그애가 대학갈때는 상황이 많이 다른 것 같더군요. 90년대의 우리나라 발전상황이 너무 빨라서 몇년차이도 다르고 서울과 지방의 상활도 엄청 다를 겁니다. 충분히 가능성 높은 얘기에요.
@뽀린님 80년생 여자이고 지방에서 자랐는데요... 서울은 모르겠지만 지방은 80년대생까지도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제 주위에도 있습니다. 가정형편이 너무 안좋아서 학교포기하고 공장가는 애들이요. 저희 부모님도 저에게 고등학교 가지 말고 공장가라고, 인문계 가지말고 상고가서 취직하라고 몇번이나 말했습니다. 물론 부모님 말 안듣고 욕먹으면서 인문계 갔고 대학은 국립대를 갔습니다. 사립대는 비싸니 학비를 아껴야 하니까요...
참고로 저는 딸이라고 학원도 한군데도 안보내주셨습니다. 반전은, 오빠는 학원도 보내달라는데 다 보내주고 대학, 대학원 모두 사립대를 나왔다는 사실... 대학원은 서울로 갔습니다. 나중에 다 커서 엄마에게 물어보니, 아들은 태어나면서 부터 효도한다고 하는데 할말을 잃었습니다.
곰종
IP 115.♡.213.209
09-11
2021-09-11 19:32:12
·
가정환경이 좋지 못했는데도 열심히 살았는데 결과가 폐암이라니 그러면서 자신을 때린 남편 ,, 자녀를 생각하다니... 슬프네요
클라우스
IP 14.♡.51.73
09-11
2021-09-11 19: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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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74년생 김지영이라도 되는 건가 하는 느낌이 들긴 한데 요즘 세상에도 인간 말종 사건들이 하도 많다보니 없다고도 못할거 같습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IP 223.♡.175.215
09-11
2021-09-11 19:3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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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추 비슷한 나이 입니다 저 무렵 방직공장에 미성년자들이 일할수있었나요?
Regen
IP 211.♡.140.189
09-11
2021-09-11 19: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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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호님// 드물긴 해도 저 나이 대 분들 중에 학교 보내준다는 조건으로 식모 살이 한 분이 있기도 하니까, 방직공장도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네요. 80년대엔 뭐든 가능했잖아요.
송지호님// 본인의 경험치가 제한적인거죠. 클량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82cook에 (근데 여기가 이용층 평균 나이가 50 쯤 되는 아주 올드한 사이트라서) 암 걸린 스토리, 인생 밑바닥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추락한 스토리, 투병하다 돌아가신 분 이야기 자주 올라옵니다. 이 글 처럼 점 많이 찍고 ~함 이런 문투 쓰는 글로요. 요새야 맨날 이재명 욕이 올라와 거의 안가는 곳이지만 문투가 82 글 같습니다.
sinji
IP 223.♡.33.119
09-11
2021-09-11 19: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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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저나이 또래 인데요. 어려운 집안의 제친구도 국민학교 졸업후 방직공장 가서 일했어요..
송지호님// 94년 95년인가 대학 방학때 공장 시다 알바갔는데 낮엔 공장에서 미싱 돌리고 저녁에 상고 다니던애들 있었어요. 그 학교 애들 거의 다 있었어요.뭔 계약 관계인듯 했어요. 추가 그애들은 고1,고2였어요
sprinkler
IP 39.♡.58.54
09-11
2021-09-11 23: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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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산업체 고등학교라는건 주간에 공장에서 일하고 야간에 수업하는 학교를 말합니다. 방직공장에 국한된건 아니라고 들었고요.. 아주 융성하다가 IMF이후로 급격히 쇄락해서 2016년 마지막 학교가 폐교했다는군요.. 예전엔 산업체고 다니는 아이들이 교복입은 친구들을 부러워 하는 소설이 꽤 많았었어요.
개징징
IP 103.♡.188.225
09-11
2021-09-11 19: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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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작이든 아니든 누군가는 저런 삶을 사셨지않았을까 싶습니다 사신분이 있다면 정말 대단하시고 고생하셨고 하늘에서는 천국으로 가셨기를...
@진천명님 현 시대에도 어두운 곳에 우리가 상상하는 거 보다 더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 할겁니다. 가끔 불우한 환경을 돕는 기관들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요즘도 곰팡이가 가득한 골방에서 몸이 불편한 할머니 혼자 손주를 키우는 사연도 나오니까요.ㅜㅜ.. 내가 양지에 산다고 모든 곳이 양지는 아닌거 같아요.
@진천명님 마지막 산업체 여고가 2016년도에 폐교했습니다 ㅎㅎㅎㅎ 도대체 뭘 믿고 본인이 아는게 전부라고 확신하는지 모르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
얼룩배기황소
IP 121.♡.189.248
09-11
2021-09-11 23: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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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명님 클리앙이 부자의 공원이다 보니 공감못하시는 분들 많을겁니다. 제 주변 기준으로 보자면 74년생이면 충분히 있을법한 일입니다. 79년생인 제때도 어머니 돌아가시고 학교 때려치고 일하러 나간애 있었습니다. 못사는 사람도 정말 많았고요. 일년 일년 다르게 사회가 변화하던 시기였는데 여전히 과거의 가난에 시달리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서울에 중산층정도 되면 모를수도 있다고 봅니다.
좋빠가굥카카
IP 121.♡.234.219
09-12
2021-09-12 01: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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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명님 근데 87년 88년 정도 생각하면...같은 반 친구들 사이도 빈부격차 상당히 심했을 것으로 여겨지네요. 본문 글 사례도 당연히 존재하구요. 특히 지방은
Evans님// 물론 원글의 주인공님이 이 글에 들어와 님의 댓글을 읽지는 않겠지만, 자기가 경험하지 않았고 본인의 경험치에서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말이 안된다고 하는 건 그처럼 님은 상상조차 되지 않을 환경에 살았을 사람들에 대해 큰 실례가 되는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80년대 초까지 전기가 안들어온 동네도 있었다는 걸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알게된 사람이라, 그때 이후로 다른 분들의 경험에 대한 코멘트는 최대한 조심하고 있습니다.
IP 223.♡.175.215
09-11
2021-09-11 2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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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en님 맞습니다 겪어보지 않고 쉽게 말하면 안되죠 그런데 저 펌글 이미지는 이해가 잘 안갑니다 저런 표현 저 연령대는 잘 쓰지 않아요 극단적인 이야기는 한번 걸러서 봐야죠
永像
IP 223.♡.73.79
09-11
2021-09-11 20: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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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en님 저도 초등학교 때 여행한다고 막 개통된 지하철 혼자 타고 다른 동네 갔다가 달동네를 처음 봤었지요. 어릴 때라 기억이 좀 가물하긴 한데, 나름 꽤 충격적인 기억이라 그 느낌은 지금도 남아있네요.
송지호님// 82cook 이란 요리 좋아하는 어르신들 커뮤니티가 있는데 거기 한번 가서 보세요. 익게라 가입안해도 글 읽는데 지장없어요. 82 평균 연령이 50대 이상인데 거기 분들은 저런 표현 많이 쓰십니다. 그리고 82cook 에는 종종 올라오는 스토리류라 제게는 그리 극단적인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런데도 너무 마음이 아파서 댓글을 계속 달고 있네요 ㅠ
永像님// 저도 초등학교 때 이모집 놀러간다고 버스 잘못 탔다 종점에서 내려버려서 달동네까지는 아니지만 구멍 뚫린 시멘트 벽돌로 담 만들고, 집 높이가 초등학생인 제 키와 비슷했던 집들이 있는 동네를 봤는데 동네 냄새도 그렇고 풍경도 그렇고, 그때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있네요. 저 역시 너무 충격적이었던 것 같아요.
Evans
IP 155.♡.136.49
09-11
2021-09-11 21: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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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en님 옳으신 말씀입니다. 자기가 겪어보지 않은 것을 함부로 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같은 70년대 중반 태어난 사람으로서 제 의견을 말씀드린 것이 저분에게 큰 실례가 될까 싶군요. Regen님 말씀처럼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을 내리기 마련인데, 지금은 다 철거되고 아파트가 들어찬 봉천동 산동네에서 자란 제 경험의 범위 안에서는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입니다.
@Evans님 당연히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간단히 적으셨지만 Evans님은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나도 니 또래고 가난하게 살았는데도, 니 얘기는 전혀 공감도 안되고 거짓말 같아" 라고 하신 거잖아요. 단순한 사실 적시 지만, 같은 나이 또래가 믿을 수 없다고 말할 만큼, 심지어 그 또래가 부유한 가정 출신이 아닌데도, 공감조차 못해줄 만큼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았던 사람 입장에서라면 그런 언급이 얼마나 가슴이 아플지 전 상상조차 되지 않네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해줄 수 없다면, 그냥 지나가셔도 되지 않나요? 굳이 거기서 이 상처가 진짜인가 아닌가 손가락 찔러 확인해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다고 해서 Evans님 살림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이디가 ich denke 신데, 생각하시는 모든 걸 입 밖으로 내지 않으셔도 누가 뭐라고 안해요. 사실 저 역시 이렇게 댓글 달 일이 아닌데, 이 글에 대한 댓글들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많이 실망스러워서 더 Eavns님을 붙잡고 꼴사납게 지적질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긴 합니다. 언짢으시면 제게는 퇫 하고 욕하시고 지나가셔도 좋습니다. 저는 원글의 주인공 같은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 뭐라 하셔도 그다지 상처가 되지는 않거든요.
중학교 돈내지 못하면 퇴학 당할 때입니다 저때 구로공단에 초졸 많았습니다(어른들은 초졸많았죠) 76년생이 초졸로 봉제공장에서 일했던 동생을 압니다 월급 7만원인데 월급날 아버지가 술먹고 오던걸 본적있네요 저녁엔 검정고시다니면서 고입검정 준비했어요 (보라메공원 쪽으로 지나가는 버스를 2번 갈아 타고 갔는데 치한이 그렇게 싫다고 그런데 저도 15살 해줄수 있는게 없었죠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자 마자 차를 산거 갔아요 그때 차가 있었으면 태워줄 수 있었을거 같고 앞으로 누가 그런말을 하면 태워 줄려고) 학원에 대입검정고시 합격한 언니가 부럽다 하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큰회사는 못가지만 작은 회사는 갔습니다 전 72(호적73) 입니다 큰 회사에서는 중졸여공들 모집하면서 야간 고등학교 보내주었죠 회사 안에 학교가 있기도 하고 일반 고등학교에 1부 , 2부 학교 운영하기도 했죠
저도 동년배인데, 변두리 꽃동네 살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뭐 주변에 저런 집들 많긴 했습니다. 약국 앉아있으면 얼굴 멍든 아줌마들이 술 끊는 약 사러 와서 몰래 먹이려면 어떻게 하면 되냐 약사님께 물어보는 것도 자주 보고요..
비 와서 노동일 못나가는 날이면 소주 사다 마시며 마누라랑 애들 패고 그런 소리가 동네 이곳 저곳에서 들리고..
생각해보면 돈이 웬수인건지.. 원래들 그렇게들 타고난건 아닐텐데 말이죠..
글의 주인공분은 특히 더 불운하긴 했던거 같지만.. 애들 봉제공장 보내 일시키는 집은 우리 동네에도 종종 있었고, 딸이 온 집안 욕받이(?)인 경우도 잦았었고.. 별 이유 없어요.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이트 땐서 한다고 중학교 중퇴하고 라식스(?) 사다 먹으며 살빼던 동네 누나도 있었는걸요. 공장보다 그게 벌이 좋다고.. 그게 이뇨제인지 뭐 그런건데 그거 먹고 살뺀다고..
IP 223.♡.175.215
09-11
2021-09-11 19:47:06
·
@쌍문동개장수님 88올림픽 전후 많이 바뀐거 같습니다…
쌍문동개장수
IP 61.♡.136.249
09-11
2021-09-11 19:50:59
·
@님 맞습니다. 그 즈음부터 정말 많은게 바뀌었죠.
얼룩배기황소
IP 121.♡.189.248
09-11
2021-09-11 23: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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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문동개장수님 저는 주변에서 부부싸움(사실 일방적인 폭력) 하는걸 너무 많이 봐서 일찌감치 결혼을 해야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그리고 다들 그렇게 사는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점점 커가면서 있는집 자식들 보니깐 저렇게 화목한 가정도 있구나 이런 충격이 왔습니다.
블랙비스킷
IP 117.♡.12.107
09-11
2021-09-11 19:39:39
·
신은없다
징징대지말자
IP 223.♡.152.174
09-11
2021-09-11 19: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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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생인데 저도 어렵게 살았지만 믿기지가 않네요
행복한이야기
IP 1.♡.181.124
09-11
2021-09-11 19: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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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명@징징대지말자님 중소도시에 매년 한명(만명중 한명정도가 아닐까요) 지금은 학교다니기 싫어서 자퇴하지만 그때는 돈 없어서 학교 못가는 사람이 분명 있었습니다
무혼인형
IP 183.♡.229.101
09-11
2021-09-11 19:44:08
·
늘 그렇지만 현실은 소설보다 더 극단적이니지라 그럴 듯한 맘 아픈 이야기인데.. 23살에 결혼한다고 했을때, 곧 아이가 태어 났을 때 74년생이면 그 때가 대략 IMF 때라 젊은 사회 초년생과 여자에게는 혹독한 시기가 왔을 텐데 그 부분이 얼버무려진게 좀 의야 하네요.. 삼보컴퓨터도 조금 그 시기 보다 이른 듯 하고요.
Regen
IP 211.♡.140.189
09-11
2021-09-11 19:56:02
·
무혼인형님// 삼보컴퓨터 80년에 생긴 회사에요. 집에 386 운영체제가 탑재된 흑백 삼보 노트북이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혼인형
IP 183.♡.229.101
09-11
2021-09-11 20: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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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en님 저도 그 당시 삼보 컴퓨터를 기억 하고 있습니다. 샀다라고 하는 시기가 93-94년 쯤 될 것 같은데.. 당시의 삼보는 대중적이지는 않았거든요 대리점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삼성 매직스테이션도 95년 이후에 나왔고 .. 글쓴이의 기억도 확실하지 않을테고 제 기억도 확실하지 않을테고.. 이 것만 가지고 맞다 아니다 할 건 아닌것 같네요
무혼인형님// 대중적이진 않았어도 큰 오빠가 철이 없어서 가난한 집에도 컴퓨터를 사야한다고 했을 사람이면, 어디선가 알아와서 삼보를 사달라 했겠죠. 저희집에 있던 삼보 노트북도 91,92,93 중의 하나가 부팅 시 화면에 찍혔고요. 암튼 말씀처럼 이게 이 글이 거짓이다 진실이다를 나눌 트리거는 아닌 것 같긴 합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brain9
IP 211.♡.243.142
09-11
2021-09-11 21:56:30
·
@무혼인형님 그 당시면 삼보가 제일 큰 컴퓨터 회사중의 하나입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하얀가루
IP 220.♡.13.106
09-12
2021-09-12 01:52:05
·
무혼인형님//국내 첫 pc, 및 아범 호환기종 286 발매 했던 회사고 매직스테이션이 486 쯤에서 가장 잘 팔리기 이전까지 삼보가 탑이었습니다
난지도
IP 125.♡.151.183
09-12
2021-09-12 09: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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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혼인형님 제가 아는분중에 지방 군단위에서 96년에 삼보컴 대리점 하던분 있었어요.
살사
IP 49.♡.91.250
09-11
2021-09-11 1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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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졌지만 방직공장에서 학교운영하면서 채용하던 시절 맞습니다
노래방에서
IP 116.♡.48.43
09-11
2021-09-11 19:52:38
·
저 세대에 일반적인 삶은 아니죠. 주작이 아니라면 재수없는 부모에게 태어나고 그보다 나을것 없는 남자와 결혼한 불운한 사람인거죠.
永像
IP 223.♡.73.79
09-11
2021-09-11 19:53:57
·
저분보다 약간 밑이긴 하지만, 저 초등학교 때 시골에서 올라온 식모 누나도 있었으니 저글이 소설은 아닐 거 같습니다. 그 누나가 대충 70년대 초반생일 거 같거든요. 그 누나는 대충 88올림픽 전에 공장으로 갔던 걸로 기억합니다.
막 부자나 그런 여유를 떠나서 최소한 자녀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그런 부모를 만나야겠죠 자녀의 든든한 정서적 버팀목이 되어주면 더욱좋겠죠 건강하고 자신있는 아이로 만들려면요
참 저런 엄마라면.. 진짜 의절해도 할말 없겠습니다
달을삼킨애옹
IP 49.♡.126.227
09-11
2021-09-11 19: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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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리 안살아서 내 주위에 저런 친구가 없어서 뭐 주작이고 소설이고 이럴 수도 있지만 저런 사람 많아요 생각보다 내가 이런 고백 했다가 손가락질 당할까봐 말 안하는 친구도 있구요 저도 알콜중독 아빠를 죽이고 싶다 라고 말한 친구를 속으로 미쳤다 생각했는데 하룻밤 그집에서 그 아버지가 술에 취해 했던말 또 하고 또 하는거 보고 친구 이해가 가더라구요 노가다판에 도망치듯 들어온 여자애도 자기 고3때 친엄마손에 이끌려 첩살이 들어갈뻔 한 이야기 듣고 부모가 정상 아닌 곳이 많구나 했습니다 참고로 제가 40대구요
아버지가 피난 나와서 어렵게살아서 그런가 어릴때 주당3~4번 친구데리고 집으로 가도 엄마가 챙겨멕이고 해피라면덕용봉지(5봉?)+주먹밥싸서 보내고 그랬어요. 동훈아,건아, ㅅㄲ들아 살아있냐? 연락안되도 잘살길바란다ㅠㅠ
중졸업식이후 공장으로 간다고 사라진 친구넘들이 생각나요ㅠㅠ 주작이었으면 합니다.제발ㅠㅠ
스타이너
IP 223.♡.42.132
09-11
2021-09-11 20:05:44
·
결핵이 있으면 보험 가입하더라도 폐는 이미 부담보......
Regen
IP 211.♡.140.189
09-11
2021-09-11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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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이너님// 부담보로 가입해도 가입 후 5년이 지나면 새로운 질병으로 인정해서 약관 적용해서 보장...
Calmg
IP 180.♡.215.225
09-11
2021-09-11 20:19:49
·
저 73년 생인데요. 국민학교 동창 중에 국민학교 졸업 하자마자 공장으로 바로 간 몇몇 경우 있었어요. 그 동창들 사연을 알고 있지만 여기서 풀기는 그렇고... 70년대 초반 생으로 저 경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빠 때문에 상고 가서 오빠 대학 학비랑 생활비 댄 친구도 있고요. 마음 아프네요. 어쨌든...
재임스 봉드
IP 61.♡.180.26
09-11
2021-09-11 20: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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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74년생인데..기적적으로 건강 회복하셨으면. 진심으로 좋겠습니다!!!
비법전수
IP 122.♡.42.44
09-11
2021-09-11 21:12:01
·
저도 74... 쉴 수 있다는 글 너무 아프네요.
우소
IP 112.♡.244.47
09-11
2021-09-11 21:12:16
·
저렇게 사는 사람이 있긴 했었죠. 불운의 불운이 겹쳐서...믿기지 않겠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거에요.
74년생이라면 초중학교나이면 80년대 초중반일거고 못사는동네는 저녁에 전기 끊기는 집도 있고 도시락 못 싸가지고 다니는애들도 허다했고 더운물은 연탄불에 데워서 하루한번 쓰고 학교월사금 못내서 결국 학교 못다니는 애들도 꽤 있었을텐데요...인신매매 사건도 종종있었고...못사는 집 애들은 중학교부터 일하는 애들도 꽤 흔했을텐데요...어려운집에서는 먹고살만한집에 식모로 초등학교 고학년정도 나이에 보내기도 하고 그랬던 시기인데...
슈퍼 멜론
IP 112.♡.188.48
09-11
2021-09-11 22: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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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한 일도 있어요. 항상 헌실은 상상 그 이상. 내가 한다리 건너 들은 최악 막장은 딸 성 매매로 번돈 매달 수금하듯 가져가는 엄마.
공장은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자식한테 빨대 꽂아 피 빠는 막장 부모는 시대 불문하고 다양한 형태로 있습니다.
불탄후라이펜
IP 1.♡.253.101
09-11
2021-09-11 22: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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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누나가 69년생. 큰처형이 75년생.
참고로 응답하라의 성덕선이 71년생. 덕선이가 나이가 더 많죠. 저분이랑 동갑이 농구선수 서장@입니다.
그 때 당시 상류층이면 뉴키즈 온더블록 내한 공연을 보러갔고, 평범했으면 연대 농구팀 보러 갔을겁니다. 별밤도 들었죠.
@불탄후라이펜님 대구 홈플러스 1호점 앞에 창조경재센터자리에 있는 제일 모직이 1996년도에 구미로 이전했고 1997년도 홈플러스가 오픈해서 제가 아르바이트 할때 지금도 창조경제센터에 있는 오래된 건물이 이전전 기숙사였어요 어린 여공들이 구미서 주말에 구미서 회사차타고 외출나와서 저녁에 회사버스타고 가는거 봤네요 대구 경산 경계지점에 있는 이마트뒤 펜타힐즈 자리에 있는 방직공장에서 진량으로 2부 수업도 있었죠
@악질두꺼비님 같은 가정에서도 여자애는 공부를 잘해도 대학 안보내고 아들은 무리해서라도 대학 보내는 일이 상식이던 시절이던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에요. 본문의 주인공 집도 가난했지만 아들은 대학갔고 딸은 공장 간 경우니까요. 딸 아들 차별이 줄어드는 것도 인식의 발전이죠. 우리집보다 형편 괜찮은 집도 딸은 대학 안보내는 경우가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지금은 믿지못할 얘기죠 ㅎㅎㅎ
본문 글쓴이보다 한참 어린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국민학교때 엄청 가난했다 생각하거든요? 남들 아파트살때 난 반지하 살고 친구들 다 있는 컴퓨터도 없고 남들이 장난감선물 받을때 난 쿠키 받고..... 근데 희안하게.....그 와중에도 '나는 가난하다' 라는 생각을 함부로 못 했어요. 대충 봐도 부자인 케이스도 있긴 했지만 내가 스스로 가난이란 단어를 쓰는게 미안할 정도로 비참한 케이스들을 너무 많이 보면서 살았기 때문이지요. '걔들은 어떻게 가난했다' 를 쓰려다가 너무 괴롭고, 내 인지력이 부족해서 그때 그 친구들을 배려해주지 못한게 생각나 눈물이 나고 미안하고 괴로워서 서술 못 하는데요.... 그걸 생각하면 알 수 있겠더라구요. 본문 내용이 충분히 있을만 한 일이라는 것을....
그래도 댓글들 보면서 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아맞아 나도 그래' 혹은 '저런 일 있을 수 있지' 만 있는 게 아니고, '저런 일이 있을 리가 없지'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질 정도로 계속 세상이 좋아지고 있는 중이란 거잖아요....
이를테면
IP 182.♡.97.137
09-11
2021-09-11 23:26:07
·
92년인가 93년인가.. 방직공장 다니던 여공이 추석 귀향 때 신으려고 사둔 랜드로버 구두가 비에 젖어 연탄불에 말리다 화재던가 유독가스던가로 세상을 떠나야 했던 가슴아픈 뉴스가 가끔씩 기억납니다.
IP 222.♡.19.66
09-11
2021-09-11 23: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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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부모라는 사람을 잘만나야하는데 ㅠㅠ
Zarathustra
IP 182.♡.164.6
09-11
2021-09-11 23:30:52
·
빌리 홀리데이가 죽었을때 장레식에 온 사람들이 죽어서야 행복해졌다라고 했다던데 그런 삶인가요
8~90년대 문학만 보더라도 여공들, 산업체 중고에 관한 소설도 많았어요... 그냥 드라마 보듯이요? 제가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게 소설이라고 생각하는게 좀 황당하네요 ㅎㅎ.. 산업체 고등학교는 헐값으로 어린 여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먹다가 ,IMF 이후로 급격히 쇄락해서 2016년에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진즉 없어져야 할것을 꾸역꾸역 마지막까지 질질 끌다 없어진거에요.. 믿고싶지 않다고 해서 아니라고 우기는건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가혹한 행위라고생각합니다. 스스로 뭐라 하는건지 생각좀 했으면 좋겠네요
IP 1.♡.209.5
09-12
2021-09-12 0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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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생들중 가정이 유복하지 않다면..
대충 비슷하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
알로슈티
IP 211.♡.94.166
09-12
2021-09-12 00: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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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생이고 지방 변두리 가난한 동네 살았는데 그 당시만 해도 뭐~ 저 정도면 있을 법하죠. 우리 동네도 저거 못지않은 일 많았는데 ㅋ
zakiko75
IP 116.♡.251.155
09-12
2021-09-12 00:22:22
·
사실이라면 매우 슬픈 드라마 같은 이야기네요
구름이여
IP 59.♡.118.86
09-12
2021-09-12 00: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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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사연이네요 그러나 겹겹히 나쁜일이 쌓인 인생이네요 집사람이 그 당시 구미 효성공장 사무직으로 갓 입사한 시절인데 주변 동양폴리에스터 등에 야간 학교 제학을 이유로 어린 여공이 많았다고 하네요
알레리라아
IP 58.♡.152.160
09-12
2021-09-12 00:38:57
·
확실히 클리앙분들이 학력이 높고 잘사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주작이라고 많이 하시네요... 저 분이 이 댓글들을 보면 너무 마음아프겠는데요;; 생각보다 정말 불우한 사람들 많습니다. 불과 1~2년전만 해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도 못 다녔던 20살 여자분도 서장훈이 상담하는 곳에 나왔던 적이 있는걸요... 결국 그 분도 고생만하고 사랑도 못 받은채 20년을 살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어요... 정말 말도안되게 힘들고 불우하게 사는 사람들 꽤 많습니다. 유유상종이라고 다 여러분들 주변에는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만 있으니 없는 것 처럼 보이는거겠죠...
그런데 그걸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소설 테스에 보면 더 불행하고 끔찍한 삶을 살다가 간 여인의 모습이 나오더군요......
meltrg
IP 58.♡.132.20
09-12
2021-09-12 01:09:46
·
제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일이 아닙니다. 우물 밖 세상도 좀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70년대생이 아니도 90년대생도 중고등학교 시절 일하면서 다녀야 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븐돕바
IP 121.♡.103.2
09-12
2021-09-12 01: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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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제가 처음 대학에 진학했을때, 첫 등록금은 고모가 내주셨습니다. 정말 싫어하는 사람인데 그당시 저희 아버지가 손을 벌리셨던것같더라구요. 그런데 2학기 등록금을 낼 방법이 없었어요. 뭐 학자금 대출을 받으면 될텐데 그나이때의 저에게는 꽤 큰 고민이었습니다., 이런 고민을 토로하자 같은 술자리에 있던 선배들이 요즘세상에 등록금 못내는 사람이 어딨냐 하며 절 거짓말쟁이 취급하더라구요. 01학번이었습니다
Rainbow
IP 61.♡.98.12
09-12
2021-09-12 01:54:09
·
이제 쉴수있어서 너무 좋다는 말 말고는....다른건 잘 모르겠네요.
삭제 되었습니다.
나의X에게
IP 122.♡.235.140
09-12
2021-09-12 0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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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초반까지 소위 말하는 달동네 판자촌가 여전히 존재했고 시골가면 전기 안 들어오고 존재했습니다. 시골가면 전화기 손잡이 돌리면 교환원이 나오는 전화가 있었습니다. 90년초반까지 여공들이 다니는 야간학교가 따로 존재했습니다.90년중반이후 더 이상 여공들이 없어서 폐교되었습니다. 74년생이면 여공 끝세대라고 보면 됩니다. 초등학교,중학교만 졸업한 후 신발,방직공장에 취직해서 여공을 위한 특별야간학교를 다녔죠.
minjun1022
IP 111.♡.25.74
09-12
2021-09-12 02: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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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클리앙 망신입니다 댓글 상태 왜이러나요.. 이렇게 공감능력이 없어서 사회생활 어찌들 하시는지요..
@curiouscat님 그러니까요. 자신이 이해안되는 일이라고 해도 그냥 지나가도 손해되는 일이 아닐텐데, 타인의 불행에 대해 주작이라고 거듭 우겨야 하는 건지. 대체 무슨 이득이 있다고 남의 불행에 공감은 못해줄 망정 상처에 고춧가루 뿌리고 당당한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속시원하게 망신이다 라고 말씀해주시는 분이 있어서 위안이 좀 됩니다
74년생이면 응답하라1994 주인공들과 같은 나이 입니다. 지방에 가난한 집안이면 가능은 합니다만… 드라마 아들과 딸보다 심각한데 솔직히 주변에서 보기 쉬운 케이스는 아니라고 봅니다. 64년생은 뭐 비일비재하게 나올 케이스고 IMF에 되려 잘된 케이스? 좀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요
한 일년 조금 넘게 기존 살던 집에서 버티고 살다가 5학년 마치고 친척 집에 얹혀 살았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삼양동 달동네라는 곳에서 6학년 마치고, 다들 중학교를 갔지만. 저는 못 갔습니다.
덧글들 보니 역시 경험하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만… 학굘 다닐 수 없었습니다. 저만 그런게 아니고 그 동네엔 초등학교만 나오고 공장에 취직하던 애 몇 있었습니다.
어찌어찌 모 대기업 구내식당에 설겆이하는 일로 들어갔고, 종로에 있는 모 종교단체(?)에서 하는 야학을 다니며, 중등, 고등 검정고시로 봤습니다.
저 야학 다닐 땐…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게 아니고, 당시 제 나이 또래나 20대초까지 정도가 대부분이얐습니다.
공부 못하고 직장 다니는 사람 중에 10대 초중반도 많았고, 공장, 식당 등에 이루할 때 무슨 허가서이런거 쓰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뭐랄까… 그냥 덧글을 보다가… 진짜 저런 삶이 있다고… 있었다고 알려 드리고 싶어서 씁니다.
저는 이후로 직장 생활은 지금까지도 계속하면서, 중고등과정 마치고, 모 대학교도 잠깐 다녔다가모 사이버대로 학사하고…
직장은 식당 설거지로 시작해서, 모 대기업 사환(야간고등학생이 2~3시까지 근무하는 것 말고 종일 사롼), 모 건축사무실(역시 전일 사환)을 거쳐, 잡지사도 거치고… 현재는 it 밴쳐기업에 다니네요,,
6년전에 결혼도하고… ^^
에탕트리
IP 42.♡.63.144
09-12
2021-09-12 04: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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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3월 9일에 서울 망원동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아빠.엄마는 일하러 나가면서 방문을 잠그고 나갔습니다. 불이 났고 어린 두 아이가 방안에서 갇혀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실화를 소재로 정태춘, 박은옥씨가 노래를 만들었는데 제목이 '우리들의 죽음'입니다. 듣다가 눈물을 흘린 첫 노래입니다.
이런 일도 있었는데, 74년생이 15살이면 88년이고, 그 나이에 방직공장에 들어갔다는 그렇게 특별한 얘기도 아닌 걸 못 믿겠다는 분도 있네요. 일부러 분란을 일으키자는 건지, 고집인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부자들이 뉴키즈온더블럭 공연 다니고, 평범한 집은 연대 농구부 경기 보러 다니고 했겠지요. 단지, 누군가는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눈에 안보이니 믿질 못하는 거죠.
그 시절에는 버스에서 아무나 담배를 피웠고(특히 기사들은 대부분 피웠습니다.), 심지어 비행기에서도 흡연이 가능했었죠. 명절마다 뉴스에서는 고추가루에 톱밥을 섞어서 팔았다. 조기에 색소를 칠해서 팔았다가 잡혔다는 뉴스가 매해 나왔던 시절이었습니다. 겨울에는 연탄가스 사망 사고 뉴스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몰랐다고, 그 시절에 그렇게 안 살았다고 있는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지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분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잊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저희 아버지도 72년생이신데 가정환경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도 못 하셨어요. (큰아버지도 마찬가지). 이제야 아버지 설득해서 검정고시 보고, 3년 전에 초졸, 올해에 중졸검정고시 보고 합격하셨어요. 저렇게 극단적이진 않았던게 저희 큰아버지, 아버지는 10대부터 배 타고 고기 잡으면서 삼촌(작은 아버지)이랑 고모(막내)는 고등학교까지 다 진학시켰어요.
cdh8983
IP 223.♡.56.7
09-12
2021-09-12 09: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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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초 중반 생이면서 공부 잘하는 여자들 여상 많이 갔습니다.
김파랑
IP 211.♡.174.200
09-12
2021-09-12 15: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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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펜님 80년대 초반생에도 많아요 참 똑똑한 친구지만 여상 나와서 3학년때 취업. 바로 돈벌어서 집안에 대주고 오빠, 동생 학비대준 친구가 있습니다
sprinkler
IP 118.♡.8.10
09-12
2021-09-12 15: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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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펜님 여상과 산업체고는 다릅니다.. 산업체고는 주간에 공장일을 하고 야간에 공부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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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그냥 갔어요..
아버지 회사에서 복지로 나오는거때문에 분기마다 행정실가서 영수증 끊어서 냈는데...
소설 아니에요 저희때 학교에 기성회비 및 기타 비용 내는거 만만치 않았습니다.
저거 내는게 부담스러워서 안 보내는 사람들 있었습니다.
사립이였고 돈 안내면 칠판에 이름 적거나
선생님이 앙칼진 목소리로 빨리내라고 했고 울던 애들도 있었어요.
가출하고 중학교 때려친 애 있었어요
역전앞에서 붕어빵 파는 아저씨 도와주고 있더라고요
그 후에도 학교 다시 오긴 했는데
결국 졸업은 안했어요
75년생 중학교 돈 냈습니다...
서명: 과거를 잊지말아요.
돈도 내고 다녔습니다.
우리때 돈들어가는거 있었어요.
친구중 하나 결손가정(?용어를 잘 몰라 적었어요.비하의도없음)이라서 중1때 엄마한테 얘기해서 도시락2개 .매일 싸가서 같이먹고.용돈새기면 사멕이고.학교 돈내는거 못낸다고 담임이 계속 쪽줬어요.ㄱ같은선생ㅅㄲ 아우!! 생각하니 딥빡!
ㅋㅋ 이분..
74인데 중학교 학비 안 내신거 보니.. 초등학교 졸업하고 어디서 십몇년 놀다 어른 돼서 중학교 가셨나보네요.. 그럼 안 냈을 수도..
또는 집이 부자라 엄마가 학비 내는거 본인은 전혀 몰랐을수도
-ps-
하도 궁금해서 주무시는 어머니 깨워서 물어봤는데 등록금 내신걸로 기억하시네요 ㅎㅎ;;;
제 기억의 오류인것 같습니다...
물론 가능성이 0프로는 아니겠지만 저정도면 인간 시대나와도 된다고 봅니다.
저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저랑 나이가 비슷하신 분인데 제가 고등학교갈때 같은반 여학생들 인문계 고등학교가는 비율이 반에서 절반도 안 됐습니다. 나름 서울이었는데도요.
상고가는 비율 엄청 높았고 같은 나이대의 여성의 대학진학비율 20프로도 안 됐을 거에요. 제가 대학 들어갈때 반에서 전문대까지 탈탈 털어서 반정도 대학 갔던 거 같아요. 고등학교 갈때 절반만 인문계가고 대학교갈때 또 절반만 대학가고. 지금처럼 대부분이 대학 가던 시절 아니었죠. 특히 여자는 집안이 가난하면 오빠나 남동생 때문에 저렇게 돈벌라고 했을 가능성 높습니다.
80년대생 여동생이 있는데 그애가 대학갈때는 상황이 많이 다른 것 같더군요. 90년대의 우리나라 발전상황이 너무 빨라서 몇년차이도 다르고 서울과 지방의 상활도 엄청 다를 겁니다. 충분히 가능성 높은 얘기에요.
참고로 저는 딸이라고 학원도 한군데도 안보내주셨습니다. 반전은, 오빠는 학원도 보내달라는데 다 보내주고 대학, 대학원 모두 사립대를 나왔다는 사실... 대학원은 서울로 갔습니다. 나중에 다 커서 엄마에게 물어보니, 아들은 태어나면서 부터 효도한다고 하는데 할말을 잃었습니다.
요즘 세상에도 인간 말종 사건들이 하도 많다보니 없다고도 못할거 같습니다
저 무렵 방직공장에 미성년자들이 일할수있었나요?
낮엔 공장에서 미싱 돌리고 저녁에 상고 다니던애들 있었어요.
그 학교 애들 거의 다 있었어요.뭔 계약 관계인듯 했어요.
추가 그애들은 고1,고2였어요
사신분이 있다면 정말 대단하시고 고생하셨고 하늘에서는 천국으로 가셨기를...
64년생이면 인정
중학교 87년에 들어갔을 텐데 지방이면 가능한 얘깁니다.
저도 80년대 초까지 전기가 안들어온 동네도 있었다는 걸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알게된 사람이라, 그때 이후로 다른 분들의 경험에 대한 코멘트는 최대한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펌글 이미지는 이해가 잘 안갑니다
저런 표현 저 연령대는 잘 쓰지 않아요
극단적인 이야기는 한번 걸러서 봐야죠
저도 초등학교 때 여행한다고 막 개통된 지하철 혼자 타고 다른 동네 갔다가 달동네를 처음 봤었지요.
어릴 때라 기억이 좀 가물하긴 한데, 나름 꽤 충격적인 기억이라 그 느낌은 지금도 남아있네요.
그리고 82cook 에는 종종 올라오는 스토리류라 제게는 그리 극단적인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런데도 너무 마음이 아파서 댓글을 계속 달고 있네요 ㅠ
저도 봉천동 산동네 근처에서 저시대 보낸 사람인데요. 저분이랑 나이대도 비슷하고. 달동네에 사는 친구도 많았고. 그래도 봉천동은 서울이라서 그나마 나은 상황이었을 겁니다. 다들 중학교 고등학교는 보냈으니.
지방은 사정이 달랐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방이고 거기다가 여자였다면 저런 상황 충분히 가능했죠. 87년이면 중학교 대신 공장가는 거요.
그곳은 고생 좀 해봤다 말도 못할거 같습니다
그래도 다들 꿋꿋하게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
타인의 고통에 공감해줄 수 없다면, 그냥 지나가셔도 되지 않나요? 굳이 거기서 이 상처가 진짜인가 아닌가 손가락 찔러 확인해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다고 해서 Evans님 살림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이디가 ich denke 신데, 생각하시는 모든 걸 입 밖으로 내지 않으셔도 누가 뭐라고 안해요.
사실 저 역시 이렇게 댓글 달 일이 아닌데, 이 글에 대한 댓글들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많이 실망스러워서 더 Eavns님을 붙잡고 꼴사납게 지적질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긴 합니다. 언짢으시면 제게는 퇫 하고 욕하시고 지나가셔도 좋습니다. 저는 원글의 주인공 같은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 뭐라 하셔도 그다지 상처가 되지는 않거든요.
제가 그 연령대이고 82쿡 유저에요. 쓰는 사람 있어요.
저때 구로공단에 초졸 많았습니다(어른들은 초졸많았죠)
76년생이 초졸로 봉제공장에서 일했던 동생을 압니다
월급 7만원인데 월급날 아버지가 술먹고 오던걸 본적있네요
저녁엔 검정고시다니면서 고입검정 준비했어요
(보라메공원 쪽으로 지나가는 버스를 2번 갈아 타고 갔는데 치한이 그렇게 싫다고
그런데 저도 15살 해줄수 있는게 없었죠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자 마자 차를 산거 갔아요
그때 차가 있었으면 태워줄 수 있었을거 같고 앞으로 누가 그런말을 하면 태워 줄려고)
학원에 대입검정고시 합격한 언니가 부럽다 하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큰회사는 못가지만
작은 회사는 갔습니다
전 72(호적73) 입니다
큰 회사에서는 중졸여공들 모집하면서 야간 고등학교 보내주었죠
회사 안에 학교가 있기도 하고
일반 고등학교에 1부 , 2부 학교 운영하기도 했죠
약국 앉아있으면 얼굴 멍든 아줌마들이 술 끊는 약 사러 와서 몰래 먹이려면 어떻게 하면 되냐 약사님께 물어보는 것도 자주 보고요..
비 와서 노동일 못나가는 날이면 소주 사다 마시며 마누라랑 애들 패고 그런 소리가 동네 이곳 저곳에서 들리고..
생각해보면 돈이 웬수인건지.. 원래들 그렇게들 타고난건 아닐텐데 말이죠..
글의 주인공분은 특히 더 불운하긴 했던거 같지만.. 애들 봉제공장 보내 일시키는 집은 우리 동네에도 종종 있었고, 딸이 온 집안 욕받이(?)인 경우도 잦았었고.. 별 이유 없어요.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이트 땐서 한다고 중학교 중퇴하고 라식스(?) 사다 먹으며 살빼던 동네 누나도 있었는걸요. 공장보다 그게 벌이 좋다고.. 그게 이뇨제인지 뭐 그런건데 그거 먹고 살뺀다고..
지금은 학교다니기 싫어서 자퇴하지만
그때는 돈 없어서 학교 못가는 사람이 분명 있었습니다
매직스테이션이 486 쯤에서 가장 잘 팔리기 이전까지
삼보가 탑이었습니다
제가 아는분중에 지방 군단위에서 96년에 삼보컴 대리점 하던분 있었어요.
방직공장에서 학교운영하면서 채용하던 시절 맞습니다
주작이 아니라면 재수없는 부모에게 태어나고
그보다 나을것 없는 남자와 결혼한 불운한 사람인거죠.
그 누나가 대충 70년대 초반생일 거 같거든요.
그 누나는 대충 88올림픽 전에 공장으로 갔던 걸로 기억합니다.
진짜 사람은 태어날때의 운이 사실 제일 큽니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
막 부자나 그런 여유를 떠나서 최소한 자녀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그런 부모를 만나야겠죠
자녀의 든든한 정서적 버팀목이 되어주면 더욱좋겠죠
건강하고 자신있는 아이로 만들려면요
참 저런 엄마라면.. 진짜 의절해도 할말 없겠습니다
저런 사람 많아요 생각보다 내가 이런 고백 했다가 손가락질 당할까봐 말 안하는 친구도 있구요
저도 알콜중독 아빠를 죽이고 싶다 라고 말한 친구를 속으로 미쳤다 생각했는데 하룻밤 그집에서 그 아버지가 술에 취해 했던말 또 하고 또 하는거 보고 친구 이해가 가더라구요
노가다판에 도망치듯 들어온 여자애도 자기 고3때 친엄마손에 이끌려 첩살이 들어갈뻔 한 이야기 듣고 부모가 정상 아닌 곳이 많구나 했습니다 참고로 제가 40대구요
위에도 적었지만,저도 주작이길 바랍니다.
우리때는 왕따 없었잖아요?
키작은 얘도,돈없는 얘도,멍청한 얘도 전부 친구..
엄마한테 도시락 1~2개 더 싸달라고해서
같이먹고 돈생기면 짜장먹으러 같이가고...
아버지가 피난 나와서 어렵게살아서 그런가
어릴때 주당3~4번 친구데리고 집으로 가도
엄마가 챙겨멕이고
해피라면덕용봉지(5봉?)+주먹밥싸서 보내고
그랬어요.
동훈아,건아, ㅅㄲ들아 살아있냐?
연락안되도 잘살길바란다ㅠㅠ
중졸업식이후 공장으로 간다고 사라진
친구넘들이 생각나요ㅠㅠ
주작이었으면 합니다.제발ㅠㅠ
국민학교 동창 중에 국민학교 졸업 하자마자 공장으로 바로 간 몇몇 경우 있었어요.
그 동창들 사연을 알고 있지만 여기서 풀기는 그렇고...
70년대 초반 생으로 저 경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빠 때문에 상고 가서 오빠 대학 학비랑 생활비 댄 친구도 있고요.
마음 아프네요. 어쨌든...
쉴 수 있다는 글 너무 아프네요.
이야기들어보면 저거보다 더한집 많아요.
거진부모 둘다 빌런이고
알콜 폭력 빚은 다들 기본으로 장착...
왜 아이들이 밖으로 나도는지 탈선을 하게 되는지 이해가 가고 안쓰럽고 그렇습디다.
저도 80년대생인데 기성회비라 그랬나 분기별 아님 반기별로30만원 정도 였던것 같아요.
안낸사람들 교무실에 불려가곤 했죠.
저도 비슷한 경우를 꽤 압니다만...
해당 부모님이야기도 들어봐야 견적나옵니다.
개새끼 한테 자란줄 알았던 녀석이
부처가 키운 개새끼였던 경험이 꽤 많네요.
아니 좀 많아요...
지금 생각해도 소름인 몇몇 케이스가 잊혀지질 않네요.
74년생이면 대한민국 고생한 여자 막차 느낌이네요.
실제 저런일이 주변에 있어서 소설이라도 현실감이 쩌내요...
90년대에도 중학생들도 일 많이 했어요. 학비걱정 안해본 사람들은 절대 모르죠.
물론 양아들도 자퇴하고 가스배달, 공장도 많이 다녔고요.
저도 오버랩되는 사람들이 좀 있네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 계급에 대해 오히려 쉽게 함부러 얘기하는 경향이 있죠.
국만학교 6학년 때 하교 후 신문배달했었습니다.
하루 70부 들고 다니면서 돌렸어요.
광고지 없는 날이 신문이 가벼워서 그렇게 좋았습니다.
비오는 날이면 우비 입고 신문 말아서 비닐에 넣어서 던졌네요. 월급 4만원 받았습니다.
항상 헌실은 상상 그 이상.
내가 한다리 건너 들은 최악 막장은 딸 성 매매로 번돈 매달 수금하듯 가져가는 엄마.
공장은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자식한테 빨대 꽂아 피 빠는 막장 부모는 시대 불문하고 다양한 형태로 있습니다.
참고로 응답하라의 성덕선이 71년생. 덕선이가 나이가 더 많죠.
저분이랑 동갑이 농구선수 서장@입니다.
그 때 당시 상류층이면 뉴키즈 온더블록 내한 공연을 보러갔고, 평범했으면 연대 농구팀 보러 갔을겁니다. 별밤도 들었죠.
부산의 조선방직공장이 69년에 문을 닫았고, 58세 저희 부장님이 88년에 입사 했을 때도, 노조 있었습니다.
부장님 배우자 분이 고졸이고 제도실에서 도면 그렸네요.
74년생이 2교대 방직공장에 갔다니 믿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박중훈/안성기 주연의 투캅스(97)에서 미성년자가 민증없이 술집에서 등본 가지고 일하는 장면이 나오기는 합니다.
막장 집에서 목돈을 만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2교대 방직공장에 보낼 이유가 있을까 하네요.
그리고 부장님 배우자분 54세 고졸, 제도실 근무 중 결혼
또 다른 부장님 배우자분 52세 고졸, 회사 식당근무 중 결혼.
저분보다 나이 많은 평범한 분들도 방직공장은 안 갔습니다. 사실 저분 나이면 가전제품 조립라인, pcb 납땜, 혹은 엘리베이터에서 버튼 눌렀겠죠.
1997년도 홈플러스가 오픈해서 제가 아르바이트 할때
지금도 창조경제센터에 있는 오래된 건물이 이전전 기숙사였어요
어린 여공들이
구미서 주말에 구미서 회사차타고 외출나와서 저녁에 회사버스타고 가는거 봤네요
대구 경산 경계지점에 있는 이마트뒤 펜타힐즈 자리에 있는 방직공장에서 진량으로 2부 수업도 있었죠
또 주변 신성고에는 20대 초반의 여공들이 다녔던 검정고시 반인지 고교과정 야간반인지가 있었습니다. 즉 일하면서 남들보다 늦은 공부를 하는 케이스였죠.
74년생치고는 너무나 힘들게 살았고 흔치 않은 케이스로 보이긴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닐겁니다.
사실 저런 분들은 너무 최악에 최악을 더해서 이루어 진거라 뭐라 할 말은 없습니다.
일단 찾아보고 의심을 하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평범한 누나 친구들은 목욕탕집 딸은 항상 따뜻한 물로 씻는게 제일 부러웠다고 합니다. 보통은 한겨울에도 온수를 못 썼으니까요.
제가 74년생인데 제 시골 초교동창 중학교 1년 다니다
자퇴하고 공장으로 일하러 간다고 친척 손에 이끌려 갔어요.
20대때 다시 만나서 보니 플라스틱 사출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라구요.
지금도 참 굴곡진 삶을 살고 있어서 생각하면 마음아픈 친구입니다
차비도 아껴야 하니까요.
방직공장이 가까우면 방직공장 가는겁니다.
나와 다른 계급의 다른 삶이라고 없는 삶이 아니에요.
가끔 하층민을 가르켜서 잊힌 계급이라고도 부르는데 지금 여기서 그 이유를 보여주네요.
본문 글쓴이보다 한참 어린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국민학교때 엄청 가난했다 생각하거든요?
남들 아파트살때 난 반지하 살고 친구들 다 있는 컴퓨터도 없고 남들이 장난감선물 받을때 난 쿠키 받고.....
근데 희안하게.....그 와중에도 '나는 가난하다' 라는 생각을 함부로 못 했어요.
대충 봐도 부자인 케이스도 있긴 했지만 내가 스스로 가난이란 단어를 쓰는게 미안할 정도로 비참한 케이스들을 너무 많이 보면서 살았기 때문이지요.
'걔들은 어떻게 가난했다' 를 쓰려다가 너무 괴롭고, 내 인지력이 부족해서 그때 그 친구들을 배려해주지 못한게 생각나 눈물이 나고 미안하고 괴로워서 서술 못 하는데요.... 그걸 생각하면 알 수 있겠더라구요. 본문 내용이 충분히 있을만 한 일이라는 것을....
그래도 댓글들 보면서 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아맞아 나도 그래' 혹은 '저런 일 있을 수 있지' 만 있는 게 아니고, '저런 일이 있을 리가 없지'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질 정도로 계속 세상이 좋아지고 있는 중이란 거잖아요....
부모라는 사람을 잘만나야하는데 ㅠㅠ
그런 삶인가요
믿고싶지 않다고 해서 아니라고 우기는건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가혹한 행위라고생각합니다. 스스로 뭐라 하는건지 생각좀 했으면 좋겠네요
대충 비슷하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
그러나 겹겹히 나쁜일이 쌓인 인생이네요
집사람이 그 당시 구미 효성공장 사무직으로 갓 입사한 시절인데
주변 동양폴리에스터 등에 야간 학교 제학을 이유로 어린 여공이 많았다고 하네요
생각보다 정말 불우한 사람들 많습니다. 불과 1~2년전만 해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도 못 다녔던 20살 여자분도 서장훈이 상담하는 곳에 나왔던 적이 있는걸요... 결국 그 분도 고생만하고 사랑도 못 받은채 20년을 살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어요...
정말 말도안되게 힘들고 불우하게 사는 사람들 꽤 많습니다. 유유상종이라고 다 여러분들 주변에는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만 있으니 없는 것 처럼 보이는거겠죠...
그런데 그걸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소설 테스에 보면 더 불행하고 끔찍한 삶을 살다가 간 여인의 모습이 나오더군요......
70년대생이 아니도 90년대생도 중고등학교 시절 일하면서 다녀야 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골가면 전화기 손잡이 돌리면 교환원이 나오는 전화가 있었습니다. 90년초반까지 여공들이 다니는 야간학교가 따로 존재했습니다.90년중반이후 더 이상 여공들이 없어서 폐교되었습니다. 74년생이면 여공 끝세대라고 보면 됩니다.
초등학교,중학교만 졸업한 후 신발,방직공장에 취직해서 여공을 위한 특별야간학교를 다녔죠.
하는 것과 비슷하죠. 90년대초반까지 지역간생활수준격차 엄청나서 기억하는 것이 다른다고 봐야죠.
행복함이 조금이라도 길어지기 바래봅니다
64년생은 뭐 비일비재하게 나올 케이스고 IMF에 되려 잘된 케이스? 좀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요
아버지 사업이 첫 번째로 기울 때가 저 초딩(당시는 국딩) 4학년 무렵이였습니다.
한 일년 조금 넘게 기존 살던 집에서 버티고 살다가 5학년 마치고 친척 집에 얹혀 살았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삼양동 달동네라는 곳에서 6학년 마치고, 다들 중학교를 갔지만. 저는 못 갔습니다.
덧글들 보니 역시 경험하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만… 학굘 다닐 수 없었습니다. 저만 그런게 아니고 그 동네엔 초등학교만 나오고 공장에 취직하던 애 몇 있었습니다.
어찌어찌 모 대기업 구내식당에 설겆이하는 일로 들어갔고, 종로에 있는 모 종교단체(?)에서 하는 야학을 다니며, 중등, 고등 검정고시로 봤습니다.
저 야학 다닐 땐…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게 아니고, 당시 제 나이 또래나 20대초까지 정도가 대부분이얐습니다.
공부 못하고 직장 다니는 사람 중에 10대 초중반도 많았고, 공장, 식당 등에 이루할 때 무슨 허가서이런거 쓰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뭐랄까… 그냥 덧글을 보다가… 진짜 저런 삶이 있다고… 있었다고 알려 드리고 싶어서 씁니다.
저는 이후로 직장 생활은 지금까지도 계속하면서, 중고등과정 마치고, 모 대학교도 잠깐 다녔다가모 사이버대로 학사하고…
직장은 식당 설거지로 시작해서, 모 대기업 사환(야간고등학생이 2~3시까지 근무하는 것 말고 종일 사롼), 모 건축사무실(역시 전일 사환)을 거쳐, 잡지사도 거치고… 현재는 it 밴쳐기업에 다니네요,,
6년전에 결혼도하고… ^^
1990년 3월 9일에 서울 망원동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아빠.엄마는 일하러 나가면서 방문을 잠그고 나갔습니다.
불이 났고 어린 두 아이가 방안에서 갇혀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실화를 소재로 정태춘, 박은옥씨가 노래를 만들었는데 제목이 '우리들의 죽음'입니다.
듣다가 눈물을 흘린 첫 노래입니다.
이런 일도 있었는데, 74년생이 15살이면 88년이고, 그 나이에 방직공장에 들어갔다는 그렇게 특별한 얘기도 아닌 걸 못 믿겠다는 분도 있네요.
일부러 분란을 일으키자는 건지, 고집인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부자들이 뉴키즈온더블럭 공연 다니고, 평범한 집은 연대 농구부 경기 보러 다니고 했겠지요.
단지, 누군가는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눈에 안보이니 믿질 못하는 거죠.
그 시절에는 버스에서 아무나 담배를 피웠고(특히 기사들은 대부분 피웠습니다.), 심지어 비행기에서도 흡연이 가능했었죠.
명절마다 뉴스에서는 고추가루에 톱밥을 섞어서 팔았다. 조기에 색소를 칠해서 팔았다가 잡혔다는 뉴스가 매해 나왔던 시절이었습니다. 겨울에는 연탄가스 사망 사고 뉴스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몰랐다고, 그 시절에 그렇게 안 살았다고 있는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지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분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잊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저렇게 극단적이진 않았던게 저희 큰아버지, 아버지는 10대부터 배 타고 고기 잡으면서 삼촌(작은 아버지)이랑 고모(막내)는 고등학교까지 다 진학시켰어요.
참 똑똑한 친구지만 여상 나와서 3학년때 취업. 바로
돈벌어서 집안에 대주고 오빠, 동생 학비대준 친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