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후반은 생각보다 성에 굉장히 개방적이였습니다
양반이 첩을 두는것은 당연히 아실꺼고요
하층민 부부의 1처 2부제 전체의 10% 정도 된다고 합니다
2명의 아버지가 있어야 자식을 부양하기 좀더 좋아서 그런것 같습니다
보통 척박한땅인 티벳이나 네팔 같은곳에서 1처 2부 인경우가 종종있는데
조선에도 있었던것 같습니다
19세기
강원도의 노비 혼인을 조사해보니
집안의 노비들
보니 184 쌍을 조사해보니
1부 1처 107 쌍
2부 1 처 15쌍
아내를 모른다 남편을 모른다 62 쌍
24분쯤 나옵니다
어쩌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출산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의 제도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오는거 같습니다
밤에는 자유러웟던거 같아요
1처 2부 전부다 법적안으로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이지 않기는 하죠
그래야 출산률 극복 할 수 있다고 봅니다
/Vollago
일부 다처가 되면 일처다부도 되는거죠 ...
지배욕이 강해서 대신 일부다처제 선택권은 여자에게 있게 해야죠
일부다처제 허용하는 국가들이 여성인권 개판인건 아시죠?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인데요
일부 다처제가 출산률이 더 높을 겁니다
만수르가 결혼을 열번을 한다고 하더라도 아무하고나 하진 않으니까요
그냥 결혼하지 못하는 남자만 더 늘어날뿐
두번 째 부인 사이에 자녀 4명 있네요. 자녀가 총 5명 이네요
만수르 사는 곳이 왕족 국가니깐 신분 따지겠죠 그리고 지금 보다 출산률 높아질거라 생각됩니다.
앞으로도 자본사회에 양극화 해결 못하면 남녀 출산은 안 하겠죠
남의 삶 간섭, 주변의식 신경 쓰지 않는 시대면 모르겠지만 이것도 출산률 저조에 영향있다고 생각이드네요
남편이 둘이면 한 명씩 교대로 해방과 자유를 즐겨볼 수 있으니까요..
본처 후처 막대처 같이 오손도손 살던 할머니들이 기억나네요.
이북에 있던 집안이 있고 남쪽와서 집안이 있는데 .......로 시작하는 집안이 엄청나게 많았죠
저의집도 그렇고요 ??
해방전후, 6.25까지. 1부다처.... 의 삶은 가진 사람도 많고, 다부1처의 삶을 가진 여성들도 많았지요.
여성 혼자서 안정된 삶을 가지기에 힘들고, 남자도 외지생활의 어려움이 있으니, 그게 서로 맞아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네요.
그 아래층들은 비교적 자유로웠다고 들었어요.
왜 자유가 억압된 상태인 노예나 하층민에서 그런 현상이 주로 나타났는지를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요...
자유로운게 아니라 무법상태 였을 가능성이 크죠.
결론이 성이 지금보다 자유롭다가 나온다고요?
결론이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닭 세마리로 거래되던 노비들 혼비가 성이 자유롭다로 결론짓는게...
결국 자본을 가진 쪽에서 여성을 많이 차지하게 된다고 봐야죠
여성들도 1부1처 같은 윤리나 사랑 보다는 현실적인 자본을 택해 삶의 안락함을 택하더라는게 정확한 해석 아니겠습니까?
n : 1 이것도 뭐 괞찮겠지만,
n : n 되면 세상 아주 개판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