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양구에서 군생활 했는데...
자대배치 첫날부터 맞기 시작해서 한달간 매일 맞았네요.
하루 안 맞은 날이 훈련이 시작되는 날이었는데
알파에서 한명 탈영하고
브라보에서 무슨 사건이 터졌다면서 비상이 안걸렸는데...
연병장에 서 있는데 짚차하나가 올라와서 제 이름을 불렀죠.
저를 태우고 브라보 포대로 가서 차를 승용차로 바꿔 태우고
저런 사복입은 형사 같은 사람이 물어보더군요. 00를 아냐고...
포에 목메고 자살했던 훈련소에서 저랑 가장 친했던 제 옆번호 친구였었죠.
근데 그 수사관이 여기 부대에 구타가 있냐? 그걸 묻는데...
진짜 그 짧은 시간이 한 5분 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부대에 구타가 있다고 말하면 오히려 나를 밀고자로 검색하기 위한 질문일까...
아니면 설마 그걸 이 사람이 모를리가 있나?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결국 없다고 했었습니다.
그날 낮에 포대로 복귀하니 나를 매일 때리던 그 고참이 두손 꼭 잡아주면서
갑자기 걱정을 해주더군요... (그 불안한 눈빛이 진짜로 겁먹은 건지도... 저는 당시 판단할 능력이 없었네요...)
다음날 아침 근무였는데 어머니가 오셔서 우시는 소리가 저희 포대까지 들렸었네요...
아침에 너무 조용한 곳이라서 그랬을까요...
그리고 저는 또 불려가서 그 어머님도 뵙고 제 손을 붙잡고
무슨 내용이라도 아는게 있으면 얘기해 달라고 하시는데...
뭐라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네요... 실제로 힘들다고 한건 저 였었긴 했으니...
나중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소리 죽이고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날 저녁에도 맞았으니까요...
첫 면회 나가면 같이 만나자고 했었는데... 정작 부대에서 저만 나왔었네요...
소대장이 특별히 대대에 부탁을 해서... 어머니가 걱정 많이 하시고 우셨던 기억도 나고...
DP 드라마를 보니
참 잘 만들었네요. 지금 군대라기 보다는 예전 군대를 잘 구현한거 아닐까 생각 되네요.
사람들은 본인들이 그 일을 당하기 전까지는 잘 믿지 않죠.
저도 그렇고요... 저는 두살 많은 친형이 군대가서 구타도 없고 뭐 어려운거 없다고 해서
우습게 알고 갔다가... 많은 경험을 하고 왔었네요.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하고 제대 했네요. 누구도 때리지는 않고 나왔네요.
병장 1호봉 까지도 맞았던적이 있었지만, 누구도 때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대하고서 지하철에서 술취해서 담배피고 있던 세명중에 한명에게 해서는 안될일을 하고 내렸었네요.
DP 조석봉 일병의 폭발하는 부분에서 제 어떤 모습이 기억이 났습니다.
트라우마라는게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 있듯이 군대는 남자들 일부에게는 각인된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 됩니다.
저에게는 적어도 그랬던것 같네요...
다만 나은 사화하면 법과 제도로 그런 사람들로부터 선량한 시민을 잘 보호해야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유전자를 가진 인간들이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도 높아서 기득권들이 그 부분을 쉽게 바꾸지 않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확실히 GOP에서는 구타, 가혹행위 많이 줄어들더군요.
계속되는 경계근무에 작업에 병기본훈련에. 취침시간이 거의 없어 정신도 헤롱헤롱 다같이 고생하는 처지에 안쓰럽게 생각하는것도 있고
부대에서도 거의 매주 마음의편지 강제적으로 쓰게해서 조금만 안좋은소리 나오는 인원 생기면 페바로 날려버리기도 했고...
나중에는 너무 사소한걸로도 선임병 날려보내니 근무인원이 안나와 밀어낼 인원이 안나와 올반야라고 하루종일 근무서는 조가 생기고 나서야 마음의편지도 사그라들던데.
페바 내려오니 다시 부조리는 생기더군요..ㅎㅎ
저도 정말 많은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드라마 보면서 그 냄새,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는 거 같았습니다.
맞지 않으면 잠이 오지않던 시절...끔찍하네요
94년에 지금은 없어진 1116야전공병단이었습니다.
아무도 때리지 않고 나왔습니다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의 가장 황금기 시절을 남자라는 이유로
군 복무를 하는것이 너무나 당연시 되고 또
군대니까 이래야 한다는 사상이 너무나 당연시
되었던것이 많이 옅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진행중
이라고 보여집니다
군대는 목숨을 걸고 생활하는 곳 입니다
부디 군복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군복무자들
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이런 부조리 들이 없어지고
진정 군인 군대다운 곳이 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역시 좋은 기억은 없어요.ㅠ.ㅠ
슬픈 일이죠 ..
아래 댓글 보니 쩝 진짜 20년 후에도 큰 변화가 없었나봅니다
짬조(상병군기조)가 있어 매일 결산이라고 하는 매타작을 하곤 했죠. ㅡㅡ;;
저는 작전병으로 근무 했었는데 약간의 폭언이나 가혹행위는 있었지만 일이 더 힘들었던것으로 기억이 되네요
뭔놈의 작전계획이 매번 바뀌는지.....
자대가자마자 그놈한테 싸대기도 맞았는데 ㅎㅎ..
별 해괴한 방법으로 날 괴롭히던 사수 윤모병장. 잊혀지지 않네요.
저는 반가와서 달려가서 아는척 하려 했던건데 자기 때리려고 그런줄 알았나봐요
계속 부르니까 더 빨리 뛰어가더라고요
참 웃기기도하면서 씁쓸하데요
그냥 자기를 죽이지 말고 그놈을 죽이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기억..
작성자분께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자대가서 하사관,장교를 봐도 지들끼리 구타가 심하고 없애야 된다는 인식 자체가 거의 없더군요. 한심하죠.
잘못된 게 고쳐지는데 정말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여전히 사회에서 폭력과 폭언을 쓰는 한심함이 사라지지 않아서 안타깝고 나는 저런 거 하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밖에 만들더군요.
종종 주말 새벽에 드라이브 삼아 월운저수지 찍고 올때가 간혹있는데,
20년 넘게 지난 지금도 즐거움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느낌이랄까요.
새벽 물안개 잔잔히 낀 저수지 근처를 걷다보면,
젊었던 시절 재미있었던 일들도 많았지만, 반대로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도 많았던지라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세월 지나 그때보단 하나라도 더 나아진 요즘 군대를 보면서
세상은 조금씩이나마 좋게 바뀌고 있긴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공식적으로 훈련 중에서도 구타가 가능했죠.
군대내 성폭행도 심했죠.
제가 파견갔던 병기창에서는 근무중에 성폭행하다가 걸리고,
탈영해서 5분대기조 출동하고,
우리나라 군대가 진짜 헬인 이유가 단순히 자유만 없는게 아닙니다.
혈기 왕성한 스무살 아이들을 집어넣어 놓으니 수많은 사고의 피해자가 됩니다.
군대 가기전에는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겠다는 청춘이었지만,
훈련소에서 끌려가서 맞는거 몇번 보고 나면 살아서 나가야겠다는 생각 밖에 안들었죠.
헌병대 지하에 영창이 있고 옆 동이 의무실이었는데 영창과 의무실에는 항상 헌병이 있었다고, 때린 놈은 영창에 갇혀있고 맞은 놈은 의무실에 누워있는다고 했었네요. ㅠㅠ
보시면 안됩니다. 나중에 나중에 흐릿해지면 보세요
안타깝네요
근데, 갈구고 때리지 않는 고참으로 낙인?찍히니까 후임들이 때리고 갈구는 고참 말만 듣고 제 말은 뒷전이더군요
중대내 권력? 계통에서 완전히 아웃사이더가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애들이 지 밑에 후임들 갈구고 때립니다
내무반이 돌아가는 시스템이 구타와 갈굼을 에너지로 하고 있어서 시스템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안변하더군요
사람 한두명이 컷 한다고 해서 그게 사라지지가 않았습니다
억지로 끌려간 군대에서 뭔가 열심히 해봤자 보상이 없으니 열심히 하지 않을때의 불이익이라도 만들어둬야 군대가 굴러가는 그런 더러운 시스템이죠
부대에 비슷한 부잣집 아들이 한 명 더 입대했는데, 입대하자 집에서 대형 TV 몇 대와 세탁기 몇 대를 부대에 기증해서, 그 때부터는 손빨래를 면했다고 하셨습니다. 부자면서도 군대 안빼고 적당한 방법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양구에 있는 부대는 그래서 격오지여서 내부 생활은 상대적으로 편하다는 인식이 있었는데요 역시 진리의 케바케인가 봅니다.
저희 형님은 덕분에 평생 달고 살던 천식이 싹 나았습니다. 깨끗하고 차가운 공기가 큰 도움이 된듯 합니다. 큰엄마가 휴가나온 형님에게 등산 같이 가자고 했다가 "엄마 나 방금전까지 산에 있다가 왔어" 라고 핀잔을 들은 것도 이제는 웃으면서 하는 추억담입니다.
마지막에 방관자들에 대한 원망부분에서 내심 기분이 씁쓸했습니다. 제 위고참들이 정말 비인간적인 굴욕을 많이 당했지만 후배인 저희들에겐 참 잘 대해 주었는데.. 다들 그러시겠지만 있는일 적으면 책이 몇권나올것 같아요
드라마 잘 보았습니다. 군대는 수통만큼 잘 안바뀌나보네요
많은 부분이 저희 부대랑 비슷하네요..
구타는 기본, 후임들에세 양쪽다리 잡게하고 성추행, 기수별 새벽 막사뒤 구타....
코콜면 방독면 씌우고.... 아직 아이는 없지만, 내 자식이있다면, 절때로 군대는 보내기 싫습니다..절때로...
주먹으로 두두려 패고 육두문자를 날리는 문화는 많이 줄었겠지만,
못된 놈들에게 사람을 괴롭히고 갈구는 방법은 너무나 많습니다.
DP 보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피해자였고 또 가해자였던 제 모습도 기억이 나니 더 불편하군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실제했던 나의 군생활. 절대로 되돌아 가고 싶지 않습니다.
(93군번이지만 윗 댓들만큼의 고생은 아니었고 폭언구타를 살짝 경험한 정도 수준이었어요.)
원작 웹툰 작가인 김보통 작가를 좋아해서 드라마 잘되는 게 기분이 좋더라구요.
그때 말하지 그러셨나요....매일 때리는 놈이 두손 꼭 잡고
토 나오네요
저 같으면 말했을거 같습니다. 어디 한번 뒤집어져야 정신 차리지
비슷한 시기 양구에서 근무 했습니다.
183이었던것 같은데 맞나 모르겠네요.
사단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저희 부대로 오기 때문에 그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산 꼭대기에 있는 영안안치소에서의 부모님 울음 소리가 저희 근무하는 곳까지 들려 옵니다.
저희에게도 굉장한 트라우마 였습니다.
뭐 몇달 지나니 헌병차 와서 다 모셔가던
저 위 어느 분처럼 맞기 싫어서 공군 갔는데 구타는 거의 없지만 집합시켜 굴리기 + 내리갈굼이 참 뭣같앗던 기억이라선지... 병장달곤 1년동안 집합같은것 건 적도 없네요 (게을러서일지도요)
맞았네요
맞는건 차라리 그냥 내 육체를 건드리는 것 뿐인데
물 못마시고 화장실 못가는 물깨스 화장실깨스가 너무 살벌했습니다
자대배치받았는데 그날밤 성추행당한 기억이 나네요
태권도승단 늦어 엄청고생해서인지 자식은 꼭 태권도 단따고 보내야 겠다 생각했습니다
저는 07군번인데 저희때도 구타가 있었는데
90년대는 오죽했을까요.
트라우마라는 말을 보니 남자들이 군대 얘기를 하는 이유가 또 미화시키는 이유가 그냥 받아들이기엔 고통스러운 기억이기 때문이라고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맞았어도 끝까지 나는 그만 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제 동기들은 후임들 쥐잡듯이 잡더군요
그러다가 절 끝까지 머리를 때리던 선임과 제 동기들이 내무실 후임들 마편으로 싹다 정리되더군요...
순식간에 왕고가 된 저는 병장 6개월 아무 터치 없이 지내니 이젠 후임들이 우습게 보는게 보이더군요. ㅋㅋ
걍 무시하고 잘 지냈습니다. 그러다 전역 한달쯤 보니 마편 쓴 애들(다 알고있죠) 이 후임들을 갈구고있더군요 ㅋㅋㅋ 어이가 없어서...
성격상 누구에게 뭐라하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기도 했고 근무가 상황실 근무라 그나마 그때부턴 잘 보냈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대하고 가끔 욱하는 성격이 남았는데, 이게 그때 맞았을때 꾹꾹 참던 버릇이 폭발한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저도 정주행 다 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양구는 훨씬 심했나봐요.
그때 당시에 군인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개보다 못한 와................
그래서 순간 욱하는 성질이 나오는건지
담배 한개피 안빌려준다고 잘때 개머리판으로 찍던 동기
소고기반찬 배식이 잘못되었다고 삽자루로
취사반 병장의 머리를 때리던 상병
맛이없다고 boq 상병을 죽통을 날리고 발차기 하던 중사새끼
맞지않아도 분위기에 가슴이 두근거리던 그때 와..... c
c 초코파이를 왜 냄세나는 화장실에게 먹어야 하냐고
dp 보는 내내 떠올라 기분이 정말 드러웠어요
알고도 다들 모른척했던. 집에는 걱정할낀봐 구타 같은거 없다고 이야기했던. ㅠㅠ
외삼촌이 그 특정 지역 사람에게 지역 감정 때문에 엄청나게 맞았다고..
20년 전에 동생이 의경쪽에 (업무가 의경은 아니고 다른 특기로 ) 들어갔는데, 그냥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근무 기간 반은 맞고 지냈으니..
80년 군번이고요. 33개월 16일 하고 전역했습니다.
구타가 너무 심한 부대에서(고참되면 편한부대) 넌 얼마나 빽이 없으면 현역왔냐고 괴롭히고 (자기도 현역온 주제에), 키워주겠다고 구타하고 (자기도 쫄따구인 주제에) 못참고 고참구타로 (첫휴가 3일 남겨놓은때) 영창대신 기동타격대(훈련이 무지빡센 부대) 에 가서 죽도록 고생하고 골병들어 제대했습니다.
뭐 예전부대에서 맞아서 골병드나, 훈련해서 골병드나 마찬가지겠지만, 제대하고 5년간 후유증으로 고생했습니다.
훈련이 빡세면 후임을 괴롭힐 힘도 없어서 구타도 없습니다.
저도 후임에게 욕 한 번 하지 않고 제대했네요.
지금 육십중반인데 지금도 뭐가 잘못되었다고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꿉니다.
제 인생에서 군대있던 기간을 지우고 싶습니다.
02군번인데 저는 그래도 구타는 한번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선배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많이 바뀐것 같아요. 대신 입이 반대로 거칠어지는 그런 효과가...
다행히 저희 부대는 얼차려 외에는 상습적인 구타는 없었어요...
별일 없이 전역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훈련땜에 생긴 허리랑 무릎 고질병은 간혹 나타나긴 합니다..
DP 정주행 해봐야겠네요..
전 운 좋게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곳에 다녀 왔기도 했지만 한창 군대에서 인권을 얘기하던 때라서 부대내 폭행은 없었습니다.
나이차이 나봐야 한두살이고 같이 고생하는 처지에 한달 단위로 순번을 나누고 대장노릇 하는 걸까요.
저도 기무부대 수사관 면담(?)도 해보기도 하고 별 일들이 다 있었네요.
드라마 궁금하긴 했는데 무서워서(?) 못보겠더라구요.
저는 시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제가 군에 있던 95-97 때에도 대부분은 구타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제 동기나 형들 얘기들어보면 그랬습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저희 부대에는 구타가 있었고 특히 저희 찰리 포대에는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야삽을 건너편의 저희 고참에게 던져서 머리에 피가 터지게 했던 그 부산 건달이었다는 고참
휴가전날에 얼굴을 알아볼수 없을정도로 폭행했는데도 그냥 군기교육대로 퉁치게 했다는 상병 말호봉 고참...
합기도 2단이었던 저는 중,고교시절에 재수생들이나 동기까지는 아무도 저를 못 건드렸지만
군대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었네요.
그러나 집합으로 인한 구타 (단순 열받아서 폭행말고)가 제가 상병 5호봉인가 근처 어느 때쯤에 사라졌습니다. 군단의 다른 부대원의 '행동'으로 인해서 였습니다.
휴가가서 자살을 했는데 부대에서 구타가 있어서 복귀하고 싶지 않다고 유서를 쓰고 죽었고 그게 신문과 TV에 보도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3군 군단장인지 여단장인지의 지시로 모든 훈련 멈추고 한 달간을 정말 근무 외에는 아무것도 안하고 전 포대원들 모아두고 (아마도 3포병 여단 전부가 그랬는지 아니면 3군단 전체가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정신교육만 했습니다. 고참들이 거의 미칠정도로 계속 모아서 앉아서 교육만 했는데...
처음에는 모아서 교육하고 한 30분은 분리를 시켜서 일병끼리, 이병끼리 모아서 맞지는 않더라도 약간 갈굼이라도 당한 적이 있는지 뭐 이런거 적으라고 계속 소원수리를 시켰습니다.
이게 한2주 지나니까... 이등병중에서 누군가가 다른 동료가 혼나는걸 본적있다..이걸 적었고
그걸로 이미 위에서는 다 알려져서 분위기 좇됬다고 험악해졌지만...그들도 두려워서 아무짓도 못했죠.
결국 한달이 가까워 오면서 그 끝없는 정신교육에 꼬임(?)을 당한 이등병들을 단독면담등을 통해서
결국 몇몇의 이름이 나왔고 한 10여명은 대대 군기교육대로 갔던것 같고 한 5~6명 정도는 영창으로 갔습니다.
결국 제 동기중에 한명은 상병 정기 휴가 복귀후 영창으로 바로 직행했습니다. 갔다왔더니 얼마나 머리가 길던지...
그래도 좀 착한친구 였는데 아마도 후임병에게 장난 좀 친걸로 그렇게 된것 같았네요.
그런데 정말 그 이후로 군대가 바뀌었습니다.
제가 제대 할때까지도 열받아서 몰래 누군가를 폭행하는 일은 아주 드물게 있었지만
집합이 사라졌습니다.
정말 이건 놀라운 기억입니다. 절대로 이건 못 바꾼다. 그냥 나 하나는 때리지 말겠다고 저는 생각했지만
누군가의 결심 하나로 이렇게 변하는건 정말 생각할 수도 없었네요.
그때는 저 사회 자체가 하나의 암울한 절대 변하지 않을곳이었는데 말이죠...
이 글들을 보면서 제가 느낀점은
저는 20대때에 아무것도 몰랐고 그저 순응하는 것만이 그나마 살 길이라 생각하고
이 군대와 고참들에게 가스라이팅 당했다고 해야 할까요?
제대 이후에도 그저 스스로에게 그래도 인생에서 이런 시련 한번 겪어본것은 큰 자산이야...
라고 믿고 살았고
30대때에는 기억이 희미해졌으나 그저 과거의 흔적이라 생각하고
40대때에는 아예 거의 잊어버리고 살았었네요.
지금 돌아보니 20대에 진실을 말하지 못했던 제 자신을 감당 할 수 없으니
그저 인생에 큰 시련을 겪었다는 식으로 자신을 속여 온것 같습니다.
그걸 직면할 용기가 없었던것 같네요.
마흔일곱이 되어서도 이런글을 쓰는데에 용기가 필요하다니... 어쩌면 군대는 사회가 만들어낸 악인것 같네요.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권력을 주게 하니 ...무슨일이 없기를 바라는게 힘들죠... 그중에는 실제로 살인자도 있을수 있고, 강간범도 있었으며,
건달도 있었습니다...
왠지 씁쓸하네요...
마지막으로...이 글은 지울까 말까 고민을 계속하다가 제 양심에게 그나마 작은 자유를 주고 싶어서 비겁하게 적어봅니다.
주석아... 미안하다.
진짜로 니가 왜 죽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주로 맞아서 힘들다고 했던건 나였는데 너는 그 마지막주에 종교행사 화장실에서 만났을때에
처음으로 야간근무 서고 화장실에서 맞았다고 들었었는데... 설마 그것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거니?
아니면 정말 부대의 그 보고서 대로 너희 부모님의 이혼 이후에 어머니께서 다른 남자분과 함께 면회를 온다고 하는것을 견딜수가 없었던 것이니...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니가 군대에 오지 않았으면 자살은 하지 않았을꺼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우리 같이 첫 면회 나가면 만나기로 했었는데... 난 그 이후로 아직 네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구나...
주석이 어머님. 죄송합니다.
당시에 용기있게 말 할수가 없었습니다. 그 수사관의 질문에 제가 구타가 없다고 답한 그 순간부터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이미 결심한것 같습니다. 용기가 없어서 진실을 말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어쩔 수 없었다고 자위하며 살았었네요.
근데, 나랑 동갑였던 정말 착한 고참이 어느날 (그때까진 그 고참이 애들 패는 건 물론 욕도 한번 하는 걸 못봤었는데) 뭐 때문인지 열받아서 애들을 미친듯 패는 걸 보고는 "저 새끼도 똑같은 새끼였네. 시x럼" 하면서 그때부턴 그 고참이 매일 때리던 새끼보다 더 꼴보기 싫어지더라는 거...
전 조국 장관과 관련해서도 대중의 심리가 이런 면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차피 국힘쪽 것들은 원래 그런 놈들이지만, 안그랬던 것 같은 조국장관이 "그랬다"고 하니까 저렇게 돌아서는 심리 같은 것... 물론, 본질은 "그러지도 않았고 그럴 일도 없었다"는 거지만, 저 악의축들은 대중의 이런 심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걸 이용한 거죠. 대중은 그에 휘둘린 것이고...
그냥 조국 사건(실제론 '윤석열 쿠데타 사태'죠)을 거치면서 군대시절 이런 모순적인 상황과 역치된 심리현상이 계속 생각나곤 했습니다...
저도 양구에서 군생활한 96년 군번입니다.
엄청 맞고 맞다가 기절한적 있는데
기절하니까 찬 물 뿌려서 깨우더라구요.
무슨 사극에서 대역죄인 대하듯이….
하튼 병장달기전까지는 계속 괴롭힘 당했어요.
진짜 어이없던건 …
제가 사단 신병훈련소 수료우수로 사단장 표창받고 6일 휴가 후 자대배치 되었는데 그것 가지고도 엄청 갈구고 못살게굴고 하더라구요.
자대에서는 한 달여간 성추행도 당해보고….
하…
진짜 20년이 더 넘게 지났는데도 아직 분이 안 풀립니다.
사단장 표창 얘기하시니...잠수함 넘어왔을때에 그 기무사 대령인가와 함께 수류탄인가로 죽은 11사단 표창받았던 훈련소 동기도 생각나네요...
내무반 TV에서 사진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ㅠㅠ
그 잠수함이 96년엔가 넘어왔을테니 마찬가지로 매복 많이 나가셨겠네요.
제가 상병때 였던것 같은데... 휴가들이 다 밀리면서 포상휴가가 날아간게 더 마음아팠던 기억이 나네요...
저도 약간의 성추행은 당해봤는데 외모가 별로라서 그냥 장난 수준이었는데...
그것보다 그 내무반 앞에서 자기꺼 꺼내 놓고 빨아보라고 협박하던 그 눈 찢어진 병장 기억도 나긴 하네요.
장난인지 진짜인지 알수도 없었고 안했으면 거의 구타는 확실했었기에 협박은 확실했는데...
DP 드라마 처럼 갑자기 집합 울려서 다행히 더 진행이 안되었던...
그냥 그 사람은 뭔가 좀 정신이 반쯤 빠져 보이던 사람이었네요...
부대마다 차이가 많네요.
고생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