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퓨리넬입니다.
언제나처럼 뻘글입니다. 저도 영양가 있는 글을 써보고 싶은데 언제가 될까요.
어제였나요? 단독주택에 대한 주제가 가볍게 모공을 지나갔는데요, 이런 주제가 나왔을 때 종종 보이는 반응중 하나가
'단독주택에 들어가 살고 싶은데 아내가 아이들 때문에 반대한다.' 였지요.
대체로 시골에서 살면 아이들이 학원같은것은 다니기 어려워도 동물과 식물과 흙과 함께 있는 자연속에서 살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간혹 계신 것 같습니다.
물론 실제로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좋지 않은 사례 1이 여기 있습니다.
벌써 20년 전 이야기가 되었지만 강산이 2번 변했어도 아래 내용은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먼저 저는 충북 아랫지역의 시골인 oo면의 주택에서 살았습니다.
쪼그만 앞마당 뒷마당이 있고, 연탄보일러에 온수는 없고, 화장실은 푸세식인 그런 곳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화장실에 갈 때 비를 안맞을 수 없었지요.
거실은 없다시피 하지만 대신 마루가 있는 좁은 골목 안쪽에 그런 집이 여러개 붙어있는 동네였습니다. 어렸을 때 부터 살았으니 그렇게 사는게 당연했죠.
그런데 제가 10살 때 드디어! 아파트라는 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오마이갓! 90년대 초반의 2베이 흔한 구조의 32평짜리 궁궐같은 아파트였습니다. 9층 이었는데 전망도 좋았고 앞뒤 베란다 창문을 열면 시원하게 바람도 잘 불었습니다.
이럴수가 엘레베이터도 있고 화장실에 변기도 있고 세면대와 욕조도 있고 온수도 나와요. 게다가 학교는 아파트단지 바로 옆입니다.(그런데도 지각은 종종 했네요)
저희 가족은 좋았는데 아버지는 아니었나봅니다. 그 당시 아파트 들이 뭐 대체로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층간소음이 심했나 봅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항상 저에게 집안에서 쿵쿵거리지 말라며 많이 혼내셨습니다.
그리고 4년을 못채우고 다시 주택으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아버지의 고향집이었던 곳으로 거기는 정말 오래된 다 쓰러져 가는 집이었기 때문에 낡은 집은 부수고 주택을 지어 들어갑니다.
아버지는 건축에 직접적으로 일하시는건 아니지만 건설회사에 다니시는데도 대체 집을 어떻게 지었는지 하자가 많습니다.
그리고 돈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집만 지어졌습니다. 울타리, 마당 조성은 직접 하셨고 저와 동생은 그 작업에 미약하나마 노동력을 보태야 했습니다.
아파트→주택으로 이사가기전에 아버지는 다시 강아지도 키우고 옥수수도 심고 고구마도 심고 등등의 이야기를 하셨고 저희는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아파트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시골에서 살았던 시간이 더 길었으니까요.
그리고 이사한 뒤 1주일만에 엄청나게 후회했습니다. 당연히 제게 선택권은 없었기 때문에 후회랄것도 없었지만 ^^;;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게 시작됩니다.
1. 동네에 친구가 없습니다. 안그래도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중학교를 진학하면서 이사를 갔다 보니 그나마 몇 안되는 친구들과는 다른 지역의 학교로 진학하여 혼자가 되었고 중학교생활의 시작이 좀 꼬여서 괴롭힘도 당하고 그랬다보니 쩝...성격도 좀 이상해지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극 내성적인 성격이 되었고 게임이 곧 친구가 되었습니다.
게임을 못하게 하니 밤에는 중간에 깨어나서 몰래 게임을 하고 (기억나는건 대항해시대3, 서풍의광시곡, 코룸, 드로이얀, C&C 레드얼렛, 투하트, 동급생, 심시티, 전화요금 많이 나오게 했던 마제스티) 낮에는 판타지소설을 읽고 그랬네요. 사회성이 너무 떨어졌는데 다행이 지금은 평범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2. 등하교(대중교통)
아파트에서 살 때에는 버스를 타고 종종 시내에도 나가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시골로 이사를 하면서 대중교통으로 학교를 다니기 힘드니 어머니 출근할 때 같이 등교하고 학원을 등록해서 끝나고 아버지가 데리러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엄마가 학교에 데려다주고(근무지가 근처이긴 하지만...) 아빠가 집에 데려다주니 얼마나 좋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자유가 없다고 느꼈고 그러니 공부하기도 정말 싫었습니다. 특히 학원 끝나고 집에 갈 때 아버지는 공부는 잘되냐 시험 잘봐라 어쩌고 저쩌고 정말 매일 매일 숨이 막힙니다.
제가 버스를 타든 자전거를 타든 걸어다니든 하고 싶었습니다. 학교 끝나면 친구집에 놀러가고 시내에 놀러간다거나 그런 생활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친구가 없었다는게...)
하지만 (중학생 때 였다는것을 생각하면) 그렇다고 버스로는 도저히 다닐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한 번 학원가기 싫어서 학교에서 버스타고 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아, 눈이 많이 내리면 언덕 때문에 버스가 마을로 들어가지 못해서 중간에 내려야만 했던것도 생각이 나네요.
주말이라고 뭐 시내에 나가기 쉽지 않습니다. 고등학교대 배차간격이 그나마 짧아졌는데 그게 2시간에 한 대 였어요.
다른 버스도 있긴 했습니다. 대신 종점에 내려서 45분 정도를 걸어가야 했는데 지금은 1시간 정도는 걷는거 별거 아니지만 그 때는 약해 빠져서 그런가 너무 힘들었네요. 특히 여름, 겨울, 비오는 날.
3. 노동력
아파트에서 살 때 와는 다르게 일이 많습니다. 집이 20% 정도는 완성되지 않았고 나머지 작업은 아버지와 삼촌이 직접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동생도 노동력을 보태야만 했습니다. 돌도 나르고 나무도 많이 나르고 삽질도 하고 이것저것 했습니다.
시험기간에는 공부해야하니 일을 안시키시면서 엄청 생색을 내십니다. 아 시험이고 뭐고 이 집에서 탈출하고 싶습니다.
밭이 조금 있었습니다. 300평인가. 크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마냥 작지도 않은 그 밭에 노동력은 엄청 많이 필요합니다.
진짜 우리나라 노동집약적인 농업은 개선되어야 합니다. 항상은 아니지만 힘들 때에는 whffk 힘듭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말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프로개님의 활동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아버지는 운동삼아 하면 된다고 하셨지만 밭일 하는게 운동이 되면 운동 좋아하시는 분들이 농번기에 엄청 지원나가시겠죠? 운동도 하고 돈도 벌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 참....
아버지는 지금도 가끔씩 혼자서 집에서 일을 벌이시는데 저와 동생이 전/의경으로 가서 공구리질을 못배워왔다고 한동안 아쉬워하셨습니다.
※ 끝난건가? 끝났다 등의 말은 밭일할 때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별로 안넓어보이지만 저것도 2~3명이서 하려면 빡세죠. 특히 맨날 앉아서 코딩만 하던 저에게는...😨
4. 난방
냉방은 뭐 시골이라 그런지 죽을 정도로 덥지 않은건 장점인것 같기는 합니다. 집에서 에어컨을 쓰는건 몇년 안되기도 했고.
겨울이 너무 힘들죠. 난방을 약하게 하니 집 안에서도 두껍게 입어야 합니다. 이사를 갔던게 IMF 터지기 직전이었고 겨울이 되니 환율이...기름값이...난방이 기름보일러 였거든요. 집이 하자가 많았는데 집 단열도 개판으로 했었던것 같습니다. IMF 사태와 환율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그것들 때문에 기름값이 비싸서 따뜻하게 못한다라는것만 알았네요.
겨울에는 집안이 추워서 맨날 투덜거렸는데 너무 많이 투덜거리면 혼나기 때문에 적당히만 투덜대야 했습니다.
훗날에 집에 심야전기가 들어오고 더 훗날에 태양광 패널 까지 생긴 뒤에야 겨울에도 집이 좀 따뜻해졌습니다. 어차피 겨울에는 집에 잘 안가지만.
그리고 자잘한 것으로 처음에는 상하수도가 안들어와서 지하수를 썻다는정도,
벌레야 다들 여름에 시골에 놀러가면 겪으실테니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작년 가을이었나 간만에 집에 가서 자고 일어나는데 왼쪽 겨드랑이가 뭔가 따갑고 간질했습니다.
그리마(돈벌레)였습니다. 꽥xxxxx
좋았던 부분
너무 안좋은 것만 나열했네요. 그래도 시골 주택에 살아서 좋았던것은 마당에서 개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너무 안좋은 이야기만 쓴것 같은데 저로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중1~고3의 시간동안 '아파트가 좋았는데 거기가 좋았는데' 하면서 주변에 흙, 풀, 나무만 있으니 감옥같고 수시로 강제노동을 해야만 하는 그런 집이라서 그랬습니다.
아버지야 어릴 때 살았고 나름 사연이 있는 곳이라 애착이 강하시기도 하고, 옛날에도 지금도 친구들이나 친척이 와서 너무 부러워한다고 자랑하십니다. 뭐 집이 걷보기엔 그럴듯 해 보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저는 옛날에도 지금도 '1년 4계절 겪어보라지. 그래도 좋은가' 합니다.
그래도 24년이 지나니 지금은 그 곳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현재는 제가 운전도 하고 주변이 많이 개발되기도 해서 운전해서 나가야 하지만 큰 상가가 굉장히 가까워졌고 마을 환경이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중앙고속도로 진입하는 IC 도 집 근처고, 대형상권도 자차로 이동하면 가까운곳에 생겼습니다. (지웰시티 고마워요)
아버지가 나이도 드시고 할머니나 삼촌도 다 먼저 가버리셔서 이제 일을 많이 줄이신 덕분에 저와 1년에 1, 2회 정도만 주말에 가서 일을 도와드립니다. 동생은 본가와 가까이 살아서 수시로 일하러가는듯 하지만...
중고등학교 때의 경험과 기억 때문인지 저는 서울이 정말정말정말 좋아요. 그리고 분당과 대전도 아주 좋아합니다.
음 쓰고 보니 살아봤던곳은 본가 빼고 다 좋은 듯 하네요.
문득 전원주택을 꿈꾸는 아버지들께는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전 까지 살거나, 그리고 대학교 졸업 후에 가시는게 좋다고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원래 어제 썻어야 하는건데 제가 게을러서 항상 한 박자 늦습니다.
세상은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S극이 있으면 N극은 당연히 있기 마련이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가 '자녀입장에서 쓰는 시골 생활 절망편'을 썻으니 누군가가 희망편을 쓰시겠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짧고 굵게 쓰면 좋은데 말할때나 글로나 구구절절히 설명해야만 직성이 풀려서...너무 기네요. 쩝.
사실 이제는 저 집도 상권이나 교통이 좋아져서 지금이라면 가서 살아도 되긴 하지요.
이동할 때 차가 꼭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술을 못마시네요.
그리고 아버지와 같이 살면 제가 엄청 힘들어서 어차피 그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
옆옆 동네에 개발이 좀 되니 도로망도 좋아지고 상권도 생겨서 차로 이동하면 병원이 가까워졌다는거 그게 좋네요.
그러면서 집은 시골이니 조상님이 입지 선정이 탁월하시긴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저기를 떠나기 전까지는 힘들었지만요.
수도권 근교 오래된 단독주택을 싸게 낙찰받거나 구입해서 리모델링해서 사시는 분들도 요즘은 제법 많습니다.
하지만 출퇴근은...
좋은 추억이었어 부동산 최고!
이런 엔딩인거죠?
나만 좋자고 갈 수는 없는 거죠.
저는 시골로 이사가면서 내성적이었던 성격이 더 내성적에 폐쇠적으로 되었습니다.
다행이 취미와 사회생활을 하면서 개선되어 지금은 (제 생각엔) 극히 평범한 사회의 톱니바퀴중 하나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가까운 시골, 또 경치 괜찮은 곳에 그런것을 만들어 이것저것 공부하거나, 악기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곳은 이미 비싸죠 ㅎㅎㅎ
지금에 와서는 본가에 그런 용도의 방 하나 따로 만드는게 나을듯한
그런데 잠시 살았던 아파트는 중앙난방이었는데 겨울에 바닥이 뜨거울정도긴 했었지요. ^^
마법의 주문
이제 처갓집 어르신께서 사셨던 부지에 철거하고 단독주택 완공이 보름 남았네요. 제가 직접 직영공사로 진행하는데 많이 배웠네요.. ^^
자재값이 많이 올라서, 땅값빼고 조적+철콘 기준 평당 650만원 들었네요... ㅜ.ㅜ
클라앙에서 자재비, 인건비 많이 올랐다는 댓글을 여러번 봤었는데 제가 예전에 들었던 것 보다 많이 올랐네요.
저는 악기를 취미로 하고 있다보니 공동주택에서 하기는 어려우니까....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단독주택을 지어서~~반지하 방을 방음 해서 통째로 피아노 방으로 만들고~~거기서 사람들 모여서 놀기도하고~~
이런 이야기를 종종 했었네요. ㅎㅎㅎ
가능한 도심에 있는, 그리고 도보로 상권이 어느정도는 형성된 단독주택이라면 참 좋을 것 같긴 합니다.
올려주신 사진은 와~~~일단 대지가 꽤 넓어보이네요. 주차공간과 함께 마당 공간이 상당히 나올 것 같은데요?
그리고 외딴곳도 아닌것 같고 좋아보입니다. 👍
설계 끝나고 시공업체 알아보니, 하우징 업체는 대부분 평당 800만원이어서 그냥 제가 공부 많이해서 직영공사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시골 주택으로 이사가면서 싫었던 가장 중요한 부분은
- 동네에 같이 놀 친구가 없다
- 슈퍼마켓조차 없다
이 2가지 였던 것 같습니다. 학교나 학원 친구들?? 그것과는 좀 다르지요 ㅎㅎㅎ
기억에 남는건 '동급생'뿐.......ㄷㄷㄷㄷ
대단지 신축 하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추운 집은 ㅋㅋ 저의랑 비슷하네요 심야전기 태양열 패널 있어야 그나마 살만 합니다
내용의 윗부분에도 썻지만 아파트 전에도 시골 주택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때는 동네 친구들이 좀 있었습니다.
댓글들을 보고 생각해보니 결국 최소한의 상권과 동네친구의 유무가 중요했던것 같습니다.
지금도 동네친구는 없네요 쩝.
서울은 시골이 부럽고
시골은 서울이 부럽고
저도 아파트 가기전 시골에서 살았던 기억은 좋았는데요
아파트 후 시골생활은....역시 편했다가 불편해진 것(대중교통, 상점)+동네에 친구가 없는것 이 매우 컷던 것 같습니다.
저는 배달을 좋아해서 시골생활은 못할 것 같아요.. 배달의민족VIP
그나마 본가는 주변이 개발되어서 이제 좀 살만해졌지요.
괜히 궁금해서 넘겨 짚어봅니다.
지금은 청원군이 청주시가 되어서 같은 청주네요.
그나마 학원가기 전 PC 방 가서 같이 게임했던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