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브룩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의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을 읽다가 생각난 김에 씁니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인해 해외저널 구독이 워낙 편리해져 포린어페어스지를 보는 이들이 꽤(?) 됩니다. 전공하지도 않은 저만 해도 흥미로운 아티클 올라오면 찾아서 읽어 보니까요. 포린어페어스는 미외교협회에서 발행하는데, 미외교협회는 한 때 미국의 '대외정책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곳'이라 평가받던 곳입니다. 키신저를 비롯해 아버지 부시 대통령 등, 미국 조야의 파워엘리트들 집합체입니다. 냉전시절, 조지 케넌의 그 유명한 대소봉쇄정책 시발점, '긴 전문Long Telegram'이 X라는 필명으로 게재된 곳이 바로 포린어페어스입니다. 헌팅턴의 그 유명한 '문명충돌론'이 처음 실린 곳도 포린어페어스예요. 아무튼,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격월간지의 위세는 대단해서, 미국을 포함한 각국의 정계 리더들의 기고문이 실리고 있죠.
그런데, 이런 잡지를 보는, 진짜로 보는 우리 정치인이 얼마나 될까요? 지금도 별로 없을 겁니다. 외통위 위원들도 안 봐요. 연구자, 학자들만 보는 거죠. 지금으로부터 약 30여년 전, 1994년에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한국의 정치인이 있으니 그가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입니다. 그 유명한 김대중-이광요의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 논쟁입니다. 이광요가 서구의 민주주의가 아시아 전통과 맞지 않다며, 아시아만의 문화가 있다며 자신의 독재와 정치를 정당화하는 인터뷰를 포린어페어스와 합니다. 이를 읽은 자연인이었던 '민주주의자 김대중'이 기고를 하게 된 것이죠. 그 유명한 '문화가 숙명인가? 아시아 반민주적 가치의 신화Is Culture Destiny? The Myth of Asia’s Anti-Democratic Values'라는 기고문입니다. 여기서 김대중 대통령은 이광요의 주장이 허위이며 잘못된 것임을 풍부하고 두터운 역사 지식을 들어 맹공을 퍼붓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글이 실린 그 호에, 폴 크루그먼의 유명한 '아시아 기적의 신화the myth of asia's miracles' 논문이 함께 실려 크게 화제가 됐죠. 특별하고 특이한 것은, 보통 정치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아니라 학자나 전문보좌진이 대필을 통해 논문을 발표하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자구 하나하나 자신이 직접 썼다는 사실이죠. 적절한 어휘를 찾느라 영어에 능통한 측근에게 물어보며 기고하셨다고 하죠.
김대중 대통령은 지적으로 무서우리만치 철저한 분이셨습니다. 왕성한 지식욕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셨죠. 다방면에 걸쳐서 말이죠. 저건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 그런 지성적인 분이, 게다가 그 지성을 실천하는 거대한 행동력, 추진력을 지닌 이가 우리의 대통령이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축복이었습니다. 복지국가를 설계한 김대중 대통령을 영원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