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 조봉암(1899~1959)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농림부장관
러시아 혁명 직후 탄생한 소련에 유학해 직접 코민테른 공작원이 되고 조선공산당 창당 멤버, 중국공산당 상하이지부 서기를 지낼 정도의 고위 공산주의자였으나
해방 후 현자타임이 와서 남로당을 비판하고 서유럽,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자로 전향
해방정국에서 김규식, 여운형 등 중도좌우파와 좌우합작운동도 추진함
처음부터 "지주가 다 해먹는 봉건제 사회를 벗어나 산업자본가와 노동자가 공존하는 산업자본주의로 가야한다"며 토지개혁 주장
의외로 이승만이 조봉암의 토지개혁론에 공감해 그를 농림부장관에 임명
조봉암은 북한이 추진한 무상몰수 무상분배 토지개혁 대신 유상매수 유상분배 방식의 개혁을 진행
그러나 만석꾼, 대지주들이 많았던 초대 국회의 유력 정당 한국민주당(한민당)과 크게 대립
조봉암은 농지개혁법 초안까지 국회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한민당의 압력을 받은 이승만에 의해 강제 경질
그후 토지개혁법은 과수원, 임야를 분배 대상에서 제외하고 농민들의 대출금 상환 기간과 조건도 더 빡쎄지는 등 내용이 크게 변해 통과됨
빈틈투성이 많은 농지개혁법이었으나 어쨌든 이 법안으로
농민들이 최소한 "나도 땅을 가진 자작농이다"라고 기뻐하며 남한 체제에 만족하고 충성하는 계기가 됨
이후 6.25 발발 직후 서울과 경기, 충청, 호남을 점령한 북한군은 북한식 무상몰수 무상분배 개혁을 강행했으나
조봉암의 토지개혁은 물론이고 미군정의 소작료 기준(33%)보다 훨씬 높은 세금을 강요
여기에 조금이라도 싫은 소리를 내는 사람은 반동으로 몰려 자아비판 or 인민재판 통해 공개처형
결국 조봉암의 농지개혁은 남한의 국민들이 북한을 지지하지 않게하는 결정적 계기가 됨
그래서 북한 점령지에서 젊은 남성들이 의용군 징집을 피해 도망치고 국군과 UN군에게 정보를 제공하며 협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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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만에 잘렸지만 농림부장관으로서 농지개혁 기틀을 만든 조봉암은
6.25 직전 벌어진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압승하고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됨
6.25 발발 직후 이승만이 "서울을 지키겠습니다" 구라치고 도망을 감
국회의장 신익희도 이승만이 도망간 사실을 알게되자 멘붕이 와서 그냥 그 자리에서 한강을 건너 도망
조봉암은 끝까지 남아 국회사무처직원들과 함께 공문서들 소각하고 이들 데리고 한강철교를 건너 피난(한강인도교는 28일 새벽 2시에 폭파, 한강철교는 30일 붕괴)
이승만은 조봉암을 보더니 "응? 전직 빨갱이여서 북한에 붙은줄 알았는데 왜 왔니?" 반응
이후 1952년 제2대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79만표로 2위
1956년 제3대 대선에 출마 216만표를 받음
조봉암은 사회민주주의를 외치며 진보당을 창당했으나
간첩으로 조작되어 4.19 1년 전인 1959년 7월 31일 사형당함.
10년전에야 무죄판결받고 묘비 세웠죠
만화 [오! 한강]의 작가 허영만 화백이 TV조선 단골 출연자가 된 해괴한 세상에 살고 있죠.
헐..이런 경향이 윤석열을 핥아대고 있으니 참 역사의 아이러니네요.
https://m.kin.naver.com/mobile/qna/detail.nhn?d1id=6&dirId=61403&docId=63282044&qb=7ZmN7KeE6riwIOy5nOydvA==&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
크.... 근대사에 삼성이 묻었다 하면..... 역시나네요.
적폐척결은 요원합니다.
홍진기 같은 민족 배신자 또한
그 이름을 기억해야 합니다.
까도 까도 나쁜짓 한 것이 계속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