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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공원

(긴 글) 임진왜란에서 조선의 대응 부족을 꼽으시는 것은 전부 잘못된 것입니다. 56

92
2021-05-20 02:35:25 58.♡.132.119
눈팅만삼년째

1. 조선은 정말 일본의 침략을 사전에 몰랐나?

당쟁하느라 잘못된 보고를 올려서 그걸 몰랐다~ 하는 걸 교과서로 배우다 보니까 그렇게 아시는 분들이 많은데, 아닙니다. 조선 정부는 일본이 침략을 준비할 꺼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왜란 직전 이순신의 직급이 어떻게 되는지 잘 아시는 분이 없을껍니다. 종 6품 현감이었습니다. 1589년에 종 6품입니다. 그런데 꼭대기에서 내려온 명령으로 1591년, 2년 만에 정 3품에 올라갑니다. 조선왕조 전체를 통틀어 이렇게 빠르게 승진한 사례는 손으로 꼽습니다. 놀랍게도 선조가 직접 대간(언론)들의 반대도 씹어가며 직접 꽂아준 겁니다. 그렇게 초고속 승진시켜서 내려보낸 곳은 다들 아시죠. 전라좌수영입니다. 그리고 이순신은 선조의 기대대로 부임하자 마자 강력한 실전 훈련을 실시했고, 덕분에 조선은 수십년 간의 내전으로 다져진 섬나라의 수군을 때려잡을 만큼 조련된 수군을 전장에 내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절차의 당위성이라는 행정원칙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았던 조선이 왜 이런 무리수를 뒀냐면, 그만큼 급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조선 정부는 이미 호남과 영남에 전시상태에 준하는 대비를 주문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섬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핵심 전력은 왜구 중심의 해군이 아닌 육군이 되리라는 점도 미리 예측했고, 거기에 맞춰 방어선이 될 주요 지역의 방어시설 정비를 지시합니다. 언급된 곳만 영천, 청도, 삼가, 대구, 성주, 부산, 동래, 진주, 안동, 상주 등등.. 경상도 전역을 망라합니다.


오죽하면 1592년 3월 3일, 그러니까 전쟁이 터지기 불과 몇 달 전에 경상도에서 이런 장계가 올라옵니다. "우리가 성을 열심히 쌓고 있는데.. 근데 도내 사대부들이 태클을 너무 많이 걸어요. 그래서 성이 잘 안쌓이네요" 지역 여론을 흔들게 만들 만큼 방어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2. 그런데 왜 초반에 깨졌나?

당시 조선이 전 국력을 동원해 일본의 침공을 대비하지 않았던 것은 맞습니다. 내부적인 문제도 많았고요. 보통 조선의 쇠퇴를 세도정치기로 꼽으시는 분들이 많은데 임진왜란 이전부터 구조적인 문제가 계속 터지고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학자들도 더러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여백이 너무 많이 필요하고, 당시 조선은 남방 문제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왠만한 역덕이 아닌 분들은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데, 선조 16년. 그러니까 1583년에 니탕개의 난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야전이 발생합니다. 약 3만여 명의 여진족 기병이 함경도 북부에서 침공을 가해왔는데, 이게 그때까지 조선의 핵심 방어 전략이었던 진관체제를 흔들 만큼... 이게 또 말이 많이 길어지겠네요. 이건 생략하고 아무튼 조선이 가까스로 여진족의 침략을 막아냅니다. 그 때 등장한 슈퍼스타가 바로 신립이었지요. 조선이 괜히 신립을 자국 내 최고의 에이스로 믿어온 게 아닙니다. 아무튼 조선은 건국 이래 항상 여진족을 비롯한 북방 국경이 최우선 안보 사항이었고, 당연히 이쪽에 각종 방위 자원들을 최우선 투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선이 얼마나 여진족들에게 많이 시달렸는지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왜란 중에 누르하치가 '너네 위험해보이는데 좀 도와줄까?' 하고 공개적으로 원군 제의를 보냅니다. 당시 조선은 왕이 도망을 가네 마네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별 검토도 안하고 바로 거절합니다. 문 열어줬다가 우리집 말아먹으면 어떡하려고요. 그만큼 제 1적국이었고, 그 위협조차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것이 조선의 국가적 역량이었습니다. 그러니 일본이 어그로를 미친듯이 끌고 있는걸 보면 보통 일은 아닌 것 같다. 하고 짐작을 해도 정말 방어를 하기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3. 그리고 일본의 위험성

어떤 연구자분이 하신 말씀이고 저도 동의하는 가정인데, 당시 일본이 전국시대를 끝내고 통일을 완수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통일은 킨키(서일본) 중심의 통합이었고 도호쿠 등 정리가 안된 곳들도 있어서 임진왜란 중에도 꾸준히 국내 단속을 해야했지요. 아무튼 일본의 통일 자체가 당시 조선인들에게는 머리로는 이해해도 실제로는 굉장히 와닿지 않았던 일이었을 껍니다. 그러니 일본이 쳐들어온다고? 라고 가정을 해도 기껏해야 삼포 왜란처럼 지역 차원의 문제를 먼저 떠올리지 국가적인 대규모 침공을 떠올리는게 오히려 상식 밖의 일입니다.


일본의 임진왜란은 전근대전쟁으로는 달리 사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대규모입니다. 20만이라는 병력이 현해탄을 건너와 침공을 가해온 역사는 1500년 한반도 역사 이래 단 한번도 없었던 일이고, 일본이 한반도에 다시 그만한 병력을 투사하는 일도 그로부터 근 300년이 지나고 청일전쟁이 되어야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도 본진 드랍 20만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단 한번도 함락되지 않었던 무적의 요새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며 동로마 제국을 반쯤 끝장낸 4차 십자군 원정에 투입된 병력은 십자군과 베네치아군을 모두 합쳐도 2만 명 안팍이 고작이었고, 그만한 규모의 육해군 복합 작전의 사례를 찾으려면 1915년에 있었던 갈리폴리 전투라고 불리는 처칠의 역대급 똥볼까진 가야 사례가 나옵니다. 말 나온김에 덧붙이면 처칠의 등신짓은 미군이 나중에 보고 잘 배웠습니다. 이거 없었으면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쉽게 안 됐을껍니다.


아무튼 간에, 그러니까 일본이 설령 조선을 공격한들 잘해야 수 천 ~ 수 만 단위의 국지전을 떠올리는게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고, 조선은 그 상식에 맞추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름의 충실한 준비를 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준비를 분명 했는데 상대가 20만을 드랍하는 미친짓을 한 거죠. 


그러니 1592년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조선의 위정자가 되어 일본이 20만을 끌고 조선을 침공한다!! 고 아무리 외쳐봐야 잘해야 이뭐병 소리나 듣고 끝났을껍니다. 도저히 당시 사람들이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니었고, 실제로 조선 정부에 들어간 첫 공식 보고도 왜적 400척 약 1만 명이었습니다. 보고하는 쪽도 듣는 쪽도 이게 합리적인 수치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겁니다. 임진왜란을 두고 전무후무의 침공을 당했다고 그걸 왜 모르니 으휴 바보야. 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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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56]
Fortuna
IP 1.♡.111.53
05-20 2021-05-20 02:39:52 / 수정일: 2021-05-20 02:40:02
·
역사에 if는 없지만 상륙을 일찍 견제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을까요?
삭제 되었습니다.
프레이얼스터
IP 118.♡.25.79
05-20 2021-05-20 03:01:23
·
@Fortuna님
이순신이 원균 자리에 있었으면 가능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왜군은 구루시마와 같은 해적 출신을 제외하면 대부분 육군이라 배를 다루는 기술이 부족해서 대마도에서 출발한 첫 일진이 부산에 당도하기 까지 거의 하루가 걸렸다고 합니다.
왜선 자체가 아주 일부인 아다케부네 외에는 거의 대부분 소형인 세키부네나 고바야부네인데다, 돛으로 오는 게 아니라 노를 저어 오는 거라 부산에 도착했을 때는 왜군 모두가 기진맥진한 상태였습니다.
이순신은 항상 척후를 보냈기 때문에 왜선이 당도한 걸 알았다면 바로 조선수군 최대세력인 경상우수영 함선을 이끌고 나가 모두 침몰시킬 수 있었습니다.
눈팅만삼년째
IP 58.♡.132.119
05-20 2021-05-20 03:04:48
·
@Fortuna님 비슷한 시기에 서양에서 벌어진 유명한 해전이 칼레 해전이라고 불리는, 다들 잘 아시는 스페인 함대의 무적 함대가 궤멸당한 그 해전이 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함대가 궤멸당한 건 맞지만, 영국 함대가 스페인 함대를 전투에서 격파한 건 아닙니다. 실제로 영국 해군은 칼레에 집결한 스페인 육군과의 합류를 막아야 한다는 첫 전략적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스페인 함대는 목표였던 칼레 항에 성공적으로 입항합니다.

그걸 영국 함대는 멀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제갈량이 제사라도 지낸 것처럼 극적으로 바람이 바뀌자 그걸 놓치지 않고 화공을 가했고, 화공을 피하기 위해 북쪽으로 도망가다가 지금도 항해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한 북해 북쪽 바다에서 태풍을 두 번이나 만나며 박살납니다. 스페인 함대의 손실 81척 중 78척은 칼레에서 스페인으로 영국을 빙 돌아 귀환하다가 만나 좌초됐다는게 그 해전의 결론이지요.

여기서 두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화포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던(정확히 말하면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대포들을 수입한) 영국과 스페인조차 함대전투로는 영 재미를 못 봤습니다. 그리고 함대는 비전투손실이 생각 이상으로 엄청나게 컸다는 겁니다.

현해탄은 칼레 해협보다 훨씬 더 큰 해협입니다. 설사 조선 수군이 통상적인 연안 경계 수준을 벗어나 현해탄을 직접 경계한다고 하더라도 대양 항해에 적합하지 않은 판옥선의 비전투 손실은 상당했을 것이고, 그 비전투 손실을 감당한다고 해도 일본 함대를 포착해 격멸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었을 껍니다. 그리고 선전포고를 하는 것도 아니고, 쟤네가 다른 동네에 놀러가는지 조선을 때리러 오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니 설령 현해탄 경계가 아니라 큐슈의 집결 원점을 타격하는 대담한 시나리오를 상정해도, 그 시나리오의 현실 가능성은 둘째치고 먼저 타격할 수 있는 명분도 없는게 문제입니다.

여담으로 선전포고라는 국제적 약속이 생긴 것도 일본 때문입니다. 얘들은 그런거 신경 안쓰고 때리는 전통의 나라니까요.
삭제 되었습니다.
kuktaemok
IP 58.♡.154.210
05-20 2021-05-20 03:28:16
·
@Fortuna님 임란 가상역덕들이 가장 좋아하는 테마죠. 더 큰 관포를 관할하고 더 큰 수군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의 선제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경상 좌수영이나 우수영에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제 사견입니다만 이정도 상식 밖의 침공규모임을 파악했다면 냉정하게 수군전력을 최대한 보존하며 서쪽으로 가는 길들을 틀어막는 방향을 택하셨을듯 합니다. 부산포에서 포격전 정도는 전개해 선봉군의 기선은 제압할 수 있었겠지만 상륙은 피할 수 없다고 보시고 피해 최소화 및 청야작전에 주력하셨을것 같습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thruter
IP 223.♡.190.14
05-20 2021-05-20 09:32:11 / 수정일: 2021-05-20 09:35:29
·
@Fortuna님 이순신 장군을 누구보다 흠모하고 존경합니다. 덕분에 이순신 장군 관련 도서를 제법 가지고 있고 수차례 읽었고요.

결과적으로 왜구가 부산에 상륙전에 이순신 장군은 해상에서 막을 기회가 수 차례 있었습니다.

첩보도 지속적으로 받고 있었고, 상륙 직전에도 정보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순신 장군이 출정을 포기한 건 크게 두 가지인데요.

첫째, 경상 수영 관할로 전라 수영에서 경상 수영 관내로 들어가기는 정치적 부담. 원균이 말이 통할 놈도 아니었음.

둘째, 조선 수군의 역량 불확실. 함대와 수군 준비는 충실히 했으나 이게 정말 왜구에게 먹힐지 확신이 없었음. 대규모 상륙선단을 저지하러 갔다가, 패하면 그 뒤가 없다는 리베르타 법칙에 의거한 망설임.

이순신 장군은 왜구의 해상 능력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첫 해전까지 상당 시간 망설이고 시간을 끕니다. 일단 쪽수와 함선의 규모 자체가 판옥선 대비 상당히 커서.

아무튼..이순신 장군이 개전 전에 소규모 해전이라도 있어서 왜구의.해상 능력을 알았다면 모든 걸 무릅쓰고 부산 앞바다에서 막으셨곘죠.
행복으로갑시다
IP 39.♡.18.201
05-20 2021-05-20 12:03:34
·
@Fortuna님 우수영 아니라 좌수영일겁니다. 그래야 일본쪽이고요. 우수영은 원균이 맏고 있던 곳으로 이순신장군님 바로 옆 진영입니다
행복으로갑시다
IP 39.♡.18.201
05-20 2021-05-20 12:09:30
·
@종니얼굴긴놈님 말씀하신 건 정유재란 시작 때 이야기고요 그 당시는 부산이 왜놈들 손아귀에 들어간 때라서 수군이 정박할 곳이 없었으니까요. . 글쓴분 말씀은 임진왜란 초기니까 만일 이순신장군께서 경상 좌수사였더라면 정말 충분히 완전히 다른 양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말씀을 난중일기에서도 하시고요.
thruter
IP 223.♡.188.188
05-20 2021-05-20 17:07:55
·
@행복으로갑시다님 출장 중이라 구체적 자료를 인용하기 힘들지만, 왜구의 부산 상륙 정보는 임진년에도 정확히 보고 받고 계셨습니다.
seno
IP 121.♡.119.57
05-20 2021-05-20 02:39:53 / 수정일: 2021-05-20 02:49:27
·
전반적으로 동의합니다.
이순신 뿐 아니라 다른 장수, 지역들의 기록을 봐도, 조선 조정은 분명히 일본의 침공을 알고 있었고, 전반적인 군비 강화에 성곽 수리하고 요새 만들고 할 거는 다 하고 있었습니다. 침공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 였을 뿐입니다.
서여림
IP 39.♡.28.117
05-20 2021-05-20 02:47:33 / 수정일: 2021-05-20 02:53:04
·
가정이지만 경상우수영 원균이 뛰어났다면 오륙도해전 한두번으로 끝낼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정발은 분투했고 경고파발 날렸지만 그 경고를 받은게 원균..
그리고 그는 최강 우수영 함대를 자침 시킵니다
아띠팡
IP 119.♡.208.26
05-20 2021-05-20 02:53:11
·
경상좌우수사들이 갑자기 가미가제로 변해서
조선수군을 격멸해버리고…
블루모카
IP 220.♡.40.115
05-20 2021-05-20 02:55:31 / 수정일: 2021-05-20 02:57:07
·
원균이 시작하자마자 자침 시킨 판옥선이 70척이라니 대비가 안 된 것은 아닌거 같습니다. 문제는 그타이밍에 원균 ... 포도 안 쏘고 자침 ...이순신 장군이 함선수가 56척이라니 원균이 작살낸게 얼마...

원균이 제정신 박힌 인간이었으면 임진왜란 자체가 그냥 소요로 끝났을 거 같에요
alienist
IP 94.♡.168.109
05-20 2021-05-20 02:57:48
·
통일된 일본이라는게 어느정도의 규모인지를 당시 조선으로서는 파악하기가 불가능했던 점도 있죠.
그 당시 지도만 봐도 일본 열도 자체를 현실보다 상당히 작게 그리고 있었으니.
일본이 20만으로 밀고들어온다고? 말이 됨? 이리 생각했단것도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여기에 히데요시가 이유는 모르겠지만(치매였다는 설이 있죠) 굉장히 무리해서 전쟁을 진행한것도 있었습니다.
웬만한 가신들이 도대체 그런 짓을 왜 하느냐고 뜯어말려도 요지부동.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도 반대하다가 '뒤지기 싫으면 가라' 소리듣고 바다를 건넜다죠...
얼룩배기황소
IP 121.♡.189.248
05-20 2021-05-20 03:35:51
·
스페인 칼레해전건은 저도 웃기더군요. 손실의 대부분이 좌초라는 견해라는게...

고대 전쟁 대부분은 기세에서 밀려서 후퇴하기 시작하면 그냥 압도적으로 밀려 버리더군요. 그래서 유인계가 그렇게 쏠쏠하나 싶습니다. 싹 쓸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솓구치잖아요.

광무제의 곤양대전도 보면 포위된 성을 탈출해서 모은게 불과 3천의 병력으로 43만을 정면으로 들이받아 깨버려서 이 한번의 승리로 신나라가 급속하게 무너지게 되었으니 기세라는게 참으로 중요한거 같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때는 왜국의 움직임이 심산찮아서 대비를 하긴 하는데 확신하지는 못했던거 같습니다. 전력적으로 전쟁대비해야하는데 먼가 어정쩡했고 이놈들이 얼마나 끌고 올까. 고려말 수준일까 이런 의심들이 있었을거 같습니다. 일본내 전국전쟁이 끝나서 어마어마한 병력이 남아돌았다는걸 당시에는 자세히 몰랐을거 같습니다. 통일진나라도 처음에 통일했을때 어마어마한 병력이 남았고 그건 수나라도 그랬는데 역시 좁은땅에 갇혀있으니 시야가 좁은거 같습니다.
믿음행복
IP 110.♡.30.210
05-20 2021-05-20 03:48:58 / 수정일: 2021-05-20 03:54:38
·
꾀 많은 사람들이 임진왜란을 선악 구로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님이 절대선 절대 악으로 원균과 선조를 두고 이야기 하지요
하지만 세상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요
선조가 급하게 승진시킨것은 그만큼 사람보는 눈썰미가 있다는 뜻이고 주변에 좋은 인재가 있다는것은
사람보는 눈하나는 정말 정확하다는거고 믿고 맞기는것 자체가 .. 왕으로서는능력이기는 한데... 문제는
질투가 심하고 정통성이 부족한점을 더욱 심화 시켰고요 집착도 심하고요
이순신 장군님은 실제로 무쌍을 찍는 장군 보다는 진짜 선비 죽어도 선조를 위한 진짜 나라와 왕에게 충성한 선비고요
이길 전투만 나가고 훈련 열심히 시키고 하는 행보관 + 관리를 잘하는 스타일이도 했고요

결정적으로 사람들이 왜구의 전력을 너무 낮게 평가 하는점이 .. 참 안타까워요 20만이
몇십년동안 내전을 끝내고 실전경험이 풍부한 군인이 상륙 했고요
당시 왜구 한명을 잡기 위헤서 7-8명이 팀을 이루어서 진을 짜고 상대 할정도로 검술이 뛰어 났던게
왜구의 전력인데 조총 하나만 .. 말하는게 좀 그렇습니다

세상은 복잡하고 어려운것인데 너무 단순화 시켜버리는것 같습니다
서울사는사람
IP 220.♡.60.194
05-20 2021-05-20 04:19:08 / 수정일: 2021-05-20 04:19:38
·
@믿음행복님 아래는 난중일기에 적힌 원균에 대한 내용입니다. 원균 절대악은 아니겠지만 출세지향적인 무능한 간신배의 전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선조는 그런 원균을 이순신 장군과 경쟁시키고 견제했구요. 일 제대로 할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진짜 환장하죠.


1593년 2월 28일, 원균이 어부들의 목을 찾고 있으니 황당하다.
3월 2일, 원균의 비리를 들으니 더 더욱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5월 14일, 원균이 함부로 말하고 사람을 속이니 모두 분개했다.
5월 21일, 원균이 거짓 공문으로 군사들을 속이니 정말 흉측하다.
5월 24일, 중국 화전을 원균이 혼자 쓰려 꾀를 내니 우습다.
5월 30일, 위급한 때에 원균 등이 계집을 배에 태우고 논다.
6월 10일, 원균이 흉계와 시기 가득 찬 편지를 보내왔다.
6월 11일, 원균이 술에 취해 정신이 없더라고 한다.
7월 21일, 원균이 흉측한 흉계를 냈다.
8월 2일, 원균이 나를 헐뜯어 망령된 말로 떠드니 어찌 관계하랴!
8월 6일, 원균은 걸핏하면 모순된 말을 하니 우습고도 우습다.
8월 7일, 원균은 항상 헛소문 내기를 좋아하니 믿을 수가 없다.
8월 19일, 원균은 음흉하고 하는 짓이 그럴 듯하게 남을 속인다.
8월 26일, 원균이 음흉하고도 도리에 어긋난 말을 하여 해괴했다.
8월 28일, 원균이 와서 음흉하고 간사한 말을 많이 내뱉었다.
8월 30일, 원균은 참으로 흉스럽다고 할 만하다.
9월 6일, 하루 종일 원균의 흉측스러운 일을 들었다.
1594년 1월 11일, 원균이 취해서 미친 말을 많이 했다. 우습다.
1월 19일, 원균이 남들이 마음에 둔 여자들과 몽땅 관계했다.
2월 18일, 원균이 심하게 취해서 활을 한두 번밖에 못 쏘았다.
3월 3일, 원균의 수군들이 우스운 일로 매를 맞았다고 한다..
3월 5일, 장수들이 이야기하는 중 원균이 오자 가버렸다.
3월 13일, 원균이 거짓으로 왜군 노릇한 놈을 목 잘라 바쳤다.
4월 12일, 원균이 미친 듯 날뛰니 모두들 무척 괴이쩍어 했다.
6월 4일, 임금의 꾸짖는 분부가 내려왔으니 원균 때문이다.
8월 30일, 원균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니, 천년의 한탄이다.
9월 4일, 활을 쏘았는데 원균이 아홉 푼을 져서 술에 취해 갔다.
10월 17일, 순무어사가 원균이 거짓말을 많이 한다고 이야기했다.
1595년 2월 20일, 원균의 악하고 못된 짓을 많이 들었다.
2월 27일, 원균이 너무도 무식한 것이 우습기도 하다.
1597년 5월 2일, 진흥국이 눈물을 흘리면서 원균의 일을 말했다.
5월 5일, 한산도에서 원균이 한 못된 짓을 많이 들었다.
5월 7일, 한산도에서 음흉한 자(원균)가 한 일을 많이 들었다.
5월 8일, 음흉한 원균이 편지 조문을 했다.
5월 11일, 소문들이 많이 들리는데 모두 흉물의 일이었다.
5월 20일, 체찰사(이원익)가 '흉물 탓에 나랏일이 걱정'이라 했다.
5월 23일, 체찰사가 원흉의 그릇된 일에 대해 분개했다.
5월 28일, 하동현감이 원균의 하는 짓이 엄청 미쳤다고 말했다.
6월 17일, 도원수(권율)가 원균의 거짓된 짓을 많이 말했다.
6월 19일, 도원수는 통제사(원균)의 일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6월 25일, 원균이 적은 한 놈도 못 잡고 먼저 두 장수를 잃었다.
7월 21일, 노량에 이르니, 사람들이 모두 울면서 말하되, "대장 원균이 적을 보고 먼저 뭍으로 달아났다. 여러 장수들도 힘써 뭍으로 가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78023
조각심장
IP 211.♡.125.183
05-20 2021-05-20 09:53:42
·
@믿음행복님 만약에는 없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선조는 진짜 성공한 왕이었을겁니다. 당시의 전반기 이이, 후반기 류성룡, 이항복으로 대표되는 엄척난 인재풀, 선조의 놀라운 정치력... 진짜 중흥기를 맞을뻔했죠. 그런데.... 선조가 소시오패스 CEO 의 전형이라서 나라보다는 왕조, 왕조보다는 자신의 권한을 유지하고 강화하는게 가장 중점사항이라서 문제된거입니다. 질투가 아니라 자기기준에 따른 정확한 판단이었습니다. 이순신건도 명의 개입으로 나라가 무너질 가능성이 제로가 된 상황에서 그렇지 않아도 분조를 이끌어서 무관들에게 인기가 높은 광해군이 이순신과 결합하게되면 자신의 권력이 무너질까봐 그런겁니다. 김덕령등 의병들을 제거한것도 마찬가지고요. 나라가 위태한적은 있어도 왕권이 위태한적은 없었죠.
블루모카
IP 118.♡.6.47
05-20 2021-05-20 09:54:13
·
@믿음행복님

선악이 아니고
결과와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원균 쉴드 불가

개인적으로 선한지 악한지의 영역이 아니죠
믿음행복
IP 211.♡.147.188
05-20 2021-05-20 10:08:15
·
@블루모카님 보면 원균을 옹호 한적 없어요 쉴드도 아니구요 구도를 그렇게 본다는 거에요 선조는 전쟁만 아니면 재평가가 필요 한거 같고요 만약에는 없지만요
이순신 장군이 너무 선에 있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기엔
오해 받을일을 하기도 했고요
천문공
IP 122.♡.56.205
05-20 2021-05-20 10:27:31
·
@믿음행복님 막연하게 원론적으로만 생각하면 또 그렇게 보실 수도 있는데요.
원균의 경우 ... 임진왜란 초기 그가 한 행위 전체가 아닌 한두건만 다시 떠올려 보세요. 오히려 이 사람은 알수록 더 문젭니다.
믿음행복
IP 222.♡.2.1
05-20 2021-05-20 10:38:18
·
@천문공님 전형적인 막장이죠 알고 있어요 난중일기에도 수차례 나오고요 옹호 하는게 아닙니다
우리의 시선이 그렇다는것입니다
선조는 재평가 할만한 것들에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원균은 그런거 없죠
그냥 선조랑 원균이 악에 아 두고 이야기 하는거 같아서요 우리의 역사의 시선이 대부분 선악인경우에 대해서 이야기 한것입니다
쿠리앙
IP 39.♡.46.129
05-20 2021-05-20 14:13:16
·
@서울사는사람님
원균이 그냥 무능력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보통 나쁜xx가 아니네요.
요즘의 국짐당 사람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네요.
원균은 절대악 소리 들을만 한 것 같습니다.
ANALOG
IP 203.♡.192.29
05-20 2021-05-20 03:56:35
·
이런글 너무 좋아요
DynamicOskar
IP 59.♡.13.203
05-20 2021-05-20 04:49:50
·
좋은 글 감사합니다.
/Vollago
입스가왔다
IP 223.♡.210.221
05-20 2021-05-20 05:02:36
·
하긴 20만이 쳐들어온다고 했다가 오히려고문당해 죽을듯하네요 미친놈이라고ㅎㅎ
서울사는사람
IP 220.♡.60.194
05-20 2021-05-20 05:32:07 / 수정일: 2021-05-20 05:33:15
·
고려시대에도 거란이 처들어온다는 첩보를 받고 광군사(光軍司)를 설치해 30만 광군을 편성, 병력을 모은 적이 있습니다.
적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제대로 대비하지 못해 백만명 이상의 백성들이 죽어간 책임은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걸까요?
본문과 같은 글의 논리로 이승만에게도 면죄부가 주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아미노산
IP 118.♡.24.247
05-20 2021-05-20 08:42:16 / 수정일: 2021-05-20 08:43:19
·
@cattail님 조선이 봉건사회와 비슷했다는 의견은 동의하기 힘드네요. 고려중순부터 중앙집권이 완료되었다고 봅니다. 동시대 유럽이나 일본보다더 빨랐습니다.조선 때는 더욱 강화되어 황해도 부터 남해까지 중앙의 군령과 세금. 모든 제도가 모두 완비 되어있었습니다. 원균의 무능과 초반 총력전 경험부족.등은 동의 합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scramble
IP 49.♡.197.164
05-20 2021-05-20 09:28:41
·
@서울사는사람님
언제 올 지 알수 없기 때문에 힘들어요.

조선은 농업사회입니다. 일손이 아무리 있어도 더 많은 일손이 필요한 농업사회에서 장정들을 대규모로 전쟁 대기시켜놓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에요. 특히나 봄여름가을에 바짝 농사지어서 혹독한 겨울을 버텨야 하는 한국에서는 더더욱 부담이 큽니다. 지금 코로나 19로 국가 전체 락다운하는 것 보다 부담이 더 크면 컸지 덜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전쟁대비 식량 비축도 문제에요. 옛날에는 지금같은 장기 식량 보관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대규모로 쌀 보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엄청난 손실분을 감수했었어야 합니다.
kissing
IP 118.♡.11.189
05-20 2021-05-20 07:01:42
·
20만 폭탄 드립을 단기간에 막을수 있는 나라가 그당시 있긴했을까요. 애초에 일본이 중국까지 진출하려고 작정하고 쳐들어온거라 진짜 쉽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바읏
IP 39.♡.230.231
05-20 2021-05-20 07:11:13
·
애초에 적 규모 예상 못하고 대비한 거 자체가 대비를 못한거 아닌가요? 적이 처들어온다하면 정보가 1순위인데 그것부터가 잘못된 거짆아요. 당시에도 많은 나라들이 그냥 저기 처들어갈래, 저기서 처들어온대 하고 헐레벌떡 싸우던 시대가 아니고 다들 정보전을 통해 살던 시댄데 20만을 준비하는 전쟁을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밀렸다? 병신 나라 맞죠. 사실상 그때 처망했어야 하는 나란데 그러지 못해 너무 안타까운 시기이기도 합니다. 죽었어야 하는 조선이 좀비처럼 사니 조선 후기가 너무 퇴보된 거 같아 안타까워요.
solskja
IP 110.♡.52.197
05-20 2021-05-20 07:30:09 / 수정일: 2021-05-20 07:31:06
·
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아시아와 유럽의 군대 규모를 비교하면서 아시아쪽은 그 전쟁의 동원규모를 예로 들며 유럽은 국지전투의 군대규모를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일본은 동원된 전군의 수를 20만으로 드셨는데, 유럽은 그 전역의 거의 늘 전쟁이라 그 전역의 군대 규모를 다 합하면 아시아의 규모와 비교할 만합니다.

항상 아시아는 전쟁 전체 동원력, 유럽은 그 전쟁의 무수한 전투 중 1개 전투 동원력을 비교하더라구요.

폰이라,
30년 전쟁기에서 프랑스가 직접 개입하기 전에도, 제국, 에스파냐, 동부 속국, 잉글랜드 ~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트란실바니아, 오스만까지 규모면 그리 작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지나도 제국 단독 군대가 호왈 10만입니다.
20만 대 2만 수준은 아니란 거죠.
내콩
IP 223.♡.210.209
05-20 2021-05-20 08:15:50
·
핵심이 되는 전투에 패하면 밀리는거죠. 그 길목에 원균같은자가 있었으니 그모양이 된거죠.
Ozzie
IP 218.♡.238.196
05-20 2021-05-20 08:25:03
·
삼포왜란보다는 을묘왜변이 비교가 더 적절할겁니다 삼포왜란은 침입보다는 왜관에서 폭동난 것이 이유니깐요
푸에르토
IP 70.♡.193.81
05-20 2021-05-20 08:29:49
·
아이 이런 토론 재미 지네요..
앞으로도 자주 올려주세요..
가늘고길게!
IP 118.♡.114.60
05-20 2021-05-20 08:54:24
·
재밌는 글 감사합니다.
꿀잼입니다.
카프릴
IP 210.♡.41.89
05-20 2021-05-20 09:00:16
·
좋은 글, 많이 배워갑니다. 재밌네요. 혹시 자주 가시는 커뮤니티나 카페 있으신가요? 가입해서 공부도 하고 글도 보고 싶네요. ^^
SPIKE>>
IP 118.♡.156.36
05-20 2021-05-20 09:11:25
·
원균이 문제였네요. 처음부터 끝까지
cromstar
IP 223.♡.175.195
05-20 2021-05-20 09:14:00
·
사실 선조의 준비과정, 전후수습 과정을 보면 꽤 잘한 왕이죠

전쟁중에 좀 그래서 그렇지…
옥천
IP 203.♡.179.63
05-20 2021-05-20 09:18:54
·
일리가 있네요. 침략할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 리버 한부대를 드랍할지는 몰랐다..ㅎㅎ
빵긋빵긋
IP 27.♡.251.162
05-20 2021-05-20 09:22:38
·
좋은 글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고맙습니다
케이군입니다
IP 220.♡.0.2
05-20 2021-05-20 09:23:28
·
아무리 국난 극복이 취미인 민족이라고 하지만, 많은 침공을 받았을 때의 상황을 보면 대부분 동일 하더군요.

침공전 적국에 대한 과소평가, 그리고 현재 나라 상황에 대한 과대평가.....

뭐 이건 우리나라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이죠.
도시
IP 221.♡.50.206
05-20 2021-05-20 09:25:27 / 수정일: 2021-05-20 09:27:19
·
사십대이고 역사책은 학창시절 본 게 전부인데 ...
몰랐다가 아니라 예측은 했으나 파벌싸움으로 제대로 준비 못했다로 배웠습니다.

당시 한양 지도층은 전쟁 대비 뿐만이 아니라 전쟁 중 발생한 짓거리도 그렇고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지 뱃속 챙기는 파벌만 따진 한심한 쓰레기가 많았던 것이 맞습니다. 싹다 참수해야 될 놈들이 많았죠.

우리나라 큰 문제고 무능해도 지 줄이라고 중용하던 건 박근혜 시절 장관만 봐도 현대까지 끔찍하게 이어지고 있죠. 정도란 것이 있고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가 상태가 심한 것은 맞습니다.
바로사채
IP 49.♡.166.71
05-20 2021-05-20 09:30:08
·
그저 원균 한놈만 타임머신 타고가서 미리 죽여버렸다면.. 이라는 if가 생각나네요
_머스탱_
IP 119.♡.250.142
05-20 2021-05-20 09:49:41
·
재밌어요. 더 이야기 해주세요
랜슬럿
IP 118.♡.110.74
05-20 2021-05-20 09:50:08
·
수만 단위였으면 경상도 수준에서 막았을 겁니다. 그 정도 준비는 되어 있었죠. 아무리 늦어도 충주에서 막는게 가능했을 걸로 추산되죠.
문제는 20만이었다는 점과 보병치고는 진군 속도가 매우 빨랐다는점, 그리고 식사량이 조선인의 1/3~1/5 정도 였다는 점이 초기 조선군의 오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죠.

거기다 파천이후 선조가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는 점이 치명적으로 작용했죠. 임진강에서 방어가 충분히 가능했었는데 아쉬운 일이죠.
폴라티
IP 183.♡.251.211
05-20 2021-05-20 09:52:45
·
흥미로운 글입니다. 스크랩 해놓고 나중에 정독하겠습니다.
Rothbart
IP 121.♡.171.213
05-20 2021-05-20 09:56:06 / 수정일: 2021-05-20 10:55:07
·
20만은 총 인원이고 가토와 고니시의 선발대만으로도 쭉 밀리지 않았나요? 병력수도 병력수지만 내전을 통해 단련된 전쟁기술 (총, 창병, 지휘관 시스템)에서도 압도된건 맞습니다. 그리고 첨언하자면 1453년오토만제국이 콘스탄티노플 함락전에 동원한 병력이 15만입니다. 여긴 전투 한번에 동원한 병력이 15만이라 좀 의미가 다르긴 합니다만.
arira
IP 222.♡.100.195
05-20 2021-05-20 10:09:08 / 수정일: 2021-05-20 10:17:17
·
이건 좀 본질을 호도하는 글 같네요.. 사료에 전쟁준비 기록이 있었다고해서 전쟁준비를 했는데 당했다라고 평가할수 있는거는 아닙니다. 진지, 성벽 정비 이런거는 정말 최소한의 준비일 뿐입니다.
즉, 당시 일본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으니 머라도 대비하자 이정도 수준일 뿐이었습니다.
이건 일본이 침입했을시 우리나라의 대응만봐도 전혀준비가 안되었구나 라는걸 알수있습니다.
일본이 침입한다는 전제하의 대응은 거의 전무했습니다.
그리고 그당시 제일 문제였던 제승방략체제에 대한 재검토라든가 일본의 침입을 전제로 잘 작동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훈련이 전무했습니다.
대규모 전쟁시 중앙에서 지휘자를 파견해서 그 중심으로 주변의 군들이 모여서 대항하는 아이디어는 참신합니다만 실제는 병력이 모이지를 못했죠.. 중앙에서 파견해서 현장 도착까지의 시간... 그 동안 구심점이 없는점 그래서 뿔뿔이 도망치기 빠빴다는 점 등등 이론만 좋았고 현장에서 쓸모는 빵점이었던 체제였습니다.
실제 제승방략체제는 임진왜란 후에 수정됩니다.
즉 실제 전쟁에서 제일 필요한 대비는 부족했고...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진지, 성벽정비, 수군의 함선 건조 등의 대비는 어느정도 이뤄졌습니다. 만약 전쟁을 전제로 준비했다면 일본이 구축한 정도의 왜성을 건축하는 움직임을 보였어야 합니다.
달이차오른다
IP 58.♡.139.46
05-20 2021-05-20 10:15:14
·
좋은 글, 감사합니다.
루인웨니
IP 61.♡.54.82
05-20 2021-05-20 10:21:13
·
흥미롭게 잘 읽고 갑니다.
천문공
IP 122.♡.56.205
05-20 2021-05-20 10:50:05 / 수정일: 2021-05-20 11:05:58
·
어떤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은 맞습니다만, 조선왕조의 문제로 볼 수 있겠습니다.

세종대왕에 대해 알면 알수록 대단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정말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분야에 정통한가 라는 부분 때문인데요.

이후 약 백몇십년 후에 임진왜란이 발생하였으므로 국가적 역량을 키웠더라면 하는 더 큰 전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세종 때 농업과 과학기술의 토대를 아주 튼튼하게 쌓았고, 발전안한 분야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후대 왕들이 특별한 능력이 없더라도 세종대왕의 뜻을 이어가기만 했어도 조선의 국력은 대단했으리라고 봅니다. ( 과학과 농업의 발달로 인해 인구도 많이 늘었을 테구요)

그리고 집에 불이나면 대비를 얼마나 잘했는가와 더불어 어떻게 진화 하는가도 중요하죠.

선조의 품성에 대해서는 그가 한 다수의 행위로 보아 그리 인품이 넉넉하다거나 품성이 훌륭하다거나 전략에 밝은 것도 아닙니다.

왜란 발발 이후의 한 행위 중에 왕으로서 인정받을 만한 무언가가 없었어요.

명예도 없었고, 책임도 없었습니다. 책임 없는 군림의 전형이죠. 백성을 섬기는 왕이 아닌 섬김을 받는 왕으로서 행동했고, 그 때문에 백성을 버렸습니다.

선조가 재평가 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작은 부분이라고 봅니다.

20만 대군까지는 생각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것도 변명입니다. 왜냐면 그 당시에 그럴줄은 몰랐다....그런 인식의 한계가 있었다..라는 것 자체가 변명입니다.

일본이 하루이틀 싸운 것도 아니고, 히데요시가 통일하기 전까지 무엇을 했을까요. 잘 모르는 와중에 나름 준비는 했다 라는 것이라고 평가하기 보다는 잘 모르는 그 자체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는 선조 개인에게 한정될 문제는 아니긴 합니다만, 국정의 책임자가 선조였고, 그가 집권한지 꽤 세월이 지났으니 결국 주 책임자는 선조입니다.

또한 준비를 제대로 했는가도 문젭니다. 당시 제반 여건이 열악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조건이 허락하는 하에서 최선의 대비였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주어진 여건하에서조차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오랜 평화로 나태해진 조선이란 나라 자체의 한계였겠지만 그걸 선조 개인의 책임으로만 볼 수 없겠지만 여튼 가진 역량내에서츼 최선의 대비는 커녕 100점 만점에 30점도 못줄 정도로 형편 없는 대비였습니다. 겉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부실한 것들이 엄청 많았고요. 내용상의 부실이 컸습니다.

세종대왕이 참 절묘한 시기의 천재였다면, 그 이후 선조가 집권하던 시기까지 백몇십년간 세계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일본 또한 그러합니다. 격동의 시기에 잠자고 있었던 왕조의 한계이며, 그 책임자가 선조입니다.

조선 초기의 문화는 이후와 상당히 다릅니다. 점점 안좋게 변해갔다는 것이고요. 뛰어난 인물들이 있었으나 그 거대한 흐름에 묻혔습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이전에 이미 일본의 인구수가 조선을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큰 차이는 아니었어요.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이 상징하는 바가 큽니다.

국가가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 되어 있기만 해도 수많은 뛰어난 인재들의 활약이 그 큰 흐름안에 갇히게 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조선은 세종 이후로 보다 발전한 것 같지만 실은 방향성에서 틀렸기 때문에 아무리 발전해봐야 쓸모 없는 발전...오히려 퇴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력은 백성의 삶의 안정이고, 그것을 위해 군사력의 바탕이 되는 병법, 기술, 및 제반 기술..즉 문명의 발달이 이뤄져야 하는데, 지극히 비효율적 체제였음에도 정말 뛰어난 분들이 각고의 노력과 업적을 남겼습니다. 허나 큰 틀이 제자리였거나 뒤로 갔습니다.

즉, 선조를 포함한 선대 왕들이 조선의 국력을 키우지 못했습니다. 약했다는 말입니다.

임진왜란 백년전만해도 일본의 인구가 조선과 비슷했던 것으로 압니다. 전쟁을 막 끝내고 난 일본이 침공을 할 정도의 국력을 갖고 있었는데, 조선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김범뽕
IP 203.♡.217.231
05-20 2021-05-20 11:17:53
·
누르하치는 명+몽골+조선 연합이 거병하지 않는 정책을 썼을것 같습니다. 한놈이라도 끌어들여야 요동으로 뻗을 수 있었을테니 말입니다.
실제로 1600년 초(자세한 연도가 기억이 안나서...) 만주실록에 이렇게 적혀있었죠. 명,몽,조 연합군이 누르하치를 공격했었을때 강홍립이 편지를 보내어 우리가 파병한것은 대명군이 조선을 도와서 거병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미 니가 조선군 포로들은 다 죽였잖느냐? 나머지는 돌려달라...

전쟁이 끝나고 강홍립의 편지에 리플을달았는데
맞다. 조선은 명이 항왜원조를 했기에 그랬을뿐이다. 라며 유화책을 썼지요. 쥬신ism 주의자일수도 있겠;;;
머스타드
IP 210.♡.41.89
05-20 2021-05-20 11:19:38
·
20만 병력드랍을 예상 못했으니 결국 대비를 못한거 맞지 않냐고 말하기는 쉬운데, 그게 가능한 일이었냐를 따지면 글쎄요... 도요토미가 병력 다 털어서 조선에 폭탄드랍 하자고 결정한건 일본 내에서도 굉장히 당황스럽게 받아들여졌던 일이죠. 그만큼 터무니없는 사건이었다는겁니다. 역사를 결과론적으로 얘기하면 말은 참 쉽죠. 나쁜 상황에 대해서는 잘못한 근거만 찾고, 좋은 상황에 대해서는 잘한 근거만 찾으면 되니까요.
설탕커피
IP 59.♡.182.68
05-20 2021-05-20 11:29:25
·
글 감사합니다! 재밌고 흥미롭게 읽었네요^^
불토끼
IP 122.♡.68.230
05-21 2021-05-21 02:08:14
·
여기서 중요한거는 원균도 밀어줘서 계급이 급등했죠

선조입장에서는 영웅 신립을 중앙에 두고 양당에서 추천하는 인재를 기용하여 해상을 막으면
설사 상륙을 하더라도 약해진 적을 신립이 능이 해치울거라 생각했을거 같아요

잘은 모르지만 경상도 병권을 가지고 있던 자들도 나름 인지도가 있던 사람들로 배치를 했겠죠
요
리브팜
IP 116.♡.2.49
05-26 2021-05-26 14:17:12
·
일단 스크랩해서 천천히 읽어봐야겠습니다.
잘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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