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선거로 드러난 2030남성 민심 변화는 리버테리언/자유지상주의적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논의의 시작점으로 2019년 청와대 현안보고서를 인용하자면 20대의 성향은 '경제적 생존권과 실리주의를 우선시'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리버테리언의 근본적 성향은 개인의 인권의 최선, 최대로 보장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신체의 자유와 재산권이 포함됩니다. 보고서에서 언급하는 평창올림픽 단일팀 이슈는 개인의 의사결정권, 역차별의 경우 기회의 평등, 정치적 유동성의 경우 다른 이념에 대한 무관심 같은 리버테리언적 성향으로 해석 가능합니다. 대한민국 2030대들은 마음속에 어느정도 리버테리언을 품고 산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리버테리언 성향이 반드시 진보와 배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 리버럴과는 상극인 부분이 있습니다. 리버럴은 공공 또는 해당 개인의 이익을 위해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계도하는 데 긍정적입니다. 의료보험, 의무교육, 소상공인보호, 도시개발제한, 지역균형발전 등의 리버럴 어젠다가 그 예로 공공의 이익과 학생의 미래 기회를 위해 재산권과 개인의 이익추구, 의사결정권을 어느정도 제한하고 있습니다. 클리앙에서는 더민주를 보수로 분류하는 경우도 많지만 민주당도 큰 범위에서 리버럴 스펙트럼을 공유합니다. 의료 규제, 부동산 규제, 노인복지 강화 등이 그 예입니다.
반면에 리버테리언은 기본권에 대한 모든 규제에 반대하기 때문에 이런 규제들을 불필요한 돈낭비라고 생각하고 리버럴과 충돌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은 침해당한 기본권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나 적절한 정당화 과정들로 어느정도 타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리버테리언의 절차적 공정성 추구도 이 맥락에 부합합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에서는 이런 갈등들이 봉합되지 않은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국방의 의무의 경우는 2030대 리버테리언들에게 가장 크고 가까이 와닫는 기본권 침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적절한 보상은 존재하지 않고 취업경쟁이 심화될수록 개인의 손해는 더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물론 이전부터 있어온 상황이고 국가방위라는 숭고한 정당성이 있지만 이것은 남성들의 희생이 존중받을 때에만 유효합니다. 따라서 국방의 의무에 대한 모욕이나 작은 후퇴도 역린을 건드린 것과 같습니다.
두번째로 페미이슈입니다. 이슈의 성격에 따라 크게 둘로 분류하자면 예산과 재판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둘에 대한 불만은 근본적으로 재산권의 침해,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른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침해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적절한 보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리버테리언은 정당한 절차 없이 페미니즘 정책이 입안되는 점을 지적할 것입니다. 페미 이슈는 온라인과 시위를 통해 공론화 된 것은 사실이나 정책으로 이어지는 데 한번도 정치적, 정당적 정당화 과정(투표)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이 지금까지 페미 이슈를 정면돌파하기보다는 당리당략에 따라 내부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점도 마이너스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끝맺으면서 민주당이 2030 리버테리언들의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리버럴과 리버테리언의 성향갈등을 타협을 통해 봉합해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보다 공정성(사회적뿐만이 아니라 시장적으로)의 꼼꼼한 추구, 개인의 희생에 대한 적합한(안된다면 최소한의) 보상, 쟁점이 되고 있는 어젠다를 보류하거나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거쳐 진행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인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쓴 '이론적인' 글이므로 현장의 생각이나 쟁점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 점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보모국가: 아들! 게임은 한시간만 하라고 했지!
청년층: 아 알아서 할게요! 게임 아니라 인터넷이거든요!
그래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에 젊은세대들이 분노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거겠지요.
말씀하신것처럼 공정성에서 리버럴리즘과 공통 분모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맞습니다. 입시, 취업 이슈에 대한 민감함의 근거도 공정성이겠죠. 당장 입시, 취업을 고칠 수 없더라도 노사, 기업의 공정성을 재고하고 청년층에게 어필하는 것도 여론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본인들이 본인들의 노력으로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성취해냈다고 생각하는데, 그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한 플랫폼은 사회가 정부가 만들어놓은 거잖아요.
제가 모르는 사이에 리버테리안의 정의가 바뀌었나요?
그래서 일본처럼 아직도 전체주의가 만연한 곳을 x밥으로 보는거죠.
하지만 지젝이 지적했듯 전체주의가 낙인으로 작동하는 것도 사실이죠,
오히려 2030의 캐주얼한 관념이 정치에 대한 접근 자체를 막고 나아가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신자유주의에 복무하게 함으로써 악영향을 미친다는게 갈수록 명확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