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후추는 값비싼 향신료의 대명사 였습니다.
유럽 귀족들과 중국이 후추에 열광했죠 대항해시대가 시작된것도 값비싼 향신료 그중에서 후추를
좀더 싼가격에 구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후추 원산지는 인도 남부지방입니다.
우선 한국에서는 일제시대때부터 많이 유통되었지만 이때도 비쌌습니다. 대중적으로
유통이 된건 60~70년대 후반부터 입니다. 한반도에 유입된건 기원전이라고 하는데
삼국시대 부터 귀족들로부터 각광을 받았습니다.
한반도 왕조국가에서는 후추를 호초 라고 불려습니다. 우리는 일본이나 오키나와 로부터 후추를 수입했습니다.
성종때는 성종이 후추씨를 구하기 위해서 엄청 노력했죠 일본이 팔만대장경을 구하고 싶다고 하자
그럼 후추씨를 가져와라 그럼 팔만대장경 책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도 후추씨를 구하는데에 실패
성족 실록에만 기록된게 40번이 넘는다고 합니다.
원산지에서는 절대로 후추씨를 유출하지 않아서 유럽이든 중국이든 후추씨를 구하지 못했죠
삶은 상태이거나 가루상태에서 유통했다고 합니다.
성종이 후추씨를 구하려고 하는 이유는 후추를 생산해서 중국에 팔려고 했었습니다.
당시 조선에서는 일본을 통해서 구한 후추를 중국에 값비싸게 팔았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원산지 보다 40~50배 비싸게 팔렸습니다. 고려나 조선도 마찬가지였죠
조선시대때 기록을 보면 후추 한알 가격이 진주 한알 가격이랑 비슷했다고 합니다.
얼마전 드라마에서도 후추 가격은 같은 무게의 금이랑 비슷했다고 했는데 이건 과장이 아니었던 거죠.
중세 유럽도 마찬가지 입니다. 유럽은 이슬람 상인을 통해서 수입했는데 이슬람 상인들이 향신료 교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척할수 있었던 것은 말도 안되는 가격에 유럽에 팔았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는 1파운드 (550g ) 후추 면 여자 노예 2명이랑 바꾼다고 할정도 였습니다.
중세 이탈리아에서도 후추 한상자는 170 듀카트 현재 금시세로 4400만원에 거래됐습니다.
유럽과 이슬람이 십자군 전쟁으로 사이가 안좋을때는 후추를 너무 비싸게 팔아서 200g 정도에 에
여자 노예 10명이랑 바꿨다는 기록도 있죠.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
유럽 귀족과 왕족은 고기에 후추를 엄청 뿌려 먹었습니다 값비싼 후추를 누가 더 많이 뿌려 먹는가가
부러움과 과시의 대상이었습니다. 기록으로 봐도 요즘 기준으로 엄청나게 뿌려 먹었죠
조선시대에도 왕족 뿐만 아니라 양반들 사이에서도 후추 붐이 일어나서 수입량이 엄청 났습니다.
성종에서 중종때는 후추 구입가격 때문에 국가 재정이 휘청거릴 정도로 교역이 많아서 후추 무역에 대해서 제재를 할정도였죠
이후 17세기 정도부터 후추씨를 어렵게 구해
아프리카나 열대기후 지방에서 후추를 생산해
좀더 싼가격에 후추를 구할수 있었죠
지금도 향신료 교역량의 70 프로는 인도에서
생산됩니다.
좋지 못했죠 그러나 귀족과 왕족들은 서민들에 비해 신선한 고기를 먹었죠
조선시대 소고기 먹는 기준이 현재랑 비교하면 엄청 낮았다고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당시 보관된 소고기 먹지도 못했을거라고 하죠 노린내가 장난 아니었다고 합니다.
알려져 있죠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만든 금화 맞습니다
후추만 보면 현재는 베트남이 생산량 넘사벽 1위입니다.
전체 향신료 시장에서 70% 정도 된다는 거죠
역시 향신료라고 따로 언급하신게 전체 향신료를 언급한건가 했던 제 예상이 맞았군요.
그래도 후추 이야기가 쭉 나오다가 나온 수치가 후추인가 해서 올린 댓글이었습니다. ^^
흥미진진한 이야기 잘 봤습니다.
비싸니까 과시의 대상으로 변질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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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의 소비가 매우 광범위한 사회계층으로까지 확산되었음을 보여주는 기록들이 꽤 남아 있다. 14세기 몽토방 상인 보니스 형제의 장부에는 장인과 농부들이 이들로부터 후추를 구입했다는 기록이 나와있다. 15세기 한 의학자는 자신의 책에서 후추는 시골뜨기들에게나 어울리는 양념이라고 기록했다.
15세기 초 프랑스 시인 데샹의 시에따르면 후추는 야채와 마찬가지로 빈궁함을 보여주는 증표였다. 그는 “가난한 방랑자로서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시에서 후추, 감자, 상한 배추로 만든 죽이나 먹어야 한다고 방랑자의 신세를 한탄했다.
거지와 다름없었던 학생들도 축일과 같은 특별한 날에는 후추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부르고뉴 공작의 감옥에 감금된 죄수들도 일 년에 1파운드 정도의 후추를 먹을 수 있었다.
13세기 이래로 15세기까지 지중해 향신료 무역을 독점한 베네치아에서는 120kg 단위로 후추를 팔았는데, 50~60두카트 정도가 일상적인 가격이었고 공급 폭락으로 가격이 올라도 100두카트 정도였다.
마진율도 그다지 높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4세기 말 알렉산드리아 현지의 후추 가격은 자루 당 75디나르였는데,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도량형과 화폐 가치를 고려하면 베네치아 상인이 얻는 마진률은 50~100% 정도였다. 운임비용 등을 고려하면 운이 안 좋은 상인은 마진율이 35% 정도까지 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향신료의 경우는 몰라도 후추의 소비는 꽤 일반화되었음이 분명하다. 요리책은 중세 유럽인들이 요리에 향신료를 지나칠 정도로 애용했었음을 알려준다. 요리책에는 음식에 향신료가 들어가야만 한다는 충고가 자주 등장한다.
이 현상에 관하여 노리우는 14세기 프랑스 요리에서 후추는 고대부터 누려왔던 인기를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현상은 후추의 소비가 점차 확대되어 더 이상 상층 귀족들에게는 사치품으로서의 매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008년 엠비씨 다큐에 나온 짤방이죠
후추는 유럽에서 이슬람 상인 베네치아 상인을 통해서 유럽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후추가 원래 가격이 비쌌고 폭락을 했을때도 있었다고 하지만 오스만 제국이 들어선후
가격이 더 올랐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