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 출가외인인 여자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면 집안의 자산이 소멸될 거라는 인식 때문일 겁니다.
나옹
IP 39.♡.37.119
02-25
2021-02-25 19: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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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님
원래의 시스템을 바꿔야 할 위기상황때문이었을까요. 예를 들면 경신 대기근?
kmaster
IP 118.♡.24.209
02-25
2021-02-25 19: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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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님 부의 되물림을 위해서라 봅니다 재산을 균등하게 분배 한다면 세대가 지날수록 그 집안의 부와 권력은 약화될 가능성이 크지요 하지만 가문의 재산을 장자 한명에게 집중한다면 집중된 부를 바탕으로 더 많은 부를 축적 하기 쉬워집니다 또한 부가 장자에게 집중되니 가문내에서의 서열과 지배구조가 탄탄해지죠 그 집중된 부와 위계구조를 바탕으로 집안의 부와 권력은 더 강해집니다
@나옹님 기본적으로 조선 초기에는 상속법 별개로 제자녀윤회봉사라고해서 자녀들끼리 제사를 돌아가며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근데 조선후기에 가면 풍양조씨니 안동김씨니 하며 향촌사회 및 가문중시 풍습이 급격하게 발달하게되는데 이시기에 자연스럽게 제사승계도 위의 제자녀윤회봉사 에서 종손이라해서 가문의 적자가 직접 주관하게됩니다. 말하자면 '근본' 이라는걸 매우 중요시하게 되었기때문에 자연스럽게 장남 장손에게 대물림이 되어갔다고 봅니다
달빛과산빛
IP 223.♡.138.75
02-25
2021-02-25 19: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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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님 학교 다닐때 들었었는데, 임진왜란이후 경제가 무너지자 남은 재산 또는 적은 재산을 부모 봉양과 제사를 지내야 하는 장자에게 집중된 결과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정된 자원을 선택적으로 집중한거죠.
나옹
IP 39.♡.37.119
02-25
2021-02-25 20:2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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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pt님
가문을 키우기 위한 욕심 때문에 일종의 부의 양극화가 일어난 거군요.
이리온jr
IP 211.♡.117.37
02-25
2021-02-25 22: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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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과산빛님 굉장히 설득력 있네요.. 조선 중기 이후 임진왜란 등으로 먹고살기 힘들어져서..
홉스
IP 142.♡.22.13
02-25
2021-02-25 22: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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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님 생존하려다보니 집중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했죠. 인구변화도 컸고 기술의 도입을 결정적으로 봅니다. 모내기는 일시에 노동력을 집중해야 해서 조직화가 일어나고 대농 위주로 편성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소규모 자작농은 혼자서 농사짓기가 만만치 않게 되죠. 호남과 영남을 비교해보면 평야갸 적은 영남이 자작농비율이 높게 나타납니다.
@kmaster님 제가 대학교에서 관련 수업을 들었을때(한국사 속의 가족제도) 조선시대 이황이 도입한 걸로 되어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이황이 모계 중심 사회에서 부계중심으로 유교질서를 구축하고 이를 위해서 아버지, 할아버지의 묘자리를 찾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임진왜란이 지난 후에 조선시대에 강해집니다. 이는 전쟁과 함께 권력관계가 변화함을 뜻합니다. 그결과 이황은 조선 성리학의 뿌리가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클대사
IP 175.♡.0.10
02-26
2021-02-26 00: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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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님 양란 이후 장남 중심 제사와 상속이 양반들 생활풍속으로 뿌리내립니다. 양란으로 양반지배층의 권위 하락과 지배체제 동요가 본격화되자 유교 질서를 강화하여 성리학적 양반지배체제를 계속 유지하려 했던 것이지요.
근데 그 상속시스템은 무슨 의도로 도입이 된 거였을지 궁금하네요.
제사 + 출가외인인 여자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면 집안의 자산이 소멸될 거라는 인식 때문일 겁니다.
원래의 시스템을 바꿔야 할 위기상황때문이었을까요. 예를 들면 경신 대기근?
재산을 균등하게 분배 한다면 세대가 지날수록 그 집안의 부와 권력은 약화될 가능성이 크지요
하지만 가문의 재산을 장자 한명에게 집중한다면
집중된 부를 바탕으로 더 많은 부를 축적 하기 쉬워집니다
또한 부가 장자에게 집중되니 가문내에서의 서열과 지배구조가 탄탄해지죠
그 집중된 부와 위계구조를 바탕으로 집안의 부와 권력은 더 강해집니다
가문을 키우기 위한 욕심 때문에 일종의 부의 양극화가 일어난 거군요.
그리고 이런 흐름은 임진왜란이 지난 후에 조선시대에 강해집니다. 이는 전쟁과 함께 권력관계가 변화함을 뜻합니다. 그결과 이황은 조선 성리학의 뿌리가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입장이 바뀌니까 그 일본인이 대충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거 같네요ㅋㅋㅋ
열심히 찾아보니 이런 종류였던거 같습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2408027CLIEN
이 짤이 올라왔던 글의 댓글에 둘리랑 손오공이 언급된걸 보니 제가 본게 이글이 맞는거 같기도 하구요;;
서양에서도 장자 상속은 흔한 것이기도 하고요.
상속을 균등하게 나누면 몇 대가 지나면 재산이 없어지게 되는 결과가 생깁니다.
관점의 차이가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