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게도 고 노무현 대통령을 믿지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국회의원을 하던 시절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의 3당 합당이 이루어졌고 부산에서는 노무현 의원과 김정길 의원이 합당에 합류하지 않았습니다.
재야에서는 그 분들을 모셔다가 3당 합당 반대를 위한 민중대회를 개최했고 그 당시 재야단체의 활동가로 일하고 있었던 저는 부산대에서 열리는 3당합당 규탄대회에 그 분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 당시 보좌관을 하고 있던 분이 선배였고 연설이 끝나기까지 연단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설이 끝나고 난 뒤에 그 분은 저에게 거절 의사를 밝히셨습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운동권의 집회에 가야 하느냐? 운동권이 나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냐? 국회의원 시켜준게 운동권이냐 김영삼 총재이지.
사실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알겠다라고 말하며 돌아서는 순간 저를 잡으며 보좌관 선배가 말하더군요.
노무현은 우리가 생각하는 운동권이 아니라 그냥 정치인으로 봐 달라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더군요. 그리고 며칠 뒤 사무실로 비서관이 찾아왔습니다.
사과를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저와 사무실 식구들은 그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랜 시간 바보의 길을 묵묵히 걸었지만 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그의 진정성에 늘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먹고 사는 것에 영혼을 팔아버리고 그저 사는 것에 연연하면서 불의에 눈감고 변명으로 부역하다가 그 분의 죽음을 맞았습니다.
정말 뭐라고 할 수 있는 말이 없더군요.
두려운 시간이었습니다. 운동을 포기하고 그 젊은 날의 신념마저도 지키지 못했던 마흔의 시간은 그야말로 부끄럽고 참담한 시간이었습니다.
배낭 하나를 메고 그저 몇 년간 세상을 떠돌았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세상에 대한 헌신은 너무 멀었고 몸과 마음은 지치고 더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티벳에서 네팔에서 캄보디아와 베트남, 부탄을 돌아다니며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지금부터 해야 하는지 눈물을 흘렸습니다.
쉰의 중반을 훨씬 넘기고서 그 분의 묘소를 찾았습니다.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운동이라는 것의 출발과 끝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소리쳤음에도 그러지 못했고 오히려 다른 이를 비난하는데 익숙했던 것이 떠올라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이제 예순의 나이에 제가 일하는 도서관 현관문에 그분의 얼굴이 있는 팜플렛을 붙여 놓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이 사람사는 세상의 참 뜻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꼭 이런 세상이 오기를 바라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그저 존경스럽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진으로 인한 항의는 없나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물론 그시대가 다 그랬지만, 그시대를 통과하면서 나이든 정규직 노동조합원들이 계약직 노동자 짓밟는 것 보고. 인생을 살아가는 측면에서 운동권 인간들 별꺼 아니네 하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노의원님도 재야운동권을 믿지 못해서 동참 안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