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신지요?
기억을 되돌려, 19살을 넘기던 그 날.
졸업식을 앞 둔 고등학생은 채널을 돌리던 TV 뉴스에서 떠들던 IMF라는 의미도 모를 단어가 순식간에 거대한 괴물이 되어 눈앞에서 꿈을 파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매일 웃고 공부하고 떠들던 친구가 연락도 없이 이사해버렸고, 대학이라는 꿈으로 가득한 신기루는 등록금 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죠.
도망치듯 입대를 하고, 2년하고 2개월. 대통령이 바뀌고 사회에 내 던져진 나에게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더랍니다.
광화문을 떠돌며, 방황했던 시간을 지나며 교보에서 영풍으로 책을 보며 시간을 떼우다 저녁 느즈막히 집에가는 버스를 타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지금까지 나에겐 주어진 가이드라인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선 옷 입는 방법부터 등교를 하고,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땀흘리고 웃고 싸우는 법을 배웠습니다. 부끄럽지만 몰래 숨어 담배를 피워보기도 했고, 술을 마신적도 있었죠.
군대에 가서는 아무런 판단 없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단단해졌고, 무기력하게 복종하는 법과 동년의 사람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끈끈함도 배웠더랬죠.
그렇게 전역증과 함께 사회에 던져진 나에게 어학원, 유학원으로 가득해진 종로의 거리는 숨막히는 어떤 감옥과 같았습니다.
그 즈음 아는 분의 소개로 여의도 증권가에서 인턴을 시작했습니다. 출근은 5시, 퇴근은 11시쯤 이었죠. 내가 하는 일은 중요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도 무언가를 하고 있는거라고 자위할 따름이었죠.
나의 20대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만 나는 표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나는 결심했습니다.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당시에 나를 움직이게 하던 힘은 프랑스 문화원에서 상영하던 프랑스 영화였습니다. 자막도 없는 흑백의 예술영화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목도 배우도 모르는 영화에서 주인공은 훌쩍, 모든 것을 버리고 알제리로 향합니다. 부두에서의 노동자로, 희미한 스모그가 낀 파리가 아닌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알제리의 바닷가에서 그는 땀을 흘리고 술을 마시고 웃으며 잠이 듭니다.
나는 모든 것을 버리기로 합니다. 사람들은 양복을 입고 산에 올랐고, 누군가는 넥타이로 목을 졸랐다는 뉴스가 매일 이어졌을 때 였습니다.
나는 내가 맨 넥타이가 목을 조르는 상상을 하고 또 했습니다. 통장에 차곡이 모은 돈으로 나는 싱가폴로 향했습니다.
방을 구하고, 일자리를 찾고 무엇이든 움직이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도 있을 상황에서 머리와 팔과 다리가 아플정도로 움직였습니다.
일자리를 구하고 1200원 짜리 밥을 먹으며 나는 행복했습니다.
1년 쯤 후에 대학을 갔습니다. 한국의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외국에선 천재 수학자가 되는 마법이 펼쳐집니다. 대학에 갔고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몇년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나를 지탱하는 힘은 절박함이었습니다. 자리를 잡고 학위를 받고 나름 좋은 화교회사에 취업도 했습니다. 장학금도 받았고 생활비도 보조받았으니 일하는 것 보다 훨씬 쉽게 학교를 다녔습니다.
살다보니 한국어를 할 줄 알면 돈이 되는 세상이 되었고, 덕분에 부업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통역을 했고, 방송국에서도 일해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한국이 그리워졌습니다.
나는 돌아왔고, 학위를 인정해주는 회사에 들어간 늦깎이 연구원이 되었습니다. 적당한 연봉을 받고, 적당한 일을 하며, 적당하게 살고 있습니다.
내 집은 없고, 내 집이 있을 계획도 없을 것 같지만 나는 지금 적당하게 살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나보다 쉬운 삶을 살았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나보다 박탈감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고 살았을 것으로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이 내가 20대를 겪던 그 날들보다 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춥고 힘들며 치열한 경쟁으로 가득한 그런 시대를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20대라면, 30대라면 아직은 시작할 시간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생각보다 먼저 움직여 보길 강권합니다. 앞뒤를 재지 않고 내가 5년 후 절대 도전하지 않을 그럴 일을 저지르기 바랍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실패할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실패를 수습할 기회는 젊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 같은 것 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생각보다 먼저 움직이세요. 그러면 생각은, 따라오게 될겁니다.
많은 힘들어 하는 후배님들의 앞날이 지금보다 밝혀지길 바랍니다.
2008년에는 세계 금융 위기가 있었고
2020년에는 코로나 팬데믹
매 세대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싸우며 살고 있네요.
젊기에 불안하고 두렵지만
젊기때문에 두드리면 열릴 기회가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나이를 떠나, 두렵고 피하고 싶지만 도전 없이는 역시 아무런 결과도 없는게 인생이겠죠.
저도 비슷한 시기에 광화문을 배회하며 교보/영풍에서 시간을 때우고
프랑스문화원에서 영화를 보곤했거든요..아련한 추억이네요...
그래도 잘 풀리신거 같아 좋네요.
다시 되세겨 보네요..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글이네요.
이말말고는 ㅇ못드릴꺼 같습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항상 인터넷에 써진 글을 보고 위로만 받고, 나아지는 모습은 안보이지만. 감사합니다.
저도 지금 어두운 터널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
언젠간 터널의 끝이 있으리라 믿고 계속 걸어 보겠습니다
/Vollago
40대가 본 30대도- 할 수 있습니다.
저도 곧 다른 길로 가보려합니다.
열심히 살아남았는데 이제 기운빠져가는 중이었습니다.
지나온 날 생각하며 힘차게 살아야겠습니다.
생각보다 먼저 행동하라는 말은 지금 제게도 필요한 말이에요. 잘 살아오셨네요.감사합니다~
나이는 더 많지만 저는
조카나 후배들에게 전 이런말 못하고 살았네요.
2030 분들 응원합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나이들수록 나약해져 세상삶이 버거워짐을 느끼네요.
그와 동시에 그동안 잘 헤쳐왔구나 싶은 생각에 또 하루를 살아갑니다.
2030 뿐 아니라 이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고 싶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건강 잘 지키시구 나머지 인생도 응원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보다는,
아파도 청춘이면 금방 나을 수 있다가 정답일 것 같습니다.
청춘이 아니면 육체적, 정신척으로 회복이 점점 오래 걸리니깐요. 주위 고려해야 하는 사항도 점점 많아지고...
그리고 원래 본인들이 제일 힘든 법이죠. ㅎㅎ
쉽지 않은 삶이지만, 잘 살아가봅시다 .
글쓴 분께도 댓글로나마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
40에 직종 변경했는데 만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뭐 그냥저냥 사는거죠...
눈물이 나네요 ^^
스크랩해두고 열심히 살아야 겠네요.
행동하기 쉽지 않지만 한가닥 동기가 주어져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시절 아버지는 정말로 어둡고 어두운 지옥 밑바닥에서 당신 스스로를 불사르시며 냉혹했던 시대에 작은 온기로 가족들을 홀로 지키셨죠.
그 모습에 재학중에 바로 일을 시작했고 그 일을 15년 넘게 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하지만 말이죠.
되돌아보면 그때 그 나이는 한번 사고쳐도 되는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님의 글 덕분에 50이 다가온다는게 믿고싶지 않는 나이라는 걸 생각하니 이렇게 잠시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갓 30살 청년입니다. 매너리즘에 젖어 있었는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