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좀 안 좋거나(겨울에 춥거나, 여름에 더우면) 주변의 열강에 부대끼는 사건이 일어나면, 농반진반으로 단군 할아버지 탓을 하는 드립들이 흥합니다. 이게 다 단군 할아버지가 부동산 사기를 당해서 터무지 없는 입지에 나라를 만든 탓이라는 얘기.
과연 현재의 한반도가 기후나 지정학적인 면에서 별로인 지역인가?
좀 따져볼 일입니다.
일단 ... 넓은 만주 놔두고 좁은 한반도로 내려왔다. (장수왕이 나쁘다!)
요런 이야기 많이 합니다.
과연 장수왕은 잘못된 선택을 했을까?
만주가 한반도보다 넓기는 합니다. 특히 동북평원(만주평원)은 화북평원(중원!)과 비슷하거나 조금 넓은 중국 최대의 평원입니다. 한반도가 통채로 들어가고도 남는 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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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한민족의 강역이 계속 만주평원에서 유지되었으면 우리(?)는 훨씬 더 큰 나라였을 텐데"라는 생각을 종종하게 됩니다.
고구려가 남하하지 않았다면 좋았을까요?
음 ... 우선 한 가지. 만주처럼 사방으로 열린 넓은 공간에서는 장기적으로 단일한 국가적 정체성, 문화적 고유성이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고구려가 남하한 이후 만주를 차지했던 민족들이 여럿 있었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국가체제를 오래 지속하지 못했고,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도 여러 방향의 외침과 한족의 유입속에서 휩쓸려 사라져 버렸습니다.
만약 고구려가 남하하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백제와 신라가 아웅다웅하다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금 더 남방계 속성이 진한) 평범한 반도 국가로 유지되고 있겠고, 만주를 고수한 고구려는 그 이후의 다른 민족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운명을 걷다가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원 침공했다가 동화됐든지, 만주에 남았다가 그냥 없어졌든지.
그리고 만주는 저 광활한 면적의 농경지에도 불구하고 생산력(인구 부양력)이 별로 높지 않습니다. 동북3성 면적이 79만km² 에 달하는데 인구는 1억을 조금 넘는 수준. 대한민국의 두 배에 불과합니다. 인구밀도로는 대한민국의 1/8 수준입니다. 그나마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에 걸쳐서 한족이 대량 유입해서 크게 늘어난 인구고, 전근대에는 만주 전체 인구가 한반도보다 적었으리라 추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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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철원이 춥네, 강원도가 춥네 하지만, 당연히 드립이고 만주가 훨씬 춥습니다. 1월 평균 기온에서 만주의 모든 지역이 서울보다 춥습니다. 보통 영하 10도~영하30도 수준. 그리고 겨울도 한반도보다 훨씬 길고요.
비도 한반도보다 훨씬 적게 옵니다. 서울의 연평균 강수량이 1,400mm 전후지만, 만주의 연강수량은 500~600mm 수준. 여름이 한반도보다 좀 선선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더 춥고, 더 건조한 동네입니다. 즉 인구부양력이 높을 수가 없습니다.
"인구부양력이 낮다 = 살기 좋지 않다"
즉 애초에 만주는 한반도와 비교할 때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 아니며, 장수왕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만주와 한반도의 비교를 떠나서도, 한반도 정도면 살기 좋은 곳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기사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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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기후가 (서)유럽보다 나은 점은 여러가지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부분이 일조량입니다. 특히 겨울철 일조량이 그렇습니다.
서유럽은 기본적으로 겨울 내내 습하고, 우중충하고, 해가 뜨지 않습니다.
1월 한달 일조량 10시간. 한국사람이 보기엔 어이 없는 수준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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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월 평균 일조량 160시간.
유럽의 일조량 10시간 정도는 하루에도 찍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멀리갈 것 없이 지난 며칠만 봐도 뭐 ...) 흔히 우리가 기후 좋다고 생각하는 프랑스 남부 지중해성 기후 지역보다도 서울의 1월 일조량이 훨씬 많습니다. 한반도의 1월은 좀 춥기는 할 지언정, 햇볕은 쨍쨍해서 체감 추위는 덜합니다. 남향집이면 난방 없이 햇볕만으로 25도 정도의 실내 온도를 찍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삶의 질에는 겨울에 좀 더 춥고 덜 춥고보다는 햇볕이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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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명당 우울증약 복용자 숫자
https://www.businessinsider.com/countries-largest-antidepressant-drug-users-2016-11
한국은 선진국 중 우울증약 처방이 가장 적은 국가인데, 겨울의 풍부한 일조량, 연평균 고른 일조량과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여러 통계로 입증되듯이 적은 일조량은 우울증과 직결됩니다. 안그래도 추운데 햇볕까지 없으면 뭐 ... 서유럽의 겨울이 한국보다 기온에서 조금 더 따뜻할지 몰라도, 일조량이 굉장히 적고, 어둡고, 추적추적 비가 이어지는 날씨여서 체감상으로는 훨씬 버티기 힘든 계절입니다.
(※ 물론 저 통계에 대해 비관론자들은 한국인들은 정신과 치료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 우울증약을 먹을 생각을 잘 안해서 그렇다고 해석하지만, 그런 정도 요인만으로 설명하기에는 격차가 굉장히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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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위에서는 서울 일조량을 보였지만, 실제로는 서울이 한반도에서(남한에서는) 가장 일조량 적은 지역입니다.
하지만 서유럽 기준으론 서울조차 최상급.
흔히 (부동산 사기를 당한 단군과 비교할 때) 프랑스가 살기 좋은 곳이라고들 합니다.
근데 파리와 서울을 비교해보면, 서울이 파리보다 (1월을 떠나서) 연간 일조량이 더 많죠. 연강수량도 서울이 파리보다 훨씬 많습니다. 겨울도 파리가 서울보다 깁니다. 서울이 춥고 어쩌고 하지만, 전체적으로보면 파리보다는 서울이 살기 좋은 도시입니다.
위에서 '인구부양력=살기 좋음'이라고 말했는데요. 이 기준으로 한국과 프랑스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조선 중기 한반도 인구를 천만명 정도로 잡는다면, 동시기 프랑스 인구는 2천만명 정도 됩니다.
면적은 한반도 21만km², 프랑스 64만km² (본토기준 55만km²)
전근대 시기(=식량수입이 없던 시기) 기준 한반도의 단위면적당 인구부양력이 프랑스보다 높았습니다.
즉 인구부양력 기준으론 조선이 프랑스보다 살기 좋았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식주나 기후 차원을 떠나 지정학적으로도 한국이 그렇게 좋지 않은 입지일까요?
주변이 강국이다 우리가 강국이다 이런 건 상대적인 잣대고, 위정자가 아닌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자면 지정학적 유불리는 다른 무엇보다 전쟁이 가장 크게 다가오는 부분입니다. 전쟁 많이 나면 안 좋은 땅입니다. 평화로우면 좋은 땅입니다.
프랑스 땅의 입지가 좋다지만, 그 덕에 프랑스는 유럽의 중심부에서 끊임없이 전화를 겪었습니다. 조선시대 이후로 한반도 전역에 영향을 준 대규모 전쟁은 두 번이었습니다. (임진왜란, 한국전쟁) 같은 기간 프랑스가 겪은 대규모 전쟁은 백년전쟁 부터 시작해서(잔다르크가 세종대왕때 사람), 위그노 전쟁, 나폴레옹 전쟁, 보불전쟁,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 훨씬 많습니다. 자기들이 침략한 전쟁도 있지만서도. 프랑스인들이 뭘 잘못해서 그랬다기보다는 '대륙 중심부'에 있는 자체로 그런 리스크가 있습니다.
물론 그나마 프랑스면 유럽에선 양반입니다. 프랑스가 이런데 독일 쯤 되면 더 춥고, 더 어둡고, 전쟁은 더 많고, 인구부양력은 더 열악하고 ... 그러니 독일이나 러시아, 영국, 북유럽 사람이 보기에 파리는 꽃같은 도시였을 겁니다. (그래봐야 서울보다 우중충한 도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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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역사(일반인들 기준으론 전쟁), 인구부양력 등을 볼 때 한반도가 프랑스 보다 살기 좋은 곳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근데 이거는 유럽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다시 동아시아로 돌아와서 중국 vs 한반도 vs 일본 열도 이렇게 비교해도 전쟁이 가장 적었던 지역은 한반도입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겠죠? 일본만해도 전국시대 전후로 에도막부 초기까지 대충 200년동안 내전을 벌인 나라입니다.
주변 국가(지역)들에 비하면 한반도는 매우 평화로웠습니다.
한반도 정도면 선진 문명이 성립하기 적당한 수준의 사계절(적당한 추위와 더위)을 갖췄습니다. 인구부양력 최상급이고, 기후 나쁘지 않습니다. 지정학적으로도 그동안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의 숫자로 볼 때 운이 좋았든지, 터가 좋았든지 ...
마지막으로 ...
단군신화의 기본이 되는 삼국유사에서 일연이,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이 단군왕검의 강역으로 언급한 곳들은 지명만 놓고 볼 때는, 황해도-평안도 지역입니다. 고구려-고려 라인에서는 사실 이 지역이 한반도의 중심부였죠. 우리가 남한에 살다보지 잘 느끼지 못하지만,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평야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평양 평야입니다. (호남-김제 평야x) 이 지역을 중심으로 대동강이 관통하고 있으며, 만주와 비교할 때 더 따뜻하고, 더 비가 많이 오고, 인구부양력도 훨씬 좋습니다.
고구려의 남하 뿐 아니라,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단군왕검 이야기 하면서 황해도-평안도 지역의 평양 평야 주변 지역을 도읍지로 설정한 데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실제 고조선의 강역은 압록강 넘어 요동 지역이었다고 비정되기는 합니다만, 실제로 거기가 어디였든간에, 후세의 관점에선 그 만주보다도 한반도가 훨씬 살기 좋은 땅이었던 거죠. 고구려의 위정자들이 보기에도, 일연이나 김부식이 보기에도.
흔히 한국의 출산율을 놓고 암울하다고 하는데, 인구1억의 동북3성 출산율은 한국을 압도하는 세계 최저입니다. 출산율 낮은 데다가 경제가 안좋다보니, 매년 대규모로 인구 유출이 일어나고, 큰 폭으로 인구가 줄고 있어서, 조만간 1억 이하로 떨어질 예정.
글 정성이 엄청나군요 ㄷㄷ
하루속히 통일되어 못보던 자원 구경 좀 하면 할 뿐이고요
그런 차이 때문에 대항해시대가 시작될 때 동북아시아 3국은 다른 곳 갈 생각을 안 한 건 아닐까요?
남한면적 : 100,363km²
북한면적: 122,762km²
남북 합친면적보다 프랑스가 3배정도 넓은데 지도가..
동감합니다..
자꾸 지중해성기후가 좋으니.. 어쩌니 저쩌니.. 하는 글들이 자주 보이는데....
속으로 아닐껄... 하지만 뭐 전문지식인이 아니라서... 반박을 못했는데..
읽어볼만한 줄거리입니다..
또 요즘 세대들이 자꾸 사계절 있는것도 별로 안반가와 하는데..
절대 그렇게 볼일 아닙니다..
스키장 가면 대만, 싱가폴, 홍콩인들 스키타러 한국 많이 옵니다...
겨울이 없다면 스키타러 비행기 타야 합니다.
적당히 고립되고 적당히 먹고 살만 하고 그러니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미얀마 등지의 대충 뿌려놔도 알아서들 큰다는 기후는 부럽긴 합니다만..
사실 우리나라 정도면 좋은 입지가 맞겠죠.
국가의 흥망이 지리와 깊은 영향이 있는데, 지금 흥해있는 대부분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지리적 이점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죠.
물론 사람들의 취향은 다 다르겠만요.
2) 백제와 신라는 남방계가 아니라 북방계 나라입니다. 백제 개국 이후에도 마한이 계속 존재했습니다. 광주국립박물관 가보면 옹관묘를 비롯한 마한 유물이 엄청나죠.
3) 기후는 시대에 따라 다릅니다. 고구려, 고려, 조선, 현대 기후가 다 다릅니다. 압록강 유역과 철원만 봐도 옛날에는 꽤 따뜻한 곳이었습니다.
올리신 글에 대체로 공감하는데, 사족을 붙여 봤습니다. 😎
다이나믹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