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위스키를 즐긴다는 것은 철저히 개인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서 먹느니 소스를 부어서 먹느니 반 농담으로 이야기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맛있는 탕수육을 즐기는 것이니까요. 마찬가지로 위스키를 니트*로 즐기던, 온 더 락**으로 즐기던, 진저 에일을 넣은 하이볼이나 하다못해 콜라를 섞어서 마시더라도 그걸로 충분히 즐겼으면 된 거겠지요.
그렇지만 동시에 위스키는 즐기는 사람의 후각과 미각을 다양한 방향으로 자극할 수 있는 관능의 영역이고, 고작 한 잔을 붙들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사색할 수도 있는 음료입니다. 이러한 위스키의 매력에 이끌려 사람들이 위스키를 찾지만, 위스키도 엄연히 최소 40도의 에탄올을 포함하는 고도주인만큼 쉽게 읽어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눈이 매울 정도로 알코올 증기가 올라오고, 입은 리스테린을 머금은 것보다 배로 따갑고, 간신히 삼키고 나면 내 식도가 어떻게 놓여 있는지를 촉감으로 느끼게 해 주니까요.
그래서 이런 분들을 위해 어떻게 위스키를 즐길 수 있는지 모자란 글이나마 써 보려고 합니다. 저라고 어디 자 앞에서 왈 하는 스노버리는 커녕 깜냥도 안 되는, 위스키를 즐기기 시작한 지 몇 개월밖에 안 되는 초보자입니다만, 여기저기서 줏어듣고 배운 것을 정리하는 것 정도로 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neat;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마시는 것, 종종 스트레이트라고도 함
** on the rock; 바닥이 두꺼운 텀블러 잔에 큰 얼음을 곁들여 마시는 것
잔
당연한 것이지만 무언가를 마시려면 잔이 필요합니다.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병나발을 불면 되지 않냐 말씀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각종 영화나 드라마, 만화 등의 매체에서 위스키를 주로 담는 잔은 샷 잔과 텀블러 잔입니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세 크기의 샷 잔. 출처: Kelly Martin CCBY-SA 2.5 Wikimedia Commons
샷 잔
샷 잔은 보통 작고 한 단위잔 내지 두 단위잔 (위스키의 1 단위잔 = 1온스 ~= 30ml) 을 담으면 가득 차는 잔을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주잔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렇지만 매체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고는 해도 위스키를 즐기는 데에는 썩 마땅치 못한 형상입니다. 잔의 꼭대기까지 찬 위스키에서 향은 사방으로 분산되어버리고, 남은 것은 강렬한 알콜 증기의 쏘는 냄새밖에는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샷 잔은 위스키를 본격적으로 즐기는 용도보다는 빠르게 입에 털어넣고 끝내는 용도에 더 걸맞는 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일반적인 형태의 텀블러 잔. 출처: Whisky.com
텀블러 잔
고대비의 흑백으로 비추어진 화면 조성. 창 밖으로는 함박눈이 짙게 내리는 도시의 야경. 주인공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의 허튼 실마리를 한 손에 든 채로 사색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반대편 손에 들린 잔 속에서는 마호가니 색의 액체가 얼음덩어리 주위를 잔잔히 파도치고 있습니다…
이런 느와르의 한 장면을 그렸을 때 보통 주인공의 손에 들린 잔은 바닥이 두터운 원통형 잔입니다. 텀블러 잔이라고도 하고, 보통 올드 패션드* 칵테일을 담는 데에 쓰기도 해서 올드 패션드 잔이라고도 합니다.
단점으로 꼽히는 것은 넓은 원통형이기 때문에 위스키가 공기와 만나는 면적이 너무 넓고, 마찬가지로 위스키의 향이 넓은 입구로 금방 확산되어 버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굳이 선호되는 형상은 아니지만, 정 잔이 없다면 그럭저럭 위스키를 즐길 수는 있습니다.
* old fashioned; 설탕과 비터스에 버번 또는 라이 위스키를 섞어 만든 칵테일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글렌캐런 잔. 출처: Glencairn Whisky Glass
노징용 잔
코피타copita, 튤립 잔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제조사로는 글렌캐런Glencairn이 있어 글렌캐런 잔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튤립 잔이라는 이름대로 튤립 꽃봉오리의 형상을 띄고 있습니다. 기능적인 면에서는 브랜디 잔과도 닮은 점이 있습니다.
잔의 배가 나온 부분에서는 위스키가 공기와 접촉할 면적을 충분히 확보해 주고, 동시에 알코올 증기를 상대적으로 가두어 위스키 본연의 향을 가리지 않게 해 줍니다. 동시에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입구는 더 농축된 향을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제조사에 따라 잔이 입에 닿는 부분의 형상을 다르게 만들어 맛을 느끼는 것을 나름 최적화시키기도 합니다.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대표적인 제조사로 글렌캐런이 있고, 이 회사의 제품이 사실상 표준화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제가 사용기에 올리는 사진에 담긴 잔은 쇼트즈위젤에서 제작한 노징 잔입니다. 그렇지만 굳이 이런 전용 잔을 꼭 사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적당히 비슷한 형상과 크기의 화이트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 잔이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합니다.
온도
위스키를 즐기는 데에 온도까지 신경써야 하냐, 라고 하시면, 사실 그 반대가 맞습니다. 위스키는 보통 실온에서 보관하고 실온에서 즐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여기에 취향에 따라 손으로 잔을 조금씩 데워가며 맛보는 정도입니다. (저는 그렇게 조금 데운 것을 좋아합니다.) 얼음을 넣거나 냉동실에 넣었다 마시지 않는 이유는 다른 음식물들이나 음료처럼 위스키 역시 낮은 온도에서는 향과 맛을 느끼기 어렵고, 자칫 섬세한 뉘앙스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과 함께
위스키를 위스키 자체만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안 넣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예외가 있다면 미온수입니다. 많이는 말고 몇 방울만을 잔에 떨어뜨려 넣는 것으로 위스키의 맛과 향을 더 쉽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강한 알코올 기운이 부담되는 경우 위스키의 도수를 낮춰 더 편하게 즐길 수 있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마실 때는?
엄밀히 말하면 방법은 아니고, 일종의 요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코로 위스키의 향을 느낍니다.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찌른다 싶으면 거리를 조금 더 띄워봅니다. 코와 잔 사이의 거리와 각도를 이리저리 옮겨보며 변하는 향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입을 살짝 열어 코와 입으로 같이 들이쉬는 것이 좋습니다. 위스키의 맛 만큼이나, 때로는 그 이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향이기 때문에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마시지 않고도 즐기고 싶은 만큼 계속 즐기면 됩니다.
- 마실 준비가 되었으면 숨을 들이쉰 채로 입으로 가져갑니다. 입으로 가져간 채로 숨을 들이쉬게 되면 매캐하게 쏘는 알코올 증기가 느껴지게 됩니다.
- 적당량을 입에 머금고 맛을 느껴봅니다. 많은 양일 필요는 없습니다. 혹자는 위스키의 숙성 년수만큼 횟수를 입 안에서 우물거려야 한다고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고 입 안에서 충분히 맛을 느낄 수 있을 정도면 됩니다. 찬찬히 알코올의 따가움이 적응되는 만큼 거기에 맞춰 입에 문 채로 침으로 희석시키고 혀도 굴려볼 수 있습니다.
- 마시고 나서 입으로 숨을 내쉽니다. 입으로 숨을 내쉬는 것으로 입에 남아있는 알코올 증기를 내뱉게 됩니다.
- 여운을 즐깁니다. 입과 코로 숨을 내뱉으며 속에서 올라오는 여운의 향과 혀에 잔존하는 맛을 느껴봅니다. 이때 느껴지는 향을 “후비향retronasal olefaction” 이라고 합니다. 여섯 개의 맛만을 구분하는 미각 세포에 비해 후각 세포는 훨씬 다양한 향을 구분할 수 있기에 이 여운의 비중 역시 큽니다. 특히 어떤 위스키의 경우 과장 조금 보태면 저녁에 마시고 나서 다음 날 아침까지도 지속되는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정도입니다.
이렇게 위스키를 마시는 것으로 향, 맛, 여운의 세 단계를 모두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말로 써 놓으면 거창하지만 실제로 해 보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행위입니다. 다만 이것을 자각하는 것으로 후각과 미각에 신경을 집중시키는 효과는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면 위스키의 관능평가가 있습니다. 얼핏 거창하지만 결국에는 이 향, 맛, 여운을 공통적인 수식어를 사용해 말로 옮기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고, 그저 떠오르는 이미지를 기록해 나가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어디까지나 취미의 연장선상에서 하는 것이라면요.
다있어캐런(2,000냥)으로 즐기는 중입니다.
유리의 질이 좋은 것 같긴 한데 확실히 비싸죠. 엄밀히 따지면 꼭 글렌캐런일 필요는 없이 적당히 튤립 형상이면 되니까요.
1-2년 정도야 뭐... 잔여 수위가 특별히 낮은 병만 아니라면 괜찮다는 것 같습니다.
종종 병 안에 든 것만이 중요하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도 패키징과 스토리텔링은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위스키 사용기를 쓰면서도 짤막하게나마 색상과 포장 등에 대해 다루려고 합니다.
몇년 사이에 갑자기 니트란 단어로 자리 잡은 느낌이.
저는 집에서만 마시다 보니... 아무래도 본고장 용어가 인터넷을 타고 다시 흘러들어오며 자리잡은 것 같기도 합니다.
고급진데 가니까 생수 조금 타서 마시라고 추천해주시던데
특히 50도 이상의 고도주로 나오는 것들은 물을 타고 말고에 따라 꽤나 눈에 띄게 변하는 경우도 있어 즐길 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온더락 스타일 좋아요 청량하니~ 아직 위린이라 그런가봐요 ㅎㅎ
소다 섞는것도 좋구요
개인적으로 저는 섞어먹는 건 번거로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트로 즐기기에도 제임슨 스탠다드가 그렇게 썩 나쁘진 않은 것 같습니다.
글랜잔이랑 블루 꺼내왔습니다 ㅡㅡㅋ
딱~~ 한잔만하고 잘게요.
저는 이제 정리하고 들어갑니다 ^^
그렇지요. 그리고 텀블러 잔이 비교적 덜 선호되는 면은 있지만 그 묵직한 유리잔에서만 나오는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항상 주류 문화의 주류는 거나하게 취하고자 마시는 풍토가 있었던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주류 관련 커뮤니티가 아닌 열린 공간에 주류 관련 내용을 쓰는 데에는 조금 거리낌이 있다 보니...
팁게로 갈만한 좋은 글입니다
맛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라면야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선 코로나가 어느정도 종식되고 나면...
써 보니 개인적으로 저는 스템 있는 잔이 더 좋더군요. 글렌캐런은 지문을 덕지덕지 남기지 않고서는 잡기가 조금 애매한 느낌이라...
저도 예전에는 잭콕이나 온더락을 많이 마셨는데, 요즘은 그냥 실온으로 그냥 마십니다. 그래야 향이 제대로 나오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위스키는 첫 한 모금을 마시는 술이라고 봅니다. 처음의 그 독특한 향을 코로 느끼고, 입안에서 알콜의 짜릿함을 즐기고서 숨 한 모금 들이킬 때의 입안과 코 안쪽에서 도는 특유의 향을 느끼고, 마지막으로 꿀꺽 하고 목으로 넘길 때의 짜릿함을 즐긴 뒤에, 하아~ 하고 입으로 향을 뱉어내면서 그 여운을 즐기는 술이지요.
그런 점에서 와인과는 조금 다른데, 위스키가 코와 목으로 느낀다면, 와인은 코와 눈으로 즐기는게 더 크니까요. 처음에 잔에 따르면서 퍼지는 향을 느끼고, 잔 안에서 스월링을 하면서 보는 색의 차이 (정확히는 와인이 많은 곳과 잔 벽의 색의 차이)를 본 뒤에, 처음 느낀 향과 다른 잔 안에서 풍기는 향을 즐기고 (그것도 아주 깊이 들이키는 향으로), 마지막으로 입안에 들어와서 향과 함께 폭발하는 맛을 즐긴 뒤에, 부드럽게 목으로 넘기는 것이 좋으니까요.
추가로 와인은 시간이 흐르면서 향과 맛이 깊이를 더하면서 그 변화를 느끼는게 포인트라면, 위스키는 처음의 쓴 맛을 시작으로 점점 부드러워지는 목넘김을 즐기는게 또다른 포인트고요
사실 글렌캐런 잔이 지금이야 사실상 표준에 가깝게 널리 보이지만 등장한 것은 이제 20년밖에 안 되었다고 하니까요. 조금씩의 차이야 없다고 하면 틀린 말일 수 있겠지만, 적당히 비슷하게 튤립 모양으로 생긴 노징 잔이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렌캐런이 그렇게 싼 가격이 아닌 것도 있고요.)
저는 와인은 취향에 잘 안 맞더라고요. 위스키도 그렇고 커피도 그렇고 와인도 그렇지만, 관능 평가에서 꿀이니 핵과니 파인애플이니 이야기하는 그 위에 카테고리 전체를 관통하는 "위스키 맛", "커피 맛", "와인 맛"이 있다면, 저는 그 와인 맛 자체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한번에 마시기에 750ml가 많은 것도 있고요.
제 경우에는 위스키 전에 커피를 조금 했었는데, 위스키의 경우 관능적으로 즐기기에 조금 더 수월한 것 같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커피에 비해 변인들이 훨씬 크게 작용하고, 그러한 변화가 그대로 잔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니까요. 저녁에 마시기엔 커피보다 위스키가 나은 것도 한 몫 하는 것 같습니다.
위스키를 좋아하시면 와인도 좋아하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위에 차이를 적은 것처럼 둘의 재미의 포인트가 다르기는 하지만 둘 다 아주 맛있게 즐길 수 있지요 :)
/Vollago
저는 사실 아직 조니 워커 일반 블루를 맛보지 못해서... 언젠가는 작은 병이라도 하나 들여야 하나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글머리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결국 탕수육을 즐겼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처럼요.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고도수 증류주가 비교적 덜 일반화되었고, 못해도 40%가 넘는 알코올의 쓴맛을 넘지 못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요. 그래서 그때의 제가 있었던 위치에 계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제가 여기저기 둘러보며 배웠던 것들을 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