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볼일이 있어 반차를 쓰고 이른 퇴근 길을 나섭니다.
운동삼아 예술의 전당에서 사당역까지 걸어가곤 하는데, 평소 가는길과 다른 코스로
평소 좁은 골목길 위주로 갔다면 이번엔 조금 돌아가더라도 큰 길을 따라 걷기로 결심하고 걸어갑니다.
그편이 운동량이 훨씬 많이 나오거든요.
그리고 그 결정이 오늘의 에피소드를 만들어주게 되었습니다.
20분, 5천보 정도를 걸으며 '음 많이 걸었어' 하고 뿌듯해하며 사당역 2번 출구에 막 접근해가는 참이었는데
맞은편에서 금발의 50에서 60대는 되어보이는 여성 외국인이 마주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저를 보고 잠시 뭔가를 파악하는 듯 고개를 갸웃 거리더니 이내 손을 들고 인사를 건내십니다.
귀에서 무선 이어폰을 빼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봅니다.
외국인이니 분명 도인은 아닐게 분명합니다.
몰몬교 신자들이 사당역에서 활동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으니 도움을 빙자한 전도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 부인은 저를 보자마자 빠른 영어로 물으십니다.
부인:캔유 스픽 잉글리쉬?
나: 리를
부인: 플리즈 헬프미. 아윌.....$%#^#$%#%#%#% 쉐라톤 호텔#$%@$%@$%@# 셔틀 버스.@##$%@#$@ 웨얼 버스 스테이션 @#$%@$@#$@#$
무슨 말인지 70%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주요 부분은 들려왔습니다.
대충 여행왔다가 호텔로 돌아가야하는데 호텔 전용 셔틀 버스를 타는 곳이 어딘지 헤메는 모습이 분명합니다.
이 근처인 건 알겠는데 3시까지 버스를 타야하는 상황인데 버스를 잡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은 2시 45분.
그분이 건네주는 호텔 명함을 보고 프론트에 전화를 합니다.
곧바로 안내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ARS가 울립니다.
한국어 문의는 1번
호텔 문의는 1번....
연속으로 1을 누르고 안내원이 전화를 받습니다.
나 : 네. 저는 아니고 여기 외국인 분이 투숙하시는 것 같은데 셔틀버스 탑승처를 모르시는 것 같아요. 사당역이요.
안내원 : 아 그건 버스 담당하는 부서로 통화 돌려드릴게요.
하지만 연결이 두번이나 이루어지지 않아, 기다리는 시간만 늘어갑니다.
애가 타는 부인은 옆에서 계속 영어로 하소연을 하십니다.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지만 아마 시간이 없고, 자기가 뭘해야하는지 모르겠고 등을 하소연하는 것이 단어가 대충대충 들립니다.
저또한 부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입을 엽니다.
나: 어 음.. 어..
부인이 제가 입을열자 집중해서 바라보는 모습이 부담되어 더더욱 생각이 안납니다.
듣기는 대충 되는데 생각한대로 입이 떨어지지 않는게 참 답답하더군요 ㅎㅎ
나: 음. 아이 터크 투 매니저. 아임 웨이팅 버스 매니저. 웨이트 플리즈
부인: 오 오케이 땡큐
겨우 버스쪽 담당자와 연결이 됩니다.
나: 네. 저는 아니고 여기 외국인 분이 계신데, 사당역에서 셔틀을 타셔야 한다고 하세요. 어디서 타야하죠? 시간은요?
담당자: 네. 고객님.(난 아닌데 ㅎㅎ) 혹시 그 분하고 친분관계신가요?
나: 아니요. 지나가다 도움을 청하셔서요
담당자: 일단 그분이 호텔 투숙객인지 확인을 해야해서요. 혹시 연결 가능할까요?
나: 네. 영어로 하셔야 해요 영어요.
제 우려와 다르게 담당자분은 허투로 호텔 근무를 하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부인에게 전화기를 건내주자마자 제가 알아들을 수 없는 현란한 대화가 오갑니다.
그 중에서 한 단어는 알아들었습니다.
텐.
10번 출구라는 얘기였군 하고 생각하며 시계를 봅니다. 이제 시간은 8분 남았습니다.
부인은 계속 뭔가를 하소연하고, 담당자는 응대하고 이대론 끝이 안날 것 같아 제가 다시 전화를 가져갑니다.
나: 제가 통화드리는게 낫겠네요. 일단 10번출구라는거죠? 맞죠?
담당자: 네. 3시 근처에 오고 타지 못하시면 버스가 가버리니까 기다리지 않고 가니까 그 부분을 꼭 고객님께 말씀해주세요.
나: 3시까지 충분히 갈 것 같네요.
담당자: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부인을 쳐다봅니다.
부인도 저를 바라보며 기대에 가득찬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나: 오케이. 아이 노우. 텐... (출구가...)어 넘버 텐! 팔로미. 위 해브 이너프 타임. 돈 워리
부인: 오 땡큐. $%#$%#$%#%#$^%#$^$#^#$^$
나: (아무튼 고맙다는 얘기와 여행와서 난관과 어려움을 얘기하는 것이겠군)
2번 출구로 들어와 10번 출구를 찾아 걷습니다.
출퇴근으로 익숙한 사당역 지하도지만, 주로 이용하는건 수원행 3,4번출구입니다.
10번출구 위치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길을 헷갈리면 이분은 호텔로 갈 수단을 놓치게 되고 저를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나름의 부담감을 갖고 표지판을 보는데 다행히 10번 출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인은 계속 뭔가 하소연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부인 : 디스 스테이션 @$%$#@%#$%#$ 디피컬트$%#%#$%#$@#%ㅆ$# 하드 $%#$%#$%$#%
나 :(길이 복잡해서 힘들다는 얘기겠군)
나 : 어 음.. 어.. 예스 디스 스테이션 이즈 어음 어......
복잡이 기억이 안납니다.
머리가 복잡해지니 복잡이 생각이 안납니다.
개발할때 복잡성은 잘도 얘기하면서 업무 용어로 컴플렉시티
이제 기억이 나네요.
아무튼 저때는 기억이 안났습니다 ㅎㅎ
그래서 복잡하다-미로-미궁 으로 연상하여 영화 메이즈러너를 떠올렸습니다.
나: 디스 스테이션 라이크 메이즈!
부인 : 예스! 예스!!!!
얘기하는 동안 다리도 바삐 움직여 10번출구에 도착.
시계는 2시 58분.
아직 여유가 있지만 호텔행 셔틀버스 승강장 같은건 보이지 않습니다.
버스 승강장을 공유하는건지 어떤건지 몰라 전화를 하고 담당자와 통화.
그런건 없고 기사분이 대충 세운다는 얘기를 듣고 부인을 안심시키려 돌아보니
부인이 한 동양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뭔가 아는 눈치였기에 다가가 물어봅니다.
나 : 유어 프렌즈?
부인 : 노우. 히 이즈 호텔 $@%#%^$#^&$&^$%^#$^$^
나 : (음. 일행은 아니고 호텔 투숙객인데 얼굴은 본 적이 있어서 안심된다는 얘기인가보군)
나 : 아임 토킹 버스 매니저. 셔틀 버스 그레이 버스. 잇 얼라이브. 유 라이드 댓. 오케이?
부인 : 오우 땡큐. $%#$%@#$ㄲ#$^#^$
동양청년 :$#$%^%#$^#$^#%#$%^#$%
부인 : 히 헬프 미. 히 이즈 베리 카인드 앤드 $%#$%#$%#$%#@$ 핸섬 $%#%#%#$@%#$% 젠틀
나 : (나를 매우 칭찬하고 있군)
부인 : 땡큐. 땡큐 베리머치. $%#%#$^%$#^$^#$# 머니? $%#%^#$^%$#^$%
나 : (사례를 하겠다는 얘기군.) 노 노 땡큐 ㅎㅎ
부인 :오우. $%#$%#$%$#%#$%
나 : (대충 이 남자가 있으니 자긴 안심하고 탈 수 있다는 얘긴 것 같군)
나 : 오케이. 헤브어 나이스 트래블.
부인 : 예스. 해브어 나이스데이.
나: 아이 위시 음. 해브어 굿타임. 앤드 아이 윌 고 오케이?
부인 : 오케이 굿바이
어찌저찌 버벅이며 도움을 마쳤습니다.
낯선 타지에서 불안했을 이에게 도움이 됐다는 뿌듯함과 한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됐을 거라는 뿌듯함도 잠시.
복잡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길안내도 힘들어한 일이 떠올라 괜시리 씁쓸해집니다.
개발만 하면서 영어회화는 등한시 했는데 아무래도 간간히 짬을 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학교 다닐 때 들리기만 하고 말이 안 나와서 본의 아니게 교환학생 캠퍼스투어(...)를 시켜준 경험이 있습죠..
고생하셨네요 ㅎㅎ
한줄요약 : 제가 이렇게 핸섬하고 젠틀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외국인 분 세명 정도?가 길 가운데에서...
폰을 보면서 얘기중에...
제가 지나가니까 말을 걸더니...
폰을 보여주며 뭐라뭐라...말을 하더라구요.
폰 화면엔 지도가 켜 있었는데...
저도 아는 장소라 말을 하려고 하니...
영어로 머리에서는 쫘악~~~~ 대본이 쓰여지는데...
막상 입으로 나오는 말은...어버버...ㅋㅋㅋ
도움은 줘야 겠고...말은 안나오고...고민하다가....
"팔로우 미~" 라고 말하고는...
그분들이 찾아가려는 목적지 앞까지 데려다 주고 왔었습니다...^^ㅋㅋㅋ
도우려는 의지가 있으면 사실 도울수가 있습니다.
한국사람은 어느정도의 적극성이 있어서 그래서 도와주는 편이죠...
근데 일본에서 길 물어보면 정말 사람들이 거짓말처럼 피하더군요...;; 이 소심한 셰퀴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잼있게 잘 읽었습니다. 고생하셨어요.ㅎㅎ
저녁 늦게 퇴근해서.. (밤 10시무렵) 분당선 수원역에서 타서 용인 기흥역 내려 계단을 올라오니
중국인 여자분 5명 정도가 큰 캐리어 가방을 끌고 지도를 들고 우왕좌왕 하다가
저에게 동대문을 물어 보더라구요.
오! 동대문 ...내가 잘 알지... 하면서 제가 올라온 계단이 아닌 .. 수원행쪽 계단을 알려주며
(난 수원에서 왔으니 내가 온 계단은 수원 방향이다 생각함)
저쪽으로 계단 내려가면 된다고 .. 알려주고. 땡큐 땡큐 소리 들으며
뿌듯하게 에버라인 환승 긴..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문득..
어!! ??
그렇게 5명의 큰 캐리어를 든 어여쁜 처자분들을 수원으로 보내버렸습니다.
그 뒤로는 크로스체크하듯 두 번 물어봅니다. 서로 반대로 가르쳐줄 때 진짜 황당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마 부인께서 한국하면 기억하실거에요.
고생하셨습니다~
ps. 글쓴이 안보고 본문 읽으며 글 재미있게 쓰시네 하고 댓글 달고 다시 보니..울프맨님 이셨네요?^^ㅋㅋ
멋지십니다 ㅎ
영어 잘하시는 분이구만요^^
전화끊고 5분 정도 남은 시점이라 서둘러 10번 출구 찾아 걸어가기 바빠서 그냥 듣고 으흠 으흠 오케오케 이러는게 최대한이었죠 ㅎㅎ
아...10여년전 서브웨이 스테이션을 물어보던 교포인지 분명 한국인인데 영어밖에 못하고 나의 어설픈 몸짓에 미소짓던 하얀 피부와 아담한 키에 한지민을 닮은 그 처자가 생각납니다.
길이 복잡해 설명을 설명에 한계를 느끼고 컴온을 외치며 데려다 줬었던..
잘 지내니? 그때 넘 예뻐서 설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