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술 마시다 이걸로 논쟁을 벌였는데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진주만 공습할때 유류창고랑 항공모함 전부 폭격에 성공했다면
1. 항공모함이 전무해서 미국이 아무리 준비를 빨리해도 1년은 넘게 걸린다 적어도 하와이 서쪽은 일본 차지해서 결국 일본과 미국이 강화조약을 맺었을것이다
2. 시간은 1~2년 늦쳐져도 결국 미국이 일본 본토까지 싹쓸이한다
저는 2번이랬는데 친구는 1번일 가능성이 높다내요. 동남아까지 차지하면 거기서 자체적으로 물자생산이가능하다고
이게 맞는 말인가요
그래도 전쟁은 전혀 다른 얘기죠
몰락작전이 승인됬을수도 있고
그리고, 자신의 위해를 가한 것에 대해 그냥 안넘어 가는 나라라고 생각이 됩니다.
내가 틀린 말했나요. 팩트로 반박하세요. 비겁하게 이러지 마시고. 천안함이 북한소행이다, 청와대가 임명한 금융위원장등이 반개혁적이라는게 말이 되느냐 라면 박제당하니 원
무슨 6~70년대 빨갱이 골라내기도 아니고 매카시즘의 재림이네
내가 단 리플 중에 어느 부분 뭐가 잘못됬습니까? 대답해줄테니까
남이 박제한거 그대로 가져오지 마시고 본인 생각을 말해보세요
열심히 리플 검색중이세요? 고생하세요
'여기말로...시방 뭐더요?' 는 뭔가요?;;;
지금 뭐하세요? 광주사투린데요.
게다가 잠시 딴데 나가있다가 우연히 살아남은 엔터프라이즈의 전설이 시작되고...
르메이 장군님 10명은 오셨을듯
근데 그 운이란게 하와이서 다 전멸시키고 미드웨이따위 일본이 무조건 다 쓸어버리고 유럽에선 독일이 뻘짓안하고 소련 다 깨부수고 서부전선은 견고해서 상륙실패하고 그렇게되면 가능할지도..??
문제는 그 뒤에 미국이 알아서 협상을 부탁할 거라는 멍청한 생각을 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핵은 각 도시별로 떨어졌을껍니다.
잽 소멸...아쉽네요
일본 전국토가 처참하게 망가졌을겁니다.
진주만에서 기반시설의 파괴는 요크타운의 수리를 보면 그닥 중요한 터닝포인트라고 보기힘든데 진주만에서 일본의 핵심목표였던 미항공모함의 격침이 발생했다면 인적자원의 부재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함재기 조종사 숙련도는 태평양전쟁 초기에는 미국의 고질적 문제였으니까요. 교환비로 따라잡은거지 숙련도 차이는 끔찍할 정도였다고 들었습니다.
태평양의 주력 항모함대는 훈련을 나가있었죠
그걸 기반으로 결정적으로 미드웨이에서 개털리고
전쟁주도권이 넘어갔죠
엔터프라이즈를 만났다면 카가랑 아카기가 더 일찍 침몰했을 수도 있습니다
"태평양에서 미군 전력을 단기간 소멸시킨 후 방어선을 절처하게 구축하면... 미국도 힘들 것이고, 그걸로 강화조약을 맺고선 동남아와 태평양 지배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 의도와는 정반대로 움직였을 뿐이고요.
진주만 공습은 겉보기에는 성공한 듯 보이나 전략적으로 실패한 공격입니다.
원래 타겟이었던 미국 항공 모함을 한 척도 가라앉히지 못했거든요.
물론 미국 항공 모함을 다 가라앉혔다고 하더라도, 미국과 강화를 하지는 못했을 거 같습니다.
이미 미국과 일본의 체급 차이가 넘사벽이었기 때문에...
다만 일본의 항복 시기가 5-10년 늦춰질 수는 있었겠네요.
만일 미드웨이에서 미국이 패했다면 1년 아니라 2~3년 더 걸렸을 거라고 봅니다.
미 서부 해안에서 발진해야 한다면, 미군도 결코 쉽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미국이 유럽과 태평양의 전력 투입 비율을 조정했으면 좀더 빨라질 수도 있겠지만요..)
스타에서 처음부터 멀티 6-7개 돌리면 질 턱이 없잖아요?
전투의지 역시 자기 영토를 공격 당한거라 베트남전과는 비교하기 힘들테구요.
미국의 본토 침략에 대한 분노 와 물자 생산량이 어떻게 따라 갈수 없는 상황 이였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Vollago
항모 싹 다 격침시켰다고 해도 물자창고와 유류저장고 그리고 해군공창이랑 잠수함기지 또한 완전멀쩡했어서 무조건 2번입니다. 여기에 신형 에섹스급 항모를 2대전기에서 빠르면 30일 길면 60일내에 건조해냈기 때문에 태평양함대의 3척의 항모를 만들어 내는데 길어야 3달입니다.
포드랑 GM공장에서 찍혀나오는 다양한 함재기는 operation cwal치고 레이스 뽑는 수준이었고요. 파일럿 숙련도가 일본이 월등하다고 하나 물량앞에선 답이 없죠. 개노답입니다.
따라서 항모 3척 다시 뽑고 함재기 실고 기본훈련하는데 한달 잡아도 4달이면 완전히 복구가 가능하죠
1번은 개소리에요 정말.
댓글이 천편일률적인데요.
저도 ㅈ문가지만 위키라도 한번 정독을 해보심 좋을것 같습니다.
갠적으로는 진주만에서 항모를 모두 격침시켰다면, 일본이 먹었을 가능성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진주만 이후로, 일본은 파죽지새로 호주와 동인도까지 확대해 나가고 있었고, 연합군은 연전연패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사기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고, 미드웨이 해전도 상당히 불리한 상태였습니다. 여러가지 운이 맞지 않고, 실수가 맞물려서 대패하고 전세가 기울기는 했지만, 진주만때 완벽한 일본이 성공을 했다면, 미드웨이 해전의 미국측 전력은 더욱 초라했을 것이고 미드웨이 해전을 일본이 가져갔을 수도 있겠죠. 그 다음은 다시 하와이 샌프란시스코로 진격했을 겁니다.
물량이라는건 사회와 정치 경제가 잘 돌아갈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군함을 금방금방 뽑을 수가 없죠. 실제로 진주만 이후로 건조 시작한 군함들은 약 2년후부터 배치됩니다. 총동원했음에두요. 그래서 미드웨이 해전에서 참여한 군함들은, 진주만 이후로 신규로 뽑은 군함들이 아닙니다. (미국의 물량이라는것도 금방금방 나오는게 아니라는거죠) 진주만 완벽 성공 -> 미드웨이 승전 이로 이어졌다면, 미국이 물량을 계속 뽑지 못했을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원폭도 개발이 1942년 연쇄 반응 시험에 성공하였고 폭탄으로서의 첫 실물 시험이 45년입니다. 첫시험후 바로 투하한거죠. 비슷한 시가 독일과 일본도 원폭을 개발하고 있었구요.
역사에 가정이란 없겠지만, 물량빨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미국이 이겼을거다 라는 주장에 대해서 다른 각도로도 생각해 보심 좋을것 같네요.
그건 철저하게 일본입장에서 행복회로 태운거에요. 진주만의 공격성공조차 일본 상층부에선 미군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수단이었습니다. 본토 조지려는 계획은 없었어요.
태평양전대가 완전히 괴멸된다면 IF를 한다면 마찬가지로 미국 본토에서도 더 많은 생산능력을 끌어올렸을 것입니다. 총동원령이 내려진 상태에서도 GDP 생산능력상 여유분이 아직 충분히 남아있었습니다. 오히려 수병과 파일럿이 부족했었죠. 태평양전쟁 내내 발목잡힌 부분이기도 하고요. 오히려 물질적인 생산능력은 더 오버클럭할 여력이 충분했습니다.
거기에 진주만 시점에서조차 일본은 군용유의 고갈조짐을 보여왔는데 상식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침략은 불가능합니다. 진주만에서 격침당한 주력전력은 전함 5대중 2대이고 핵심전력중 하나인 잠수함대는 멀쩡했어서 유보트에 호되게 당한 연합군을 본 미군이 역으로 하와이와 샌프로 오는 일본 수송선단을 똑같이 박살낼테고 실제로 이는 진주만 이후의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이 효과적으로 수행한 작전입니다. 일본군의 빈약할 뿐만 아니라 상부에서 신경조차 안쓰는 보급라인은 개박살날께 자명합니다.
그리고 에식스급 항모 건조에 2달도 안걸린건 실제 팩트입니다. 기본훈련과 함재기를 탑재하고 운영가능한 수백수천의 수병과 지휘관을 선발하는 것 까지 포함한 실제 취역이 가능하기까지 풀세팅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14개월선이었죠. 생산 자체는 금방금방 했습니다. 카사블랑카급 호위항모는 1주에 1대씩 뽑아냈고요. 전함과 구축함 잠수함 전력이 충분히 무사한 상태에서 모자란건 항모뿐이었어요. 그래서 클리블랜드급 경순양함을 개조한 인디펜던스급 경항모를 빨리 뽑은거고요.
마지막으로 오히려 링크거신 미드웨이해전 위키의 8-3 8-4 항목을 읽어보시죠.
" 그러나 당시 일본군을 생각하면 하와이는 고사하고 위에서 말했듯이 미드웨이 섬 하나 점령하는 것도 성공했을지 의심스럽고, 툴라기를 점령했던 5월의 시점에 FS작전의 목표이던 피지에는 벌써 1개사단이 배치되어 있었고 역시 목표지점이던 사모아에도 7해병연대를 포함해서 1만 5천명에 달하는 병력이 있었으며 뉴헤브리디스의 에파테에 5800명, 그리고 역시 목표지점이자 미군의 중요항구이던 뉴칼레도니아의 누메아에는 아메리칼 사단을 주축으로 하는 22000명이 배치되어 있고 호주 본토에도 2개 사단이 있기에 보급로를 지키기 위해서 1개 사단 정도는 충분히 동원할수 있고 거기에 6월 14일에 뉴질랜드에 도착한 1해병사단까지 방어에 돌릴수 있으므로 사실상 보급선 차단이라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일본군은 실론 점령에 4개 사단 이상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중국을 주 전장으로 삼는 일본 육군은 실론 점령에 사단급 병력을 내놓을 의사가 전혀 없었다. 무타구치 렌야가 임팔 작전을 성공시키고 찬드라 보스를 활용하는 시점까지 가면 실론을 생각하겠지만 당시에는 이중 그 어느 것도 상상조차 한 사람이 없다. 연합함대 또한 전쟁연습을 해보았지만 결과가 너무 실망스러워서 실론 점령을 포기하였다. 결론적으로 일본 제국이 설령 미드웨이에서 승리한다고 가정해도 당시 제반 여건을 고려할 때 일본이 얻을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으며 되려 보급선을 늘리는 자충수를 두는 행위에 불과했을 것이라는 평이 우세하다. "
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동남아를 먹고 그 자원을 확보하려면 단순 군사점령 상태가 아니라 정상적인 행정상태가 가능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미국과 휴전을 해야죠
일본이 전쟁에서 진 이유는 거기까지가 한계였기 때문입니다 진주만에서 최대의 성공을 거두지 못해서가 아니라요
그러니까 최대한 미국과 협상을 하려고 했던 거구요
일본애들은 진주만 갖고 자꾸 행복회로를 전쟁은 한두번 잘싸웠다고 이기고 질 수 있는게 아닙니다 전쟁이 국제전 제한전이던 시절에는 그게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총력전의 시대에는 그냥 국력 차이입다 한두번의 전투는 단지 결과를 늦추거나 앞당기거나 할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