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 시장이 떠난 자리에 설왕설래가 많습니다. 장례식장 밖에서는 한 시민이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 여성을 지지한다며 1인 시위를 하고 있었고, 죽음은 안타깝지만 피해자를 모욕하고 모독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며 어느 활동가의 지적도 있었습니다. 또 어느 정당의 국회의원은 누군가 용기를 내어 문제를 제기했지만 수사받을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며 장례식을 비난하고 국회의원 이름을 걸고 조문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언론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슬픔에 대한 인간의 예의를 생각할 때 경중을 가리기는 쉽지 않은 것입니다. 감히 피해자의 고통을 논할 수 없으며 박원순 시장의 죽음 또한 조롱하거나 비난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고소인은 합당한 처벌을 바라며 고소장을 접수했을 것입니다. 가해자에게 고통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피해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형벌은 세상과 분리되고 경리 되는 것입니다. 그 끝은 죽음에 있습니다. 피해자 관점에서 자신의 고통을 세상에 외칠 기회를 상실했을지 모르지만, 그 피해에서 벗어날 기회는 보장해줘야 합니다. 이는 죽음으로 피해자의 고통을 뭉개버리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관점에서 벗어나 본질을 외면하고 현상에 집착한 나머지 정작 피해자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피해자의 인권을 주장하며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에 돌을 던지는 분들에게 묻습니다. 진정 피해자가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까? 아니면 본인의 가치관과 이익을 위해 피해자에게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박원순 시장에게 빚진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인권을 외치는 그 자리마저도 박원순 서울시장의 땀이 스며있습니다. 피해의 사실관계와 그 무게를 알 수 없는 지금,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인이 채 끝나지도 않은 지금, 당신은 누구를 위해 변론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소인 피고소인 으로 쓰는게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