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이라는 이름은 참 많은 생각을 들게 합니다.
1920년대에 일제 치하 태어난 식민지 조선 청년이 당시 가장 대우 받는 직업인 군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고 당시 제도권 식민지 교육을 받으면서 황국신민과 내선일체를 받아들였다는 것 까지는 열번 양보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원해서 갔는지 어땠는지는 몰라도 간도 특설대라고 만주에서 독립군 때려잡는 부대에 갑니다. 30년전에 망할만해서 망한 나라의 허울을 걸친 빨갱이들아나 마적을 잡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는 게릴라를 때려잡아 만주국 법 지키고 사는 "선량한" 민간인을 지킨다고 믿었겠죠. 거기까지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치자구요.
해방이 됐고 진실의 시간이 왔습니다. 압제자의 편이었고 같은 민족을 탄압했지만 역사는 승자의 편이니 자기가 잘못한게 아니라 역사가 자기를 잘못된 편으로 몰았다고 생각한 걸까요? 백선엽은 이종찬 장군이나 이한림 장군처럼 뼈저린 반성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쩔 수 없었다. 할 수 없었다라는 말 같지 않은 말만 합니다.
건국 작업에서 어쩔 수 없었지만 일본 정부조직에서 국가 운영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높게 쓰였습니다. 전적으로 이승만과 미군정의 잘못이라고 보는데 대중앞에서 참회서약과 충성맹세 같은건 했어야 했을텐데 들은바가 없습니다. 과거가 어찌됐건 새나라가 세워졌으니 모두 새국민이고 새롭게 시작하자라는 생각이었을까요? 어쨌든 백선엽도 이런 분위기에서 과거에 대한 사과 없이 1사단장이라는 중책을 맡습니다.
논란은 있지만 백선엽의 1사단은 북한의 주공이었던 서부전선에서 유일하게 건제를 유지하고 후퇴한 부대였고 경부 축선 후퇴에서 지연전을 펼친 기간 부대였고 낙동강 방어선의 최전선 기지였던 대구 전방의 다부동을 방어한 부대였습니다. 최초로 평양을 점령했고 현리에서 유재홍의 3군단이 붕괴될 때 측면을 막아 중공군이 더 내려오지 못하게 방어한 것도 그의 부대의 공입니다. 우리가 자유로운 대한민국에 사는데 이 사람의 공이 있는건 맞다고 봅니다.
그 다음이 참 애매합니다. 백선엽은 후방 안정화를 위해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을 맡았습니다. 전임자는 최덕신이라는 사람인데 이분도 참 기구한게 장개석 군대에 있다가 광복군을 거쳐서 대한민국 육군에 있다가 월북해서 지금은 북한 열사릉에 묻혀있는 사람입니다. 최덕신은 공비들과 싸운다면서 국민당 시절 팔로군과 싸운 경험으로 견벽청야 작전 즉 민간인 마을을 싹 밀어버리는 작전을 시행했습니다. 그 와중에 발생한게 거창양민 학살 사건입니다.
여하간 백선엽은 전임자가 망쳐놓은 후방을 나름 잘 안정화 시킵니다. 아군이나 민간인 피해도 최소로 줄이고요. 미군들도 잘 했다고 인정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여긴데 이걸 간도특설대 경험으로 게릴라를 잘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책에 썼다는 겁니다. 매우 기가 차는 노릇입니다.
그 이후는 외교관이나 전쟁사 연구원, 군 원로 등으로 지냈습니다. 박정희 그늘에서 크게 한 일은 없는거 같습니다. 친일 습성은 못 버렸는지 한국에는 못 낼 내용을 일본어로 일본에 책도 몇권 내고요...
솔직히 백선엽이라는 인물을 보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친일 청산을 왜 못했는가 알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민족국가를 세우기에는 경험도 부족했고 사람도 적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민족 반역자들에게 나라 운영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바로 도전해온 공산주의의에 맞서게 했고 그들은 공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죄과를 아무도 거론 못하게 됐습니다. 겨우 민주 정부에서야 친일 위원회가 생겨서 백선엽의 죄과를 거론하지만 조중동을 대표로 한 적폐수구들은 그래도 백선엽은 영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비난들을 듣고 과거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많은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잘못에는 침묵했습니다. 저는 백선엽이 생전에 뼈저린 사죄를 하고 독립운동가 단체등에 가서 참회의 말이라도 했으면 그래도 저 사람의 공을 인정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그의 죄에 대해 묻고 가려는 생전의 태도를 보면 그가 대한민국에 공이 있는 장군일수는 있어도 여전히 민족 앞에는 반역자이고 그저 자기 일만 충실히 하는 반성적 사고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는 국립 묘지에 묻혀서는 안 됩니다.
민간인을 지켰다는 주장에는 동의를 못하겠네요.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한 사실하나만으로 교수형감이죠.
남경대학살때 20-30만이 희생되었다면 삼광작전으로 희생된 민간인은 언론사에 따라서 200만에서 1천200만까지 집계가 된것으로 나옵니다.
잔학한 삼광작전의 전위부대가 간도특설대이고
그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복무한 인사가 백선엽입니다.
나중에라도 참회하고 그 많은 재산으로 독립군 후손들 지원이라도 했으면, 인정 많은 우리 민족 특성 상 지나간 과오는 봐줬을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백선엽이 부일매국노 짓을 했고 사죄도 없었다."도 사실입니다.
제가 평소하던 생각과 100프로 같네요 ㅎㅎ
최소한 반성이라도 해야 공과를 논해볼수 있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