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 혹은 작성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블러처레 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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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
문득, 00 간부님들과 함께 즐겼던 어떤 회식이 떠오릅니다.
제가 임관한지 얼마 안 되었을 즘이니 아마 2017년 겨울쯤으로 기억합니다.
부대 식구를 환송하는 자리이고, 요즘처럼 소란하던 때도 아니어서 늦은 시간까지 다들 즐겁게 회식을 즐겼습니다. 장소가 00이어서 회식을 마친 대부분의 간부님들은 아파트로 바로 들어가셨고, BOQ 인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택시를 잡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한 간부님께서 홀로 버스정류장으로 항하셨습니다.
“간부님, 버스 기다리시나요?”
“예예. 술 마실 거 같아서 일부러 차를 안 가지고 왔어요.”
그런데 마음이 아무래도 불안했습니다. 술도 드신데다 바닥이 미끄러워 혹시라도 사고가 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모셔다 드릴게요. 제 차로 이동하시죠”
간부님께서는 한사코 거절하셨지만, 억지로 끌다시피 제 차로 모셨고, 저는 지저분한 조수석을 부랴부랴 치워서 간부님을 태웠습니다.
밤 10시, 좁은 차 안에서 남자 단 둘이 만들어내는 공기는 참 어색했습니다. 당연하지요.
이 공기를 견디기 어려우셨는지 혹은 술기운이었는지 간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고마워요~”
“아유 뭘요. 먼 거리도 아닌데요.”
“아니, 그게 아니라~”
“예?”
“아니, 목사님 오신 뒤로 부대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예? 아하하하하”
갑작스런 칭찬에 민망해서 크게 웃었습니다.
“아니, 빈말이 아니라 진짜에요. 애들 표정도 달라지고, 부대 분위기가 밝아진 게 진짜 눈에 띄어요.”
“아유 감사합니다. 간부님도 같이 수고해주신 덕분이지요.”
그렇게 민망한 인사가 오가고 차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러다 말할듯 말듯한 숨소리가 5초 정도 들린 후 간부님이 천천히 입을 떼셨습니다.
“목사님.. 근데요~”
“네네”
“나 좀, 서운한 거 있어요.”
“아, 네네.”
잔뜩 긴장했습니다.
“아, 아니에요! 그냥 말 안할게요! 미안해요! 이거 괜히 말을 꺼낸 거 같어요!”
“아뇨아뇨아뇨!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말씀하세요!”
“아, 진짜 아니에요! 미안해요! 내 괜히 말했어!”
“아, 아닙니다! 말씀하십쇼! 괜찮아요!”
삽시간에 좁은 차 안이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저는 정말로 듣고 싶었습니다.
나에 대한 서운한 말을 내 등 뒤가 아닌 면전에서 들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이제 와서 안 듣기엔 너무 궁금하잖아요.
“간부님! 진짜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그러면 그...”
간부님은 몇 분은 더 뜸을 들이다 입을 여셨습니다.
“그 때 있잖아요. 저번에 우리 부서에 A상병 데리러 오셨을 때...”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습니다.
“그 때 왜 교회에서 인원 필요하다고 데려가도 되겠냐고 저한테 물어보셨을 때 있잖아요.”
“아, 네네!”
그제서야 기억이 났습니다.
“그럴 때... 그 때처럼 말씀 안 하시면 좋겠어요~”
당시 기억을 혼자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물품 구입 때문에 도와줄 병사가 한 명 필요했을 때였습니다. 이럴 땐 보통 교회 다니는 친구들 중에서 한 명을 골라 부서장님의 허락을 맡고 데려가곤 합니다.
제 입장에서야 도움이 필요한 일이지만, 어쨌건 영외로 외출할 기회기 때문에 교회 다니는 친구들은 자신을 데려가 주길 모두 간절히 바랍니다.
마침 꽤 오랜 기간 외출을 못했던 A상병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 상병을 데리러 부서에 갔습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A상병 있나요?”
“어? 필승!”
모두가 경례를 하는 그 사이에서 A상병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A상병을 데려가고 싶어 그 간부님께 여쭈었습니다.
“교회 물품 구입할 일이 있어서 인원 도움이 좀 필요한데 혹시 A상병 좀 데리고 가도 될까요?”
“아, 그러세요”
간부님께선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그래도 원래 일이 많은 부서인지라 마음이 죄송스러워서 넉살을 부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깨끗이 쓰고 돌려 놓겠습니다. 하하하”
간부님은 그 때의 그 말이 못내 마음에 남으셨던 것입니다.
“목사님, ‘깨끗이 쓰고 돌려 놓는다’ 그렇게 말씀 안 하시면 좋겠어요. 얘들 불쌍한 애들이잖아요. 여기 억지로 와서 그렇게 고생하는데, 우리가 말이라도 잘해줘야 되지 않겠나 싶어요.”
그리고 민망하셨는지 얼른 말을 맺으셨습니다.
“아유 미안해요 목사님! 뭐 대단하게 서운한 건 아니고 그냥 아쉬웠던 거지! 괜히 얘기했던 것 같애!”
저는 자꾸만 눈물이 올라, 창문을 열고 바람에 눈물을 말렸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간부님은 공병반장님 장00 준위님이십니다.
우리 부대에서 일이 적은 부서가 어디 있겠냐마는 공병반은 그 중에서도 손 꼽히게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일 내용에 명확한 한계가 없는 부서라 어지간히 골치 아픈 일은 모두 공병반이 떠안고, 여름, 겨울할 거 없이 야외 작업이 잦아 늘 고생하는 부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공병반은 특이하게 늘 분위기가 밝습니다.
제가 3년간 각 부서를 관찰했을 때, 대부분의 부서가 마치 주식 그래프처럼 분위기가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그에 반해 공병반은 삼성전자입니다. 3년 내내 사람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본적이 없고 때론 조증에 가까울 정도로 과하게 분위기가 밝기도 합니다. 그 이유가 참 신기했는데, 저는 공병반장님의 그 말에서 모든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반장님은 아이들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셨고, 그 감정이 아마 병사들에게도 전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공병반의 분위기를 밝게 해준 열쇠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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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많은 간부님들께서 병사들과의 관계 때문에 고민하고 계신 걸로 압니다.
바깥에서도 세대 차이 때문에 고생하는데 군대에서는 오죽할까요?
이 관계의 원인을 모두 간부님들께 돌리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외부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간부님들께 드릴 수 있는 팁이 있는 것 같아 한 가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 팁은
병사들을 ‘불쌍한 친구들’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관점이 모든 것을 바꾸어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실제로 병사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2018년 아시안게임을 굉장히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봤습니다.
바로 손흥민 선수의 군면제가 달려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커리어가 한창일 때에 군대 때문에 강제로 2년간 활동을 멈추게 되면, 그 2년이 너무 아깝거니와 그 이후에는 폼이 떨어져 예전 같은 기량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래서 손흥민의 군면제가 드디어 확정된 순간, 그 순간만큼은 미필이든 군필이든 현역이든 하나가 되어서 환호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부대에는 이미 100명의 손흥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흥민에게 그 2년이 중요하듯, 모양은 다를지라도 각자의 삶에선 모두 똑같이 중요한 시간이니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전공 지식을 쌓거나 일을 시작할 그 한창 무렵에 자신의 모든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자신이 하던 공부, 연습, 인간관계를 모두 2년간 끊어야만 하죠.
그래서 제 지인 중에서는 색소폰을 불다가 만지지 못하는 사이 소리가 달라져 악기를 팔고 전공을 그만둔 친구, MMA데뷔를 준비하다가 역시 2년간 운동 환경을 보장 받지 못해 꿈을 바꿔야했던 친구도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군대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도 잦은 일이라 웃음의 소재로 쓰이기도 하지만, 억지로 몸이 묶여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만 하는 일은 결코 가벼운 아픔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방은 신성한 의무가 아니냐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간부가 하기에는 병사들에겐 많이 미안합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강제 징병의 형태를 여전히 유지하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전쟁 중인 국가들도 강제 징병을 하는 곳은 많지 않고, 대개는 국방세와 같은 대체 방법이라도 마련해 두곤 합니다. 그리고 강제 징병을 하더라도 출퇴근, 혹은 주5일 근무의 형태를 띄는 곳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국제 노동 기구에서는 대한민국을 강제노동을 시행 중인 국가로 분류합니다. (분류된 국가는 총 7국가입니다. 우리나라, 중국, 브루나이, 마셜제도, 팔라우, 투발루, 통가)
거기에 병사들은 굉장히 박한 대우를 받으며 지냅니다. 이들이 바깥에서 어떠한 가치를 키운 사람이든, 어떤 경제력을 지녔는지 상관 없이 모두 최저임금의 50%도 안되는 급여를 받아야 하며, 당직근무, 초과근무를 하더라도 단 1원도 지급되지 않습니다. 물론 상점을 통해 휴가를 주긴하지만, 원래 그들에게 있던 자유를 빼앗은 뒤 자유를 조금씩 주는 것을 상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병사들에게 핸드폰도 지급되고, 휴가도 많이 늘어 예전보다 나아진 환경은 맞습니다만, 그들의 신세를 생각했을 때, 덜 나빠질 뿐, 좋아진다고 말해선 안된다고 봅니다.
간부님들도 결코 쉽지 않은 환경임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우리는 이곳을 꿈꾼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한 번도 이곳을 꿈 꿔 본적 없다는 사실입니다.
한 번도 바라본 적 없던 일을 강제로 하며,
이 일을 잘 한다 해도 내 인생과는 전혀 상관 없는데,
그 일을 잘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구박을 받으며,
2년을 보내야만 합니다.
어찌보면 우리 간부들이 누리고 있는 월급, 복지는 병사들이 국가로부터 홀대 받고 있는 값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녁마다 집에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잠듭니다. 그리고 부대일의 성과는 곧 우리의 생존권과 안정된 미래로 이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간부가 병사에게 일을 지시한다는 것은
병사 입장에선 굉장히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처사로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일을 시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구조가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쨌든 일은 주어졌고, 상황은 이런데 말입니다.
저는 공병반장님의 모습이 그 대답이라고 봅니다.
말했던 것처럼, 병사들에게는 그들의 일을 열심히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공병반 친구들은 늘 일에 앞장섭니다.
그것은 ‘누군가 나의 처지를 인정해주기 때문’입니다.
공병반장님의 인정이 사실 근무일수를 줄여주는 것도 아니고 일을 줄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병사들은 그 인정 하나가 너무 고마운 겁니다.
원래 사람이 그런 듯 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는 것.
우리는 모두 그거 하나에 울고 웃지 않나요?
병사들이 불쌍하고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우리 안에 공유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의 말에서, 행동에서, 눈빛에서 그들이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흘러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병사들과 우리의 사이를 녹여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꾸 병사들의 편만 든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사실 나중에 병사들을 따로 모아 놓을 텐데, 그 때는 그 친구들 앞에서 간부님들의 편 또한 꼭 들도록 하겠습니다.
간부님들의 삶 또한 정말로 위로합니다.
군인의 삶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실전이 사실상 없는 일이기에, 일의 성과를 누리기도 힘들고, 딱히 내가 발전하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일의 보람을 느끼기가 참 힘든 직업인 듯합니다.
그 와중에 잦은 이사, 야근, 당직 때문에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일은 너무나 많이 생기고, 그렇다고 수입이 번듯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 와중에 위 아래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해야 하니 소통이 쉬운 것도 아닙니다.
거기에 가끔씩 뉴스에서 이상한 소식이 들릴 때면, 여러 가지 상상에 마음이 힘들기도 합니다. 그것이 제가 관찰한 간부님들의 삶이었습니다.
이 일을 묵묵히 달려가고 있는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달려가고 있는 길에서 행복이 보이지 않을 때, 그 어두움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을 때, 저에게 연락 주시면 그 때는 온전히 목사로서 여러분들에게 달려가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00은 저에겐 행복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000
지구가 멀쩡히 돌아가는것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이렇게 누군가가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기때문이군요. ^^;;
혹시 유카리오틱님 본인께서 쓰신 글인가요??
유카리오틱님도 이 분 처럼 마음이 따뜻한 분이 되실것 같습니다!
군생활 안전하게 보내세요.
가자마자 교회가서 코코아 마시면서 군종병이 요즘 군대 좋아졌으니까 걱정하지말라던....
"아 좋아졌구나 ㅎㅎ"
그리고 나선 교회 앞에서 진압봉으로 매찜질을 당하면서 숙소로 갔었죠
벌써 30년 가까이 된 일이네요
군인들만보면 참 안타깝고 측은하고 그러네요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거겠죠...
저도그러리라 생각 합니다
부조리는 없어지고 조금씩이라도 인정할 수있는 사회 분위가 만들어진다면 조금은위로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오래전 일이지만 저 자신도 징병제도에 의해 군 복무를 하고 제대 한 이후에 예비군과 민방위를 거쳐 지금은 더 이상 국가에서 찾지 않는 사람이 되었지만요.
그 당시 기억을 되살려보면 물론 신성한 국방의 의무 따위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간부들이 나를 불쌍한 아이들로 봐준다면 그 시선은 거절했을 겁니다.
그냥 똑같은 사람으로 봐주고 직급과 직위가 다른 사람으로만 대해주면 되는거 아닌가 합니다.
중대장과 소대장의 직위가 다르고, 분대장과 분대원의 직위가 다르고, 병장과 이등병의 직위가 다르기 때문에 명령과 지시를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직위가 직위에게 공식적으로 내리는 것일 뿐이죠.
기본은 똑같이 동등한 사람이고 동등한 군인.
이거면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 나아가 동등한 군인이면 좋겠지만요 ㅎㅎ
내 자식이 군대에 가서 만난 지휘관/간부가 나같은 사람이어서, 내가 지금 병사들한테 하는 것처럼 내 자식을 대한다면 어떨까.
내 자식이 학교에 가서 만난 교사/교수가 나같은 사람이어서, 내가 제자/대학원생한테 하는 것처럼 내 자식을 대한다면 어떨까.
내 자식이 취직해서 만난 부서장/사장이 나같은 사람이어서, 내가 부서원/직원/아르바이트생에게 하는 것처럼 내 자식을 대한다면 어떨까.
한번씩 생각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