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의 종결에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와 소련군의 만주 침공 중 어디가 더 기여했는지에 대해서는 미국과 소련-현대 러시아의 주장이 다 달랐습니다. 두 나라 중 소련-현대 러시아야 “ㅋㅋㅋㅋ 너희 미국이 4년 동안 한 것보다 우리가 한 달 도 안 돼서 섬멸한 일본군이 더 많았으셈. ㅋㅋㅋ”라고 하고, 미국은 “우리가 4년 동안 다 할 동안 막판에 꼽사리낀 놈들이 말이 많다 -_-ㅗ”라는 자존심 대결의 모습을 보이건 했습니다.
그렇다면 당대 일본 대본영은 하루도 안 되어 쏟아진 두 개의 대파국 중 어느 쪽을 더 심각하게 여겼을까요?
일본계 미국인 역사학자 하세가와 쓰요시 박사는 나치 독일 패망 직후부터 소련의 만주침공에 이르는 3개월간의 소련-일본-미국간 외교상황의 전개를 다룬 저서 『종전의 설계자들』에서 흥미롭게도 소련의 기여를 더 고평가하는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하세가와 박사는 소련의 대일전 참전이 없었다면, 일본이 빨리 항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결론부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군사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소련의 중립에 의존하고 있었다. 외교적으로는 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소련의 알선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었다. 따라서 원폭투하가 계기가 된 것이 아니라, 소련이 전쟁에 참가했을 때 비로소 일본 위정자들은 포츠담선언을 수락하지 말지의 결정에 직면하게 됐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큰 도박이었다. 그 때문에 첩보부가 소련이 극동에서 군비 증강을 하고 있다고 경고했을 때 육군성 군무국은 이를 무시했던 것이고, 소련 참전 전날까지 소련의 중립 유지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군에게 소련이 가진 중요성은 소련 참전 뒤에도 여전히 소련과의 교섭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소련에 대해 선전포고하는 것을 거부한 사실로도 뒷받침된다. (중략) 따라서 소련군이 만주를 침공했을 대 군은 큰 충격을 받았다. 소련 참전은 군의 결호작전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고,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군의 주장에 설득력이 없어졌다. 바로 소련의 참전이 직접적인 계기가 돼 육군이 전쟁종결을 인정하게 됐던 것이다.”
-하세가와 쓰요시 (한승동 옮김), 『종전의 설계자들: 1945년 스탈린과 트루먼, 그리고 일본의 항복』 (메디치, 2019), p. 595.
하세가와 박사는 원폭투하만 있고 소련의 참전이 없었을 시를 가정했을 때, 11월 1일까지 완성될 예정이던 미국의 7번째 원폭을 다 맞는다 해도 사료를 통해 나타난 일본 대본영이 보여준 인식을 볼 때 일본이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존하는 사료들로 판단하건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 두 발만으로는 일본을 항복하게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막대한 파괴력에도 불구하고 원폭은 일본의 외교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런 변화를 가져다준 건 소련의 참전이었다. 소련 참전이 없었다면 일본은 많은 원폭이 복수의 도시에 투하되거나 원폭이 전술적으로 규수에 집중된 일본군에게 사용되지 않는 이상, 혹은 규수 상륙이 이뤄지거나 아니면 해상봉쇄와 격렬한 공습으로 전쟁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는 한 전쟁을 계속했을 것이다.” (598쪽)
결론 부분만 발췌하여 하세가와 박사가 어떤 사료들을 근거로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는지는 이 포스팅에서 밝히기 어렵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종전의 설계자들』을 『8월의 폭풍』과 함께 읽어 보심을 추천 드리는 바입니다.
개인적으론 리틀보이 팻맨의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속수무책 이였죠.
미국 물량도 미치겠는데 소련의 물량이라니....
유튜브에 당시 소련과 일본사이 일에 대한 다룬 다큐가 있습니다. 당시 소련과 일본간 외교밀서 ,일본대본영 회담등등 기밀문서를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왜 우리일까요.. 에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