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진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됐지요. 이윤도는 특공대원에게 그들을 찌르라고 강요하다가 스스로 칼을 꺼내더니 한 명씩 등을 찔렀습니다. 그들은 눈이 튀어나오며 꼬꾸라져 죽었습니다. 그때 약 80명이 희생됐는데 여자가 더 많았지요. 여자들 중에는 젖먹이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윤도는 젖먹이가 죽은 엄마 앞에서 바둥거리자 칼로 아기를 찔러 위로 치켜들며 위세를 보였습니다. 도평리 아기들이 그때 죽었지요. 그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꼴을 보니 며칠간 밥도 못 먹었습니다" (외도지서 특공대원 고치돈 증언)
서청 경찰 중에는 악명이 높던 삼양지서 주임 정용철이 있었는데, 정용철은 "하루에 한 명 이상 죽이지 않으면 밥맛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고 한다.
"서북청년회 출신 정 주임은 너무도 잔인했어요. 여자들 옷을 벗겨 더러운 행위를 하는 것도 다 봤습니다. 그리고 그 추운 겨울날 여자들의 옷을 벗긴 채 망루 위에 오랜 시간 앉혀 놓았습니다. 난 벌벌 떠는 그들이 불쌍해 코트를 벗어 덮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날이 밝으면 삼양지서 옆 밭에서 남자고 여자고 수십명씩 잡아다 죽였습니다. 차라리 총으로 쏘아 죽일 것이지, 그 마을 대동청년단원들에게 창으로 찌르도록 강요했습니다." (김제진 제주경찰학교 10기생 증언)
"정기보고를 하러 지서에 갔더니, 남편이 입산했다는 이유로 젊은 여자 한 명이 끌려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 주임은 왠일인지 총구를 난로 속에 넣고 있더군요. 그리고는 젊은 여자를 홀딱 벗겼어요. 임신한 상태라 배와 가슴이 나와 있었습니다. 정 주임은 시뻘겋게 달궈진 총구를 그녀의 몸 아래 속으로 찔러 넣었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정 주임은 그 짓을 하다가 지서 옆 밭에서 머리에 휘발유를 뿌려 태워 죽였습니다. 우리에게 시신 위로 흙을 덮으라고 했는데, 아직 덜 죽어있던 상태라 흙이 들썩들썩 했습니다." (고봉수 대한청년단 분대장 증언)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밥맛이 없다며 사람을 죽여야 밥을 먹던 경찰'은 삼양지서 정용철 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지금 봤던 증언이 과연 아프리카와 같은 나라에서 벌어진 일인지, 불과 65년전 대한민국 땅에서 일어난 일인지 구분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참담하다. 저런 만행을 저지른 자들은 아직도 제주 4.3으로 희생된 자들이 모두 빨갱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승만의 대통령 담화문에서조차 이들이 무고한 사람이었음을 증명하는 역설적인 표현이 나오기도 했다.
경찰은 민보단과 부인회원을 모이게 한 후 한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그 여인은 난산리 출신으로서 신풍리에 시집간 사람인데, 남편이 산에 오르자 자기 친척이 있는 우리 마을에 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만삭인 상태로 와서 아기를 낳았지요. 경찰은 그 여자를 발가벗긴 후 민보단원과 부인회원들에게 창으로 찌르라고 강요하다가 총으로 쏘았습니다. 생후 한 달도 안된 아기가 죽은 엄마 옆에서 바둥거리자 경찰은 아기 얼굴에 대고 또 한 발의 총을 쏘았습니다.
- 김원형(88세, 표선면 성읍리) 씨의 증언. 4·3은 말한다 5권, p88.
둘째 오빠가 행방불명돼 버리자 우리는 ‘산 폭도집안’으로 몰렸습니다. 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나까지도 토벌대에게 끌려가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당했습니다. 옷을 벗기고 거꾸로 매달아 고춧가루를 탄 물을 코와 입에 부어 댔습니다. 입을 다물면 쇠붙이로 이빨 사이를 억지로 벌리는 바람에 이가 다 부러졌습니다. … 그들이 어머니를 죽일 적에 언니와 나도 함께 끌려갔습니다. 토벌대는 우리에게 ‘어머니가 죽는 것을 잘 보라’고 하면서 총을 쏘았습니다.
- 정순희(64세, 서귀포시 강정동) 씨의 증언, 4·3은 말한다 5권, p194
당시 친정집에는 군인 서너명이 임시 주둔했는데 그 중에서 ‘최 상사’라는 놈이 동생을 죽였습니다. 동생은 참 예뻤지요. 그놈들은 처음에 처녀들을 몇 명 집합시켰다가, 동생이 제일 곱다고 생각했는지 덮쳤습니다. 그러나 맘대로 되지 않자 총을 쏜 겁니다. 동생은 배꼽 부근에 총을 맞아 창자가 다 나올 정도로 처참한 모습으로 숨졌습니다.
- 김종민, 「4ㆍ3 이후 50년」, 제주4ㆍ3연구(역사문제연구소ㆍ역사학연구소ㆍ제주4ㆍ3연구소ㆍ한국역사연구회 편), 역사비평사, 1999, p32~33
이북 출신 경찰관 노 순경은 한 처녀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그 처녀가 김용식(20)에게 시집을 갔다. 앙심을 품은 노 순경은 1949년 3월 22일 중산간 순찰 때, 마침 민보단원이던 김용식과 같은 조에 편성되자 그를 총살했다. 토벌대는 또 부녀자 겁탈을 밥먹듯 했다. 한 주민은 이를 ‘처녀토벌’이라고 말했다.
- 4·3은 말한다 5권, p36.
처음엔 ‘말 태우기’와 ‘뺨 때리기’가 유명했다. 토벌대는 주민들을 집결시킨 가운데, 시아버지를 엎드리게 하고 며느리를 그 위에 태워 빙빙 돌게 했다. 또 할아버지와 손자를 마주 세워놓고 서로 뺨을 때리도록 했다. 머뭇거리거나 살살 때리면 곧 무자비한 구타가 가해졌다. 심지어는 총살에 앞서 총살자 가족들을 앞에 세워놓고 자기 부모형제가 총에 맞아 쓰러질 때 만세를 부르고 박수를 치게 했다.
- 김종민. 같은 책, p33
난 ‘거슨새미오름’ 주변 천막에 보름을 갇혀 있으면서 고문을 많이 받았어요. 뒤로 몽둥이를 끼운 채 무릎을 꿇려놓고 위에서 마구 밟았습니다. 지금도 잘 걷지 못해요. 난 당시 임신 중이었습니다. 임신했다고 사정했지만 통하지 않았어요. 결국 유산됐습니다.
- 차경구(1997년 당시 78세, 조천읍 선흘리) 씨의 증언, 4·3은 말한다 4권, 전예원, 1997, p321
토벌대는 큼직한 장작으로 무지막지하게 때렸어. 그러다가 여자고 남자고 할 것 없이 모두 옷을 홀랑 벗겼지. 나는 당시 마흔한 살이었는데 체면이고 뭐고 가릴 여지가 있나. 그냥 옷을 벗으라 하니 벗을 수밖에. 토벌대는 옷을 벗긴 채 또 장작으로 매질을 했어. 토벌대는 그 일에도 싫증이 났던지, 처녀 한 명과 총각 한 명을 앞으로 불러내더니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짓을 하도록 강요했어. 인간들이 아니었지. 두 사람이 어쩔줄 몰라 머뭇거리자 또 매질이야. 그러다 날이 저물어가자 주민 4명을 끌고 가다가 총을 쏘아 버렸지.
- 좌봉(1995년 당시 88세, 한경면 산양리) 씨의 증언, 4·3은 말한다 3권, 전예원, 1995, p82
창고 안에는 여러 마을 사람들이 갇혔는데 무자비한 구타와 함께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벌어졌습니다. 남녀를 불러내 구타하면서 성교를 강요했고, 여자의 국부를 불로 지지기도 했습니다. 밤에는 그 썩는 냄새로 잠을 못 이룰 지경이었습니다. 난 그들이 제정신을 가진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홍경토(71세, 성산읍 고성리) 씨의 증언, 4·3은 말한다 5권, p66
군인과 서북청년단들이 처모와 사위를 대중이 모인 가운데서 정조를 맺게 하고 총살시켰다.
- 김종민, 같은 책, p33
주정공장 창고 부근에는 부녀자와 처녀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서청은 여자들을 겁탈한 후 고구마를 쑤셔대며 히히덕거리기도 했습니다.
- 4·3 당시 성산면 대동청년단장으로 제주도 전체에서 대표적인 우익인사 중 한 사람이었던 고성중(작고) 씨의 증언, 4·3은 말한다 5권,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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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북청년단 계승 주장한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 https://goo.gl/FqArx8
▶︎ 제주4.3의 진실 김익렬 친필 유고록 전문 : http://m.blog.daum.net/johagnes/1895656
▶︎ 제주4.3의 진실 김익렬 친필 유고록 요약 : http://www.jejusori.net/?mod=news&act=articleView&idxno=45236
▶︎ 제주4.3과 서북청년단 : http://news.egloos.com/1745374
▶︎ 이승만과 미국& 서북청년회 : https://namu.moe/w/서북청년회
교계에서 존경받고 있다는게
우리나라 개신교 정체가 뭔지를 보여주죠 ㅡ ㅡ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입니다
그 앞에 기존에 전혀 쓰이지 않던 '탈북단체'란 단어를 쓰는 것은 일종의 이미지 겹치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70여년전의 북한 지역에서 고향을 떠난 분들은 월남이라는 단어를 썼고, 탈북자는 최근 생긴단어니까요. 고려인 조선족 처럼 다른 의미의..
저는 제목만 보고 근래 물의를 빚는 탈북단체 중 서북청년단이란 이름을 쓰는 곳이 있는 줄 알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