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생네 가족이 이사했습니다. 아파트 2단지에서 3단지로의 길 하나 건너는 이사였지만, 임대 아파트를 벗어나 처음으로 갖게 되는 내 집이어서 동생과 매제는 세세하게 인테리어 계획을 세웠습니다. 업체 선정부터 자재 하나까지 지인들이 제공해준 정보와 인터넷으로 검색한 자료로 철저하게 무장하고 준비를 했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 내 마음과 같지 않아서 마음고생을 꽤 했지요.
잔뜩 궂은 날씨, 조금씩 떨어지는 빗방울이 바람에 춤을 추고 카멜레온 샤프심 냄새 같은 라일락 꽃향기가 멀리까지 배웅을 하던 4월의 일요일, 부모님과 함께 동생네 집에 방문했습니다. 집들이하는 날입니다. 전날 오전부터 어머니는 이런저런 음식 재료를 준비하느라 바빴는데, 다음날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엄마. 그거 서로 힘든 일이에요. 재료 준비하고 가서 음식 만드는 엄마도 힘들고, 다 끝난 뒤에 치우고 설거지하는 동생도 힘들고요. 거기다 잠이 많아서 휴일이면 한 시고, 두 시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하는 앤데, 일찍부터 서둘러가면 잠도 못 자고 더 피곤해할걸요. 차라리 배달 음식을 시켜 먹어요.”
아무리 친정 식구라지만, 식사 준비를 하는 데 부담이 있었던 동생도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부모님은 꽤 오래전부터 홈쇼핑 채널을 시청하며 외손주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피아노를 배우는 외손주들을 위한 전자 키보드, 코로나바이러스로 활동 영역이 줄어든 외손주들을 위한 에스 보드, 얼마간의 용돈……. 격한 환영을 받았던 건 용돈이었지만, 키보드를 계속 두드리며 연주하는 녀석들을 보며 부모님은 내내 흐뭇한 웃음을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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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곳곳에 닿은 자신들의 손길을 설명하는 동생 내외의 이야기를 듣는데, 작은 녀석이 자꾸만 제 손을 당겼습니다.
“외삼촌. 외삼초~오~온.”
“응? 왜?”
“일루 와봐요.”
“왜애~?”
“나랑 놀아요.”
“알았어. 근데 지금 엄마 아빠가 집 공사한 거 설명해 주는데 그거 듣고 놀면 안 될까?”
“내가 설명해 줄까요?”
“좋아!”
열 살의 조카는 제 손을 잡고 집안 곳곳을 데리고 다니며 한참을 이야기했습니다.
주로 여기는 숨바꼭질 하기에 좋고, 밤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곳은 이곳이고, 여기는 무서워서 낮에만 오고……, 이런 이야기였지요. 그리고는 자기 방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자. 이제 내가 설명해 줄게요.”
작은 블록으로 만든 괴물체에 붙인 이름과 공격력, 방어력, 회피력, 무기의 상성……, 이런 걸 10분 동안 쉬임 없이 설명하고는 “자, 어떤 거 고를래요?” 총총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어떤 게 좋을까?”
“잠시만요. 잠시만요.”
제가 자기 앞에 있는 블록을 집으려 하자, ‘잠시만요.’를 외치더니 이런저런 블록과 모형을 집어 자기 앞으로 가져갔습니다.
“이건 제 거고요. 이제 삼촌 골라요.”
큰 선심을 쓰는 듯한 말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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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중학교 입학 예정이지만, 아직까지 등교하지 못한 큰 조카는 이제 제가 어렵나 봅니다.
만날 때마다 제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인형 놀이를 하자던 녀석이 이젠 “……쏐어…여” 듣기도 어려운 작은 인사말을 툭 던지고 휴대폰에 얼굴을 푹 처박네요.
“대만이! 얼굴에 커튼을 걷으니 훨씬 낫구먼. 왜 그 이쁜 얼굴을 그동안 가리고 다녔어.”
“아! 삼촌. 인제 그만 좀 해. 요즘 누가 정대만을 알아.”
“우리 대만이는 알잖아.”
“그건 우리 엄마 때문이고!!”
거실 바닥을 뒹굴며, ‘하지 말라고오~’ 주문을 외우던 녀석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삼촌! 우리는 왜 외숙모가 없어?”
“삼촌이 결혼해야 외숙모가 있지.”
“모쏠이야?”
“그건 아니지!”
“그럼? 첫사랑은 누구야?”
“건 내가 잘 알지!!”
주방에서 차를 내리던 동생이 히히 웃으며 ‘저요!’를 외치는 초딩처럼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닥쳐!”
“뭐라고?”
“제발 그 입을 다물어 주세요.”
“으하하!! 외삼촌 첫사랑? 어느 바닷가 아가씨였지. 그때 엄마가 고등학생이었는데…….”
널찍한 테이블을 단숨에 뛰어넘어 동생의 입을 막았습니다. 저도 몰랐던 숨은 능력이 튀어나왔습니다. 와…, 내가 축지법을 쓸 수도 있구나!
“내가 잘못했다!!”
“뭐어얼?”
‘이불 킥 30년’. 언젠가 이 제목으로 극을 쓴다면…, 1화는 내 동생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연애 이야기! 결정했습니다.
저도 동생이 결혼해서 큰 조카가 올해 중학생이 됐어요. 차이점은 가족모임에서 제가 군기 반장이라는...-_-^
남의 조카는 이렇게 귀여운데, 울 조카랑은 왜 맨날 싸울까요.
앗! 동지군요!!
조카랑 아웅다웅한다는 건, 조카가 푸른밤파란달 님을 편하게 생각해서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만 보면 인형 놀이를 하자고 달려들던 큰 녀석이 어느 날 갑자기 저를 어려워하더니 슬금슬금 눈치 보니까, 막 서운하더라고요.
과분한 칭찬에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__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