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황허 문명이 싹틀 시기부터 주변 민족들을 집어삼키며 커왔습니다. 예를 들어 초나라만 해도 원래는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국가였죠.
비록 일부 민족들은 정 반대로 중국을 정복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 민족도 중국에 흡수되고 말았습니다. 산융부터 시작해 흉노, 선비, 거란, 만주족까지요.
하지만 중국이 기를 써도 삼키지 못한 국가가 4개 있습니다. 바로 한국, 몽골, 일본, 베트남이죠. 모두 마음만 먹으면 점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실제로 침략하거나 점령하기도 했고요. 그런데도 흡수 못했죠.
그 원인은 자체적인 문화 역량이 있었다는 겁니다. 한자가 대표적이죠. 흡수당한 민족이나 국가들은 한자를 무시하거나, 아니면 아예 한자에 빠져버립니다. 하지만 이 4개의 국가는 한자를 완벽하게 받아들이고 이용할 수 있었고, 그걸 응용하는 단계까지 이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자로 문자를 완전히 대체하는 게 아닌 자체적인 문자를 만들어버리죠.
그게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한자는 중국 문화 그 자체입니다. 그걸 깊게 이해하는 걸 넘어 거기에 동화되지 않고 자기화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류가 괜히 유행하는 게 아닙니다. 자체적인 역량이 있으니 세계적인 문화 트렌드를 만드는 겁니다.
출처는 동양사개론인데, 신채식 교수의 의견을 믿냐 안 믿냐는 알아서 판단할 일입니다.
일본은 굳이 정복해야하는 위치가 아니었지 않나 싶은데요.
특산물이 있던것도 아니고.. 금이 쏟아져 나오는 땅이었던것도 아니어서..
은이 나오는 시기 전, 중국이 강성할때는 유럽~아프리카쪽으로 뻗어나갔구요
제가 말을 잘못했네요.
중국이 잘나가던 시절에 일본은 굳이 정복해야하는 땅이 아니었다고 적었어야했던거 같습니다.
일본은 조선에서 연산군때 기술자를 빼내어가서 연은분리법을 적용하여 명나라 시기에 전세계의 은을 30%까지 공급하는 이와미광산을 개발하게 되고, 결국 국제통화인 이 은으로 근대화까지 이어지게 되죠.
무엇인가 잘못 알고 계신듯 하여 부연설명 했습니다.
다른것보다는 결국 들어가는 비용대비 결과가 안나오니 정복을 안(못)했을거라고 봐서요.
원글에서 인용된 책의 주장은 '문화'가 독립성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유지비(유지가능여부)를 포함한 비용대비 효과가
더 큰 부분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당시에 서양에서 흡수한 은이 이미 풍족해서 경제적인 목적으로 침략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구요.
그냥 딱 거기까지 입니다. 그이상 더 큰 땅을 유지할 능력이 없었던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에 지하자원 규모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중에 금도 어마어마 하다고 하죠.
중국의 욕심으로 보면 한반도야 말로 꿀인 곳이죠. 한반도를 점령하면 일단 일본 견제가 엄청 편해지고
중국 남쪽과 한반도 서쪽 사이에 있는 바다를 방어하기 좋아집니다.
무슨이야기를 하시는건가요?? ..음.. 그냥 뭘 말씀하시려고 하는지 감이 잘 안와서 여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지하자원 개발은, 지하자원에 대한 가치평가/발굴등을 해야 의미가 있을텐데
조선시대나 그 이전에 북한지역의 광산이 유명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한반도 점령해서 일본 견제하는건...
한반도를 1차적으로 잘 점령하고 유지하느냐가 먼저 해소되어야 나타나는 부수적인 이점인데요..
왜를 침략하기 위해서는 조선을 거쳐야 했는데 조선도 흡수통일이 아닌 한 국가로 인정하던 시기 아닌가요?
그리고 청나라가 생각보다 수군이 약한 것이 사실이었고...
결국 청나라 시대는 일본을 침략하여 얻는 이익보다 침략하기 위한 비용이 더 들어 갈 것 같아서 그냥 둬 버린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베트남이랑 전쟁해서는 거의 승리를 한 적이 없다고 듣긴했는데 베트남이 워낙 지역적으로 싸우는 것을 잘했다는 역사를 베트남 처자에게 배우긴 했는데...
그 베트남처자는 지금 뭐하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늘 중앙도서관 양지바른 계단에서 책 읽고 있어서 오며가며 같은 동양인이라 인사도 하고 친하게 지내기도 하고 같이 저녁도 먹고..
그 언어를 얼마나 혼용하는지 그 비율이 높아야 지배여부가 결정된것 같습니다.
문자? 보다는 자국어의 보급율이 높은나라가 많이 살아남고 중국에 의존도가 높은 지역이나 나라는 다들 자국어+중국어 2개국어가 많이 보급된 지역이어서 먹히기 쉬웠던 거겠죠
아니, 이거 꽤 유명해서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인데......계속 모르는 것처럼 말씀을 하시니 당황스럽네요.
결국 애초에 논의가... '중국'을 중심으로..
강성했던 시기에 4개국을 점령해서 유지하지 못했느냐...
이걸 각 나라가 '문화 역량'이 있었다고 보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는겁니다.
애초에 '중국'이 강성했던 시기들에 이 4개국을 점령하는게
특별한 이점이나 필요성이 있었는가?
(국가 확장 시점이어서 전쟁으로 국가를 확장해나간다던가..)
그리고 점령과 유지가 할 수있고 할만 했었는지가 관건이라고 보는건데,
다른 포인트로 질문을 던지시는 분들이 많네요.
우리나라도 정복 난이도에 비해 얻을게 별로 없어서였을것 같고요...
둘째로는 중국이 해양에 관심이 없어서고.
중국이 일찍부터 해양자원에 눈을 떴다면 월남이나 우리 둘 중의 하나는 기를 쓰고 먹었을겁니다.
수와 당이 고구려 먹으려고 국력 집중했다가 나라 망했습니다. 뭘 맘만 먹으면 먹어요?
수나라 전투병 100만. 보급병 200만. 총 300만 동원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한반도의 역량이 당대 중국보다 높아서 그랬습니다.
당이 신라와 연합해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고구려 영토를 먹으려 했지만, 신라에 털려서 포기해야 했고,
이후 발해가 먹어서 발해 멸망까지 손 놓고 있었는데요.
일단 신라에 털려서 그런게 아니라 중간에 티베트가 침공을 해와서 그쪽에 집중해야하기 때문에 한반도에 손 놓은겁니다....
당시 중원은 몽골 만주 티베트 다 다른 종족들이 나라세우고 따로 놀던 시기라 당시 국제관계 생각하지않으면 안됩니다...
물론 고구려도 나당연합에 무너졌지만 아랫쪽 신라가 아니었으면 멸망까지 가지는 않았겠죠.
문화니 뭐니 그딴건 수백년 지나면 자동 동화가 됩니다.
그냥 우리나라 땅이 먹을만한 가치가 없었던거에요.
한반도와 베트남 일본은 쉽게 정복할수 있는 나라들이 아닙니다.
모두 산지가 많고 방어가 쉬운 지리적 특성이 있어요.
먹어도 돈이 안되는..
그래서 중화문화권 유지하면 니들이 알아서 해라고 냅둔거지 말입니다
몽골은 몽골족의 중국 정복으로 중국사에 깊이 들어간 극소수 민족이라 흡수될 가능성 컸지만 공산종주국 소련의 영향으로 현재 독립국건립.
베트남은 현재 독립국이지만 오랫동안 중국지배받음.900년대에야 잠깐 독립,
독립못했어도 이상할 것 없는 역사로 봅니다.
한국은 먹을것없고 말 잘듣고 쳐들어가면 잘 싸우니 그냥 조공만 받으며 착한 오랑캐로 두자, 정도 이지 않을까요.
자체 문화가 절대적 요소는 아닌 것 같아요
먹을게 없어서 못 먹는것이라면 국토의 100%가 고원에 산지인 티벳은 왜 먹었을까요? 딱 능력이 거기까지이고, 심지어는 동화시킬 역량도 없었던 겁니다.
재미있는것은 한때 중국, 베트남, 우리나라가 자기를 구을수 있는 능력이 있는 단 3개의 나라였던 시대도 있었죠. (일본은 우리에게 받아간 것이고)
군대가 숫자만 가지고 안되는게, 조조가 70만 대군을 일으켜서도 양쯔강에서 모두 태워죽였죠. 보급 문제도 컸고,
같은 중국 내에서도 기후 문제로 대규모 군대를 운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베트남이나 한반도 북부는 더 심하죠.
일본이나 몽골은 말도 안되는 수준이구요.
그렇지 않았던 시기들에는 군사 보내서 갈궜구요. 사실 우리만 속국이 아니라 생각했을수도 있습니다.
먹은들 관리도 힘들고 나오는 것도 적고...
당시 중국입장에선 가성비가 최악인 대상이지 않았을까합니다.
우리나라의 지리적 여건이 그리 좋지 않았다는 점이 주요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를 위성사진으로만 본다면 전라도 일대의 평야 빼고는 모두 산간지대입니다.
당시의 지리적 여건은 곡식을 얼마나 거둬들일 수 있는지가 1순위 고려대상이였을 거구요.
당장 중국의 장강일대의 평야와 고구려가 다스렸었던 만주일대의 평야에서는 땅싸움 하느라 항상 치고박고했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힘들게 싸워 먹어봐야 별로 나올게 없었던 것이죠.
현실적으로 프랑스처럼 전체가 평야인 선택받은 땅이었다면 진작에 중국에 먹혔을 거라 봅니다.
소련은 북해가 얼어버려서 주군이 아프리카를 돌아오다가 기진맥진한 상태로 일본군과 싸우게되어버렸죠.
여로모로 지형적으로 혜택을 많이 받았던거죠.
몽고제국 때 우리나라가 육상으로 침략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왕조가 유지가 됐던건 줄을 잘 섰기 때문이기도 했죠. 이건 정말 선조들이 운이 좋았다고 봐야죠. 베트남, 일본은 해상으로 침략하기 어려웠던 것이 크구요.
근대 교통기관 발명 이전에 대규모 원정은 국력을 쥐어짜면 한두번 가능하겠지만, 점령 유지는 전근대 교통수단,,, 보급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중국이 근대 이전에 점령한 곳은 중국과 접경한 곳이었습니다.
한반도는 만주가 중국의 실질 영토가 아니었기에 점령 불가능.(만주는 항상 간접지배였습니다.) . 산업혁명 없이 역사가 진행된다고 가정할 때 한족이 만주를 자국 영토로 삼기 시작하고 대규모로 이주하기 시작한 청나라 이후 세월이 지났을 경우 한반도도 먹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베트남동 영남... 광동성이 본격 중국 직할 영토가 된 것, 밀림 지형 등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한국은 세종대왕때(약 1400년)까지 한자 문화권이였죠..
약 1600년동안의 기간입니다..
그래서 저 근거는 중국에 먹히지 않아서 독자적인 글과 문화를 만들 수 있던것이지..
독자적인 문자가 있어서 떼문이라는 것은 맞지가 않죠..
그리고 중국은 자신의 역량과 핵심 방어를 위한 곳 말고는 조공을 바치는 번국과 속국으로 구분하여 간접 지배하였습니다..
그렇게 이해하는게 더 맞는거 같네요.. ㅎㅎ
사기 흉노 열전 : https://cafe.naver.com/mhdn/160934
사기 남월 열전 : https://cafe.naver.com/mhdn/162277
사기 동월 열전 : https://cafe.naver.com/mhdn/162375
사기에 나온 이민족편 보시면 그냥 굳이 점령까지는 안했다... 가 맞는것이죠.. ㅎㅎ
산에 강에 바다에 사막에 밀림에 쳐들어가기도 어려운데 먹을 건 마땅히 없으니 흡수를 안했다 봐야합니다.
침략하고 점령하고 통치하는 비용에 비해서 전략적, 경제적 가치가 너무 떨어지는 거죠.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적당히 눈 깔을 줄 알았으니 동생이나 신하 취급하면서 지내는게 더 편했던 거죠.
어차피 중국 전체를 직할하지도 못하고 성으로 나눠서 지방관이 통치하는게 보통이었으니 다를 것도 없지 않았겠습니까?
한국과 일본은 굳이? 아니었을까 싶기는 하네요.
먼 조상이 만들어서 같이 나눠 쓰는 것이지요.
한자가 중국 문화 그 자체라는 말씀에는 동의하기 어렵네요.
몽골 : 지나치게 넓은 초원과 관리가 어려운 유목민족
베트남 : 너무 멀리있는 위치, 독립심 강한 민족
조선 : 좁은 땅크기, 점렴후 관리 어려움, 자원 없음
일본 : 바다건너, 점령하려면 조선부터 점령해야~
단편적인 증거(?)라 할 수 있는게 임란 때 조선에 발딛은 왜군들이 민가의 밥그릇이 대부분 도자기 밥그릇이고 숫가락과 젓가락이 쇠라는데 한번 놀랐고... 밥그릇의 크기가 자기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큰데 두번 놀랐다고 하죠. 그 당시만해도 일본에선 나무 밥그릇에 나무 숫가락과 젓가락을 썼었죠.
흔히 조선초기부터 일본이 조선을 앞섰다는 엉터리 식민사관을 주장하는 분들이 많은데... 답답할 뿐이죠.
일본이 통일된게 임란직전이잖아요....그나마도 일본 북부와 홋카이도는 그 당시에도 일본영토가 아니었구요.
일본이 국력이 그렇게 강했고 농업이 발전해 식량이 풍부했다면... 왜구들이 궂이 조선의 여기저기를 노략질할 이유가 없죠...
한국으로 쳐들어 온 중국민족은 대개 북방민족이었읍니다. 당도 선비족, 요나라 거란족, 금나라 여진족, 원나라 몽골족, 청나라 만주족 등... 지리적으로 한칸만 내려오면 되는 상황이었구요.
만약에 산둥반도와 태안반도가 연결이 되어있었다라면, 한국도 중국화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일본도 점령하기가 쉬웠겠죠.
전국토가 유린당한 건 대몽항쟁 때였는데, 고려 원종이 왕위계승 내전 때 다행히 쿠빌라이칸의 편에 붙어서, 쿠빌라이는 세조구제(고려의 자치를 어느정도 인정함)를 선언하여, 이후 원세조(쿠빌라이)의 유훈이라는 명분으로 또 부마국이라는 위치로써 원의 직할통치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일본은 한국도 점령못하는데 불가능하고요.
몽골은 내몽골은 이미 중국이 되어버렸구요. 외몽골은 소련의 영향권 내에 있었기에 몽골로 독립을 한 상태입니다. 타격을 입은거죠.
베트남에 대한 중국의 압박은 한무제때 남월을 멸망시켜 9군을 설치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점 밀어내려갔고 최대 침공은 몽골시기였지만, 쩐흥다오라는 영웅과 기후 토착질병 때문에 프랑스 침공 전까지는 난공불락이라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비슷한 경우로 아리안 족이 인도 아대륙을 점령할 때도 많이 밑으로는 못내려갔습니다. 열대 기후와 토착질병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인도 북부지방은 아리안이라 하얗고 인도 남부지방은 드라비다인이라 까맣죠.
그리고 자체문화 역량=한자흡수도 잘 이해가 안되고요..
중국에서 이 먼거리 와서 먹을거<먼거리 이민족 유지비용인거죠
금광이 있던 은광이 있던 산업혁명 이후처럼 총칼로 다스릴 수 있으면 될텐데 이 먼곳에 사람 보내 놓으면 반란 일어나고 원정가면 빈집 털리고.. 네이버 검색되는 시절 사람보다 고민은 더 많이 했을거라 봅니다
우리나라도 그걸 알고 가끔 조공 주면서 관리 비용을 떨어트리고 자기네 내정에만 신경쓰게 만들어 주면 정복올 명분이 줄고 비용이 늘죠
문화적 역량이 문제로 중국에 흡수가 안되었을지 생각해 보시면 답 나오실껍니다.
오히려 지리적 이점 때문에 흡수가 되지 않을수 있었고, 고유 문화가 번성할수 있었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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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평야 밑 산악지형을 보니 고구려 영토가 보이는 것 같네요.
지리적 영향으로 흡수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화적 역량을 키울 수 있었던 건지
다른 역량으로 흡수되지 않았기에 문화가 발전한 건지
쉽게 결론내기는 쉽지 않을 주제네요.
책은 어떻게 과정으로 결론을 도출했을 지 궁금합니다.
저렇게 하나로 귀결 짓는건 좀 그렇네요....
베트남 일본이 중국의 지리적으로 지배를 할수 있는 위치에 있느냐 하면
글쎄요 입니다;;;;
일본이 중국의 제대로된 침략이 있었나요;;;;;
정복왕 몽고가 왜 쌍성총관부를 뒀을까요? 삼별초한테 많이 데여서 그랬겠죠.
신미양요는 미국의 압승이었습니다.황현필 선생님 유튜브 강의 들어보세요.
이겼지만, 상투를 풀어헤친 짐승같이 달려드는 조선 군인들에게 공포감을 느껴서 이겼는데도 돌아갔다고 합니다.
즉, 이 민족을 정복하려면, 각오하고 덤벼야 하는데, 굳이 필요도 없는 나라를 그렇게까지나...?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 직후라서 당장 식민지 확대에 나서기에는 국내 사정이 매우 어수선했습니다....
아무리 제국주의 국가라도 기본적으로 국내를 우선했지 해외를 우선하지않았습니디.
아마 오크가 우르르 달려오는 공포를 느낀것 같습니다만. 이런것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본토도 어수선한데 몇척의 함대로 나름 근본이 있는 나라를 정복한다는건 당시 짱짱한 무기로 무장한 서양군으로도 무리수였습니다
당장 군 하나 움직이는데 딸려오는 보급품이 막대한데 보급이 떨어지기 전에 개항을 시켜야했는데 대원군이 오히려 뻗대버리니 하는 수 없이 돌아간겁니다
당시 항해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미국과 한반도의 거리는 항해해도 몇개월 단위로 소모되는게 기본이었습니다
거란만해도 이미 자체적인 문화적 역량을 지니고 자체적인 문자와 불교문화가 존재했고 만주족도 역시 만주어가 따로 있었고 심지어 선비족도 한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정체성이 매우 확실한 종족들이었습니다.
여러 종족들 못지않게 중원과 여러 교류가 많았던 반도의 예맥동이족들이 한화되지않은건 여러 국제적인 사정들이 겹쳤기 때문입니다
신라만 하더라도 기벌포 이후로 토번과의 전쟁 때문에 당 고종이 손을 떼서 평안도~전라도 등을 확보한채로 영역확대에 성공한거고 고려 조선이 여러 나라에 두들겨맞아도 나름 1000년 넘게 고유성을 유지한 것도 맞저항한것도 한 요인이 되기는 하지만 결국은 국제적인 사정들이 겹치고 겹친게 가장 큽니다....
한국 베트남 몽골은 기질에서 원인을 찾아야겠죠. 셋 모두 침략을 받거나 식민지로 있을 때격렬하게 저항한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