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이 제법 호응이 좋아
생각보다 꽤 단기간에 후속글을 작성한다면
지난번 글의 조회수와 추천수를 어느정도는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잔머리에 힘입어 무리해서 후속글을 작성하기로 결심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 1人입니다.
마음속으로 좋아요와 알람설정 해주신 여러분
복받으실거예요.
여러분의 추천과 리플은 여전히 글 작성의 유일한 원동력입니다.
지난번 글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했었죠.
#1. 침묵하자. 아 좀 제발. (말을 줄여봅시다.)
#2. 사실을 이야기하자. 평소보다 훨씬 더 신경써서
#3. 뉘앙스와 구체적 표현에 주의하자 (진술조서를 꼼꼼하게 읽고 수정하고 기억합시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4958486CLIEN
순서대로 보시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지도 모릅니다.
그럼 다음 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직업적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입니다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100%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며
개개 사건에 따라 적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을 절대로 100% 통용되는 이야기로
이해하셔서는 안되며, 가벼운 가이드라인 내지는 참고자료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4. 조사는 준비해서 임한다. (시간순서에 따라 사실관계를 꼼꼼하게 정리하고, 암기합시다.)
조사를 앞둔 사람들을 살펴보면
이상하게 글러먹은 공통점이 눈에 띄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자신이 당당하고 잘못이 없다고 생각할수록 현장에서 임기응변으로 해결하려 한다.’
는 겁니다.
네, 뭐 그 심리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닙니다.
내가 당당하고, 내가 잘못한게 없으니
현장에서 사실대로 이야기만 하면
이나라의 정의로운 수사기관에서는 나의 억울함을 이해하고
나를 무죄방면해주겠지. 나는 잘못한게 없으니까. 나는 당당하니까.
뭐 그런 심리겠죠.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좀 심하게 말하자면
정신 나간게 아닌가 심각하게 되묻고 싶습니다.
저 심리에는 심각하게 잘못된 부분이 다수 있습니다.
냉정하게 하나하나 짚어주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내가 잘못한게 없다‘는 당신의 생각이지, 법리적 판단이 아니다.
2. 당신은 높은확률로 현장에서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없다.
3. 수사기관은 (당신에게) 정의롭지도 않고, 당신의 억울함을 이해하려는 기관이 아니다.
이 내용만 자세히 써도 글 하나가 될만한 내용인지라
상세한 설명은 오늘은 생략하겠습니다.
아무튼,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사전에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를 받을 경우
높은 확률로 조사 중 헛소리를 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조사를 받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이 있습니다.
제가 제 의뢰인들에게 요구하는 내용이기도 한데요.
해당 사건의 사실관계에 대해 기억나는대로
시간순서대로 가능한 상세하게 ‘글로’정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해당 내용들을 입증 가능한
증거가 있는 내용과 없는 내용으로 분류하고,
그 중 내 개인적인 생각인 부분도 따로 분류해야 합니다.
'저는 기억력이 좋은데요?
‘굳이 그런거 안해도 있었던 일 정도는 매끄럽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라고 많은 분들이 자신감있게 말씀하십니다.
아니 왜 저를 웃기려고 그러세요.
자신감은 넣어두세요. 왜 인생을 자신감에 배팅합니까.
숙련된 전과자(...)조차도
조사를 받다보면 기억이 오락가락 하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더욱이 숙련되지도 않았고, 전과자도 아닌 사람은
수사기관의 무거운 분위기에 위축되고 긴장되다보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고,
애매하게 수사관들이 유도하는 말을 듣다보면
내 기억이 맞는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내 말이 점점 일치되지 않게 되죠.
생각보다 이런 경우는 매우 자주 상당히 많이 꽤 제법 발생합니다.
변호인으로 조사에 동석해서
의뢰인이 말하는 걸 듣다보면 황당할 때가 있습니다.
5초 전에 한 말하고 완전히 상반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술술해요. 술이라도 드신줄 -_-...
멀쩡한 제정신으로 취객같은 소리를 하는 의뢰인을 보면
저는 황급히 “그런 의도가 아니지요?” 라고 의뢰인을 다잡아야 합니다.
식은땀이 흐르죠.
이건 꽤 위험한 일이고,
여러분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니, 내 진술의 일관성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안에 대해 최대한 상세하게 시간순서대로 미리 정리해두고,
그걸 수차례 반복해서 숙지해야 합니다. 암기하세요.
이건 필요가 아닌 필수사항입니다.
제발 자신을 과신하지 마세요.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5. 딱 기억하자. 전가의 보도 ‘모르겠습니다.’
지난번 글에 스포일러성 댓글이 있어
빈정이 상했... 농담입니다.
아무튼, 결론만 먼저 딱 이야기하자면
‘모르겠습니다’, ‘잘 기억이 안납니다’라고 말하는 걸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 수사기관 조사는 도전골든벨이 아니에요.
모른다고 답변할 때 친구들에게 미안해 할 필요도 없고
수사기관이 원하는 답변을 했다고 장학금을 주지도 않습니다.
이상하게 사람들이 조사만 받기 시작하면
애매한 기억에 의존한 내용을
신비한 확신에 기반해 발언합니다.
수요일이었는지 목요일이었는지,
5시였는지 6시였는지,
530만원이었는지, 350만원이었는지,
뭐 물론 완벽하게 기억이 나고,
전혀 틀릴 가능성이 0인 경우야 그냥 말해도 별 문제 안되겠죠.
그런데 문제는 애매한 내용, 소위 ‘아리까리’한 내용까지도
대충 그럴 것 같다는 생각만 들면
시원하게, 아주그냥 쿨하게 대답을 해버린다는겁니다.
모른다고 하면 되는데 말이죠.
제발 애매하면 ‘모른다’라고 말하세요.
그래도 됩니다. 아니 그래야 됩니다.
일단 조서에 한 번 기재된 내용은 그걸 뒤집기도 어렵고
뒤집어도 이미 진술의 신빙성은 확 떨어집니다.
그걸 나중에 ‘아 그때는 제가 좀 착각한 거 같아요’ 라고 법정에서 말해봐야
‘응 그래 애쓴다’라는 반응만 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겠죠.
반면, 현장에서 애매하니 잘 기억이 안난다.
혹은 모른다고 대답했다가. 귀가 후 명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해서 추후 서면을 통해 해당 사실관계가 사실은 이랬었다.
라는 것을 진술하면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원칙적으로 특정인의 범죄사실을 입증할 책임은
수사기관에게 있습니다.
뭐 물론, 증거자료가 매우 명백한 사안에 대해서야 입증이 별거 아니지만
증거가 좀 애매한 사안 같은 경우 수사기관에서는
증거를 찾는 것이 수월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자백을 받으려고 노력을 하는 거고,
자백이 없다면 진술에서 혐의사실을 밝혀내려고 노력을 하죠.
그런데 여기서 대상이
‘잘 모르겠습니다.’, ‘잘 기억이 안납니다.’라고 해버리면
솔직히 뭘 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죠.
이야기가 살짝 다르긴 합니다만
그래서 청문회장만 가면 ‘기억이 안납니다’
라고 다들 대답하는 겁니다. 모른다는데 어쩌겠어요.
속은 부글부글하지만 일단 둬야죠.
다만, 그렇다고 해서 죄다 모릅니다. 기억 안 납니다 해버리면
수사기관이 열받아서 한번 해보자 덤비면 복잡해지니
애매하고 좀 모르겠다 싶은 부분에 한정해서
부담없이 ‘모릅니다’, ‘기억이 안납니다.’ 라고 말하자는 겁니다.
그래도 됩니다. 아니 그래야 됩니다.
#6. 언제나 말보다 글이 더 조리있고 일관성이 있다.
모월모일.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고소를 했답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하네요.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조금도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당당하게 출석요구에 응합니다.
오라는 시간에 맞춰 수사기관에 가보니 분위기가
생각보다 강압적이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지만
어쨌든 나는 당당하니 뭐 한번 덤벼보라는 마인드로 조사에 응합니다.
그리고
꽤 긴 시간이 지났지만, 순식간처럼 느껴진
조사가 마무리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면 여러분은 집에 돌아와 있습니다.
곰곰히 떠올려보니 질문에 나름 조리 있고 논리적으로 답변하고 온 것 같습니다.
워낙 설득력 있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니 수사기관에서도 잘 들어준 것 같네요.
자 이제 마음편히 지내면 될까요?
아닙니다.
수사기관에서 작성하는 진술조서는
여러분이 조사받은 내용을 녹취록처럼 받아 적는 문서가 아닙니다.
조사과정에서 실제로 한 말이 누락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고,
하지 않은 말이 포함되기도 하고,
진술의 뉘앙스가 묘하게 다르게 적혀있기도 합니다.
그게 유도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지요.
그래서 조서는 제발 꼼꼼히 읽고 수정하라고 말씀드렸었지요.
하지만,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해도 수사기관의 조사는 생각보다 무섭습니다.
그러다보니 무슨 말을 했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 경우도 있고,
자꾸 수정해달라는 요청에 수사관이 눈에서 빔을 쏘는 것 같아
적당히 사인하고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제대로 질문하지 않아서 조서에 그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경우도 있죠.
그러니 이제부터는 글을 쓰면 됩니다.
수사기관에서는 말로 다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잊기전에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은 꼭 서면으로(글로 써서) 제출하는겁니다.
이번에는 우편으로 제출해도 됩니다. 간단하죠.
변호인을 선임했다면 더욱 좋습니다. 변호인에게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서 의견서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하시면 됩니다.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다고 해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정해진 양식이 있는것도 아니고, 제목이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제목은 적당히 진술서 내지는 의견서 정도로 해서 왜 스스로가 무죄인지에 대하여
최대한 읽기 편하고 논리적으로 적어서 제출하면 됩니다. 형식에 좀 민감하신 분들은
인터넷에서 형사사건 의견서 양식을 다운받아서 활용하셔도 좋겠지요.
아무리 조리있게 말하는 사람도, 글보다 조리있게 말할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사기관에서 여러분이 한 말은 누락될 수 있지만
여러분이 제출한 서류는 누락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조사과정에서 약간 실수한 내용이 있고,
그게 조서에 적혔다고 하더라도, 조사를 받고 오래 지나지 않아 의견서로 정정하면
그나마 설득력이 좀 더 있겠죠.
무엇보다 제출한 글에서 실수가 발생할 확률은
수사기관에서 말로 진술하다가 실수할 확률보다 압도적으로 낮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언변에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말로 모든 걸 끝내려고 하지 마시고
가능하면 하고싶은 말은 꼭 글로 정리해서 제출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저는 글을 잘 못쓰는데요?’
괜찮습니다. 신춘문예나 백일장을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상주는거 아니에요.
말하고자 하는 취지만 제대로 전달되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높은 확률로, 글을 잘 못쓰는데 말은 잘 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그렇다면 말도 잘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거예요.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조사를 받기 이전에 관련 내용을 미리
의견서로 정리해서 제출해버리는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 경우 수사기관의 조사 방향을 유도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고
이미 의견서로 정리해서 제출한 내용 중심으로 진술하면
진술의 일관성을 확보하는데 아무래도 더 도움이 되겠죠.
그러니 말보다는 글로 해결합시다.
늘 그게 더 옳습니다.
대충 절반보다 좀 더 왔네요.
일단 항목으로 나누기는 했습니다만, 서로 연관성이 있는 내용들도 꽤 되고,
과거 제가 썼던 글과 큰 맥락이 동일해서 어느정도 따온 부분도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사실 그보다는 읽으면서 좀 신선하거나 재미있다는 느낌을 가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직업적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입니다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100%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며
개개 사건에 따라 적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을 절대로 100% 통용되는 이야기로
이해하셔서는 안되며, 가벼운 가이드라인 내지는 참고자료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것도 신선한 경험이네요. =_=..
다음 무료!! DLC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Vollago
예전에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서에 간 적이 있었는데 뭔가 유도하는 듯한 수사관의 질문이 계속되길래 "제가 그렇게 대답해드려야 하는건가요?" 하고 물었더니 멋적게 그런건 아니라고 하더군요.
이 글 읽고 보니 만약 제가 피의자고 상대가 집요하게 한쪽으로 몰아간다면 낚일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이 훨씬 조리있고 하고 싶은 말에 대해 실수 없이 전달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참고인으로 같이 간 형이 어느새 피의자처럼 말하고 있더라고요 ㄷㄷㄷ
형 왜 그래요? 정신 나갔어요? 하니까
정신차리더라고요 ㄷㄷㄷ
감사합니다
조서를 만들기가 목적인지가 헷갈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본거주중인데 층간소음으로 아랫집에서 법적으로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통보를 받아 고민이 많은 상황에 이 글을 보았습니다.
이전 글도 확인해서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에요...^^
법대로 사시는 분들은 형사사건 근처에도 갈 일이 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살다보면 어떤 일에 휘말릴지 모르니 한번쯤 읽어 두시면 분명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근데.. 클량 다크모드에서 보는데.. 글 색깔 때문에 글을 보기 힘드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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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