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되면 함께 세계일주를 합시다.”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열심히 일해서 마흔이 되면 함께 세계 여행을 하자 다짐하고 우린 결혼을 했다.
하지만 마흔이 되어서도 우린 떠나지 못했다.
현실의 벽.
손에 아무것도 없었을 맨주먹 시절에는 중년이 되어 때가 되면 그저 쉽게 버리고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사회 생활을 하며 조금씩 이루어놓은 것들이 생기니, 이 것들을 차마 버리고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세계일주를 하고 다시 돌아와 또 다른 시작을 할 두려움과 지금 내 손에 쥔 것을 내려놓기 싫은 욕심.
몇 년만 더..
다시 몇 년만 더..
또 다시 미루고, 또 다시 꿈을 꾸고.
몇 년을 더 보냈다.
그리고 어느 밤, 적도 아래 어느 나라에서 과로로 쓰러져 응급실에 누운 날.
아내를 알게 된 지 20년만에 우린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계획을 실행키로 마음먹었다.
세계일주.
오랜 이동에 피곤하고 힘든 날도 있었지만, 아내와의 세계여행에 하루하루가 행복했고,
출발한 지 1년이 되었을 즈음 우리는 남미 최남단 도시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아르헨티나)에 도착했다.
여행 출발 전부터 준비해왔던 남극으로 향하는 배가 출발하는 장소였다.
남미 파타고니아 지역의 티에라 델 푸에고(‘불의 땅’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한 배는
3일동안 지구에서 가장 파도가 험하다는 드레이크 해협을 건넌 후에 비로소 지구의 7번째 대륙 ‘남극’에 도달했다.
인터넷, 미디어와 단절된 몇 주간의 남극 탐험에 우리는 환호했고 자연과 인간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보냈지만,
남극으로 떠나온 지 3주차에 접어들 무렵 바깥 세상에서 들려온 소식은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출발 전까지만 해도, 중국과 한국의 특정도시에서만 발생하던 전염병(COVID-19)이
불과 몇 주 만에 전 세계 모든 대륙으로 퍼졌고, 특히 유럽의 몇몇 국가들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전파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 날 저녁,
배에 탄 선원과 승객들은 최대한 빨리 남미 대륙으로 되돌아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배의 비상 엔진까지 가동하여 최대 속력을 냈다. 이틀간 지구상에서 가장 파도가 험난하다는 지역을 다시 건넜다.
이윽고 이틀만 더 가면 배의 도착 예정지인 아르헨티나의 도시 ‘푸에르토 마드린’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도시는 우리 배를 받아주지 않았다.
내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다시 확인해도 결과는 같았다.
입항 거절.
세상은 변해있었다.
또 다시 3일간 그로부터 1,500km 떨어진 아르헨티나 최대 항구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뱃머리를 돌려 이동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또 다시 입항 거절.
아르헨티나에서 우루과이로 갔다.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Montevideo) 항구의 문을 두드렸지만, 이번에도
입.항.거.절.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가봐야 의미가 없었다.
우리의 배는 우루과이 앞바다에 그냥 떠 있었다.
그렇게 또 다시 며칠이 지났다.
둥근 지구상에서 내 조국 대한민국과 정확하게 대척점에 위치한 곳.
지구상에서 대한민국과 가장 멀리 떨어진 도시의 앞바다에 우리 배는 고립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 배 옆을 지나던 큰 배에서 우리에게 식량을 지원해주었다.
우루과이 정부는 우리 배의 입항을 허락해주지는 않았지만,
며칠간의 대화 끝에 우리가 ‘본국으로 돌아가는 항공 티켓’을 구하면 배에서 공항까지 가는 길을 허락해주겠다고 했다.
배를 항구 가까이 대면 우루과이 통신사의 기지국 신호를 잡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영사관(아르헨티나, 우루과이)과 친구에게 소식을 알릴 수 있었다.
친구들이 귀국 항공편 검색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이 마저도 대부분은 구매 후 운항이 취소되고 있었다.
운항 취소 후 다른 티켓 구매. 다시 취소, 또 구매, 다시 반복(카드값ㅠㅠ).
가까스로 (정상 운행하는) 티켓을 구했고, 배에서 내려 공항으로 가는 날.
같이 하선하는 10여명과 함께 우리도 짐을 챙겨 하선을 기다렸다.
우루과이의 담당자는 티켓 확인 후 한 명씩 하선을 허락해주다가, 우리에게 잠시 대기하라고 했다.
10여분 후,
우리만 제외된 채 10여명을 태운 버스는 공항으로 떠났다.
전해들은 바로는 우리의 환승 항공티켓 중 하나가 문제가 있어 하선이 거절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 날 비행기 출도착을 조회해 본 결과, 우리가 타려했던 모든 항공은 모두 정상적으로 운항을 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당시 항공사와 우루과이 담당자 간에 정확하지 않은 의사소통으로 발생한 사고였다
(운항 상태가 Not confirmed로 표기된 것을 우루과이 담당자가 cancelled 라고 받아들임).
그리고 배에서 내리지 못 한 바로 다음 날.
우리 배가 떠있던 곳의 주변 국가들은(아르헨티나, 우루과이) 공식적으로 자국내 공항의 일반 항공기의 운항마저 막아버렸다.
결국 우리는 배에서 내릴 수도, 육지로 갈 수도 그리고 하늘길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배에 우리의 소식이 퍼졌다.
티켓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정상 티켓으로도 빠져나가지 못 한 부부.
갑판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손잡고 눈물 흘리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멀리 계시다가도 우리를 보면 눈물을 못 참고 우시는 분들도 계셨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을 그 분들의 반응을 통해 보고 있었다.
배에서 고립되어 우루과이의 한국 영사님에게 연락했을 때부터 영사님은 거의 매일 우리 배 근처의 항구로 나오셨다.
배에서 내릴 수 없는 우리 두 사람을 향해 영사님은 멀리서 손을 흔드시며 안부를 전하셨고,
어떤 날에는 연락편을 통해 배 안으로 위생용품을, 또 어떤 날에는 한국 과자를 넣어 주셨다.
배에는 미국, 캐나다, 호주를 비롯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영사관에서 배에 찾아와서 매일 안부를 확인하는 것은 우리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더욱 절박해졌다.
여러 나라(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호주)에 계신 대한민국 영사님들은 힘을 합치셨다.
때마침 남미 갇힌 호주/뉴질랜드 국민들을 위한 시드니 행 호주 전세기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사님들은 재빨리 호주 측에 연락을 취하셨다. 그리고 시드니 행 호주 전세기에 특별히 한국인 두 명의 탑승을 허락 받아 주셨다.
또한 코로나 사태로 이미 외국인 출입을 막은 호주 이민청에 우리를 위해 예외적으로 비자 면제 처리까지 승인 받아주셨다.
적어도 남미는 빠져나갈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호주에 간다해도 한국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코로나 사태로 한국-시드니 일반 운항이 끊겼기 때문이었다.
친구의 연락이 왔다.
우리 때문에 며칠째 밤을 새가며 항공권을 검색하고, 공항 상황을 수시로 체크하는 친구였다.
한국-시드니 일반 운항은 끊겼지만 (공항 출도착 리스트를 살펴보면) 무언가 한국으로 가는 항공이 (이번 달에) 있기는 하다고 했다.
일반적인 정기 운항편이 아닌것은 확실한데, 어떤 종류의 항공인지는 모르겠다고.
우루과이 영사님에게 이 내용을 알렸다.
다음 날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각에 영사님에게 연락이 왔다.
“시드니에서 한국으로 가는 특별기가 있답니다.”
특별기의 좌석까지 확보해보겠다고 하셨다.
결국 호주에서 한국으로 가는 하늘길 마저 확보했다.
불가능할 것만 같던 귀국의 길이 열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거쳐가야 하는 공항(우루과이, 칠레, 호주)마다 해당 국가의 대한민국 영사님들에게 미리 연락을 취하여, 귀국 중에 혹시 생길지 모를 문제에도 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길었던 남극 탐험과 배 위에서의 고립 생활을 마치고 배에서 하선을 결정받은 날.
배에서 내리기 전, 우리의 여권을 검사한 우루과이 정부 담당자는 우리를 보며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우리가 배 위에서 지내는 동안 멀리서 손 흔들며 안부를 물어봐 주시고, 필요한 물건을 배에 넣어 주셨었던, 그리고 개인으로 써는 해결할 수 없던 절박한 상황에 모든 방법을 동원해 우리를 구출해 주신 대한민국 외교부 영사님이 뒤에서 웃고 계셨다.
반가운 마음은 금새 눈물로.
지구의 끝자락 남극에서 아르헨티나로, 우루과이로, 칠레로, 호주로 그리고 대한민국까지.
우리는 돌아오는 길목마다 그 곳의 영사님들과 연락을 주고 받았으며,
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며칠 밤을 새가며 도와준 친구들과
지옥까지도 와서 도와줄 것 같은 대한민국 외교부!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만세입니다ㅠㅠ
이게 나라죠!
/Vollago
in ClienKit :D
그동안 여행관련 영사관의 대처는 참 화나는일이 많은데 최근의 소식들은 좋은 소식이 많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 하나 만드셨네요.
무사귀한 축하드립니다.ㅠㅠ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humor&no=383882&ismobile
이런글 죠습니다~ \(ㅇㅁㅇ)/
고생하셨고 우리나라 외교부 감사합니다 ㅠㅠ
대한민국 만세 외교부 만세 영사관님들 만세 ㅠㅠㅠㅠ
여독 푸시고 다음에는 세계여행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요. ^^
다행입니다
대한민국 외교부 정말 고맙습니다
불과 10여년전만 해도, 해외에서 천재지변이나 소요사태 등으로 고립되면,
알아서 대사관/영사관이 있는 도시까지 오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세상에. 엄청나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마음 편히 쉬세요 😂
이런건 어디 좀 퍼뜨리시죠
(쪽지함 한번만 확인 부탁드릴게요~)
읽는 내내 저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울컥하네요 ㅎㅎ
프리킴푸님의 상황에 마음 졸이며 읽다가 영사님들의 노력에 제가 다 감사하네요.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어서오세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결국 당연한 일을 했을뿐인데, 이 국가는 감동을 주고, 국민들은 감동을 받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