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노트르담대성당. 중세 성당 중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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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3년 짓기 시작해서 1345년 완공된 성당으로, 짓는 데 무려 182년이나 걸렸습니다. 당시 대성당들은 대부분 짓는 데 상당히 오래걸렸습니다. 평균적으로 4세대에 걸친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건축을 지시한 사람도, 첫삽을 뜬 사람도, 조각상을 깎은 예술가도 본인들이 성당이 완공되는 걸 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엄청난 집념과 노력으로 성당을 짓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기법과 감각을 이용해 로마시대의 미적 감각과는 다른 독특한 형태와 자태를 살려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습니다. 이 새로운 예술적 사조를 오늘날 "고딕양식"이라고 부르는데 - 사실 고딕양식이라는 말 자체가 르네상스 이후에 붙여진 말입니다 - 당시에는 "프랑크스타일(Opus Francigenum)"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럼 이 무지막지한 건축물은 도대체 누가, 왜, 어떻게 지은것일까요?
학자들은 먼저 당시 유럽이 일종의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지구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농사가 잘되었고,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파리 주변을 중심으로 경제가 번영하고 있었는데, 생활이 비교적 풍족해진 왕과 주교들이 왕국과 교회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새로운 건축사업을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경우 프랑스왕 루이7세와 파리대주교 모리스 드 쉴리가 지시하여 건립된 건물입니다. 물론 이 두 명 모두 이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했죠.
새로운 건축기법과 미적감각을 도입한 새로운 성당은 아주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파리 주변부를 중심으로 하여 들불처럼 번지면서 저 멀리 스칸디나비아에서까지 유행하게 됩니다. 유럽의 주요도시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성당을 짓기 시작했고, 당시 미의 기준은 파리와 그 주변부의 대성당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의 왕국들과 영주들은 전쟁을 통해서만 경쟁한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아름답고 숭고한 건물을 짓느냐를 두고 경쟁한 것입니다. 화려하고 거대한 성당을 통해 도시의 영주나 국왕은 본인들이 그만큼 신실하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뽐낼 수 있었고, 또 성당이 그 도시의 가장 중요한 트레이드마크가 되면서 대외적으로도 "나는 이만큼 대단한 왕 또는 영주라는 것"을 뽐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교하면서도 거대하고, 화려하면서도 엄숙한 건물을 짓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그저 의지만 가지고는 되는 일이 아니고, 숙련된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이 성당을 짓는 주역들은 이른바 "석공조합(Mason)"이었습니다. 이들은 당대 최고의 전문직으로 아주 폐쇄적이면서 높은 보수를 받는 집단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중세 당시에 대부분의 직군은 "조합(길드)"으로 조직되어 있었는데, 수많은 "조합" 중에서도 석공조합이 가장 은밀하고 폐쇄적인 집단이었다고 합니다. 후일 음모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프리메이슨"이라고 하는 조직이 이 석공단체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하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었고, 미적감각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자재의 질과 내구도 등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수학자이자, 지질학자, 광물학자이자 미술가였습니다.
노트르담대성당을 착공될 무렵, 파리가 거대한 대성당을 짓겠다고 하자 유럽전역의 석공조합이 파리로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네덜란드 심지어 잉글랜드 출신들도 몰려들었다고 하니, 어떤 학자는 노트르담은 프랑스만의 유산이 아니라 가히 "유럽의 유산"이라고 불릴만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물론 건축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공사, 가령을 땅을 파고 자재를 운반하고 하는 일은 전문직이 아니라 일반 노동자이 도맡았고, 이들은 대부분 현지의 주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무급으로 일한 것이 아니라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였습니다. 사실 중세시대 성당이 짓는데 그렇게 오래 걸렸던 이유는 건축의 난이도도 난이도지만, 이들에게 지급할 돈이 항상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공사가 매번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재원을 확보할 때마다 공사를 재개하고는 했죠.
성당을 짓기 위한 재원은 일차적으로는 도시 대주교의 사재출연 및 성당에서 매주 거두어들이는 헌금이었습니다. 물론 유력 귀족들의 기부도 있었고, 왕의 기부도 있었습니다. 이 돈으로 가장 높은 보수를 챙기는 건 역시 석공들의 몫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궁금한 건 어떻게 한 사업이 이렇게 오랬동안 끊기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는가에 관한 의문입니다.
사업기간이 길어지고, 책임자가 바뀌고 작업자가 바뀌고 또 그 기간 동안의 정치적 다툼 등이 발생하면서 사업이 헝클어지거나 무산되거나 아니면 완전히 이상하게 바뀔 수 있습니다. 책임지가 바뀌면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려고 한다거나, 또는 왕이 바뀌면 전임 왕의 계획을 수정하거나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죠. 또는 우리가 사회생활하면서도 종종 겪듯이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 정치적 알력이나 다툼이 발생하면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그런데 중세성당의 사업은 나름 굉장히 일관적인 모습으로 마지막까지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관성이 바로 집념 혹은 기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담당 건설자가 장해지면 그는 완벽한 전권을 부여받습니다.
건설 때는 건설을 하고
비수기 때는 돈을 걷으러 다니며
후계자를 키웁니다.
후계자와 함께 다니다 죽으면 물려받는 거죠.
또하나는 의외로 모듈식 건축물이란 겁니다.
보통 건축물에 가장 중요한 앞면과 홀 성가대석을 먼저 만들고
그걸 토대로 다른 벽면을 주요 가문에 팔아 건설비를 채우는 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대성당 벽에는 왕가의 가족 제단이나 가문의 유명인 제대가 있죠)
따라서 나중에 지어지는 벽들이나 지붕은 예술적 영역이 아닌 철저히 기능적이고 홍보적인 측면에서 만들어 집니다.
(이미 완성된 것과 최대한 똑같은 벽에 후원자님 제대를 만들어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