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살던 동네에 작은 가게가 있었는데, 놀다가 목말라서 언제든 그 가게에 가면 주인 할머니가 대접에 시원한 냉수 한잔 주시던게 생각나네요
우율
IP 123.♡.207.76
05-08
2020-05-08 01:54:40
·
6살때던가.. 비 억수로 오는 날이었는데 집에 아무도 없어서 유치원갔다 와서 집 앞에 비 맞고 서 있으니까, 옆집 누나 (아마 20대정도.. 시집은 안 갔죠)가 자기 집으로 끌고가서 제 옷을 홀딱 벗기고 목욕을 시켜 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 많을 상황인데, 80년대에는 그런 일이 이웃 간의 흔한 미담이었죠. 그 누나 시집 가던날, 얼마나 울었는지 ㅎㅎ
DRIM
IP 211.♡.142.206
05-08
2020-05-08 02:07:59
·
@우율님 엄청착한 누나네요. 얼라 감기걸릴까봐 씻겨주고..
아그리피오
IP 116.♡.219.169
05-08
2020-05-08 02:12:56
·
@우율님 첫사랑은 빗물과 함께 씻겨 내려갔네요 ㅋ
메칸더v
IP 221.♡.233.18
05-08
2020-05-08 07:14:02
·
우율님// 아름답네요 :)
name21
IP 110.♡.135.30
05-08
2020-05-08 01:54:41
·
옆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들어갔던 기억은 있는거 같네요
삭제 되었습니다.
호비브라운
IP 39.♡.248.197
05-08
2020-05-08 01:55:56
·
아마 모두가 넉넉할 수 있던 시기라서 그런 거 같아요
팬티기술자
IP 58.♡.247.62
05-08
2020-05-08 01:59:05
·
@트와이스정연님
아마 그때는 지금보다 먹고 살기는 더 힘들고 고되었지만
농경사회의 분위기가 도시에도 어느정도 이어져있어서 가능했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은 뭐 도시는 그냥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지요
호비브라운
IP 39.♡.248.197
05-08
2020-05-08 02:28:07
·
@팬티기술자님 실제 경제적 풍요로움이라기보다 월급 차곡차곡 모으면 집 한 채는 살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식 키우는 문제는 없으리라는 낭만이었겠죠.. 물론 농경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그런 영향도 있었겠죠..!
데굴데굴굴러가유
IP 24.♡.251.169
05-08
2020-05-08 06:03:30
·
@트와이스정연님 가진것은 없었을지라도 사랑과 공동체적 협동은 풍부했던 지절이었던것 같아요
힘내라
IP 122.♡.181.137
05-08
2020-05-08 07:37:40
·
@트와이스정연님 아뇨 그야말로 가난하던 시절이죠.. 연애인들조차 어린시절 가난했다고 하는사람 많잖아요 딱 그 시기에요
아스라희
IP 223.♡.70.104
05-08
2020-05-08 08:45:35
·
@트와이스정연님 생각해보면 주위 사람들 거의 비슷하게 못살았고, 잘사는 사람들을 지금처럼 쉽게 접하거나 볼 수 없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말씀처럼 마음만은 모두 넉넉했었던것 같네요.
님최고
IP 110.♡.58.2
05-08
2020-05-08 08:56:44
·
@힘내라님 가난하던 시절 맞죠
noway
IP 211.♡.79.222
05-08
2020-05-08 09:27:54
·
@트와이스정연님 그러게요. 주머니는 가벼웠지만, 그래도 마음은 넉넉했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팬티기술자
IP 58.♡.247.62
05-08
2020-05-08 01:56:21
·
이거 말고도 집앞슈퍼에 먹고 싶은거 있으면 이야기하고 과자 가져와서 먹었네요
물론 나중에 부모님이 계산해줬구요ㄷㄷ
롤링어택
IP 211.♡.136.76
05-08
2020-05-08 09:32:27
·
@팬티기술자님 아 이런거 있었어요. 엄마가 나중에 드린대요~ 하면 마트 아주머니가 어 그래~
이젠정말
IP 221.♡.126.160
05-08
2020-05-08 01:56:22
·
+1 일부러 김장을 많이 해서, 옆집에 나눠 줬습니다. 지금은 옆집사람 이름도 얼굴도 몰라요.
@Yuno님 저녁엔 베란다나 창문으로 불러요. XX야 와서 밥먹어라! 그리고 밥먹고 다시 놀러 나갔다는...
빅보스
IP 221.♡.12.49
05-08
2020-05-08 03:26:04
·
아파트는 경비아저씨의 주요업무중 하나가 열쇠 맡아주기였죠.
한쪽벽에 못이 줄줄이 박힌 합판을 붙여놓고 못 하나하나마다 101호 102호 이렇게 써놓고 ㅋ 다들 외출할때는 열쇠 맡겨놓고 외출.
왜그랬나 몰라요. 그냥 식구수대로 열쇠 복사해서 다니면 될걸.
하얀가루
IP 121.♡.206.127
05-08
2020-05-08 05:12:02
·
빅보스님// 애들은 잃어버리거든요 또는 애들 열쇠 노려서 문 따던 빈집털이도 좀 있었거요
빅보스
IP 112.♡.224.211
05-08
2020-05-08 06:15:05
·
아 왜그랬었는지 생각났어요. 엄마가 직장다니거나 늘 비우는 집은 열쇠를 목걸이로 해서 가지고 다녔어요. 열쇠 맡기는 집은, 평상시에 거의 엄마가 집에 계신집이라서 굳이 식구수대로 열쇠파서 가지고다닐 필요가 없었죠. 어쩌다 집 비울일이 있을때 맡겼었구요. 그때는 맞벌이가 거의 없었던거 같아요
87년생 공감하고 갑니다~ 그때는 미용실 아줌마, 2층 아줌마, 현대슈퍼 아줌마, OO네 엄마 등등... 참 많으셨는데 요즘은 그런게 없는거 같네요. 아니면 나이를 먹어서 그렇게 느끼는건지ㅋ 지금은 아파트에 사는데 앞집에는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윗집이랑은 층간소음 때문에 얼굴 붉히고 있습니다~ㅋ
항꼬
IP 112.♡.40.164
05-08
2020-05-08 07:13:32
·
저희 가족은 지금도 엘베타면 다 인사하고~ 옆집은 물론 같은 동, 같은 단지에 많은 분들과 저녁도 먹고 술도 마시고 놀러도 가고 캠핑도 가고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IMF 이후 이런 문화는 사라졌습니다. 맞벌이, 개인주의, 빈부격차 심화.. 다들 복지가 따뜻한 세상을 만든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게 경제 활성화입니다. 빈부격차가 심화되는걸 경제 활성화라고 많이들 착각하고 낙수효과는 없다고 기대를 접는 것도 다 IMF이후 경제구조적 취약화에 따른 후폭풍이 결과이지요. 쉽게 말하자면 일단 나눌 파이가 있어야 모두가 굶주리지 않습니다. 파이를 어떻게 나눌거냐보다 훨씬 중요하죠. 옆집에 아주머니가 일 나가시지 않고 집에 계셔야 문이 잠겨도 돌봐주실 확률이 생기는 이치지요
램피카 D 에이스
IP 219.♡.58.112
05-08
2020-05-08 07:53:17
·
지금은 누가 사는지 잘 모르지요
이세상얼굴이아님
IP 223.♡.34.84
05-08
2020-05-08 07:53:44
·
아파트가 계속생기면서 그렇죠. 뭐
chyulining
IP 125.♡.77.71
05-08
2020-05-08 08:02:00
·
크.. 그때가 진짜 "정'이 넘치는 세상이었죠
삭제 되었습니다.
desert
IP 175.♡.33.227
05-08
2020-05-08 08:14:17
·
그야 말로 이웃사촌 지간 이었죠
돌거북이
IP 61.♡.170.185
05-08
2020-05-08 08:26:36
·
아파트 주차장에서 야구하거나 놀고 있을때, 누군가 집 베란다에서 "ㅇㅇ야 밥먹어라~" 하고 한 아이 어머니가 부르시면 자연스럽게 놀이가 중단되고 집으로 가곤 했었죠 ㅎ 가끔 같이 놀다 친구네 가서 저녁 얻어먹기도 했는데 약속같은거 없이 자연스럽게 가고, 또 자연스럽게 차려주시고...
plywood1
IP 112.♡.133.160
05-08
2020-05-08 08:33:51
·
골목에 같은 초등학교 다니는 형 누나 동생들이..한 10명 되었던거 같아요 ㅋㅋㅋ
깡통차기, 꼼꼬미, 다방구,, 이런거 많이 했었는데...ㅎㅎ
하람이
IP 119.♡.152.67
05-08
2020-05-08 08:36:26
·
초딩 때 더운데 집 열쇠를 안가져와서 그냥 밖에서 놀고 있으니 에어콘 틀어놨으니 시원하게 들어와서 빵이랑 우유 먹으라고 하시던 근처 베이커리 사장님이 계셨죠 집에가서 이야기 했더니 어머니께서 놀라서 베이커리 가서 감사하다며 계산하려고 하셨더니 애가 먹으면 얼마나 먹냐고 계산도 안받으셨다고 하셨네요
아파트도 5층이라 1층에 살던 친구 집에서 그랬었던 적도 있네요
imf 전후 이야기 하시는데 imf 전후라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가 더 컸다고 느끼는게 꾸준히 교류하던 집은 비슷한 일이 계속 있었죠...
초딩1학년떄 엄마따라 여탕가던시절 옆집 여자반 친구 우연히 만난거 기억나네요 ㅋㅋㅋ 그담부터 얼굴을 잘 안본거 같아요 ㅋ
IP 112.♡.200.119
05-08
2020-05-08 09:24:51
·
옛날에 저희 부모님 두분 다 맞벌이로 늦게 퇴근하셔서 옆집에서 놀다가 잠든 저를 엎어오시던 저희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네요...
어버이날인 오늘 가슴에 카네이션 못달아드리지만 이렇게 댓글로나마 남겨드리네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천년이가
IP 59.♡.244.173
05-08
2020-05-08 09:33:03
·
진짜...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글이네요. ㅜㅜ
jeongsh
IP 211.♡.203.12
05-08
2020-05-08 09:33:10
·
시골은 애초에 문을 잠그지 않던 시절이라... 문 잠겨서 못들어가는게 아니라 그냥 부모가 일나가서 없으니까 옆집에 놀러가는거죠...
다이여트
IP 129.♡.182.62
05-08
2020-05-08 09:35:00
·
주택 살 때 학교 갔다가 집에 왔는데 동네 보험 아줌마가 마루에서 큰대자로 자고 있어서.. 뭐지? 했던 기억이 나네요. -.-
폴라티
IP 183.♡.251.211
05-08
2020-05-08 09:43:07
·
저도 참 아련한데....생각해 보면, 지금처럼 정보가 넘쳐나던 시절이 아니어서 가능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 가면 더 편한지, 어디가 싼지, 어디가 별로인지, 어떻게 해야 더 빨리 끝낼 수 있는지...등등을 지금은 너무 쉽게 알 수 있으니, 커뮤니티를 통해 얻는 정보가 필요 없어진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추론과검증
IP 106.♡.195.40
05-08
2020-05-08 09:47:38
·
본문 내용 그대로 몇번 경험 했습니다.
그러다 부모님 안오길래 배란다로 해서 넘어도 갔......
르브론99
IP 106.♡.69.146
05-08
2020-05-08 09:51:42
·
그때 개인주택에 살때는 동네 거리가 다 친구였고 친구 엄마였으니.
징크
IP 115.♡.90.106
05-08
2020-05-08 09:59:17
·
8살에 할머니랑 둘이 월세 살때 주인집 아들 롤러스케이트 얻어 타고 밥도 많이 얻어 먹었는데 ㅠㅠ 옆방의 동갑친구네 집에 가서 밥도 얻어먹고 그랬는데.. 이젠 그런거 없죠 ㅠ
BMW-M
IP 211.♡.150.164
05-08
2020-05-08 10:06:57
·
현재 상황이 된 배경에는 전문 양육 기관의 보편적보급도 한몫하지 않나 싶습니다. 예전에는 보호자가 비는 시간에 양육을 맡아줄 기관이 굉장히 부족했죠. 요즘엔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등이 부족하긴해도 꽤 많이 보급이 되어있잖아요. 이런 점도 공동육아가 이웃간의 암묵적(?) 의무에서 사라지게된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걸어서퇴근길
IP 59.♡.129.110
05-08
2020-05-08 10:10:28
·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아파트에서 살았었네요. 1층에서 누구야 부르던게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요...
핫도리한조
IP 124.♡.215.60
05-08
2020-05-08 10:31:58
·
딱히 현재가 각박해졌다고 하기엔 본문글의 아이들이 현재 35살 이상의 어른이 되서 스스로 선택한 결과 아닌가요.
왜 지금은 이리됐나 되짚어 보면 솔직히 전 -미혼이지만- 이웃 간에 저러고 지내고 싶진 않거든요ㅎㅎ;;; 괜한 오지랖같고. (사실 저 시절에도 친구네집 아빠들은 부담스러운 존재이기도 했고, 커뮤니케이션도 없었죠)
지금도 엄마들 사이에선 커뮤니티가 있다지만 그게 그닥 좋은 인식으로 자리잡혀 있진 않죠.
세상이 변했다느니 하기엔 자연스럽게 선택한거죠. 저 시절로 돌아가려면 층간소음, 담배, 고성방가 옵션도 다 받아야 되요.
얼라 감기걸릴까봐 씻겨주고..
첫사랑은 빗물과 함께 씻겨 내려갔네요 ㅋ
아마 그때는 지금보다 먹고 살기는 더 힘들고 고되었지만
농경사회의 분위기가 도시에도 어느정도 이어져있어서 가능했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은 뭐 도시는 그냥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지요
물론 농경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그런 영향도 있었겠죠..!
아뇨 그야말로 가난하던 시절이죠.. 연애인들조차 어린시절 가난했다고 하는사람 많잖아요
딱 그 시기에요
물론 나중에 부모님이 계산해줬구요ㄷㄷ
일부러 김장을 많이 해서, 옆집에 나눠 줬습니다.
지금은 옆집사람 이름도 얼굴도 몰라요.
폰이 없어도 신기하게 친구들이 다 어디에 있는지 아는 정보망이 있었죠 ㅋㅋ
저녁엔 베란다나 창문으로 불러요. XX야 와서 밥먹어라! 그리고 밥먹고 다시 놀러 나갔다는...
열쇠 맡아주기였죠.
한쪽벽에 못이 줄줄이 박힌 합판을 붙여놓고
못 하나하나마다 101호 102호 이렇게 써놓고 ㅋ
다들 외출할때는 열쇠 맡겨놓고 외출.
왜그랬나 몰라요. 그냥 식구수대로 열쇠 복사해서 다니면 될걸.
또는 애들 열쇠 노려서 문 따던 빈집털이도 좀 있었거요
엄마가 직장다니거나 늘 비우는 집은
열쇠를 목걸이로 해서 가지고 다녔어요.
열쇠 맡기는 집은, 평상시에 거의 엄마가 집에 계신집이라서 굳이 식구수대로 열쇠파서 가지고다닐 필요가 없었죠.
어쩌다 집 비울일이 있을때 맡겼었구요.
그때는 맞벌이가 거의 없었던거 같아요
다만 사람이 없어서 문을 못 열어주다보니, 아이들도 옆 동 친구네 집으로 찾아가죠.
어쩌고저저고 누구네엄마 이랫던것 같은데
지금은 인사하면 아예 경계를 하고 서로 인사하지도 많죠.
아무런 거부감없이 들어가서 과일도 먹고 그랬었어요
(튀엇!;;)
집에 부모님 안계시면 옆집에서 친구랑 같이 밥먹고 놀다가 부모님 오시면 집으로 가고
지금은 저런게 많이 없겠죠??
저희부모님은 지금도 예전에 살던 아파트 같은층 분들 만나십니다. 그집에서 이사한지 20년이 넘었는데도요 복도식 아파트 4집이 한층에 살았는데 아이들 나이도 비슷하고 해서 정말 친하게 지냈었거든요.
**야 노올자~
그러면 없는 척하기도 ㅋㅋ
옆집은 물론 같은 동, 같은 단지에 많은 분들과 저녁도 먹고 술도 마시고
놀러도 가고 캠핑도 가고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땐정말 정신적으로는 더 풍부 하고 여유로웠네요
그런데 응팔에 나온
부모님들모두 괜찮은 직업들이셨다는
심지어 성덕선 부모님도 ㅋㅋ
요즘으로 치면.. 약간 부자 동네죠. 단독주택 ㄷㄷㄷ
문 잠겨서 문앞에서 앉아서 기다리고있으면 옆집 아주머니가 들어오라고해서 들어가있으면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앞집 아이가 문잠겨서 문앞에 앉아있으면 저희어머니도 들어오라고해서 이것저것 간식 주시고 ㅋㅋ
요즘은 이웃끼리 소통은 없어진거같아요 ㅋㅋ
경비아저씨보다 택배기사 아저씨랑 더 자주 인사를 하죠..
그리고 고층 집들도 드물었구요.. 결국 아이들 커뮤니티 생성되면 어떻게든 옆집들하고
잘 알게 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야 온동네 골목골목에서 놀러 댕겼구요.
지금처럼 집에서 놀면 이상하던 시절이라서요
다들 복지가 따뜻한 세상을 만든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게 경제 활성화입니다. 빈부격차가 심화되는걸 경제 활성화라고 많이들 착각하고 낙수효과는 없다고 기대를 접는 것도 다 IMF이후 경제구조적 취약화에 따른 후폭풍이 결과이지요.
쉽게 말하자면 일단 나눌 파이가 있어야 모두가 굶주리지 않습니다. 파이를 어떻게 나눌거냐보다 훨씬 중요하죠.
옆집에 아주머니가 일 나가시지 않고 집에 계셔야 문이 잠겨도 돌봐주실 확률이 생기는 이치지요
누군가 집 베란다에서 "ㅇㅇ야 밥먹어라~" 하고 한 아이 어머니가 부르시면
자연스럽게 놀이가 중단되고 집으로 가곤 했었죠 ㅎ
가끔 같이 놀다 친구네 가서 저녁 얻어먹기도 했는데 약속같은거 없이 자연스럽게 가고, 또 자연스럽게 차려주시고...
깡통차기, 꼼꼬미, 다방구,, 이런거 많이 했었는데...ㅎㅎ
에어콘 틀어놨으니 시원하게 들어와서 빵이랑 우유 먹으라고 하시던 근처 베이커리 사장님이 계셨죠
집에가서 이야기 했더니 어머니께서 놀라서 베이커리 가서 감사하다며 계산하려고 하셨더니
애가 먹으면 얼마나 먹냐고 계산도 안받으셨다고 하셨네요
아파트도 5층이라 1층에 살던 친구 집에서 그랬었던 적도 있네요
imf 전후 이야기 하시는데 imf 전후라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가 더 컸다고 느끼는게
꾸준히 교류하던 집은 비슷한 일이 계속 있었죠...
서로가 서로를 그저 믿고 의존하던 그 시절 😢
그립네요
아이들은골목길에서 뛰어놀고 어머님들은 집에 계신분이 많으니 공동육아? 가 가능한 시대
육아의 어려움이라는게 몸이 힘듦에서 오는 것보다 온전히 혼자할때 정서적인 고립감에서 오는 멘탈붕괴가 커요.
저녁 5시쯤에 엄마가 찾으로 나왔죠 밥 먹으라고 ㅎ
그리고 저녁밥 먹고 공중파에 틀어주는 만화 보면서
하루 일과를 끝냈던 추억이
아 그리고 목마를때 오렌지 쥬스 유리병에 동서울 보리차 기가 막혔습니다
같은 나이대 친구집에서 기달리거나... 아니면 열쇠를 맡아주거나
아파트입니다 ㅋㅋ
옆집 여자반 친구 우연히 만난거 기억나네요 ㅋㅋㅋ
그담부터 얼굴을 잘 안본거 같아요 ㅋ
늦게 퇴근하셔서 옆집에서 놀다가 잠든 저를 엎어오시던
저희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네요...
어버이날인 오늘 가슴에 카네이션 못달아드리지만
이렇게 댓글로나마 남겨드리네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문 잠겨서 못들어가는게 아니라 그냥 부모가 일나가서 없으니까 옆집에 놀러가는거죠...
언제 가면 더 편한지, 어디가 싼지, 어디가 별로인지, 어떻게 해야 더 빨리 끝낼 수 있는지...등등을 지금은 너무 쉽게 알 수 있으니, 커뮤니티를 통해 얻는 정보가 필요 없어진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다 부모님 안오길래 배란다로 해서 넘어도 갔......
옆방의 동갑친구네 집에 가서 밥도 얻어먹고 그랬는데.. 이젠 그런거 없죠 ㅠ
예전에는 보호자가 비는 시간에 양육을 맡아줄 기관이 굉장히 부족했죠. 요즘엔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등이 부족하긴해도 꽤 많이 보급이 되어있잖아요. 이런 점도 공동육아가 이웃간의 암묵적(?) 의무에서 사라지게된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본문글의 아이들이 현재 35살 이상의 어른이 되서 스스로 선택한 결과 아닌가요.
왜 지금은 이리됐나 되짚어 보면
솔직히 전 -미혼이지만- 이웃 간에 저러고 지내고 싶진 않거든요ㅎㅎ;;; 괜한 오지랖같고.
(사실 저 시절에도 친구네집 아빠들은 부담스러운 존재이기도 했고, 커뮤니케이션도 없었죠)
지금도 엄마들 사이에선 커뮤니티가 있다지만
그게 그닥 좋은 인식으로 자리잡혀 있진 않죠.
세상이 변했다느니 하기엔 자연스럽게 선택한거죠.
저 시절로 돌아가려면 층간소음, 담배, 고성방가 옵션도 다 받아야 되요.
지금 제가 본문같은 상황이라면 전혀 망설임없이 문 열어주고 같이 놀아줄 것 같네요.
근데 아마 어렵겠죠.
근처의 다른 집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를일이고, 이런 마음을 어디에 보일수도 없고 하니까요.
IMF를 지나고 많은 가정들이 어쩔수 없이 맞벌이 해야하는 상황이 되면서 많은 변화가 생긴거 같네요...
집에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다보니 그로 인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버지가 혼자 벌어 4인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환경이였다면 지금은 2명이 벌어 4인 가족 유지하기에 뭔가 빠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