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제 글들이 상당수 삭제요청으로 삭제되었더라구요.
이번 글도 삭제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43추모일을 맞아 조금 더 진실을 아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에 글을 씁니다.
일단 제주43 사건이 1947년 3월 1일~4월 3일~1954년 9월 21일까지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이라는 것을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 잠시 정리해봅니다.
1947년 제주는 해방 이후 미군정에 대해 반감이 있었고, 일제 때부터 독립을 준비해온 건준위 인민위원회가 세력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1947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마경관이 어린아이를 치고, 이에 대한 항의에 대해 '습격사건'으로 정의한 뒤 대대적인 숙청사건이 시작됩니다. 여기에 남로당까지 가세하면서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초반에는 남로당과 미군정의 전투였지만, 여기에서 군대가 투입되고 협상이 진행되었으나, 1948년 북한이 성립되면서 이승만 정부는 제주의 상황을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계엄령을 선포하고 최악의 사태가 시작됩니다.
1948년 11월 부터 시작된 학살은 625전쟁을 거쳐 보도연맹 사건까지 가세하여 더욱 심해집니다. 여기에 해병대가 계엄군으로 투입되어 극악한 학살을 시행하였고 1954년까지 지속됩니다. 이 기간동안 30여만명의 도민 중 3만명가량이 학살당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 때 일본 오사카로 탈출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여기에 같이 개입한 자들이 서북청년단인데 이들이 민간인 학살을 주도하고 그외에도 수많은 나쁜짓을 저질렀음에도 국가유공자가 되었고, 이들이 헸던 행위는 역사에 묻혀버렸습니다.
서북청년단은 1946년 11월 30일 결성했고, 정식 이름은 서북청년회입니다. 이들은 해방직후 좌익세력에 대한 테러, 암살을 자행했고 43항쟁에 토벌군으로 참여했습니다. (이승만이 군경에 편입시켜주었습니다. 서청중대라고 편성되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죠)
서북청년단은 원래 영락교회 청년회가 중심인 조직이었습니다.
영락교회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초대회장인 한경직 목사가 1945년 세운 교회입니다. (한기총의 시작은 서북청년단과 뗄 수 없습니다)
1947년 한경직 목사의 설교 내용을 들어보죠. "공산주의야 말로 일대 괴물입니다. 이 괴물이 지금 삼천리강산에 횡행하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 괴물을 벨 자 누구입니까? 이 사상이야말로 묵시록에 있는 붉은 용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죠?
그 이후에도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공산당과 싸우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사탄과의 싸움" 등 이런 극우적 신앙은 지금도 명맥을 크게 이어오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왜 빨갱이 빨갱이 거리는지 잘 이해가 안되셨죠?
지금 이야기드린 이 명맥이 한기총을 통해 도도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극우 개신교의 뿌리는 서북청년단이고, 이들이 저지른 짓이 제주43학살이고, 그것을 지지한 것이 이승만입니다.
다들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들을 처형한 자들이 저 극우 개신교들의 뿌리임을.
PS. 이 글도 삭제할텐가?
발단이 무엇이던간에, 주민의 1/10을 어린아이까지 학살하는 행위는 정당성을 논할 가치가 없어요..
악랄했던 그 과거를 부정해봐야 역사를 고칠 수는 없습니다.
개신교는 대한민국 사회에 공헌하는 측면이 일부 있겠습니다만,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