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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선 사진>
0. 1950년대... 정득은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박태선은... 전도관을 만들고 전국에 신앙촌을 건설하며 14만4천명 구원설을 설파
. 이 종교는 나중에 천부교로 이름을 바꿈.
1. 1963년 여러 병으로 골골대던 김종규(본명 김용기)는.. 전도관을 전전하다 가로리에 가서 시계포를 열고 성결교회에 나가기 시작. 그는 그곳에 시계포를 열라고 한것이 예수의 계시라고 주장했는데, 기도중 방언을 받고 이듬해 동작구 상도동 속칭 사자암이라는 사찰암자를 발려 10여명을 모아 집회를 주최.
2. 김종규는 그곳을 “호생기도원”이라 칭하라는 주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신도들을 모으기시작. 이후 점차 많은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는데… 그떄 제자로 들어온 사림이 훗날 신천지의 모태가 된 대한기독교장막성전교를 만든 유인구 부부.
3. 유인구는 그의 어머니 신종순, 아들 유재열 (훗날 싸이 장인) , 유재열의 외삼촌 신종환을 곧 호생기도원으로 끌여들였는데, 아들 유재열은 당시 고등학교기계체조선수로 일본 원정시합에 출전이 예정. 그러나 일본어를 할줄몰랐던 유재엻은 기도원에서 일본어 방언을 받으면 유리해질것이라는 계산으로 기도원에 갔다가 가장 열성신도가 됨. 이 가족은 훗날 각자 재림 뭐뭐 타이틀을 달고 맹활약하게됨.
4.한편 김종규는 신비체험을 강조하고 그것들을 교리화하면서 환자들 병을 고쳐주는 행위로 교세를 확장.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칭하며 예수재림이 자신이 살고있는곳에 있을것이고 자신의 집이 곧 지상천국이라고 주장. 사이비종교의 교주가 된 그는 급기야 주님으로 등극했고 그를 주님으로 섬기는 여신도들로 구성된 12천사도 조직하는등 점차 여색에 탐닉하기 시작.
5.결국 김종규는 여신도들과 난잡한 성관계를 맺어왔던 것이 들통나 큰 물의를 일으키고 호생기도원에서 쫒겨남. 그는 과천으로 내려가 청계산 저수지터(지금의 서울대공원 터)에 자리를 잡고 다시 교회를 세움. 이떄 그의 열성신도이자 핵심측근이었던 유인구 가족도 그를 따라 옴.
6. 그러나 김종규는 또다시 다른 여자와 불륜스캔달을 일으켰고, 이를 목격한 유인구가 신도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킴. 유인구는 김종규를 축출하고 교권을 장악한후, 교회이름을 장막성전이라고 바꿈. 유인구는 아들 유재열을 계시의 대리자로 내세움.
7. 1966년 3월14일 유인구의 아들 유재열은 우물가에서 목욕을 하다가 27명의 신도가 보는앞에서 빛의 추적을 받고 쓰러졌는데, 갑자기 자신이 두루마리를 먹고 입에서 테잎같은걸 꾸역꾸역 뱉어내는 환상을 보았다고 주장하면서 유창한 설교를 시작,. 그는 이 3월14일을 성스러운날로 지정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여 이날이 장막교의 성탄절로 지정됨. 유재열은 18세의 어린나이에 교주로 등극함. (훗날 실세였던 유인구와 교주로 내세워졌던 유재열은 교권다툼을 벌이는데 아들인 유재열이 승리하여 아버지를 쫒아낸것으로 알려짐)
8. 유재열은 종말론을 내세우며, 자신이 하나님의 마지막종이라고 주장. 그는 말세 심판떄 자신의 밀실에 숨은 사람만 구원받게 될것인데 그 수가 14만4천이라고 주장함. 또한 1969년 10월1일을 심판일로 지정하며 불바다론을 내세우면서 신도들을 청계산 지금의 서울대공원터에 모아놓고 집단 생활을 시킴. 제2의 신앙촌으로 불리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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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십대였던 교주 유재열....
9. 그는 계시록의 두증인이 아버지 유인구와 자신이라며, 장막성전을 지키는 7천사로 자신의 가족과 측근을 지정.
아울러 신도들을 계급별로 나누고 뱃지를 달고 다니게하는등 교단을 정교하게 조직하기시작. 평소 자신의 손목에 칼을 그어 피를 모아두었다가 임명장을 줄떄 피로 십자가를 써서 내주는등 신비주의적행동을 지속함. 나중엔 피가 모자라 돼지피를 몰래 썻다함...
10. 장막성전은 박태선의 원조 신앙촌에서 신도들을 대거 빼오면서 급격히 교세가 확장. 5천명에 이름. 이떄 박태선의 신앙촌에 있던 이만희도 이탈자들을 따라 1967년 장막성전으로 이동…
11. 그러나 1969년 종말론 예언이 빗나가자 많은 신도가 이탈하기시작. 1970년 4월 장막성전 7천사중 한명인 솔로몬 백만봉이 교단을 탈퇴해 재창조 교회를 만듬. 유재열의 외삼촌과 7천사중 여호수아롤을 맡았던 그의 아들 신광일도 유재열을 떠나 여기에 합류. 이떄 이만희도 유재열에게 사기당해 재산을 다 털렸다고 주장하며, 교단을 탈퇴하고 재창조교회에 합류함.
12. 재창조교회 백만봉은 1980년 3월13일 천국이 온다며 종말을 예언, 그러나 빗나가고 이에 실망한 이만희는…
다음날 곧바로 뜻을 같이하는 신도들을 데리고 나와 자신이 직접 안양시 비산동에 교회를 하나 세움.
그이름이... 신천지중앙교회....
13. 한편 유재열은 장막이 공중분해되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남. 유교주를 따르던 오평호 목사가 장막성전에 들어와 개혁을 단행. 이후 장막성전은 헐리고 그자리에 서울대공원이 들어섬. 우여곡절끝에 이들은 주류 기독교로 편입
장막성전은 과천 다른곳으로 이사해 대한예수교장로회 이삭교회로 이름을 바꿨고... 이후 또 우여곡절끝에 과천 이삭중앙교회는 과천소망교회로 이름을 바꿔 예장으로 편입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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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이삭중앙 교회>
15. 이후 종교에서 손을뗀것으로 추정된 유재열은 ... 귀국후 일반인으로 돌아와 1984년 서울충무로와 북창동에 고급한식집을 런칭해 대성공,. 기세를 몰아 2001년에는 서울 청담동에 고급식당을 개업하고 청담동 고급주택가에 살고있는등 사업가로서 큰성공을 거두고... 오빤 갱남스타일 싸이 장인이 됨..읭???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534
이 기사를 요약해봤습니다 ㅎ
자세한 내용은 기사에 가서 읽어보세요~ 훙미진진하네요.
이시기에 얽히고 섥힌 종교역사를 보면 참 잼있습니다.
예를들면 비슷한 시기 순xx교회랄지...영x교랄지...하xx의 교회랄지 기타 대형교회 등등..
그리고 댓글보고 뺴먹었네요 최태민이 ㅋㅋㅋ
이성이라곤 1도 없는게 신자종특인듯..
/Vollago
순복음교회도 하나님보다 조용기목사를 더 믿어서 이단취급받다가 교세가 커지니 주류기독교로 편입
저런 사이비를 믿는 사람도 문제죠
(저 박태선이라는 사람은 국내 사이비계의 원조라고 하더라구요. ㄷㄷㄷ)
그리고 14만4천얘기는 그 숫자가 성서에 언급이 되는 부분이라 이런저런 종교에서 많이 차용해갑니다.
그 한식당인가 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