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가 욕먹는건 다른 집단에서 자기네 집단의 안좋은 이미지를 다 유교에 갖다 붙인탓이 크죠
뎅뎅이!
IP 223.♡.216.169
02-11
2020-02-11 13:47:03
·
통촉하여주시옵소서. 하나만 해도.
비타민아저씨
IP 124.♡.213.75
02-11
2020-02-11 18:37:56
·
@뎅뎅이!님 즈언하! 죽어보시옵소서~~ 응?
김부엉
IP 116.♡.188.130
02-11
2020-02-11 13:47:51
·
종합해보면 유교 킹왕짱이라는 얘긴데 그럼 조선이 못살았던 이유는 뭘까요?
gar201
IP 211.♡.69.71
02-11
2020-02-11 13:48:29
·
김부엉님// 조선 초중기 다른 나라에 비하면 나쁘지 않았을텐데요 /Vollago
IP 121.♡.108.157
02-11
2020-02-11 13:49:47
·
@김부엉님 4번 항목에보면 후기 세도정치 기간에 문제점이 나옵니다.
김부엉
IP 116.♡.188.130
02-11
2020-02-11 13:50:17
·
@gar201님 초기는 잘살았는데 암튼 후기에 망가진 건 사실이니까요.
알리움케파
IP 223.♡.75.9
02-11
2020-02-11 13:50:20
·
@김부엉님 말기 말고는 잘사는 나라였습니다 심지어 그 시대 복지제도까지 있는 나라였습니다.
김부엉
IP 116.♡.188.130
02-11
2020-02-11 13:51:32
·
결국 정치가 문제였다 이거군요.
guwory
IP 203.♡.49.1
02-11
2020-02-11 13:52:05
·
본문에 따르면, 상공업을 억압하지는 않았지만
중시하지도 않았고, 천대했기 떄문으로 봅니다
이런저런0
IP 125.♡.128.47
02-11
2020-02-11 13:52:06
·
@김부엉님 조선 중기까지 딱히 못살았다고 할만한 건 없고 임진왜란 끝나고 명 망하고 들어선 청나라 때문에 두번 호란 겪은것, 그와중에 왕권 약화되면서 세도정치 시작된게 타격이 크죠. 아예 봉건체제면 모를까 중앙집권하에서 일부 귀족집단(조선의 경우 풍양조씨나 안동김씨 같은 세도가들)이 정권을 잡으면 자기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체제변화등에 보수적인 움직임을 갖게 되니까요.
조선전기만 해도 굉장히 실질을 숭상하고 과학기술도 장려하고 윤행봉사나 상속분배에서도 남녀 차별이 거의 없던 시기였죠.
그런데 임진왜란, 병자호란 양란 이후 몰락한 사대부의 자존심((큰소리 뻥뻥 치던 왕과 사대부 양반들이 왜놈(?) 에게 쫓겨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중국 국경까지 튀튀튀를 하질 않나, 오랑캐(?)에게 무릎 꿇고 머리를 박으며 비굴하게 목숨만 살려주십쇼. 하며 항복을 하지를 않나). )을 이상하게 가부장적 질서를 통해 회복하려 합니다(a.k.a 정신승리)
이때부터는 여자를 완전 남자 밑에 두려 하며 서열로서 자존심을 세우려 하고 고고한 선비인 척 하면서 후방짤을 금지하고(?), 가례에 온갖 쓸데 없는 허례허식과 강압적 요소가 들어가게 됩니다. 제사도 예전에는 흔히 먹던 밥으로 조상님께 감사하며 끝내던 것인데 무슨 홍동백서니 뭐니 쇼는 잔뜩 넣고... 또 공명첩 이나 매관매직이 보편화 되면서 양반 아닌 사람들이 양반이 되면서 오히려 양반보다 더 겉치레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기도 하고
예를 들어 우리나라 성씨중 절대 다수를 자랑하는 김씨, 이씨, 박씨 등이 있잖아요? 그런데 당시에 김, 이, 박씨만 자식을 낳아 보존할 수 있는 이상한 병이 도는게 아니었다면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조선 초기에는 김씨, 이씨, 박씨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거든요 결국 그 조선 후반~말기에 거쳐 김씨, 이씨, 박씨 등의 족보가 수없이 위조 되었거나 헐값에 집중 거래되었다는 증거가 되는 거죠.
김해김씨 같은 경우는 뭐... 뿌리가 깊은 만큼 사기도 많이 사고, 위조도 많이 하고, 딱히 종중에서 단속도 열심히 하지 않고...
예외도 있습니다. 세도정치 시기의 안동김씨나 풍양조씨 같은 경우에는 족보 관리를 잘한데다가 족보 위조를 하거나 하면 곧바로 끌려가서 아작이 났기 때문에 지금도 안동김씨나 풍양조씨는 굉장히 드물죠.
결론 - 족보 믿지 마세요.
도시
IP 59.♡.100.131
02-11
2020-02-11 13:54:02
·
나이 몇살 많은 거 아무것도 아니죠. 지금이라도 전처럼 그런걸로 서열따지는 거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고조선때부터 흰옷 좋아했다는 기록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몇몇 개는 좀 억지스럽네요. 전기는 조세때문에 박살난게 아니라 공물때문, 후기에는 군정 환정 군정 셋다 난리났었죠. 형의상학적인 학문이 형이하학적인 상업에 긍정적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맨마자막에 군사부일체도 고려 지공거의 문화생이 벼슬얻는데 도움받고 사위로 되서 자주쓰던 게 군만 더 붙여서 군사부일체라 사부일체라고 썼다고 압니다.
몇몇 특수한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임진왜란때 왜구들이 조선에 와서 고전한 이유중 하나가 조선이 이렇게까지 가난한 나라인줄 몰랐다고 할정도였습니다. 일본 전국시대를 지난 일본은 인구나 농업,상업 생산성면에서 조선을 크게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왜구들은 자신들처럼 큰 상업도시가 있는줄 알고 점령했는데 털을 먹을 식량조차 없더라는 수도일줄 몰랐다고 할정도로 상업이나 농업생산성면에서 많이 떨어졌습니다. 심지어,명나라에서 그 귀한 은전을 들고 와서 쌀 구하려다가 실패할정도로 화폐경제도 아니고..
<천하통일과 조선침략 - 이케 스스무 > " 왜장 안코쿠지 에케이는 영산/현풍 등지를 둘러보고) "이 나라는 병량이 많아서 말로 다 할 수 없고, 일본의 里(3.9km)정도에 영산, 현풍 같은 성들이 있고, 1개의 성에 백미 4~5천석, 흑미, 대두, 보리 이하 잡곡도 창고에 있어 그 수를 알 수 없음. 고려인은 여름에 술을 차게 마시니, 얼음 창고도 5칸 3칸 정도 있었음."
느림보칼
IP 165.♡.223.244
02-11
2020-02-11 14:49:17
·
@실버스톤님 뭐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을수는 있는데 근거를 좀 제시해주시면 좋겠어요.
눈웃음
IP 211.♡.149.221
02-11
2020-02-11 15:13:09
·
@실버스톤님 전 처음 듣는 설이군요 근거 링크 부탁드립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슈퍼 멜론
IP 106.♡.180.12
02-11
2020-02-11 14:06:17
·
최소한 빠른이니 뭐니 하든가, 선배니 뭐니 하면서 한살 가지고 서열 잡는 것은 후손들이 반성해야 합니다. 조상님들은 대략 10살 차이는 그냥 친구로 지냈습니다
"조선 전기 태조∼선조 대에 선발된 문과 급제자는 모두 4527명. 이 가운데 신분이 낮은 급제자는 1100명으로 전체 급제자의 24.3%를 차지한다. 신분이 낮은 1100명 중 3품 이상 고관에 오른 급제자는 306명에 이른다. 한 교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과거시험을 통한 신분 이동이 역동성을 지녔음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귀차니즘지존
IP 223.♡.21.74
02-11
2020-02-11 14:28:09
·
제가 옛날 조선시대가 그리 미개하지 않았어.. 그러면 사람들이 잘 안믿더라구요. 옛날 기록들 보면 상당히 훌륭하고 납득갈만한 얘기들이 많은데..
IP 110.♡.59.187
02-11
2020-02-11 14:28:42
·
유교 이제 안써요.
삭제 되었습니다.
이적
IP 116.♡.190.98
02-11
2020-02-11 15:29:54
·
임금이 잘못하면 군자가 아니기에 갈아치워도 된다. 요건 이미 맹자 시절이야기죠.
삭제 되었습니다.
BARCAS
IP 27.♡.227.11
02-11
2020-02-11 17:33:02
·
시작은 좋았더라도 끝은 개판이었죠. 그러면 좋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않을까요? 시대를 못따라간 죽은 학문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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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lago
중시하지도 않았고, 천대했기 떄문으로 봅니다
지금 종교들도 근본주의자들이 문제인것처럼 근본주의화 되어 버리면 뭐든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죠.
뭐... 언제나 그렇지만 시대가 지나갈 수록 지배층의 지배력은 공고해지고, 신분은 고착되기 마련이죠.
유교가 킹왕짱이라는 건 아니지만요. ㅎㅎ
조선시대 제도만 보면 지금보다 좋은건 수두룩 하다보니.
600년 간 나라가 세계사적으로 얼마 없습니다...
로마도 3~400년안팍인데요
이슬람도 여성에 관해서 탄생 당시 종교들에 비해서 상당히 진보적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게 지금까지 변화없이 유지되어서 여성인권에 가장 낙후된 종교가 되었듯이요
그 많던 고려 말 쓰레기들이 정리되지도 않고 조선이 세워졌는데 탐관오리는 어디에나 있죠
그런데 임진왜란, 병자호란 양란 이후 몰락한 사대부의 자존심((큰소리 뻥뻥 치던 왕과 사대부 양반들이 왜놈(?) 에게 쫓겨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중국 국경까지 튀튀튀를 하질 않나, 오랑캐(?)에게 무릎 꿇고 머리를 박으며 비굴하게 목숨만 살려주십쇼. 하며 항복을 하지를 않나). )을 이상하게 가부장적 질서를 통해 회복하려 합니다(a.k.a 정신승리)
이때부터는 여자를 완전 남자 밑에 두려 하며 서열로서 자존심을 세우려 하고 고고한 선비인 척 하면서 후방짤을 금지하고(?), 가례에 온갖 쓸데 없는 허례허식과 강압적 요소가 들어가게 됩니다. 제사도 예전에는 흔히 먹던 밥으로 조상님께 감사하며 끝내던 것인데 무슨 홍동백서니 뭐니 쇼는 잔뜩 넣고... 또 공명첩 이나 매관매직이 보편화 되면서 양반 아닌 사람들이 양반이 되면서 오히려 양반보다 더 겉치레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기도 하고
그 족보도 거래가 잘 되어서 곧 유명무실하게 되었죠.
예를 들어 우리나라 성씨중 절대 다수를 자랑하는 김씨, 이씨, 박씨 등이 있잖아요?
그런데 당시에 김, 이, 박씨만 자식을 낳아 보존할 수 있는 이상한 병이 도는게 아니었다면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조선 초기에는 김씨, 이씨, 박씨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거든요
결국 그 조선 후반~말기에 거쳐 김씨, 이씨, 박씨 등의 족보가 수없이 위조 되었거나 헐값에 집중 거래되었다는 증거가 되는 거죠.
김해김씨 같은 경우는 뭐... 뿌리가 깊은 만큼 사기도 많이 사고, 위조도 많이 하고, 딱히 종중에서 단속도 열심히 하지 않고...
예외도 있습니다. 세도정치 시기의 안동김씨나 풍양조씨 같은 경우에는
족보 관리를 잘한데다가 족보 위조를 하거나 하면 곧바로 끌려가서 아작이 났기 때문에 지금도 안동김씨나 풍양조씨는 굉장히 드물죠.
결론 - 족보 믿지 마세요.
그리고 몇몇 개는 좀 억지스럽네요.
전기는 조세때문에 박살난게 아니라 공물때문, 후기에는 군정 환정 군정 셋다 난리났었죠. 형의상학적인 학문이 형이하학적인 상업에 긍정적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맨마자막에 군사부일체도 고려 지공거의 문화생이 벼슬얻는데 도움받고 사위로 되서 자주쓰던 게 군만 더 붙여서 군사부일체라 사부일체라고 썼다고 압니다.
심지어,명나라에서 그 귀한 은전을 들고 와서 쌀 구하려다가 실패할정도로 화폐경제도 아니고..
https://blog.naver.com/halmi/221527037263
<천하통일과 조선침략 - 이케 스스무 >
" 왜장 안코쿠지 에케이는 영산/현풍 등지를 둘러보고)
"이 나라는 병량이 많아서 말로 다 할 수 없고, 일본의 里(3.9km)정도에 영산, 현풍 같은 성들이 있고, 1개의 성에 백미 4~5천석, 흑미, 대두, 보리 이하 잡곡도 창고에 있어 그 수를 알 수 없음.
고려인은 여름에 술을 차게 마시니, 얼음 창고도 5칸 3칸 정도 있었음."
뭐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을수는 있는데 근거를 좀 제시해주시면 좋겠어요.
근거 링크 부탁드립니다.
조상님들은 대략 10살 차이는 그냥 친구로 지냈습니다
http://www.donga.com/news/List/article/all/20130122/52512357/1 (동아일보라 좀 거시기 하지만...)
"조선 전기 태조∼선조 대에 선발된 문과 급제자는 모두 4527명. 이 가운데 신분이 낮은 급제자는 1100명으로 전체 급제자의 24.3%를 차지한다. 신분이 낮은 1100명 중 3품 이상 고관에 오른 급제자는 306명에 이른다. 한 교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과거시험을 통한 신분 이동이 역동성을 지녔음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