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기생충이 아주 핫하고 어제 오스카 인터뷰에서
논란 아닌 논란을 만드신 미키리가 누군지 궁금해서
구글링하다가 흥미로운 글이 있어서 퍼왔습니다.
저는 영화 "변호인"때 이분 대단하다 생각도하고 클리앙에서도 좋은 의견들이 꽤 있었던거 같았습니다.
아래부터는 펌글 전문입니다.
영화계, 특히 미국에서는 미키 리 라고 불리죠. 어제 수상발표 한 이미경 부회장 이야깁니다.
아시는 분도 있지만, 제가 한때 대기업 영화사업부에 있었어요. 극장운영과 배급을 맡는 팀에 있었는데 1998년입니다. IMF 직후.
당시 영화판이 어땠는가... 그야말로 충무로 노친네들이 세력다툼하는 고리타분의 극치였습니다.
극장은 목 좋은데, 그러니까 서울같으면 종로 3가, 다른 지역은 보통 명동으로 불리는 그 지역 번화가 또는 역 앞에서 손쉬운 장사를 하면서 길게는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낡은 시설에 투자도 없이 그야말로 현상유지에 급급했죠.
극장이 못들어가는 층고에 극장을 구겨넣어서 앞사람이 스크린 반 가리고,
무리하게 구겨넣은 좌석 때문에 무릎이 앞좌석에 닿고,
스크린은 하도 오래 안 닦아서 부옇고 영사기는 맛이 가서 번번히 사고 나고,
돌비 음향이 뭔지 영사기사가 모르고, 센터스피커가 찢어져서 대사가 잘 안나와도 모르고,
매점은 보통 극장 사장님 친인척이 운영하면서 봉지팝콘 바가지 가격에 휙 던지고,
위생 안좋은데는 쥐도 가끔 나오고,
스크린 옆에는 비상구 불이 계속 켜져서 시선 뺏고,
영화 끝나면 나오는 길은 두 사람도 못지나갈 좁아터진 계단이고...
이건 디피 아재라면 다들 기억하실 이야기지만,
관객들이 잘 모르는 제작 배급 문제는 더 심각했습니다.
서울극장 곽회장 라인으로 배급을 타면 그나마 상영이 되고, 아니면 아예 극장조차 못 잡고 관객을 만나기조차 힘든 독점구조에 공공연히 뒷돈이 오갔고,
극장과 영화사는 불투명한 경영 때문에 매번 수입 정산 때문에 싸우기 일쑤였고,
제작자들은 제대로 된 투자자를 잡지 못하고 충무로 전주들 눈치만 보는 식이었죠. 근데 그 충무로 전주들이 노친네들이라 절대 과감한 시도, 젋은 감독에게 기회를 안 줬습니다.
그야말로 아사리판이 따로 없었습니다.
이러다보니 당시 최고의 흥행감독이던 강우석 감독도 서울극장에 회사 사무실을 두고 거의 매일 곽회장에게 가서 문안인사 드리고 굽신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구요. (제가 직접 본 상황)
이미경 부회장이 없었다면...
아마 2005년 정도에는 멀티플렉스가 누군가에 의해 자리를 잡았겠지만 그 전까진 저런 눈뜨고 볼 수 없는 극장들이 여전히 성업했을 것이고, 누군가가 용감하게 멀티플렉스를 해도 아마 기존 극장주들의 견제에 제대로 살아남기 어려웠을 거구요 (실제 cgv 강변의 성공에 용기를 얻어 충무로 토착자본이 동대문에 열었던 멀티플렉스가 서울극장의 견제로 영화를 제대로 걸지 못했었죠)
구태의연한 투자자, 충무로 전주들은 박찬욱이나 봉준호 같은 이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구시대 충무로 출신의 고리타분한 연출자들에게만 자본을 댔을 거고,
박찬욱 감독은 영화 못지않게 잘하시는 평론으로 근근히 먹고 사셨을 거고 (저는 그분의 책을 영화보다 먼저 접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첫 영화 플란다스의 개 같은 소품들을 근근히 만들며 저같은 인디영화 매니아들에게만 인정받으며 다음 영화 투자자를 찾기 위해 애쓰고 계시겠죠.
이미경 부회장이 CJ엔터를 만들어 대중적인 작품 못지않게 작가들의 작품에 대규모의 투자를 하고, cgv를 만들어 멀티플렉스 시대를 열지 않았다면 한국영화는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습니다.
멀티플렉스가 다양성을 질식시킨다, 시설이 부족하다 하지만, 당시 극장들의 수준을 생각해보면 CGV가 우리나라 극장의 전체적인 수준을 몇 배 올려놓았고, 영화관에 오는 이들을 크게 늘려놓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아무리 CJ가 엄한 작품들을 만들거나 오락성에 치중한 대작을 주로 만든다고 해도 박찬욱과 봉준호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비겁한 다른 대기업들, 삼성, 엘지, 현대... 다들 IMF를 맞자마자 문화사업에 투자한다던 방침을 다 바꾸고 정리해버리기 바빴는데, 상대적으로 훨씬 소규모이던 제일제당과 동양이 그 힘든 시기를 버티고 결국 한국영화의 융성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미키 리의 공이 과보다는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인싸소리를듣던 시절이었습니다.
거기서 군대가기전 퇴마록을 봤던 기억이 나네요. ㅠㅠ
강변에 있을 때 학교 과제 때문에 마케팅팀 직원하고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의 자부심과 동시에 당시 지역+상영관수의 네이밍(CGV 강변 11) 때문에 분당 오리역에 있는 CGV 오리의 상영관수가 10개임에도 불구하고 어감(오리ㅆ...) 때문에 오리 8로 변경했다는 비화 등 이런저런 얘기를 듣기도 했었습니다. ㅎ
CGV 강변 개장 후 새 건물 냄새가 안빠진 극장에서 이집트 왕자를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당시 CGV 강변은 하나의 아이콘이었습니다.
그 당시 단성사/피카디리/서울극장과 비교하면 정말 엄청난 충격이었죠.
그 전 동네극장 수준은 정말 안 좋았습니다.
이상한것같지만 일견 맞는 얘기입니다. 땅파서 영화만드는거 아니잖아요. 아무리 좋은 감독도 돈대주는 투자자없으면 영화못만듭니다. 봉준호도 지리멸렬같은거나 계속 만들고있어야죠.
영화는 개인돈으로 만들기는 엄두가 안날만큼 돈 엄청 많이 들고요..상영을 염두에 둔다면 배급과 마케팅까지 또 어마어마한 돈이 듭니다.
결국 좋은 안목을 지닌 투자가 없다면 좋은 영화가 나올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두개가 같이 가는거예요.
봉준호 감독이 초반에 만들고 참여했던 영화들 역시 울나라에선 개봉조차 못 될 영화들이었다면 생각이 조금 달라지실까요?
돈을 많이 써야 좋은 영화가 나오고, 돈이 없는 저예산 영화는 후지고.. 이런 거 아니잖아요?;
저예산 영화들이 개봉관에 걸리지도 못하는 작금의 사태는, 역설적이게도 멀티플렉스 대기업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입니다.
자기들이 투자한 될(?)만한 영화를 몰아주고 편식을 강요하는..
예술만 가지고 무조건 굶으면서 할수만은 없는것도 사실이니깐요
아니요. 한국 영화의 구조는 대기업이 제작하고, 대기업이 배급하며, 대기업이 극장을 운영하는 올인원 시스템입니다.
과연 그렇게 번 돈들이 저예산, 힘 없지만 능력있는 감독들에게 돌아갈까요?
마치 누가 들으면 CJ가 지금의 봉준호 감독을 만든 줄 알겠네요.
거론하신문제는 멀티나오기전에는 오히려 더 심했고..지금이 오히려 재능충만하고 대중성을 겸비한 작가들이 투자받아 영화만들기에는 좋은 시대가 되었다는건 본문에도 잘 설명되어있습니다.
대중성없는 저예산 예술영화들이 극장에서 외면받는 문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그냥원래 만국공통의 문제고요. 그냥 대중의 입장에선 당연한겁니다. 극장도 자선사업하는데가 아닌이상에야..
그이유때문에 말씀하신 문제에대해서 고민이 더 필요한거구요. 지원하는 문제.
근데 그것도 결국 돈이죠.
과거 쉬리 전에 영화들은 대부분 조폭이나 뒷쪽 자본 가지고 영화 찍었습니다.
그리고 예산이 끽 해봐야 10억 넘기면 엄청난 대작이었고
(물론 그시절 금액으로 따지면 엄청 큰돈이긴 합니다만...)
얼추 5억 언저리쯤에 영화 한편이 만들어졌죠.
게다가 그런 자본을 대니 어깨 좋은 분들이 가끔 영화판에서 감내놔라, 대추 내놔라 했다고 하고요.
그만큼 열악하게 만든거였고 작품 자체가 지금처럼의 퀄리티도 아니었죠.
게다가 그때에는 배우들이 영화배우보단 TV에 나오는 탤런트로 선호 했었고요...
그러다가 영화 산업이 커지고 메가히트가 되자 뭐...아시는바와 같이...
봉준호 박찬욱도 힘없지만 능력있는 감독이었습니다. 둘다 데뷔작 폭망으로 투자자를 못잡아 퇴출위기에 있었지만.. 그들의 재능을 눈여겨본 안목있는 투자자를 만나 다시 기회를 부여받은거잖아요?
재능넘치는 감독이 돈때문에 데뷔못하는것만큼 감독도 재능없으면 그냥 퇴출됩니다. 대기업의 편중문제는 문제입니다. 그건 별개로 고민할문제고.
영화는 그냥 만국공통 고자본산업이라는 틀은 변하지않으니 그틀에서 고민을 해야지 현실부정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나마 cj는 그런쪽으로 지원을 해주는 얼마안되는 축입니다. 물론 재벌으로서 과도 많고 그들의 악랄함도 있지만요. 공과가 있는거죠.
열정페이는 한계가 있어요...
플란다스의 개가 흥행실패하고 살인의 추억 전까지 봉감독은 생활고를 겪을정도였죠.
대중적이지 못해 영화가 망했어도 CJ같은 거대자본이 투자를 해줬기에 살인의 추억부터 오늘의 기생충까지 찍을수 있는 감독이 나온거죠.
좁은 좌석과 통로, 입구의 비상구 불빛, 쥐가 나올것 같은 매점 등등 싱크되는 부분이 많네요.
친구를 마지막으로 만경관이 리뉴얼 되기전까지는 안갔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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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지금도;
이미경회장 난 사람인거 같습니다.
CGV 전에 제일제당 하면 설탕이나 다시다 정도만
떠오르네요.
CJ ENM 영향력도 대단하구요.
게다가 제작 투자 배급이 한회사가 다하는것도 말도안되는...
그리고 아트하우스 등 독립영화도 돈은 안되지만 씨제이가 지원을 빠방하게 지원 하는걸로....
그전에는 동아극장. 씨티극장. 명보극장만 가던 시절이라...
이수만이 SM을 통해서 이룬 것은 아이돌 시스템보다 기존 깡패들과 방송 PD들에게 종속되어 있던 가수들을 독립시켰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하더군요. 이거 하나 만으로도 이수만은 존경 받을 만 하다고 합니다.
대갈장군(?)이나 앉은키대장이 앞에 앉으면 그날 영화는 공치는 것 이었습니다.
이제 그럴 일이 거의 없죠. 정말 한국 극장 엄청 좋아졌습니다.
근데 그게 CGV 덕분이라고 느낀적이 없었는데 이 글을 보니 맞다 그렇구나 싶네요.
독점이니 뭐니 해도 정말 이분 덕분에 한국 영화산업의 상황이 좋아진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결과가 말해주잖아요. 관객동원수와 우리나라 영화 산업의 국제적 약진이 말이죠.
글로 묘사하신 옛날 극장 느낌이
묘하게 더 끌리기도 하네요
(비싼 팝콘만 제외하고)
영화관 내부를 묘사하신 글만 읽어도
비판적인 이성보다 묘한 향수가 앞서 떠오르니 말입니다
사람없는 시간대에
묘사하신 약간 허름한? 느낌의 작은 영화관에서
싼팝콘이나 전자렌지돌리는 팝콘에
약간 김빠진 콜라에
옛날 헐리우드 액션 영화나 b급영화
(터미네이터나 이블데드3 같은) 보고싶네요
마치 잡음들어간 라디오음악이나
테이프, lp가
옛날픽셀콘솔게임이나 휴대용게임보이게임이
뭔가 더 부족한데
뭔다 더 향수를 자극하는것처럼 말입니다
옛날 호떡이나 떡볶이처럼
아주 맛있어서 먹고싶기보다는
옛날 갬성을 느끼려고 먹고싶을때도 있으니까요^^;
저도 옛날사람이라
사람머리는 진심 동감이긴한데
그냥 그런 허름한?
필름영화 틀어줄것같은 옛날 극장 분위기?가
묘하게 갬성돋아서요
이미경 회장 대단한 사람이네요.
보호막 아래서 머물러 있었다면 경쟁력을 잃고 온실 속 화초가 됬을 수도 있을테니까요.
철저하게 돈이 되냐 안되냐, 돈놓고 돈먹기 판에서 기생충이 수상한 것도 대단한겁니다.
박근혜 블랙리스트 인증이면 더 볼것도 없이 좋은 분이죠.
Executive Producer가 엄밀히 말하면 제작자도 아니고, 명확하게 수상자가 정해진 상인데요.
모양이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 전에는 극장 하면 화면 하나나 두개 정도...
열개 중에서 8개 거는게 독점으로 보여도
두개 중에서 2개 거는것보다 낫다고 봐요
...라고 외삼촌이 쓰라시네요 ㅎㅎ
외삼촌이!!! 대한극장 1,980석에서 70mm 필름으로 타이타닉 보던 기억은 없으셨나 봅니다 :)
지금이야 아이맥스관 등이 다시 대형스크린관을 하나 씩 운영하지만 멀티플렉스 초기는 작은 스크린으로 인한 단점도 있었습니다.
당시는 대한, 국도,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 명보, 스카라 등 모두 1,000석 이상의 대형관들이어서 극장만의 웅장하고 그런 맛도 있었습니다.
왜인지 댓글을 수정하셨는데 태클은 아니니 제 댓글은 그냥 놔두겠습니다.
그건 배째라 가 아니라 투자 대비 수익이 안 나오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작은 극장 하나 만드는데 생각 보다 그렇게 큰 돈이 들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일정 관객 수가 안 나오면 운영이 어렵습니다.
사람과 돈이 몰릴 곳이라면 대기업 체인들이 그냥 둘 리가 없고요.
아예 못들어오게 조례로 지정했단 소문까지 있었는데 사실인진 모르겠어요
워낙 위생적으로도 관리가 엉망이라 얘들영화보여줄려면 다른지역으로 나가서 극장관람하는 동네입니다
참고로 예전 인터넷짤방으로 돌던 전설의 메가박스가 있던 그동네입니다
배급사나 투자자 측에서도 아카데미 시상때 종종 인터뷰 했던 적 있지 않나요. 왜 이런게 불편한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이미경님은 503때 변호인등 정권에서 싫어할만한 영화에 투자 배급했던 전적으로 오랬동안 고생했었죠.
그간의 상황을 봤을때 저정도 짧은 인터뷰는 들어줄수있는 아량은 있어도 좋을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