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
8분 ·
숙대 합격한 트래스젠더 여성이 입학을 포기했다.
나는 용산 보광동 오산학교를 졸업했다. 남쪽으론 한강이고 북쪽으론 남산이 바라보이는 이태원 접경이었다. 성실한 학생이 아니었다. 거의 날마다 술에 취하는 얼치기 상습 술꾼이었다. 시집을 끼고 살았다. 장래희망이 시인이었으니까 뭐 좀 그래도 된다고 믿었다.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맨정신에 마주칠 수 있는 친구가 많지 않았으니까.
밤새 마시고 아침에 학교에 가서 잠을 잤다. 오후 세시엔 어김없이 학교를 나왔다. 보충수업과 야간자습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선생들은 좀 화를 내기도 했지만 별로 어쩌지 못 했다. 술에 취해서 지각했을 때 문예부 담당이자 담임이었던 이영설 선생님한테 단 한 번 종아리를 열다섯 대 맞았다. 너는 천재니까 <현대문학>으로 등단하라고 하셨다. 그땐 그 문예지가 폐지가 아니었던 시절이었을까.
학교에서 나오면 이태원 끄트머리에 있는 카페 '곰'으로 갔다. 아니지, 남영동 학사촌에서도 주로 놀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장래희망이 시인이었다. 카페 '곰'에는 내 친구 이장욱이의 초딩 여동창과 그 친구들과 동창의 여동생과... 뭐 그런 아이들이 술을 마셨다. 여고 야간을 댕기거나 그만 둔 아이들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과 참 잘 지냈다. 내가 술에 취해서 캄캄하게 토하면 늘 등을 두들겨주었다. 나는 평화롭게 토했다.
이태원에는 두 개의 트랜스젠더 업소가 있었다. 내 친구들은 대충 가억할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와 '열애(크레이지 러브)'... 내가 맨날 술 처먹던(술값은 내 부자 친구 이준희가 주로 냈다) 카페 '곰' 바로 맞은 편에 '클레오파트라'가 있었다. 거기서 일하는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카페 '곰'의 사장 형님을 잘 따랐다. 오빠, 오빠 하면서 울거나 웃거나 그랬다. 나한테는 몹시 수줍어 했다. 나도 좀 수줍거나 불편하거나 불쾌해하는 척 하곤 했다.
카페 '곰'의 사장 형님은 열일곱 살에 군산에서 가출한 사람이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었는데도 그때 겨우 서른 넷인가 그랬다. 고딩 술꾼 류근을 진짜로 좋아하는 척 했다. 새벽에 길 건너 포장마차에 나를 데리고 가서 술 마시는 걸 좋아했다. 너는 이 담에 진짜 멋진 시인이 될 거니까... 소주 두 병쯤 마시면 그때 영업중인 '클레오파트라'의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나와서 우동 같은 걸 먹었다. 반주를 좀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과음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눈물이 흔했다.
나는 그때 열여덟 내지 열아홉 핏덩이였다. 내 곁에서 그 새벽에 우동 국물을 훌쩍이며 눈물 콧물까지 훌쩍이던 그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나에게도 수용이 쉽지 않았다. 장래희망이 시인이어서 잔뜩 위악과 과장에 찌들어 있어도 쉽지 않았다. 솔직히 징그럽고 불결했다. 근거도 없이 무작정 그랬다.
하지만, 그들과의 조우가 며칠, 몇달 지나면서 나는 좀 변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선택한 성별이 하필이면 '여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차별이 존재하고, 현실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불이익과 고통이 넘쳐나는 시대였다. 하필 전두환 같은 악마가 집권하는 시대에 남성을 버리고 스스로 여성이라는 성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라니(물론 남성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주로 밤무대에서 쇼걸을 하거나 서빙 정도를 했다. 남자를 사귀면 대부분 곧 버림받았다. H호텔에서 디제이하던 내 친구도 몇달 사귀다가 잔인하게 버렸다.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필리핀이나 태국에 가서 수술받는 게, 완벽한 여성의 몸을 갖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여성의 몸을 가지고도 그들은 자주 울었다.
거의 40여년 가까이 지난 이야기다. 페미니즘보다 페시미즘이 흔하던 시대다. 숙명여대 입학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입학을 포기했다고 하니까 참 만감이 교차한다. 스스로 여성을 선택한 사람들이어서인지 더 적극적으로 여성적이었던( 이 말 좀 걱정되는군) 사람들 얼굴이 어른거린다. 정신적으로 여성이고, 여성의 몸을 선택했고, 법적으로도 여성인데 왜 여자대학교엘 못 가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타고난 여성만이 여성으로서의 '특권'을 누려야 한다면, 그 "공감과 연대"가 소수자에게 "공포"로 작용하는 거라면, 그러한 "이즘"은 어쩐지 좀 사이비스럽지 않는가. 어쩐지 좀 저능해 보이지 않는가. 어쩐지 좀 비린내가 나지 않는가.
더 긴 말을 쓰고 싶지만, 이쯤에서 멈춘다. 어차피 이쯤 써도 '그들'은 안 읽고 못 읽을 테니까. 기사에 달린 저능 댓글 보고나서 하도 어이가 없어서 모처럼 오버했다.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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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토욜이라 느긋해진 마음으로 페북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여러 글들을 퍼오게 되었습니다.
숙대 포기하신 분 생각에 류근시인 글까지 보니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게 되네요.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며 행복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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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위장하든간에 정치적으로 자한당과 같은 편이라는 거에요 . 극꼴페미 어떤 세력도 어떤 집회나 시위에서도 자한당 비판을 하는걸 본적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