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삼성 반도체가 벌어들인 돈이 엄청 났고 앞으로 또 이런 먹거리를 발굴해야 하니까요.
이건희는 어떻게 반도체에 주력할 생각을 했을까, 삼성 엔지니어들은 시장에서 요구하는 반도체 타입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늘 궁금한데 문순이라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고요. 다음 산업을 발굴해야 하는데..... 삼성에서 저 반도체 산업을 키워서 성공시킨 것만큼은
이건희의 판단력이 좋았던 건가 싶기도 해요. 아니면 우리나라에 우수한 엔지니어가 많아서 실현할 수 있었던 건지....
p.s 마침 4차 산업혁명 때문에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것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서 히트를 쳤다???
저 당시에 인텔이 앞으로 램버스 디램만 쓰겠다고 해서 주요 메모리 업체들 대부분이 램버스 쪽으로 갈아타고 삼성과 몇 몇 회사들만 DDR을 밀었는데 인텔이 램버스를 버렸죠...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jusik&no=324443
헐.....인텔...........ㄷㄷㄷ
뭐 엘피다도 그렇고 매번 하는거지만 때려보니 나보다 더 튼튼하네? 하고 자기가 망해버렸죠.
특히 램을 쌍으로 꽂아서 대역폭을 배로 늘리는건 램버스의 특허라고 알고 있습니다
/Vollago
그리고 하이닉스도 많이 씁니다.
비메모리 분야는 솔직히 말하면 형편없었죠 뭐.
들어보니 운도 정말 큰 요인이네요ㅠ
사실 반도체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가 지금 세계 1~2위 다투는 모든 산업이 성장 과정이 전부다 기적이고 드라마인 거 같습니다...
처음 반도체 시작한 이유는 일본 전경련에서 해보라고 추천했었죠 (당해보라는 식으로 추천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반도체 산업을 감당할수있게하는 총수에게 결정권이 집중된 재벌식 기업구조+까라면 까야하는 군대식 분위기+엔지니어들이 일본의 특허 지뢰밭을 피해 만든 수준높은 특허로 맺은 크로스 라이선스가 조합돼서 그런것같습니다
(거기에 80년대 후반-90년대 초 일본의 수재들은 다 의대로 가버려 한국의 엔지니어의 수준이 더 높았던 것도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80년대에 지금 화웨이 다루듯이
미국에서 일본 반도체 업체에 압력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삼성도 시의적절하게 반도체에 뛰어들었고 운이 많이 작용했다... 라고 우선은 정리를 했습니다
당시 뉴스를 보면 램버스 때문은 아닌듯 한데요..... 강해서 살아남아버린듯...
그냥 국제정세가 삼성을 온통 도왔었고 지금도 돕고 있는게 가장 큽니다.
운좋은 놈은 못이겨요...
2.1980년대... 일본이 디램업체 여러개를 만들어 싹쓸이함
3.1985년...열받은 미국이 플라자 협약으로 엔화가치를 폭등시키고, 미일반도체협정으로 미국에 수출하는 일본 전자제품에 일정양 이상의 미국산 반도체가 안 들어있으면 관세때려서 박살냄
4.3번 덕에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업체가 뜸. 그래도 아직 일본 디램업체들은 건재함.
5.1995년에 windows95가 출시되며, 이때부터 고성능 메모리 필요성이 대두됨
6.고성능 메모리 후보로, 램버스 디램(7배빠르다고 알려졌음)과 DDR(double data rate,두배빠르다고 알려짐)있었는데, 일본업체들은 램버스 쪽으로, 삼성은 DDR로 감.
7.2000년대 초 뚜껑을 열어보니 램버스가 비싸기만 하고 디디알과 별로 속도차이가 안남. 일본 디램업체들 폭망
플래시 메모리
초기에는 시장이 작아서, 가격이 매우 비쌌는데, 어느날 갑자기 스티브 잡스 아저씨가 삼성에게, iPod(mp3 player)용으로 플래시 메모리를 반값에 팔면 엄청난 물량을 사주겠다고 함. 이때 이후부터 도시바는 완전 찌그러지고, 나중에 삼성에서 Vnand(다층구조로 플래시 메모리를 쌓음)개발하면서 일위 자리를 귿힘.
결국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 속도에 가장 영향을 주는 건 노스브리지와 사우스브리지 사이에 병목현상이 심해서
램의 속도 영향이 반감되었다라는 거죠
저중 NEC가 가장 먼저 떨어져 나가고 도시바는 그나마 플래시로 생존한건가요?
80년대 치킨게임에서 가전 팔아 버텼을테고... 아니면 재벌구조의 모처럼 긍정적인 경우랄까요...
여하튼 인텔 등이 메모리사업 포기할 때 살아남은 새우가 된 이후로는
사람을 갈든 뭘하든 우쨌든 원가경쟁력에서 계속 앞섰죠
링크 글 보다보니 80년대부터 수익내기 시작한 현대전자도 대단하군요 - 이래서 빅딜 결과가 그랬던건가
/Vollago
지금은 글로벌 10브랜드이구요
다른 재벌 총수들은 글로벌 10안에 들고싶지 않았을까요?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회장이 승인 안하면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 있을까요?
이재용이 성공시킨 사업이 있을까요?
국제 정세, 경쟁기술의 어이없는 몰락 이런 외부적 요인도 있지만, 20년 동안 저렇게 성장한 힌국 기업도 없어요. 과거에는 현대가 삼성보다 위였어요. 지금은 비교불가이지만요
잘 나가는 회사를 회장이 말아먹기도 하는데, 90년대 세계 변방의 회사를 글로벌 10안에 들 수 있게한 것도 재벌 회장의 능력이에요
사업 포트폴리오를 밑에서 짜와도 결국 선택해야 하는 건 회장 몫이고, 그걸 잘해낸 것도 이건희입니다. 지금 이 얘긴 도덕성 과는 별개에요
순환출자, 무노조 경영을 위한 직원 탄압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입니다
ddr 국가적으로 그냥 내버려 둠..
왜냐면 imf때 너무 간섭한게 미안해서....
그래셔 일본은 고난이도의 기술만 쌓고 돈은 못벌고....
시장 논리를 따라간 삼성은 돈만 많이 벌고....
이런 싸이클이 반복 되면서 품질까지 좋아져서 삼성의 기반이 탄탄해지게 됨.
지진도 도와준걸로...일본 대만..
이건희 회장이야 말로 고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를 하자고 했을 때, 정면에서 앞장서 반대했던 사람입니다. ㅎㅎㅎㅎ
고 이병철 회장도 그렇고 이건회 회장도 2000년대 초까지는 해마다 연말과 연초면 가는 곳 있었는데, 바로 일본입니다.
지금은 죽고 없는 마쓰시다 창업자를 만나러 가는 거였죠. 왜? 앞으로 뭘 할지 사업적인 조언을 구하려고 말이죠. 겸사겸사 사업자금도 빌리고... 겉으로는 당시 선진국인 일본의 산업경제를 살펴보고 다음해 사업을 구상한다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했었지만요.
이병철 회장이 80년대 중반에 마쓰시다 창업자의 조언을 받아 시작하기로 작심한 것이 반도체.
그래서 ASIC 기반으로 일부 DRAM을 하고 있던 한국반도체를 헐값?에 인수한 것이 바로 지금의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입니다.(사실은 부천 ASIC 공장입니다. 기흥은 나중에 DRAM을 위해 새로 지은 겁니다)
이후, 1994년 1M, 4M DRAM 성공할 때까지 거의 10년을 삼성반도체는 해마다 수십억에서 수백억 적자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래서 삼성반도체는 별도 법인이 아니고 당시 막대한 흑자를 내던 삼성전자 산하 부설 반도체 사업부로 속하게 만들어서 적자를 처리해서 월급도 주고 했네요.(그것 때문에 삼성전자 가전쪽에서 반도체를 매우 싫어했어요. 깔보기도 했고..) 그것도 나중에 적자가 심하니까, 연말이면 삼성화재나 삼성생명들에 대량의 반도체 관련 부품과 모듈, 장비 등을 납품했다는 계약을 해서 메웠고요.(실제 납품했는지는 여러분 상상에...)
그리고, 삼성이 성공한 것은 램버스 때문은 아니고, 당시 일본의 반도체 산업전략과 세계 반도체분야의 흐름, 우리나라 IMF 등 많은 요인이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운도 있었고 그렇습니다.
끝으로 제가 당시 92년부터 98년까지 기흥 근무했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중간에 경쟁사와의 희비를 가르는 선택이 그 당시 보면 별 차이 없었는데 나중에 가면 차이가 커지는 등과 같은 판단의 운도 몇 번 따랐고요.. 어디가 지진이 나서 그 덕을 보기도 했고요, 대기업이라는 장점(삼성공화국?)을 십분 활용하기도 했고, 그래서 결국 메모리 반도체 치킨게임의 승자가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