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학 서가를 가만히 살펴보면 장르문학, 그 중에서도 판타지 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제로에 수렴합니다.
- 중략 -
그러나 이들 중에는, 문학이라는 틀로 표현할 수 있는 가벼움의 극한을 시험하려드는 저급한 작품들이 수두룩합니다. 대중성을 위해 문학성을 엿 바꿔 먹은 것들이지요.
우리의 문학 서가는 '책'을 꽂아두는 공간이지, '불쏘시개'니 '파지'따위를 모아두는 공간이 아닙니다. 그런 부류는 '나무야 미안해!'를 외치며 아궁이에 던져버리는 편이 낫지요.
그렇기에 이영도 작가는 우리 문학에서 더욱이 소중한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잉크와 종이조차 아까운 불쏘시개 수준의 장르문학이 범람하는 시대에 수준있는 작품으로 우리 장르문학의 체면치레를 대신 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그런 이영도의 작품 중에서 단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고민없이 '눈물을 마시는 새'를 택할 겁니다.
작품의 제목 '눈물을 마시는 새'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네마리 새에 관한 설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여기 네 마리의 새가 있습니다. 각각의 새는 피, 물, 독, 눈물만을 먹고 삽니다. 넷 중에서 가장 오래 사는 새는 누굴까요? 바로 피를 마시는 새입니다.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마시기 때문이지요. 반면에 가장 일찍 죽는 새는 눈물을 마시는 새입니다. 사람들이 기꺼이 밖으로 내놓기 원하는 것을 마시기 때문이지요.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인간들은 왕을 찾아 헤맵니다.
그들은 왕을 잃었습니다. 오래전 키탈저 사냥꾼들이 그들에게서 왕을 빼앗아갔지요. 그들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에게 왕을 돌려달라' 일 것입니다. 그것은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던 백범의 소원만큼이나 간절한 것이지요. 그렇기에 이에 부응해 수많은 자칭 '왕'들이 등장합니다.
주인공 케이건 드라카는 인간들에게 묻습니다. 왕이란 무엇이냐고. 수많은 답변들이 소설 속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케이건은 이들을 물리치고 이렇게 답하지요. 왕이란 '눈물을 마시는 새'. 왕은 백성이 흘린 눈물을 모두 마셔야하는 존재라고. 사람들이 흘리기 싫어하는 것만을 마시기에 눈물을 마시는 새는 가장 일찍 죽는 것이라고.
최근 눈물을 마시는 새를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이번이 아마 4번째던가요? 작금의 시국을 목도하면서 대체 지도자란게 무엇인지, 다시금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해 이 소설이 내놓은 답은 다음 대목에 있습니다.
~~~
"왕이 도대체 뭐죠?"
케이건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비형은 옆으로 다가온 나늬의 뿔을 쓰다 듬으며 계속 말했다.
"성주, 영주, 마립간, 추장, 족장.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이끄는 사람들이 있죠. 하지만 왕은 없어요. 왕이 되겠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만 있을 뿐. 뭐, 꽤 큰 도시를 차지하는데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물론 오래 못갔지만. 저는 그 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싶은 야망이 남보다 큰 사람들 일거라고 생각했어요. 야심이라고 하던가요? 아니, 지배욕인가?"
케이건은 묵묵히 비형의 말을 듣고 있었다. 비형은 고개를 죽 돌려 사방으로 멀어지고 있는 사람들을 둘 러보며 말했다.
"뭐, 어쨌든 그게 제 단순한 생각이었죠. 왕이 되려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싶은 자들이다. 라 는 거죠. 하지만 그렇지가 않더군요. 아주 당연한 건데, 그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어요. 왕이 되려는 자들은 그에게 지배당하고 싶은 자들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그 지배당하고 싶은 사람들이 중요한 거죠. 그에 비하면 왕이 되려는 사람들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케이건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비형은 계속 말했다.
"예.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마음이 아무리 커도 아무도 그를 왕으로 여기지 않으면 그렇게 세상을 떠 돌아다닐 수는 없는 거죠. 누군가가 있어야 해요. 그를 왕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이. 그래야만 그는 모든 걸 버리고 그렇게 떠돌아다닐 수 있죠. 그렇다면, 왕은 도대체 뭐죠?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왕은 왕이 되고 싶어하는 저 제왕병 환자들의 목표인 가요, 아니면 그 제왕병 환자를 왕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자들의 목표인 가요?"
"눈물을 마시는 새요."
"네?"
토디의 모습이 지평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케이건은 그 지평선을 바라 보며 말했다.
"왕은 눈물을 마시는 새요. 가장 화려하고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빨리 죽소."
~~~~
소설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이 대목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왕'에 대한 주제의식을 잘 보여줍니다.
진정한 자신들의 왕을 찾아헤매는 인간들의 모습은 어쩌면 지금, 여기에서 촛불을 들고 분노하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그렇기에, 우리의 문학 서가에 장르문학을 위한 좁은 공간이나마 마련할 여유가 된다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그 자리에 눈물을 마시는 새 4권을 꽂아두고 싶네요.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들이 계신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