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딱 한 번 그녀를 안았던 적이 있다. 안았다고는 해도 섹스를 했던 것은 아니고 단지 물리적으로 안았을 뿐이다. 몹시 취해 여럿이 뒤엉켜 잠을 잤는데, 눈을 떠보니 우연히 그녀가 내 옆에 있었던 것이다.
뭐, 흔한 일이지만.
하지만 나는 그 때의 일을 지금도 신기할 정도로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내가 잠을 깬 것은 밤 3시로 얼핏 옆을 보니까 그녀는 나와 같은 담요를 덮고 기분 좋게 새근거리며 자고 있었다. 여럿이 뒤섞여 자기에 좋은 6월 초순이었지만, 이불도 깔지 않고 맨 바닥에서 쪼그리고 잤기 때문에 온 몸이 쑤셨다. 게다가 그녀는 내 왼팔을 베개 대신 베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목이 미칠 정도로 말랐지만 머리를 치울 수도 없었고, 가만히 머리를 들어올려 팔을 뺄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잠을 깨면 이상한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결국 잠시 생각하고 나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잠깐 동안 상황 변화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 사이에 그녀가 몸을 뒤척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면 나는 재빠르게 팔을 빼고 물을 마시러 가면 된다. 하지만 그녀는 놀랍게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규칙적인 호흡을 반복할 뿐이었다. 내 샤쓰의 소매는 그녀의 숨결 때문에 따뜻하게 젖었고, 간지러우면서도 묘한 느낌이 들었다.
15분이나 20분 정도 그대로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물을 마시는 것은 단념했다. 갈증은 견딜 수 없었지만 지금 물을 마시지 않는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다. 나는 왼팔이 움직이지 않게 주의하면서 고개를 돌려 머리맡에 굴러다니는 누군가의 담배와 라이터를 찾아내서 오른손을 뻗어 끌어당겼다. 담배를 피우면 더욱 목이 마르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한 가치 빼어 물었다.
하지만 실제로 담배를 다 피우고 그 꽁초를 손 가까이에 있는 빈 맥주병에 집어넣고 나자 이상하게 갈증은 담배를 피우기 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그래서 나는 한숨을 쉬고 눈을 감고 다시 한 번 잠을 자려고 노력했다.
아파트 근처에 고속도로가 있어서 심야 트럭의 짓눌리는 듯한 편편한 타이어 소리가 얇은 유리창 저쪽에서 방 안의 공기를 희미하게 흔들어 놓고, 몇몇 남녀의 숨소리와 가볍게 코고는 소리가 거기에 뒤섞였다. 그리고 한밤중에 다른 사람의 방에서 잠을 깬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나도 <도대체 이런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자 관계가 묘하게 꼬여 하숙집에서 쫓겨나 친구 아파트에 굴러들어오게 되었고, 스키도 타지 않는 주제에 스키 동료 써클에 끼여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에게 팔베개를 해 주게 되고, 생각할수록 우울해졌다. 이렇게 허송세월할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런 전망이 없었다.
자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눈을 더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가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녀는 내 왼팔을 해방시켜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가슴으로 파고들듯이 내게 몸을 밀착시켰다. 그녀의 귀가 내 코 알에 닿았다. 엷은 향수와 희미한 땀냄새가 났다.
가볍게 접혀진 그녀의 다리가 내 허벅지 위에 걸쳐졌다. 숨소리는 아까처럼 평화롭고 규칙적이었다. 따스한 숨결이 내 목에 닿았고, 옆구리 근처에서 그녀의 부드러운 젖가슴이 숨결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모직으로 만든 꽉 끼는 셔츠에 플레어 스커트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몸매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묘한 상황이었다. 그것이 다른 경우였다면, 즉 상대가 다른 여자였다면 나도 그런 상황을 충분히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그녀였기 때문에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난감하지 그지 없었다. 아무리 해도 내가 처해 있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탈출할 방법이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게다가 더욱 낮 뜨거운 것은 나의 페니스가 그녀의 다리에 착 달라붙은 채로 딱딱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같은 자세로 자고 있었지만, 내 페니스의 형태 변화를 확실히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조금 뒤에, 무의식을 가장해 살짝 팔을 뻗어 내 등을 휘감고 몸의 방향을 조금 바꾸었다. 덕분에 그녀의 젖가슴은 더욱 내 가슴에 밀착되었고, 내 페니스는 그녀의 부드러운 하복부에 눌려졌다. 상황은 훨씬 나쁜 방향으로 흘러 갔다.
나는 그런 상황에 내몰리게 된 것에 대해 그녀에게 화가 났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여자를 안았다는 행위 속에서 어떤 종류의 삶의 뿌듯함이 느껴졌고, 그러한 감정이 내 몸을 완전히 에워쌌다. 나는 이미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 그녀도 나의 그러한 상태를 분명히 느끼고 있고, 나는 그 때문에 또 화가 났지만, 팽창한 페니스라는 묘한 불균형 앞에서 화를 낸다고 해도 이미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나는 단념하고 오른팔을 그녀의 등에 돌려 감쌌다. 그래서 우리는 꼭 껴안은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둘 다 잠든 흉내를 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젖가슴을 가슴으로 느끼고, 그녀는 나의 딱딱한 페니스의 감촉을 배꼽 아래에서 느끼면서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녀의 작은 귀와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바라보고, 그녀는 나의 목을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잠든 척 하면서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스커트 속에 손을 집어넣는 것을 생각하고, 그녀는 내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따뜻하고 매끈매끈한 페니스를 만지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서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너무나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매우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녀는 나의 페니스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나의 페니스는 마치 나의 페니스가 아닌 누군가 다른 남자의 페니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쨌든 나의 페니스였다.
나는 그녀의 스커트 속에 감춰진 조그만 팬티와 그 안에 둘러싸인 따뜻한 질을 생각했다. 그녀도 내가 생각하는 그녀의 질에 대해서 내가 나의 페니스에 대해 느낀 것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여자는 질에 대해서 우리가 페니스에 대해서 느끼는 것처럼 아주 다른 느낌을 가질지도 모른다.
몹시 망설인 끝에 나는 그녀의 스커트 속에 손을 집어넣지 않고, 그녀 또한 내 바지의 지퍼를 내리지 않았다. 그것을 억제하는 것이 그때는 매우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지만, 결국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 이상으로 상황을 밀고 나갔다면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감정의 미로에 빠지게 됐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을 분명히 그녀도 느꼈음이 틀림없다.
우리는 같은 자세로 30분 정도 서로 껴안고 있다가, 아침 햇살이 방 구석구석까지 또렷이 비출 무렵 몸을 떼고 잠을 잤다. 몸을 떼고도 내 주위에는 그녀의 살내음이 아련히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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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written by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만의 독특한 감성이나 필체가 있는 거 같아요
침 흘린거 같은데..
3인칭으로 넘어와선 조금 무뎌졌습니다.
똑같은 영화라도 누가 번역 하느냐에 따라 우린 다른 감상평을 내놓게되죠.
오른손은 담배를 피고, 꽁초를 맥주병에 넣는게 가능한가요?
물론 자는 방안에서 담배 피우는 건 극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