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과 당대의 천하를 양분하고 평생의 라이벌이라 할만한 중국의 구리 9단이 이세돌의 은퇴를 몹시 애석해 하며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제가 중국어를 몰라 뉴스에 나온 그대로 옮기면
//중국 반응은 더욱 격하다. 이세돌과 10번기에서 뜨겁게 경쟁했던 구리 9단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세돌은 내 앞길을 비춰줬던 등불"이라고 표현했다. 또 자신의 웨이보에는 "지금은 꼭 안아주고 싶을 뿐, 할 말은 수천수만 가지인데 이제 누구와 이야기를 나눌까"라고 썼다.
이어서 "고맙다! 알파고라는 강적을 만나 '신의 한 수'로 인류의 지혜와 보물을 지켜줬다. 너는 내게 언제나 추구할 목표였다. 함께 바둑에 길을 걸을 수 있어 감사했다. 혹시 기억할지 모르겠다. 언젠가 내게 "정상에서 내려가도 후회는 없다. 그래도 난 이 생에 한번 멋지게 살아봤잖아."라고 말했지. 이 한 잔은 너의 화려했던 과거, 다음 한 잔은 너의 희망찬 내일을 위해 건배한다.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독보적인 이세돌로 거듭나길 기원한다."라는 문장도 남겼다. //
중국 격언 중에
"호한은 호한을 아끼고 영웅은 영웅을 애석해 한다" 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이세돌과 동갑인 구리 9단은 세계 제일의 바둑 실력도 실력이지만 성격이 호방하고 나눔을 많이 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바둑을 이겼을 때나 졌을 때나 항상 웃는 낯으로 자전 복기에 나서서 해설하며 이겼을 때는 "운이 좋아 이겼다"며 겸손하고, 졌을 때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며 승자를 한껏 추켜세우고요. 한국의 어린 선수들이 중국에 와서 대국을 하면(중국 갑조리그) 자기가 좋아하는 식당에 초대해서 같이 저녁 식사 자리를 가지고 먼저 노래를 부르며 손님 맞이에 최선을 다하는 이상한 심성(?)을 가진 선수죠. 흔히 말하는 대륙의 호방한 상남자. 이래서 한국의 젊은 기사들도 구리를 형으로 부르는 기사들이 많다고 합니다. 커제야... 좀 배워라
오죽했으면 성격이 까칠한(! 그러나 걸그룹은 좋아했지) 이세돌 9단도 "구리 9단이라면 마땅히 친구로 사귈만 하다" 며 구리가 여는 연회는 마다하지 않고 갈 정도라고 합니다.
평생의 명예와 부가 걸린 이세돌과의 '세기의 10번기'에서 졌을 때도 이세돌에게 아낌 없는 축하를 보내며 "시대의 진정한 명인" 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세돌과 알파고와의 대결을 실시간으로 직접 해설하면서 제 4국에서 그 유명한 "엇! 이건 신의 한수입니다!" 라는 드립을 치기도 했죠.(시대의 2인자라고는 하지만 실제 이세돌과의 전적은 거의 50:50으로 팽팽합니다)
"바둑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제대로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늦은 나이에 칭화대 역사학과에 도전해서 졸업까지 한 것은 덤.
시대의 2인자라고는 하지만 구리만큼 시대의 1인자를 바로 뒤에서 항상 추격한 사람은 없었죠.
Cu....
그때 이세돌과 구리 전성시대가 잼낫엇는데
구리의 포석은 당대의 최강자였던 이세돌도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였죠.
오죽하면 수백년 동안 포석 멋내기에 골몰했던 일본 기사들도 "구리의 포석은 가히 책에 넣어 배울만 하다"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이세돌이 구리를 이기는 경기를 보면 포석에서 한참 밀리다 중반 전투에서 좀 따라 붙고 후반 끝내기에서 역전하는 경기가 대부분입니다.
구리가 호방한 포석에 비해 잔 끝내기가 약해서 붙은 별명이 "세계 최강의 아마추어" ㅜㅜ
하필 이세돌이 그 시대에 있어서 그렇지 구리가 타이틀 홀더로 치자면 이세돌에 꿀리는 기사가 아닙니다.
꿀리는 기사가 아니라도 암튼 그 시대에 이세돌이 최고니까 구리는 두번째일 수 밖에 없죠.
일반인들에겐 타이틀 홀더든 뭐든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요....
첫번째가 누구냐인거죠 ㅎㅎ
사실 커제가 우리나라 언론에 안 좋은 모습만 비춰져서 그렇지 딱히 나쁜 애는 아닙니다.
이세돌이나 이창호를 만나면 거의 90도로 인사를 하면서 공식 석상에서는 항상 "이세돌 선생님" "이창호 선생님" 하면서 극 존칭을 쓰고요.
애처럼 순수한 면도 있어요.
예전에 LG배였나 (ps. 아니네요. 찾아보니 2013년 몽백합배 예선이라고) 예선 경기를 일찍 끝내고 심심한 나머지 한국 기사와 알까기를 하고 놀다가 걸려서 한국 선배기사에게 혼난 적도 있고요. 경기가 안 풀리면 한국 욕으로 "에이 씨발..." 하다가 걸리기도 하고... 참 이상한 애입니다.
커제는 아직 어린가요. ㅋㅋ
즐거운 출근길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