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에서 '궤변'같은 '원리'가 하나 있습니다
"우주원리"라고 불렸던 건데,
"내가 지금 바라보는 우주가, 저 모양 (배치)이 아니었다면, 지금 지구에서 저 우주를 바라보는 나도 없을 것",
이라는 일종의 '결정론'을 말합니다
저 멀리 보이는 우주와 그 우주를 관측하는 나의 관계가, 운명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얘깁니다
역사학에서도 비슷한 관점이 하나 있는데,
현재의 우리는 "과거의 유산"이라는 표현이죠
예를들어 제국주의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얘기가 되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뼈아프고, 또 한편으론 현재의 대립을 풀어나갈 때 쓰일 유용한 관점이기도 합니다
1.
"나는 이 소중한 1분을 잊지 않을거야...
지울 수도 없어,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으니까..."---아비
1990년대 한국대중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저는
홍콩의 왕가위 감독과,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를 꼽습니다
두 분이 아주 흡사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고, 그 우울한 정서가 당시 한국 젊은세대를 사로잡았죠
왕가위 감독의 작품 가운데,
열혈남아, 동사서독, 중경산림, 화양연화 거의 모든 영화가 수작인데
저는, 역시, 1989년작 <아비정전>을 최고로 꼽습니다
1990년대 영화잡지 키노는 "홍콩반환이란 시대적 우울함을 주인공의 처지로 풀어낸 수작"이라고 표현했었지만
우리가 당시 홍콩의 상황을 알고 영화를 본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요즘, 다시 영화를 보며 느끼는 서글픈 감정이란,
홍콩인들의 그 지독한 우울과 슬픔의 근원을 알 것 같은 나이가 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어린 나를 버리고 떠나 필리핀의 대저택에 살고 있는 친모
자신을 돌봐주긴 커녕, 술먹고 젋은 남정네와 연애에 탐닉하는 계모,
아비는 스스로를 "다리없는 새"라고 규정하고 바람을 따라...
사실 왕가위나 아비가 온몸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는
"그, 1분의 진실"이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 순간이 100년이든, 1분이든, 한번 공유된 사건은 역사가 되어버리는 거죠
절대 돌이킬 수가 없어요
그리고 때론 그 1분이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기도 하는거죠
좋건 싫건 말이죠
2.
제가 최근 Quora 라는 사이트에서 간간히 역사논쟁을 하는데,
일본인들은 제가 어찌됐건 물리치긴 해요, 그런데
역시 머릿수 많은 중국인들과의 말싸움에서 쉽게 승리하지를 못했습니다
"홍콩이 서구 제국주의의 150년 지배를 받았고, 이제 중국이 해방하려는 중이다"
"홍콩이 영국 아래서는 주권도 못누렸고, 심지어 자치권도 없었는데, 왜 갑자기 달래는거냐?"
"하나의 중국이란 대의에 반해서 영국 국기 흔드는 홍콩애들 못봐주겠다"
머, 하나하나 반박할 수는 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논쟁중에 저도 홍콩인의 삶이 과거에 어땠는지 잘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한 중국인이 제게 이렇게 묻더군요
"당신은 도대체 어디서 홍콩역사를 배웠기에 이렇게 편향적이냐?"
글쎄요
우리야 한국에서 배웠지만,
사실 홍콩의 실제 역사가 어땠을지, 영국과의 관계가 어땠을지는 피부에 다가오는 감이 없어서
쉽게 답을 못했습니다
"그렇게 폭력으로 홍콩을 빼앗으면, 그렇게 진정한 해방이라고 볼 수 있겠니?
대국답게, 중국문화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끌어 안아야지, 홍콩인들이 왜 영국국기를 들었을지를 한번 고민해봤으면..."
3.
아비는 사생아죠, 홍콩이 그랬던 것처럼
왕가위 감독이 작정하고 설정을 했겠지만,
그 설정의 현실성과 상징성이 너무 뚜렷해서 홍콩의 현실을 알고 영화를 보려니
안쓰러워서 결론을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아비의 나레이션은 너무나 인상적이라 여기에 인용해 봅니다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죽기 직전 뭐가 보이는 지 궁금했어
난 눈 뜨고 죽을거야
죽을 땐 뭐가 보고 싶을까?
발 없는 새가 태어날 때부터
바람 속을 날아다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그 새는 이미 처음부터 죽어있었어
난 사랑이 뭔지 몰랐지만 이제 알 것 같아
이미 때는 늦었지만...
결국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는 하지만
그 모두가 대화를 원하는 건 아닙니다
힘이 있는 자는, 그 과거의 역사를 절대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죠
현재 한국의 검찰과 언론도 마찬가지죠 과거에 자신들이 얼마나 비굴하게 권력 앞에 빌빌댔는지는 기억 못하고
민주정부가 들어서자 "언론독립" "검찰독립"을 외치면서, 기득권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처럼요
중국 역시 마찬가집니다
자신들이 과거에 얼마나 썩어빠졌고, 현실을 외면하고, 시대의 흐름에 뒤쳐졌기에
아시아 민중들이 도매금으로 200년 가까이 도탄에 빠졌었죠
그런데 자신의 과오는 쳐다보지 못하고, 영국을 비난하고, 제국주의 비난하면서,
제국주의에 휩쓸린 홍콩주민들을 "서구제국주의 협력자"라고 비난하는 상황이죠
하지만, 앞서설명드린 우주원리처럼, 우리는 사실 모두가 제국주의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제국주의가 탄생한 한 시대의 유산을 물려받았고, 그건 돌이킬 수 없는 1분 같은 거라서
우리가 다 죽어 기억까지 완전히 소멸하기 전에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과거 홍콩의 성공이 제국주의의 덕이고, 그 뒤에 남모를 중국 인민들의 비참함이 배어 있다고 해도
그것이 현재 홍콩의 시민들이 괴롭힘을 당해야할 근거는 아닐 겁니다
홍콩의 젊은이들도 당당하게 자치권을 요구할 권리도 있고,
그건 2047년까지 '일국양제'란 이름으로 국제적으로 약속된 권리기도 합니다
게다가,
1980~90년대의 홍콩의 발달된 자본주의가 없었다면
중국공산당의 개혁개방정책은 절대로 성공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사실, 오늘날의 중국은 홍콩의 은혜를 원수로 되갚는 중이기도 합니다
영화 "아비정전"을 보면서
홍콩의 처지를 다시 돌이켜 보니
먼가 불안안 자기 예언인 듯 싶어 쓸쓸해 집니다
혹시나, 홍콩의 젊은이들이 아비처럼, 눈을 뜨고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인데,
따지고 보면, 아시아 젊은이들은 대부분 다 "다리 없는 새"같은 존재이긴 할 겁니다
어디 하나 역사가 온전한 땅이 없습니다...
그래도 더 씩씩하고 즐겁게 살아야 겠죠?
불가능하니 크헝 ㅠ
ㅜㅠㅡㅜ 장국영.....
그나저나 진짜 아비정전 결말은 ?!였어요.
아니 왜 여기서 끝나...?
이전에도 가끔 나온적이 있는데, 항상 "그건 너희들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니 묻지마라" 뭐 이런식으로 대답했었는데
오늘은 머리로는 너희 중국인들을 이해하지만, 내 가슴은 홍콩인들을 이해한다고 말해버렸네요.
90년 후반에는 막연했던 그 영화의 슬픔들이 지금의 홍콩상황에서 더 진하게 다가오는 때인거 같아요.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국 친구가 그러더군요 "홍콩애들, 너무 폭력시위 하는거 아닌가?"
처음에는 저도 살짝 눈치도 봤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얘기해주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한국도 1987년도에 엄청나게 많은 젊은이들이 죽거나 다쳤다....폭력시위라는 말은 사실 권위주의 정권의 시선이었다고.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생명을 존중하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죠." 물론, 서로 감정은 안상하게 하려고 노력중입니다.
해마다 MAMA 보고, 트와이스도 좋아하고, BTS도....대장금을 보면서 컸을 친구들인데...
사실, 저 홍콩영화와 한류가 강한 정서적 연대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의지하는 관계였었죠.
그 친구들에게 한국이 노래와 영화만 팔아먹고, 실질적 힘을 줄 수 없다는 점이 너무 서글프기도 합니다.
홍콩이 영국 조차지였다가 반환된 건 사실이지만, 백년도 전에 홍콩이 영국 조차지로 넘겨졌다는 사실이, 지금 중국의 독재정권이 홍콩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짓밟을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이건 역사를 따지기 이전의 문제죠.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우리공화당이 박정희/박근혜를 보는 시각도 신성불가침에 가깝죠.
언론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중국공산당이 중국인들을 세뇌한 것과 비슷한 일이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에서도 일어났습니다.
홍콩 시민들의 시위는 정말 한국 87년과 비슷한 분위기인 듯...
몽중인이라는곡이
저는 크랜베리스 곡인줄로만 알았어요
중경삼림 ost 였나요.
23년만에 알게되써요
크랜베리스곡을 아래 여배우가 번안한 곡이죠
친구라기보단 관계사 옜지만...
이런 질문에대한 답은 모두가 내정간섭이라고 답이 정해져있더군요.
저 역시 왕가위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지만 아비정전의 매력은..^^b
부모라는 우주에서 나라는 우주가 나온건데
저의 아비...는
제가 거부하고있습니다만
제속에 아비가 존재하는것은
부정할수없기에.너무도 슬프지만
그래도 살아야지요.
같은 "아"씨 성을 지니고 있군요
홍콩 시민들이 열심히 자기 주장을 하고, 시위를 하면서 직접 민주주의를 보장받았다면
지금 홍콩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왕가위 영화들도 그렇고, 허무주의에 빠져서 너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뒀습니다.
50년 정도로 충분했다고 봤나 봅니다....자신의 앞날을 예측한다는게 쉬운일은 아니죠.
그런데, 저는 왕가위 영화가 허무주의는 아니라고 봅니다. 하루키도 허무주의, 유미주의, 쾌락주의로 비판받기도 했는데, 저는 하루키도 허무주의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꿈과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파멸이나 낙심으로 인해 자신의 삶의 아름조차 포기하는건 아니거든요. 오히려, 절대적인 권위는 부정하지만, 소중한 자신의 삶과 사랑을 찾아 헤멘다는 점에서 "인생의 본질은 사랑"이라고 설파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손에 잡히지도 않는 사랑의 덧없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랑과 그에 대한 기억의 유의미성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