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에서 번역 오류가 뚜렷히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I Hope My Death Makes More Cents”라고 말하는 조커의 개그를 “내 죽음이 내 삶보다 더 ‘가취’ 있기를”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마치 조커가 ‘가치’라는 단어를 몰라서 ‘가취’라고 한 것 처럼 말이다.
이는 “I Hope My Death Makes More Sense”를 조커가 어휘력이 딸려서 Sense를 Cents로 오타낸 것 처럼 보이게 하는데 이는 전체 맥락을 망가뜨리는 망할 번역이다.
조커는 정신병이 있지만 어휘력이 딸리진 않는다. 평생동안 스탠딩 코메디언을 꿈꿔왔고 단어의 중의적 표현이나 말장난으로 개그를 짜왔는데 핵심 단어를 틀릴정도로 교육수준이 낮진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노트에 쓰여진 빼곡한 메모에는 오타가 전혀 없었고 회사에서 잘리고 돌아갈 때 “Don’t Forget to Smile”이라고 쓰여진 팻말에 Forget to를 지워 “Don’t Smile”로 바꿔 버린 것을 보면 언어 유희에 충분히 재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 시퀀스는 잊어버리는 것이 사라지면 웃을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이는 중요한 복선인데 조커에겐 과거에 대한 망각이 일종의 방어막이었다. 망각 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는데 약을 먹지 않음으로써 망각을 하지 못해 더 이상 행복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현실은 실로 웃을 수 없는 비극이 된다.
그렇다면 “I Hope My Death Makes More Cents”는 어떤 의미로 쓰여진 것일까? 그대로 번역하자면 “내 죽음이 내 삶보다 더 나은 돈벌이가 되기를”이란 뉘앙스 였을 것이다.
미국의 가장 낮은 화폐단위는 센트다. 그러니 최저시급, 소외된 최약계층의 삶을 그 센트라는 단어에 녹여낸 것이다. 말 그대로 빈털터리 보잘 것 없는 삶에서 자신의 죽음이 몇 센트라도 더 벌 수 있길 바란 것이다.
이를 방증하는 것은 조커가 머레이의 TV쇼 리허설을 하며 저 대사를 하고 권총자살을 연습한다는 것이다. 말그대로 공중파를 통해 자신의 죽음을 개그코드로 사용해 인생 마지막 쇼를 완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조커(아서 플렉스)의 어머니 이름은 페니 플렉스다. 페니는 센트와 같은 뜻을 가진 미국 최소단위 화폐의 별칭이다. 즉 Cent=Penny로 치환하면 자신의 죽음이 어머니의 삶보다 더 가치 있기를 바란다는 소망이었던 것이다. 조커는 자신을 옥죄는 가족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했다.
이 문장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라서 마지막까지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영화의 말미, 조커는 자신의 코미디가 주관적이어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말한다. 가치는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인 것이니 타인의 진정한 가치를 어찌 알겠는가? 타인의 고통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어찌 이해하겠는가?
결론적으로 Cents를 ‘가취’로 번역한 것이 영 못마땅하다.
심각하진 않지만 전반적으로 거슬리는 번역도 곳곳에 존재했다.
제발 번역 빌런부터 제거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4106727CLIEN
중요한 반전이나 단서는 아니고 사실 알고 보는게 나을 수도 있으니까요
약스포도 싫은 분들은 알아서 거르실거라 생각합니다.
거슬리는건 덤이고 사실 그냥 왜 저렇게 번역했는지 이해도 못했다는거...
번역도 이해 못하고 뜻도 이해못하고... 최악이죠.
하 번역이 완전히 망쳤네요.
조커의 그 참담한 상황애서도 언어유희를 하는 상황을 집중할 것이냐
의역을 하더라도(아예 바꾸더라도 후자를 택하는 게 맞아보이긴 한데
절충한다고 쓴 단어가 대중이 잘 모르는 뜻으로 쓰여서
오타에 집중하게 된다는 게 아쉬운 거죠
아쉽긴 한데 어쩔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후자를 어느정도 살리려면 조사를 넣어야 하는데 조사를 넣더라도 오타에 집중하게 되거든요
'죽음이 더 가취(佳趣)있기를 바란다'라는 말은 성립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취가 대중이 잘 모르는 단어라서가 아니라,
위 문장에서 쓰일 수 없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부분의 번역은 몰라도 이건 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99개 잘해놓고 한문장 틀리면 영원히 욕먹고.. 특히 양국문화+작가사상까지 고려하면 그냥 답이 없음
어차피 100% 정확한 번역은 불가능하기에 어느 정도 번역가에게 재량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이 번역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고요.
우리는 이미 인피니티 워에서 endgame을 가망이 없어...로 번역했던 희대의 오역을 경험했습니다. 그 단어가 다음편 영화의 제목이 되기도 했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오역을 해버린거죠.
재량은 오리지널의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의역을 할때 재량권이 주어지는 거지, 원래의 의미와 뉘앙스를 바꿔버리는건 재량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오늘 보러갈라고 했는데
여기저기서 들리는 반역적 번역 지적 이야기에 기다렸다가 제대로 된 번역 적용된 걸로 봐야지 싶을 정도네요.
이사림 번역으로 영화보는 관람객이 몇명이고 여기에 지불되는 돈이 얼만데요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시는것 아닌지..
푼돈이라도 라는 느낌이었는데..
거의 그렇게 쓰이지않는 문장이라..
차라리 언어유희로 하지않고.. 그냥
나의 죽음이 동전몇푼 더 벌수있기를.. 로 직역해버리는게 더 나았을수도...
짧은 영어임에도
뭔가 뉘앙스와 의미 배경이
자막하고 위화감이 들어서 이상하다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전부 저 사람 번역이더군요.
영화의 몰입감을 떨어 뜨리는데 일등공신입니다.
진짜 너무 수준이 안 맞아요.
모든 언어가 뉘앙스까지 정확히 번역할 수 없고 그래서 기생충에선 ‘서울대’를 ‘옥스포드’로, 극한직업에서는 ‘이것은 치킨인가 갈비인가’는 ‘테이크아웃입니까 배달입니까’로 번역하는 것 등은 이해할 수 있는데...
관용구같은 문장의 단어를 라임으로 변화준걸 철자가 틀린 것으로 번역한건... 모르겠습니다.
악의적인건지,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건지. 그도아니면 그정도 언어유희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거란 생각이었는지. 좋은 영화를 보고나서도 늘 그 번역가 덕에 기분 망칩니다.
아는데 재능이 없어서 훌륭하게 번역을 못 해 낸 걸로 보이네요
sense 내 죽음이 한 번쯤은 가치가 있기를
가취라는 단어를 가치로 알고 있다면 모를까
가치를 가취로 알긴 힘들 테니
얼마전에 37미터 2를 봤는데 거기선 아예 문장을 다시 써도 매끄럽게 몰입되는 번역이었습니다
왜 조커가 그 수준이 안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전체적으로 그냥 번역 퀄리티가 낮아요
자막이 영화의 몰입을 깨뜨려요
지나친 축약과 의역도 너무 많습니다
언어유희를 완벽하게 번역하는 게 힘들다면 차라리 내 죽음은 내 삶보다 몇푼이라도 더 가치 있었으면..쪽이 더 나았을거에요. 조커가 저 문장을 쓴건 make sense를 cents로 고쳐서 그만큼 내 삶은 별로였고 차라리 죽는 것이 더 가치있을거 같다..라는 생각을 표현한거니까요. 그래서 중간중간 자살을 직접적으로 암시하는 장면도 반복적으로 나오구요.
가취..라고 번역했길래 어디 오타가 있어서 일부러 그렇게 번역한건가 싶어서 화면 뚫어져라 봤는데 오자가 없어서 뭐지?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