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중국신문 실린 3·1운동 참상 책 펴내
“‘만세 소녀’ 양팔 잘리고…
십자가에 묶여 채찍·몽둥이질 당해”
독립기념관(관장 김능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중국신문한국독립운동기사집(Ⅱ)-3·1운동 편>을 발간했다고 29일 밝혔다.
이 자료집은 1919년 당시 중국에서 간행된 <민국일보>(民國日報), <신문보>(新聞新), <중화신보>(中華新新), <시사신보>(時事新報) 등 총 6종의 신문에 실린 3·1운동 관련 기사를 수집하고 내용을 번역해 영인한 원문과 함께 담은 것이다. 3·1 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사진자료도 실었다.
자료집을 보면, 중국 신문들은 입장과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일제의 잔악한 탄압상과 이에 대한 한인(한국인·조선인)의 저항을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예컨대 3·1운동에 나선 여학생들을 능욕하거나 한인을 처리하는 잔인한 방법을 다룬 기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3·1운동 당시 만세시위에 참가한 여학생의 팔을 자르는 등 일제의 잔혹한 탄압 실상을 알려주는 보도기사의 그림.
“서울 한국 독립운동에서 발생한 일이다. 여러 여학생들이 독립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일본 경찰들은 강박적으로 여학생들의 옷을 벗겨 알몸[赤身]으로 거리에 내세워 능욕하였다. 지금 같은 문명 세계 어떻게 이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을까! 하늘이 노할 노릇이다. 이뿐만 아니다. 1학년에 다니는 어린 학생이 오른 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높이 외치자 일본 헌병은 검으로 그의 오른손을 잘랐다. 오른손이 잘린 학생은 다시 왼손에 한국 국기를 들고 더욱 높은 소리로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러자 일본 헌병은 다시 그의 왼손마저 잘랐다. 두 손이 잘려 나간 학생은 더욱 큰 소리로 독립만세를 부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검으로 학생의 가슴을 찔렀다. 이렇게 학생은 검에 찔려 죽어갔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이 끔직한 광경을 목격한 한 서양인이 사진을 찍어 남기려고 하다가 일본 헌병에게 끌려갔다. 서울 각지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잔인무도한 폭행을 폭로하자면 부수기지이다. 하늘이 똑바로 내려 보고 있다. 정의가 반드시 승리할 날이 올 것이다.” (<국민공보>1919년 4월 12일 제2면, ‘일본인이 부녀를 능욕하는 방법’)
경운궁(덕수궁) 돌담을 끼고 미국영사관으로 향하는 3.1운동 만세 시위대.
“사병(일본군)이 총검을 세운 총을 들고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면서 마구 찔러댔다. 시위대는 쫓겨서 산위로 올라갔다. 한인들은 산 정상에 모여 조선독립만세를 환호하였다. 멀리서 바라보니 온통 흰색이다. (중략) 일본 사병 두명이 한인을 끼고 내려왔다. 한인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또 다른 사병 한명이 뒤에서 총으로 한인을 가격했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 지극히 야만스럽게 발길질 해댔다. 또 총으로 힘껏 가격했다. 보는 사람도 그 광경이 처참하여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우리와 함께 동행하였던 선교사가 큰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보건대 이 사람은 아무런 죄도 없는데 이런 잔인한 학대를 당해야 합니까?” (<민국일보> 1919년 3월27일 제2장 제6판, ‘일본이 한인을 처리하는 잔인한 방법’)
1919년 3·1운동 발발 당시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한국의 모든 언론 기관을 통제했으며, 친일적인 시각을 가진 기사만이 검열을 통과해 무사히 인쇄될 수 있었다. 일제는 3·1운동이 일어나자 국제여론의 악화를 우려해 그 진상을 축소·은폐하려 했지만 목숨을 건 저항 소식은 외국 기자들과 선교사들의 입을 타고 나라 밖으로 번져나갔다. 중국 신문들의 기사 출처가 <로이터> 통신 기사나 일본 신문 또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목격담이나 증언이 주를 이룬 것도 일제의 언론 통제 탓이 컸다. 이 때문에 3·1운동을 다룬 중국신문 기사들을 보면 풍문으로 전해지거나 정확성이 떨어지는 기사들도 더러 보인다. 하지만 직접 취재한 내용을 적거나 출처를 정확히 밝히기도 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일제통치에 저항하며 문을 닫은 상가들.
“로이터 통신 3월 31일 북경 전보. 일본인들이 한국 학생을 가혹하게 학대한 확실한소식을 입수하였다. 한국인 학생 몇 명이 체포되어 나무로 된 십자가에 묶인 채로 채찍과 몽둥이 고문을 당하였다. 그러고 나서야 그들은 한국 어느 감옥에서 풀려났다. 일본인들은 이들을 고문하면서 ‘너희들은 입에 예수를 달고 살지 않느냐. 내가 듣기로는 예수도 십자가에 묶여 고통을 당했다 하더라. 오늘 너희들도 그 맛을 보아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런 혹형을 당하고 석방된 사람을 보면 하나같이 온몸이 성한 데가없고 상처가 심하여 도저히 움직일 수 없다고 한다.” (<민국일보> 1919년 4월 4일 제2장 제2판, ‘일본 군경의 조선인 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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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놈들 통치 시절 만행 중에 한 사례일 뿐..
이런 이유만으로도 섬나라 보이콧은 한국인으로써 당연한 겁니다.
링크 : http://www.hani.co.kr/arti/649030.html
또 그 뻔뻔스러움도...
지금도 저열한 미소를 지으며 진심은 ...
안타깝네요..
해외에서 추태 부리는 일본인 때문에 제일 먼저 생겼죠.
어글리 재패니즈.
일본인들이 호텔에서 훈도시 입고 돌아다니며 화변기 찾고 하고 눈살 찌푸리는 짓 할 때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이라 외국 나가고 그럴 여유도 없었죠. 휴...
그딴 개소리하는 유튜브 앵벌이도 많고요...
다른나라? 엿먹고 일단 우리한테 한건 욕먹어야죠
본토왜구박멸~
왜 구 박 멸
짐 승 척 살
일본은 멸망해야 합니다.
각설하고, 일본불매에 대해 반감이 생기는 그 접점, 그걸 엮는 자가 민족반역자라 생각합니다.
세월호 피로하고 그만 하라는 그 접점을 만든자가 민족반역자라 생각합니다.
휘둘리지 마십시오.
안되겠다싶어서 다소 자극적이지만 본 글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