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성리학의 기본이 수신, 제가라 태초부터 허례허식을 금하였으며 특히 고려말기 개막장으로 승려들이 정치에 참여해서 나라를 개막장 만들었던 불교에 대항해 나온 유교라 그런가 우리나라는 선비정신과 청렴, 검소가 기본이었죠.
조선말기 매관매직이 성행하면서 양반족보를 사서 양반대열에 속한 사람들은 본인 씨가 양반인지 안 들키기 위해 허례허식에 집착했단게 고등학교 역사 참고서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외적으로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던게 마을 잔치때였는데 이건 평소 먹을거 제대로 못 먹고 굶고사는 마을 사람들 제대로 한번 먹이기 위한 배풂의 시간이었구요. 제가사상(가정을 다스림)이 치국(나라를 다스림), 평천하(천하를 태평하게 함)로 확장된거죠.
위 짤에도 나와있지만 족보 산 양반들은 이런 잔치한번 보고 양반들 제삿상이 저럴거라고 착각했나봅니다. 오히려 진짜 선비들은 남들 안 보는 자기들 행사는 최소한으로 검소하게 치르는게 덕목이었죠.
6.25 지나면서 많이 변하기도 했겠지만 지금까지 족보 자랑할만한 양반집이면 이 제삿상에 송편이나 떡국이나 전 같은거 몇개 더 올리는데서 멈췄으리라 봅니다. 경쟁적으로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는 집안은 족보 산 중인인걸 인증하게 되는 샘이죠...
가정의례준칙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거 같습니다. 나라를 몇조 단위로 해드시면서 본인도 제삿상에 돈 많이쓰는줄 알았는데 자기보다 상다리 더 부러지게 차리는 집안이 있었단 말이죠. 이거 우리 집안이 꿀리는거 같아서 허례허식을 폐지한다는 헛소리로 코리아 스탠다드를 정해버림... 전형적인 상놈 마인드입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JayXon
IP 222.♡.47.32
09-12
2019-09-12 23:06:02
·
ㅋㅋㅋㅋㅋㅋ
라삼이
IP 14.♡.189.199
09-12
2019-09-12 23:03:06
·
저희 집안이 무슨 공 하나 제대로 없는 진짜 양반근처도 못가본 집안인거 같은데
고등학교 윤리선생에 교장하고 퇴직한 큰아버지는 허름한 집에서
차례나 제삿날만 되면 저랑 제동생 앉혀놓고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읊어대면서 절 두번이나 세번이냐로 큰소리 뻥뻥치셨죠
ㅎㅎㅎ
이젠 안봐서 너무 속시원.
fireagle
IP 14.♡.35.101
09-13
2019-09-13 00:22:24
·
종각이나 왕릉에 가면 선왕 제례상 상차림에 대해서 나오는데
예상외로 상당히 소박하더군요.
밥 국 외 간단한 나물 정도로만, 심지어 과일도 없음요.
물론 매일 올리는 거지만 그냥 서민 평상차림 같았음요
제사상은 남자들만 차릴수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거겠죠.
일제시대 무렵부터 여자들을 노비 노동력 공백을 매꾸게 되면서, 명절 노동을 여자가 하게되면서 상다리 부러지는 제사상이 생겨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홍동백서 같은 이상한 말도 일제시대 때 생겨나서, 박정희시대때 표준화 시켰다는 설이 지배적이죠...
남자들이 계속 제사를 준비했다면, 간소하게 유지되거나 진즉 이미 그런 문화자체가 없어졌을 겁니다.
조선의 유교가 최고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알아보면 볼수록 생각외로 일본이 추하게 왜곡이 시킨 부분이 많은 것도 또한사실이죠..
http://www.koreatea.or.kr/layout.php?main=A_chaculture/korea.php
사진과 같이 간소한 방식으로.
조선말기 매관매직이 성행하면서 양반족보를 사서 양반대열에 속한 사람들은 본인 씨가 양반인지 안 들키기 위해 허례허식에 집착했단게 고등학교 역사 참고서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외적으로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던게 마을 잔치때였는데 이건 평소 먹을거 제대로 못 먹고 굶고사는 마을 사람들 제대로 한번 먹이기 위한 배풂의 시간이었구요. 제가사상(가정을 다스림)이 치국(나라를 다스림), 평천하(천하를 태평하게 함)로 확장된거죠.
위 짤에도 나와있지만 족보 산 양반들은 이런 잔치한번 보고 양반들 제삿상이 저럴거라고 착각했나봅니다. 오히려 진짜 선비들은 남들 안 보는 자기들 행사는 최소한으로 검소하게 치르는게 덕목이었죠.
6.25 지나면서 많이 변하기도 했겠지만 지금까지 족보 자랑할만한 양반집이면 이 제삿상에 송편이나 떡국이나 전 같은거 몇개 더 올리는데서 멈췄으리라 봅니다. 경쟁적으로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는 집안은 족보 산 중인인걸 인증하게 되는 샘이죠...
가정의례준칙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거 같습니다. 나라를 몇조 단위로 해드시면서 본인도 제삿상에 돈 많이쓰는줄 알았는데 자기보다 상다리 더 부러지게 차리는 집안이 있었단 말이죠. 이거 우리 집안이 꿀리는거 같아서 허례허식을 폐지한다는 헛소리로 코리아 스탠다드를 정해버림... 전형적인 상놈 마인드입니다.
고등학교 윤리선생에 교장하고 퇴직한 큰아버지는 허름한 집에서
차례나 제삿날만 되면 저랑 제동생 앉혀놓고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읊어대면서 절 두번이나 세번이냐로 큰소리 뻥뻥치셨죠
ㅎㅎㅎ
이젠 안봐서 너무 속시원.
예상외로 상당히 소박하더군요.
밥 국 외 간단한 나물 정도로만, 심지어 과일도 없음요.
물론 매일 올리는 거지만 그냥 서민 평상차림 같았음요
일제시대 무렵부터 여자들을 노비 노동력 공백을 매꾸게 되면서, 명절 노동을 여자가 하게되면서 상다리 부러지는 제사상이 생겨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홍동백서 같은 이상한 말도 일제시대 때 생겨나서, 박정희시대때 표준화 시켰다는 설이 지배적이죠...
남자들이 계속 제사를 준비했다면, 간소하게 유지되거나 진즉 이미 그런 문화자체가 없어졌을 겁니다.
조선의 유교가 최고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알아보면 볼수록 생각외로 일본이 추하게 왜곡이 시킨 부분이 많은 것도 또한사실이죠..
순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