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나 아랍에서 사용하는 말이며
qasba, qasaba, qasbah, qassaba, gasaba, quasabeh 의 형태로 쓰고 읽는
이 카스바는 요새 혹은 성채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군요.
영어로 쓰면 "keep", "old city", "watchtower" 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 들었을땐 카스맥주 cass 만 파는 바 bar 인줄...
덧. 작곡가는 손목인입니다.
일제 강점기 한국인의 떠돌이 정서를 잘 대변한 곡으로 꼽히는 고복수 노래의 〈타향살이〉 외에 이난영이 불러 높은 인기를 누린 〈목포의 눈물〉 과 고복수의 대표곡 〈짝사랑〉이 특히 유명하며, 그 외에도 〈해조곡〉, 〈청노새 탄식〉, 〈뗏목 이천리〉, 〈아빠의 청춘〉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이난영과 고복수, 남인수, 장세정, 김정구, 박단마 등이 손목인이 작곡한 노래를 불러 인기를 모았다.
중일 전쟁 발발 이후부터 일제의 군국주의 정책에 부합하는 친일 가요를 작곡하기 시작했고, 〈이천오백만 감격〉, 〈참사랑〉, 〈봄날의 화신〉, 〈그대와 나〉, 〈총후의 기원〉 등 전쟁터에서 장렬하게 죽는 것을 미화한 노래를 남겼다. 이로 인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음악인 부문에 포함되었으며, 시민단체가 기념사업 중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손목인을 김해송과 함께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명시된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심의 대상자 명단에 올렸지만 작곡가가 갖고 있던 당시의 사회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사실이 인정되어 기각했다.
광복 후에는 〈아내의 노래〉, 〈슈사인 보이〉 등을 히트시켰으며, 일본 영화 음악계에서 활동한 것을 시작으로 영화 음악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아내의 노래>는 1948년 금능인(김능인) 작사로 김백희가 [안해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고, 4년 뒤 유호가 개사하여 심연옥이 취입하면서 히트시켰다. 〈카스바의 여인(일본어: カスバの女)〉은 일본에서의 최대 히트곡이며 작곡가 길옥윤이 1968년경에 개사하여 패티김의 노래로 발표되어 우리들의 마음에도 오래 기억되고 있다.
작곡가는 한국사람이지만... (친일파지만...)
여러명이 부르면서 편곡이 조금 될수도 있지만 말이죠.
모로코의 카스바는 동네 자체가 토성으로 된 마을... 왕좌의 게임에 나왔다던가..
지명이 아니라 명사로 요새나 성채도시라는 뜻이기 때문이죠.
"XXX 카스바" 나 "카스바 XXX" 라는 형태는 있을 수 있지만 말이죠.
알제 카스바(알제리 알제), 우다이야 카스바(모로코 메디나 라바트) 등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