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최근 저도 생각이 많아져서
공부나 좀 더해보자 하는 마음에서 - 박유하 저 "화해를 위해서"(2015) - 온라인 버전을 읽어보고 있습니다.
물론 한글로 된 글이지만 저자가 일본에서 오래 살았고, 이 책이 일본 유수의 학술상을 휩쓴 작품이기 때문에
일본인의 '마음'을 대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읽고 있지만...,
역시 쉽게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혹시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속독을 권합니다.
단순한 문제를, 최대한 복잡하게 꼬고 꼬아서, 마치 이렇게 절규하는 것 같더군요.
"어차피 우리 인간은 다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어.. 딱히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야...조선도 문제였고 온 세상이 문제야..
...그래 !... 인류보완계획..."
1.
저도 레이와 아스카 좋아합니다.
1997년 에반게리온 만화책 버전을 군대에서 접하고 동료들과 은밀하게 돌려보던 기억이 선합니다.
당시, 우리 부대 내에도 슬램덩크와 에반게리온은 아주 은밀하지만 폭발적으로 유통이 됐습니다. 무려. 그시대에.
제대하고 나와보니 에반게리온 TV판이 자막이 입혀져서 비디오로 유통 중이더군요.
그때 엔딩 크레딧에 올라가던 보싸노바 버전의 "플라이투더문, 렛미플레이어몽스타~"의 뽕에 취해서
선배 목덜미를 붙잡고 "어서, 다음편을 구해오라능"하고 절규하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당시 치열하게 생존을 고민하던 우리세대는 모두가 '이카리 신지'였고,
가슴 속의 연인은 아야나미 레이, 혹은 아스카 였더랬습니다.
(물론 마음속의 상사님은 미사토 대위님이십니다)
우리의 주인공이 아버지의 명령을 받들고 절규하는 대목에서
우리 세대 또한 모두가 깊은 공감대를 느꼈습니다.
"신지, 에바에 타라"
"아니, 왜, 나는, 수능을 봐야하고, 군대에 끌려가고, 취업까지 해야 하고, 결혼과 아이까지?"
"명령이다"
여기서 우리 세대는 두 파로 나뉘었었습니다.
명령을 순종한 이들이 2/3였다면, 싫은데 그냥 내길 갈텐데, 하고 거부한 위인들이 있었습니다.
머 인생은 길기에 성적표를 논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미지의 여성성/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숨막히는 원시성으로 상징되는 에반게리온 앞에 선
신지의 입장이 너무도 공감이 되던 18살~28살의 성장통을 우리는 너무나 공감했다는 말이겠죠.
2.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이 무언지 잠시 고민해 봤는데,
솔직히 뚜렷하게 그려지지가 않습니다.
분명 사골이 우러날 정도로 만화-비디오-TV판-영화판 까지 섭렵했지만
지금도 그 많은 상징과 복잡한 스토리를 남에게 설명할 정도는 못됩니다.
특히 아야나미 레이가 그렇습니다.
처음 레이를 접했을 때, 그 알듯말듯한 여성성과, 무엇이든 포용해낼 것 같은 헌신적 자세에
깊은 감명을 넘어,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분명 아스카도 좋았지만 20대의 우울한 남심을 아야나미 레이는 너무 적확하게 공격해오더군요.
그리고, 아픈 그녀가 이렇게 읖조리며 출격을 준비합니다.
"명령이 있다면..(命令があれば)"
아,
나는 정말 나약한 사내였구나. 이 연약해 보이는 아이조차도 전쟁 앞에선 이렇게 헌신적인데.
나는 도대체 멀하는 놈인가, 병신처럼 용기도 없고, 처울기나 하고, 이뤄낸 건 아무것도 없고...
그리고서는 깨닫습니다.
아,
일본이 진정으로 그리고자 하는 현대 전쟁 속의 인간성이란 사실 '아야나미 레이' 캐릭이었구나.
박유하가 찬양하고 싶어했던 것은 그 '명령'이라는 것에 순종해야 하는
갸냘픈 여인의 위대한 모성 같은거였겠구나, 그 어떤 더러운 욕망이라도 정화해 내는 여성성, 숭고한 희생, 포용력
3.
얼마전 일본국이 연호를 새로이 만들었다기에 흥미를 갖고 지켜봤는데, 레이와(命和)로 정해졌더군요.
"화합을 명령하노라""
참으로 아베 정권다운 작명법이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그 명령이 어떤 정통성을 갖고 있는지를 떠올리지 말고, 그 복잡한 전후 사정은 (마치 에반게리온의 사도처럼)
우리가 알 필요가 없고, 그저, 국가가 명령하면 그 대로 따라야 한다, 라는 고압적인 자세가 느껴져 거북하더군요.
에반게리온의 애니메이터(사카모토 요시유키)가 어째서 위안부를 사실상 경멸하는 내용을 담은 글을 썼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에반게리온의 세계관(혹은 미학적 관점)은 앞선 설명대로 아야나미 레이에 녹아 있는데,
이 여성성이라는건 그야말로 "숭고한 희생"을 근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특유의 일본식 미학이지요.
일본의 바둑문화를 아시는 분이라면 일본바둑기사는 "모양이 나쁜 수는 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빈삼각, 같은게 대표적이죠. 구질구질한 (모양의) 삶을 구걸하지 말고, 사석작전에라도 씌여지는게 더 좋다는 인식입니다.
명령이 있으면, 받들고, 깨끗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결국은 그 아름다운 모양 자체가
인류보완계획의 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모순적인 주장입니다.
당연히, 에반게리온 크리에이터 입장에서, 구질구질한(?) 삶을 택한 위안부, 징용공들의 모습 자체가 '미학적'으로 거슬릴테죠.
아니, 자신들이 꿈꿔온, 가장 아름다운 '숭고한 희생'이라는 그림과는 극단의 끝에 있는 모양새입니다.
일견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닙니다.
에반게리온에 순정을 바친 첫 세대인 저조차도,
때론 그런 삶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안해본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4.
일본인들은 '마음가짐'에 해법이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에반게리온의 원대한 화두였던 인류보완계획의 해법도, 사실,
마음가짐을 달리하면 달라보인거다, 라는 원효대사 해골물 수준의 답을 내렸었죠.
정말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한 결론에 대해, 우리는 또 그것에 열광했었는데,
오늘 또 요시유키 씨의 발언을 접하고 깨닫는 게 많습니다.
"마음가짐"이란 개똥철학을 버려야만 인류보완계획이 완성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한일 화합을 꿈꾼다는 박유하 씨의 생각도 사실은,
정체 없는 "인류보완계획"에 가깝습니다.
일본이 범죄를 저지른게 아니라 그 시대 자체가 처절한 시대였고, 일본은 침략이라는 실수를, 조선은 침략을 당한 실수가 있으니,
이 점을 마음가짐에 바로 새기면, 한국과 일본이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명령에 순종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우리 젊은 신지들도, 대학입시든, 취업이든, 결혼이든, 내집마련이든 불가능할게 없다는 논리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세계는 모순으로 가득차 있고, 그게 일본만 그랬던 것은 아니니, 포용하고,
그 숭고한 희생은 월급/보상급/배상금 같은 치졸한 물질로 따지지 말고,
아름답고 숭고하게 기리기리 포장해서 망각하는게 인류보완계획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
저도, 맘대로 결론을 낼 수가 없는 글이긴 한데,
여러모로 마음이 씁쓸한 일요일 저녁이네요.
괜시리, 아야나미 레이를 좋아했던 제 청춘도 씁쓸해 집니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
레이야, 더 이상 갇혀 있지 말고, 너도 빨리 그곳에서 훌훌 탈출하렴...
그걸 즐기는 거 자체가 나쁘달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내용에 절대 찬성해서 보는 애니는 많지 않죠. 다만 내 어릴적 향수가 가득한 브랜드가 이모양이 된게 슬프고 개탄스러울 뿐입니다아
그러네요. 일단 초기 버전인 tv 판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해골물 표현은 그 쪽을 겨냥한것 같습니다. 제가 2000년대에도 영화 버전을 꾸준히 보긴 했는데, 딱히 엔딩이라고 느낀 대목이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ㅠ 설정관련해선 유튜브 채널 몇개 살펴봐도 저는 잘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 너무 많네요...
일본식 야구도 그렇고 , 얘네들 스포츠정신은 아름다움의 추구와는 달리 더럽도록 실리적인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