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맛있게 귀엽게 생겼다~" 회킬러라는 열한살 여자 손님이 실내 수족관을 휘젓고 다니는 밀치를 보고 날린 감탄사입니다. 그 느낌 알겠습니다. 회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은빛 비늘 속 두툼한 살밥이 맛있게도 보였을테고 똥그란 눈동자에 자그마한 지느러미를 나풀 나풀 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양이 귀엽게도 보였을테니까요. 이중으로 형용할 수밖에 없었던 그 내적 갈등,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놈의 진짜 이름, 그러니까 표준명은 가숭어입니다. 가짜 숭어란 말입니다. 생긴건 딱 숭언데 숭어가 아니라 붙인 이름일터, 재밌는 건 서울 경기 지역처럼 이놈을 참숭어라고 부르는 곳도 꽤 많다는 것입니다. 이놈 때문에 진짜 숭어가 오히려 가숭어나 개숭어 혹은 보리숭어나 뻘숭어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왕자와 거지 이야기처럼 처지가 뒤바껴버린 것입니다. 아무튼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경상도 지역에서는 이놈을 밀치라고 부릅니다.
가숭어라고 하면 마치 밀치가 숭어보다 맛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숭어가 갓잡으면 질겅거리고 빨리 물러지는 데 반해 밀치는 갓잡으면 쫄깃하고 가볍게 숙성시키면 탄력이 더 높아집니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숭어보다 밀치를 훨씬 더 좋아합니다. 물론 밀치를 숭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요. 아무튼 양식을 하지 않는 숭어에 비해 밀치는 양식이 활성화되어 공급량이 엄청납니다. 아마 광어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횟감이 밀치일 것입니다.
밀치는 영세한 횟집 사장님에게는 효자같은 녀석입니다. 보통 횟집에서 모둠회가 제일 많이 나갑니다. 서너가지 생선회를 섞어서 내는 메뉴인데 광어와 우럭을 두어줄 기본으로 밀치를 한두줄 얹습니다. 이때 참돔이나 농어를 쓰는 것보다 밀치를 쓰면 사장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가성비가 훨씬 높아집니다. 손님들의 만족도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실제로 단품회로 많이 찾는 횟감순을 따져도 밀치가 단연 광어 다음일겁니다.) 반면에 원가가 낮아지니 좋을 수밖에요.
문제는 밀치가 연중 계속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7월 중순부터 9월 초순까지, 그러니까 해수 온도가 최고로 높을 때는 밀치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양식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닌데 뜨거운 해수에 취약하기 때문에 횟감의 컨디션이 확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어 달동안 밀치를 안 쓰거나 상태에 따라 양을 확 줄입니다. 참돔이나 농어로 대체하는데 원재료비 압박 때문에 덤이 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칠팔월은 매출도 마진도 눈에 띌 정도로 떨어집니다. 자연히 사장님도 울상입니다.
다행히 요즘은 양식 기술이 발달해선인지 컨디션 괜찮은 밀치가 어느정도 공급됩니다. 이 불경기에, 한 박스 만원하던 상추가 3~4만원하는 이 미친 채소 물가 상승 시기에 밀치 좀 있다고 뭐가 그리 달라지겠냐만은 그래도 고맙기 그지 없습니다. 담은 원재료비 몇푼이라도 아낄 수 있다는 맘도 있지만 손님들에게 넉넉해질 수 있다는 기쁨도 큽니다. 실제로 밀치는 횟감으로 탁월합니다. 회전문가를 자처하는 분중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폄하하는 경우도 있지만 구수하고 쫀득한 밀치는 최고의 횟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비싸야 품질이 좋은 건 아닙니다. 이름 혹은 브랜드에 현혹되지 않는다면 가격에 비해 품질이 높은 상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금바리니 이시가리니 하는 고가의 횟감은 사실 맛 그 자체보다는 (희소성으로 인한)이름 값으로 내야 하는 비용이 만만찮습니다. 마치 고급 어종을 먹으면 왠지 으쓱해지는 기분에 더 합리화하는 그 비과학적 '특별한 맛' 때문에 치러야 하는 비용이 훨씬 큰 것입니다. 이건 브랜드 아파트가 품격을 올려준다는 믿음으로 아파트 이름에 큰 비용을 치르는 심리와 비슷할 겁니다.
참고로 밀치는 굵은 평썰기나 가는 막썰기가 좋습니다. 이 두가지 방법으로 썰면 구수한 아삭함과 고소한 쫄깃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서울사는 저는 처음 들어보네요
횟집 메뉴판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횟집 사장님들이 숭어라는 이름으로 팔고 계신게 아닌가 싶네요
얼마전에 먹은 물회가 땡기네요. ㅠㅠ
물회의 구성을 보니 전복 한 줄, 해삼 한 줄, 멍게 약간, 오징어 한 움큼, 문어 약간, 광어(로 추정되는 흰살생선) 약간, 방어(로 추정되는 붉은살생선) 약간..
그러게요. 밀치는 들어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이지 부업으로 책한권 내셔도 좋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독일이라 생물 회는 없고 일식집 회도 한번은 얼렸다 행동하는 거라 한국처럼 신선한 회 먹기가 힘드네요
횟집 수조에 눈 노란 가숭어 보면서 “양식하는 숭어류인가.....”했는데 진짜 양식이 되는군요
회는 두 가지 경우 빼곤 잘 먹습니다. - 없어서 못먹을 때랑 있는데 안줘서 못 먹을 때.
요즘 마음 고생 많으시겠네요. 어디가면 먹을 수 있나요?
멀지 않으면 꼭 가고 싶습니다